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279화
94장 천살대 마인(3)
천마란 대답은 확실히 효과가 대단했다.
지금껏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던 놈이 순간 눈동자가 흔들렸다.
진백천은 그 틈새를 노려 놈에게 달려들었다.
휘이이익-
종마검에 실린 천마신공의 마기로 인해 검신이 검게 일렁였다.
“……격장지계가 뛰어난 놈이군.”
뒤늦게 광대 가면이 정신을 차리며 수라혈마공을 일으켰다.
수라의 형상을 띈 기운이 일순간 주변의 마기를 밀어내는가 싶었지만 이내 오히려 잡아먹히며 붙잡혔다.
광대 가면은 평소와 달리 기를 못 쓰는 자신의 마기에 당황했다.
그리고 진백천이 그러한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단숨에 끝내자.’
종마검의 검 끝이 정확히 놈의 심장을 노렸다.
지금껏 몸에 실금만 그어내던 것과 달리 검은 너무나도 쉽게 몸을 베어냈다.
하지만 그것을 눈치챈 것은 광대 가면도 마찬가지인 듯 재빨리 몸을 틀었다.
심장을 노린 종마검은 안타깝게도 옆구리를 베어내는 것에 끝이 났다.
“크윽!”
광대 가면이 진백천을 발로 차내며 뒤로 물러섰다.
놈은 우선 이 지독한 마기로부터 도망치려 했지만 주변을 둘러보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어느샌가 숲속은 진백천의 마기로 가득 메워진 상태였다.
하늘을 올려다봐도 햇빛조차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마기였다.
‘전보다 더 마기가 늘어났어.’
평소에 태허무극진결과 태천검만 수련했다.
그의 내력이 강해지면 천마신공의 마기도 덩달아 강해지기는 했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마기는 왠일인지 스스로 증식하듯 그 양이 늘어났다.
‘혹시 천마의 심장이 내 몸에 흡수된 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지살대의 마인이었던 일금영을 처치했을 때 자연스레 마기를 흡수하더니 마화린을 죽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통제하기 힘들었던 전과 달리 지금은 어느 정도 그의 의지에 따라 움직였다.
가끔씩 흉포함을 드러내며 수라혈마공의 마기를 강제로 집어삼키기만 할 뿐이었다.
“이러한 마기를 본 적 있지.”
“그렇다면 여기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쯤은 알겠네?”
광대 가면은 얼굴에 쓴 가면이 성가신 듯 뜯어내듯 벗겨냈다.
새하얀 얼굴에는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이 맺혀 있었다.
“천마신공의 마기에는 그 어떤 마공도 소용이 없겠지. 수라혈마공조차도.”
진백천은 놈의 담담한 목소리에서 왠지 모를 불안감이 전해졌다.
놈은 수라혈마공 대신 구촉비전의 힘을 전력으로 끌어올리며 진백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천마신공의 마기가 거칠게 휘몰아치며 놈을 휘감았다.
콰드드득-
광대 가면의 살점을 우그러뜨리며 짙은 마기 속에서 피의 꽃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천살대의 마인의 몸은 단단했다.
반쯤 으깨진 몸으로 마기를 벗어나며 진백천을 향해 조금이라도 다가오기 위해 발버둥 쳤다.
‘뭐 때문에 이렇게 필사적이지?’
얼핏 드러난 놈의 얼굴은 고통으로 얼룩진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환하게 웃으며 한 걸음씩 다가왔다.
망가졌던 몸은 구촉비전의 기운으로 인해 빠르게 회복되었다.
“구촉비전의 회복력을 믿는 거라면 큰 오산이야.”
“내가…… 믿는 건 오직…….”
그 뒷말은 턱이 비틀리며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두 눈동자가 강렬한 이채를 띄며 진백천을 올려다봤다.
그 시선에 담긴 것은 다름 아닌 광신적인 믿음이었다.
‘도대체 뭐를?’
속마음을 들을 수 있다면 그러기라도 하겠건만 놈의 속마음은 들리지조차 않았다.
광대 가면이 열 발자국 앞까지 다가왔을 때쯤.
진백천은 자신의 몸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깨달았다.
‘……마기가 증폭해?’
그 원인은 바로 천살대의 마인이었다.
* * *
천마의 부활.
그것은 십만대산에 위치한 천마신교의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살아 있는 신이지 영원히 지지 않을 아수라의 불꽃.
그 누구도 믿지 않을 불사(不死)의 광명을 천마는 직접 가슴을 갈라 증명했다.
전 강호의 무인들이 심장을 잘라냈지만, 그 누구도 그 무한한 박동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나는 언제고 돌아온다. 그것은 하늘의 흐름이며 역천의 흐름이다. 그러니 의심하지 말지어다.
