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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281화 (281/346)

무림회귀백서 281화

95장 심상세계(2)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진백천은 3일째 미동이 없었다.

겉으로만 보면 마치 운기조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 같았다.

하지만 그를 확인한 의원은 고개를 저었다.

“운기조식은 아닙니다. 내력의 운용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니, 애초에 온몸에 내력이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내력이 없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요?”

“쓰러지기 전까지 마인과 싸우던 분입니다.”

도홍경과 중혁의 말에 의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는 녹림의 형제들에게도 몇 차례나 들었습니다. 그러니 더 이해가 가지 않는 겁니다.”

보통 이렇게 오래 깨어나지 못하면 의원들은 뇌사(腦死) 상태라 판단했다.

온몸이 괜찮아도 뇌가 죽으면 이렇게 숨만 쉬며 깨어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현재의 진백천은 그런 것도 아니었다.

“과도할 정도로 뇌가 활성화되어 있고 두 눈이 떨리는 중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

주변에 있던 모두가 긴장한 채 의원의 입술만 쳐다봤다.

“단순히 수면 중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후우.”

혹시라도 위험한 상황에 빠졌을 거라 생각한 도홍경은 눈에 띄게 안도하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렇다면 형님은 주무시다가 어쨌거나 깨어나긴 하는 거죠?”

“흐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남만의 수면 지네에게 물리면 죽을 때까지 잠만 자는 자들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기다리기보다는 가능한 깨울 수 있는 방법을 찾으심이…….”

“의원께서는 못 하시는 겁니까?”

도홍경의 물음에 의원이 고개를 저었다.

“아는 사람 중에 이런 쪽에 잘 아는 의원이 있습니다. 침술로는 대가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는 자입니다. 대신 집에서 절대 나오지 않으니 직접 찾아가야 합니다.”

“위치만 알려주세요. 찾아가는 건 저희가 하겠습니다.”

의원은 녹림 채주의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직접 자필로 적은 소개서와 함께 그의 위치를 알려줬다.

“장수객(長壽客)이라 불리는 의원입니다. 곰보로 된 얼굴이 특징이니 한눈에 알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다행인지 어쩐지 장수객이 있는 위치는 그들이 지나가야만 하는 길림(吉林)이었다.

그들이 떠날 준비를 하자 크게 은혜를 입은 녹림은 길림까지 그들을 안내해 준다고 했다.

하지만 하루가 급한 그들에게는 산적들은 짐덩이일 뿐이었다.

“위치를 아니 괜찮습니다.”

중혁은 등 뒤에 지게를 고정하고 거기에 진백천을 앉혔다.

등을 맞대고 앉아 있는 그 모습이 마치 가부좌를 튼 불상을 업은 것 같았다.

“무거우면 말해 번갈아 하면 되니까.”

“괜찮습니다. 하나도 안 무겁습니다.”

“그럼 가자.”

도홍경이 앞장서자 그 뒤를 중혁이 따랐다.

중혁이 땅을 박찰 때마다 진백천의 몸이 흔들렸다.

* * *

“흐음. 왜 이렇게 멀미가 나는 것 같지? 이것도 부작용인가?”

진백천은 자신의 명치를 툭툭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상세계에 들어온 지 꽤나 시간이 지나고 그는 이곳 생활에 제법 익숙해진 상태였다.

백발 노인의 말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가 백치가 되거나 죽게 되겠지만 그런 말 따위로 우울하게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지.”

그렇게 노력한 덕분에 진백천은 이곳의 비밀 아닌 비밀들을 알아냈다.

그 대가가 바로 눈앞의 육포였다.

우물우물-

입안에 하나를 넣고 우물거리자 짭짤하고 고소한 맛이 입안으로 풍겼다.

이곳은 현실이 아닌 자신의 심상세계.

다른 말로 하면 어지간한 것이 아니면 진백천이 생각하는 대로 이뤄줬다.

그 대표적인 것인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침대라든지 지금 들고 있는 육포였다.

‘백발 노인의 말대로라면 내 정신력으로 만들어낸 거라 그랬지?’

진백천은 모르겠지만 이번 일로 그의 상단전은 오기조원(五气朝元)의 경지를 이루며 완성이 된 상태였다.

그 완성이 비록 여러 우연과 우연이 겹쳐 이뤄진 것일지라도 그의 정신력은 보통 이들의 수십 배는 더 강했다.