천마의 전언은 기록으로 남아 입에서 입으로, 무공에서 무공으로 전해졌다.
천마신교에 남아 있던 심장 중 하나는 마화린에게 흘러 들어갔지만 나머지는 강호 전역에 뿌려졌다.
그것은 전부 천마가 의도한 대로였다.
단지 심장이 최적의 육체에 담기기 위해서였다.
-버티지 못한 육체라면 곧 스스로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리고 심장이 최후의 하나가 되었을 때 천마는 부활했다.
그 강한 육체를 발판삼아.
광대 가면, 즉 별칭 사천영(四天影)이 십만대산을 나와 강호에 흘러든 것은 단순히 비영대의 대주 따위로 움직이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진정한 목적은 다름 아닌 교주와 마뇌로부터 받은 명령 때문이었다.
-천마의 심장을 가진 존재는 마찬가지인 존재에게만 죽임을 당하지. 아마도 소교주의 심장 조각은 그에게 흡수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마화린이 정도회의 회주에게 죽인 것으로 알려진 순간부터 마뇌는 진백천이 천마의 심장 조각을 가지고 있음을 짐작했다.
-……언제고 진백천을 만나게 되면 그에게 아낌없이 흡수되어라. 온몸의 마기 한 톨마저 빠짐없이. 그렇게 되면 너희들은 전부 천마의 광영이 되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되리라.
4명의 천살대 마인들은 마뇌의 명령을 받들고 십만대산을 빠져나왔다.
가장 큰 심장 조각을 가진 진백천을 만나 진실한 목적인 천마의 부활을 위해서.
“……진백천 회주. 이런 곳에 있을 줄은 몰랐지만…… 나를 만난 것은 아주 큰 행운일 것이야.”
폐관수련을 하고 있다는 그가 왜 여기 있는지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한 톨의 거름이 되는 것만이 그의 삶의 이유인 듯 광대 가면은 계속해서 진백천에게 다가왔다.
그 광기 어린 눈빛에 진백천이 눈살을 찌푸렸다.
“행운이라고?”
어느덧 한 발자국 앞까지 걸어 나온 사천영이 환하게 웃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놈의 몸은 마기에 의해 흡수되고 회복되기를 반복했다.
천마신공의 마기는 큼지막한 고깃덩이를 만난 피라냐떼처럼 광분했다.
후우우우우욱-
그 패도적이고 광적인 움직임에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았다.
서서히 진백천의 제어에서 벗어난 마기가 그 몸을 불리며 하늘 높이 치솟았다.
“이게 네놈이 원하는 거냐? 마기를 폭주하게 만드는 게?”
“나는…… 단지 불을 피우는 재료일 뿐……!”
한계까지 치우쳐진 구촉비전으로 회복되던 몸이 한계치를 넘어섰다.
그러자 몸은 회복되기는커녕 그대로 바스라지며 잿가루처럼 흩날렸다.
‘이대로 된 이상 어서 빨리 이놈을 처치하고 마기를 갈무리하는 수밖에 없다.’
진백천은 이를 악다물며 검을 휘둘렀다.
이 상태라면 놈도 더는 회복되기 힘들 터.
하지만 놈은 반사적인 움직임인지 검을 맨손으로 움켜쥐며 진백천에게 딸려왔다.
그리고 모래처럼 바스라진 얼굴로 진백천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천마시여…… 저희에게…… 광명을……!”
놈은 그 말을 유언처럼 남기며 완전히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젠장.”
그렇다고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휘몰아치는 마기의 소용돌이는 먹이가 사라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진백천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그런데 그 증폭된 양이 문제였다.
‘……적어도 두 배, 아니, 세배는 더 늘었어!’
가뜩이나 화약고처럼 내력으로 가득 찬 진백천의 몸이었다.
365개의 전신 혈도가 활짝 열리다 못해 근육 조직과 같은 세맥에도 스며들었다.
마기는 이제 곧 세맥에도 차고 넘쳐서 다른 곳까지 범람했다.
가장 큰 곳은 역시나 단전에 자리 잡은 태허무극진결의 내력이었다.
쿠우웅-
“크헉!”
파사의 기운과 마기가 맞부딪치자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주변이 떨렸다.
단순히 내력의 충돌만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기의 기운만 족히 3갑자가 넘었다.
태허무극진결의 내력도 3갑자 정도니 족히 6갑자, 무려 300년이 훌쩍 넘는 내공이 한 사람의 몸에서 휘몰아쳤다.
진백천은 근골이 뒤틀리고 살점이 찢기는 고통을 느꼈다.
‘어떻게든 충돌을 막아야 돼!’
하지만 그의 마음과 달린 두 내력은 서로에게 양보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철전지원수를 만난 것처럼 둘은 서로를 향해 맹렬히 달려들었다.
태허무극진결의 집이 단전이었으면, 마기의 집은 심장이었다.
둘 중 하나 그 무엇이 망가진다 해도 진백천은 살아남기 힘들었다.
콰아아아앙!
“커헉!”
또 한 번의 충돌에 혈도가 뒤틀리며 피를 토했다.
피가 솟구치는 기이한 열감이 온몸을 맴돌며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이대로 한 번만 더 부딪치면 정신을 잃는 것을 물론이고…… 무조건 죽는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그럴 수는 없었다.
아득한 정신 속에서 진백천은 정신을 되찾기 위해 인정사정없이 혀를 깨물었다.
으드득-
비릿한 피 맛과 함께 고통으로 정신이 순간적으로 맑아졌다.
‘젠장! 이렇게 된 거……! 상단전으로 꺼져 버려라.’
그의 몸에서 유일하게 커다란 기운을 받아냈던 공간이었다.
지난번 금혈화린어(金血火鱗魚)의 내단을 흡수하며 상단전으로 밀어 넣은 적이 있었다.
그때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커다란 기운이었지만 그에게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온 정신을 집중해서 천마신공의 구결에 따라 마기를 이끌었다.
우우우우웅-
요지부동이던 마기는 천천히 그 의지를 따라 상단전으로 치고 올라갔다.
마기가 스쳐 지나가는 곳마다 전신이 격하게 떨렸다.
그리고 곧 활짝 열린 인당혈(印堂穴)로 스며 들어갔다.
지난 한번이 어렵지 이번에는 비교적 쉽게 딸려 들어갔다.
‘끄으으윽!’
눈앞이 검고 희게 변하길 여러 번 반복되었다.
하지만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간 것은 마기뿐만이 아니었다.
웬일인지 단전에 얌전히 자리 잡고 있던 태허무극진결의 내력까지 마기의 꼬리를 물고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 이후에는 독정과 혈강옥불상의 기운도 마찬가지였다.
드드드드드득-
진백천을 이를 악물며 충격을 버텨냈다.
그런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되자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고통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동시에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진백천의 미간에서 은은한 서기가 피어오르며 주변의 어둠을 밝혔다.
우우우웅-
그리고 곧 서기를 헤치며 연꽃이 그 안에서 봉우리를 피우며 점점 잎을 벌렸다.
만약 강호의 실력 있는 자들이 봤다면 오기조원(五气朝元)이라며 경악할 만한 광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화려하게 핀 연꽃은 그 자체로 내공의 완성을 뜻했다.
상단전은 이제 더 나아갈 데 없이 완벽해진 것이다.
우우우웅-
진백천의 미간에서 피어난 꽃은 어딘가 그 색이 특이했다.
꽃잎은 검고 하얬으며 꽃술은 피처럼 붉었다.
연꽃은 곧 스스로 물처럼 쏟아 내리며 다시금 진백천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후우우.”
진백천의 입가에서 비로소 편안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런 숨소리와 다르게 그는 한참이 지나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를 발견한 것은 주변을 수색하던 도홍경이었다.
강력한 광음이 지나가고 진백천이 나타나지 않자 찾아 나선 것이다.
“형님!”
진백천을 발견한 도홍경은 화색을 띠었지만, 곧 그의 기이한 상태에 당황했다.
“숨은 쉬고 있지만 깨어나질 않아.”
그는 서둘러 진백천을 사림채로 옮기고 그 옆을 지켜섰다.
그나마 경험이 많은 채주가 그의 상태를 보고 대략 짐작할 뿐이었다.
“내력의 소모가 컸나 보군. 아마도 갈무리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야. 별다른 상처는 없으니 기다려보게.”
“하긴. 그 어마어마한 마기를 몸으로 견뎌냈으니 멀쩡할 리 없지.”
멀리 떨어진 사림채에서도 하늘로 솟구치는 마기는 똑똑히 보였다.
그것은 전부 진백천의 마기였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
수라혈마공을 사용하던 사천영이 뿜어낸 마기라 짐작할 뿐이었다.
“회주님은 괜찮으시겠죠?”
그의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중혁이 도홍경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도홍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이 정도 일은 형님에게 별거 아니야.”
장담하듯 말하는 말과 달리 도홍경의 얼굴은 어딘가 모르게 복잡했다.
그리고 그의 걱정대로였다.
잠잠해 보이는 진백천의 겉모습과 달리 그 내부는 아직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