그러한 이유에는 여러 번 회귀를 하며 단단해진 영혼과 세월의 탓도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애초에 이러한 기운들을 상단전에 품을 수조차 없었다.

“여전히 지치지도 않고 싸워대는구나. 후우.”

진백천은 검은 용과 백발 노인이 치고받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차라리 저것들보다는 독꽈리 나무나 동자승이 더 얌전했다.

줄곧 그의 옆을 졸졸 따라다니던 동자승은 침대를 만들어내자 그 위에서 꼼짝도 안 했다.

푹신한 게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진백천이 단순히 육포나 만들어내면서 시간을 떼운 것은 아니었다.

혹시나 해서 밖으로 향하는 문을 떠올리거나 탈출하는 통로를 만들려고 했지만 그런 것들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무기라도 만들어서 이것들을 다 쓸어버려?”

물론 단순히 무기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이길 수는 없었다.

그의 몸에는 내력 한 줌도 없이 텅텅 빈 상태였으니까.

이러한 몸 상태는 아무리 운기조식을 취해도 나아지지 않았다.

진백천이 또다시 육포를 만들어 질겅질겅 씹는데 옆으로 무엇인가가 날라왔다.

“으음? 독파리?”

독파리는 배가 고픈지 진백천의 육포 위에 앉아서 고기를 조금씩 녹여 먹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축 처져 있던 독꽈리 나무가 기운을 차리며 잎사귀가 한층 더 푸르게 변했다.

“단순히 형상화된 것이 아니라 성장도 한다고?”

진백천은 육포를 독꽈리 나무 근처에 던졌다.

그러자 독파리들이 단체로 날아서 순식간에 육포를 먹어치웠다.

더욱 특이한 것은 바로 그다음 행동이었다.

위이이잉-

독파리들은 마치 더 달라는 듯이 허공을 부유하며 진백천의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 모습에 적의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배가 고프다 이거지?”

진백천은 눈을 감고 큼지막한 소고기를 떠올렸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앞에 선홍빛의 신선한 고깃덩어리가 생겨났다.

쿠웅-

큼지막한 소고기는 금세 독파리들로 뒤덮이며 그 모습이 줄어들었다.

상대적으로 독꽈리나무는 점점 싱싱해지더니 줄기가 쑥쑥 자라났다.

금세 곧 큼지막한 아름드리 나무가 되자 잎사귀 끝에 검은 무엇인가가 열렸다.

독꽈리 나무의 열매였다.

투욱-

독파리들은 열매가 떨어지자 그것을 모아 진백천에게 가져다주었다.

“이걸 먹으라고?”

한입에 쏙 들어갈 것 같은 열매는 무척이나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자고 있던 동자승이 입맛을 다시며 쳐다봤다.

-죽음만이…….

“안 줄 거니까 마빡 맞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해라.”

동자승이 자신의 입을 꾹 막았다.

‘저놈이 탐내는 걸 보면 먹어도 되는 거겠지?’

진백천은 두 눈 딱 감고 열매를 입에 넣었다.

그러자 과육은 금세 사르르 녹으며 목구멍 너머로 사라졌다.

열대 과일의 달콤함과 충만감이 가득 드는 열매였다.

“맛있는데?”

하지만 놀라운 것은 단지 맛뿐이 아니었다.

곧 그의 배가 따듯해지더니 단전으로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다.

다름 아닌 완전히 사라졌던 내력이었다.

원래 그가 가지고 있던 것에 비하면 먼지 한 톨 정도의 아주 작은 양이었지만 내력은 내력이었다.

진백천은 그 일말의 내력을 붙잡고 소주천을 행했다.

‘흐음.’

아주 적은 양이었기에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다.

“후우. 좋았어. 새로운 가능성이 보이는데?”

진백천은 이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 후로는 단순 반복 작업이었다.

독꽈리 나무가 배고파하면 자신이 고기를 제공하였고 그 대가로 열매를 받았다.

옛말에 티끌 모아 태산이라 진백천은 조금씩 내공을 모아 어느덧 주먹 한 줌 정도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

그쯤 되자 슬슬 검을 만들어 가볍게 휘둘렀다.

“찌뿌둥했는데 잘 됐어.”

가장 먼저 펼친 것은 역시나 태천검(台千劍)이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검은 용과 싸우기만 하던 백발 노인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멀찍이서 쳐다보던 노인은 3초 파류식(破流式)을 펼치자 어느덧 가까이 다가왔다.

-대충은 예상했지만 아직 한참이나 부족하군! 하긴 그러니 저런 사특한 놈에게 이리 밀리는 것 아니겠는가!

어딘가 할아버지 같은 얼굴로 통탄하듯 말하니 진백천의 얼굴이 붉어졌다.

“나름 하루도 빠짐없이 수련한 겁니다만?”

-그렇다면 더더욱 문제군. 둔재란 뜻일 테니. 쯧쯧. 과거의 나였다면 진즉에 대성하고 검은 용 따위 목을 베어냈을 걸세!

“과거의 나요?”

진백천은 노인의 말에 의문을 가졌다.

백발의 노인은 종남파에서 봤던 그림의 신선과 판박이었다.

단순히 그의 무의식이 만든 상징적인 모습이라 생각했는데 마치 실존하던 사람처럼 말하니 특이했다.

-물론 나는 자네의 태허무극진결의 내력으로 만들어진 허상의 존재지.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원류까지 사라지는 것이 아니야.

“그렇다면 혹시 제게 태천검을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크게 어려울 건 없지만 자네 같은 둔재가 배우기에는 험난할 것 같군.

“그거야 두고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어차피 이곳에서 할 것도 없고.”

노인은 수염을 조심스레 쓰다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수련 방법은 간단했다.

진백천이 태천검의 동작을 펼치면 노인이 그것을 살피며 잘못된 점을 짚어주었다.

의외로 가능할까 싶었지만 백발의 노인은 내력의 운용부터 세세한 틀어짐 하나 놓치지 않았다.

-파초식을 지금까지 그렇게 펼쳤단 말인가? 역으로 당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군! 어떻게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익혔단 말인가? 스승 없이 혼자 배워서 그렇단 변명 따위 할 생각 말게!

문제는 신선같이 생긴 얼굴답지 않게 혀끝이 무척이나 날카로웠다는 것이다.

진백천은 그가 짚어주는 점을 고치며 점점 완벽에 가까운 동작에 가까워졌다.

가장 좋은 일은 막혀 있던 3초 파류식을 배우면서였다.

단지 흉내 내기 정도에 불과했던 그의 파류식은 이제 실전에서 곧바로 사용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늘었다.

딱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내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직접 펼쳐보지 못하는 것뿐이었다.

“후우. 혹시 4초에 대해서도 알고 계십니까?”

-물론이지. 태천검의 4초야말로 모든 것을 완성하는 조각이지.

“그럼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걷지도 못하는 아이가 뛰다 못해 절벽에서 날려는 꼴이군. 알려준다 해도 오히려 방해만 될 거야. 지금은 그저 눈앞에 둔 것에 집중하게.

진백천은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빠른 수긍이 마음에 들었을까?

백발의 노인은 지나가는 식으로 4초에 대해 슬쩍 말했다.

-파천식(破天式). 정신만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초식이지. 온전히 한 마음을 집중해야만 가능한 초식이니 그렇게만 알고 있게나.

‘파천식이라. 역시 마지막 초식은 심검(心劍)이었나?’

그렇다면 노인의 말대로 아직 자신이 펼칠 수 있는 것이 못되었다.

다만 4초식을 이루는 태허무극진결의 37번째 동작부터 48번째까지는 무리 없이 배울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을 몸으로 녹여내고 소화하는 것은 전적으로 진백천의 몫이었다.

그리고 한창 그것을 연마할 때 동자승이 그의 옆으로 다가와 물끄러미 쳐다봤다.

“쟤는 왜 또 저래?”

백발의 노인이 무공을 알려주는 것을 봤는지 동자승은 진백천 앞에서 혈뢰음사의 무공을 펼쳐 보였다.

짧은 팔과 다리가 매섭게 허공을 가르는 것이 제법 진지해 보였다.

“너도 나한테 알려주려고?”

동자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백천은 그러한 제안을 당장에 거절하려 했지만 그런 그를 말린 것은 의외로 백발의 노인이었다.

-배우게.

“혈뢰음사의 미친 무공을요?”

-그자들은 미친 자들이 맞지. 하지만 저 무공도 충분히 미친 무공일세. 저자들이 만들어냈다고 믿기 힘들 만큼.

진백천을 내려다보는 백발 노인의 눈동자는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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