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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276화 (276/346)

무림회귀백서 276화

93장 수상한 녹림채(4)

짧은 심문으로 진백천은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놀랍게도 놈들의 소속은 진백천과 악연이 깊은 마교의 비영대였다.

화산파에서부터 시작해서 줄기차게 패배만 거듭하던 놈들은 마교 내에서도 버려진 패 정도로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지. 원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짜증 나던 놈들이었는데 말이야.’

마교의 무력대 중 하나로 은잠, 침투에 뛰어나며 주로 감찰과 특작업무를 도맡았다.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물고 늘어질 정도로 끈질긴 놈들이었다.

그 수는 무려 1,000여 명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거듭된 패배와 무력대의 와해로 강호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마저도 마교에서 강제로 구촉비전을 익히게 만들면서 채 100여 명 정도만 남아 있었다.

‘정도회 입장에서는 귀찮은 놈들이 사라져줬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새롭게 바뀐 비영대는 이곳에서 마뇌에게 직접 임무를 받고 이곳으로 왔다.

진백천의 생각대로 이곳의 길목을 틀어막고 녹림과 관군의 분란을 조장하면서 북해를 틀어막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까지는 그도 이미 예상했던 것이기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다만 문제는 그들과 함께 온 비영대의 새로운 대주였다.

‘천살대 마인.’

진백천조차 회귀 후 단 한 번도 맞부딪쳐 본 적 없는 자들이었다.

‘지금의 나라면 이길 수 있을까?”

답은 가능한 피해야 한다- 였다.

과거의 기억들과 함께 종마검을 통해 본 천살대 마인들은 괴물이라 칭해도 될 정도였다.

물론 그들에게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단순히 무력만을 놓고 본다면 진백천도 사활을 걸어야 했다.

‘단 한 명이라면 어찌 맞부딪쳐 볼만도 하려나.’

진백천은 복잡해지는 속내를 지워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사림채의 실제 채주는 아직 살아 있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금제가 통하지 않는 녹림도들은 사림채의 감옥에 갇혀서 나중에 올 관군에게 던져줄 재물이었다.

‘그들과 연계한다면 마교를 몰아내는데 한층 더 편하겠지.’

심문을 끝내고 돌아갔을 때도 표협 표국의 이들은 여전히 기뻐하는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산적의 규모와 마인이라는 말을 듣고 죽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와중에 진백천이 나서서 놈들을 일망타진하니 흥분하지 않을 리 없었다.

그의 얼굴을 보고 다시 한번 환호하려던 그들을 말린 것은 마찬가지로 진백천이었다.

“아직 기뻐하는 건 일러. 해가 떴으니 멈추지 말고 곧바로 이동하지.”

“알겠습니다. 모두 들었지? 서둘러라!”

표협 표국은 이름에 ‘날랠 표(慓)’ 자가 들어가는 만큼 금세 정리를 하고 마차를 끌었다.

그 뒤를 진백천과 일행들도 따랐다.

“형님. 역시 마교놈들이 맞죠?”

“맞아. 비영대야.”

“비영대라면 형님한테 몇 번이나 깨지고 또 깨진 놈들 아닙니까?”

도홍경은 안도의 한숨마저 내쉬었다.

천하의 비영대가 이렇게까지 약한 취급을 받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익숙해지긴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도홍경과 달리 중혁의 표정은 어두웠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닙니다.”

애써 고개를 저었지만 진백천은 중혁이 어떤 점을 걱정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마인들이 자신과 같은 무공을 사용하니 더러운 감정을 느낄 터였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가 익힌 구촉비전을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러면 더욱 멍청한 거지.’

이번에 놈들과 부딪치면서 알았지만 확실한 것은 마인놈들보다 중혁의 구촉비전이 훨씬 더 안정적이고 성취가 높았다.

특유의 부작용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중혁은 구촉비전을 대성할 수 있는 조건을 타고난 걸지도 몰랐다.

진백천은 위축되어 있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구촉비전 때문에 그래?”

“……아닙니다.”

“아니긴 뭘. 그거 마교에서 익힌다고 해서 마공 아니다. 알지?”

물론 처음의 시작은 기괴한 면이 있었다.

소림의 악의선사(惡意善篩)가 만들고 대를 이어 내려오면서 부작용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서서히 광인으로 변해갔으니까.

분명한 것은 악의선사도 그렇고 정도회를 창설한 진소가도 그렇고 결코 그것을 마공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군요.”

“같은 무공이라지만 네가 사용할 때와 마화린이 달랐고, 오늘 그 마인들도 또 달랐어. 결국 무공은 쓰는 무인의 마음에도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치는 거야.”

“……무인의 마음.”

“맞아. 그러니까 너무 기죽지 마. 정 마음에 걸리면 나중에 대성하고 싹 다 정리해 버리든가.”

장난스레 말하는 진백천의 말투에 중혁이 피식 웃었다.

그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진백천이 위로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만약 무공만으로 사악함을 나눠야 한다면 진백천 본인은 이미 마인 중에서도 최악의 마인이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에 독공, 혈강옥불상의 무공까지. 어휴. 잡다하다 잡다해.’

그것을 뛰어넘는 정신력이 있으니 지금의 진백천이 존재했다.

중혁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그들은 목표로 했던 산을 넘었다.

이제부터는 사림채의 영역이 아니었다.

진백천은 그쯤에서 표협 표국과 인사를 나눴다.

“대협. 혹시 모르니 산맥을 벗어날 때까지만 동행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나도 그러고 싶지만 사림채로 직접 가봐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산적 놈들을 직접 토벌하실 생각이시군요!”

표청은 과연, 이라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진백천을 비롯해 도홍경과 중혁에게 일일이 감사 인사를 전했다.

“다음에 다시 뵌다면 그때 정식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조심해서 가시길 바랍니다.”

표국과 헤어진 진백천은 마차를 풀숲에 숨기고 사림채로 향했다.

심문을 해서 안 바로는 원래의 녹림도들은 전부 지하 감옥에 갇혀 있다고 했다.

그들을 풀어내기만 하면 사림채를 되찾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형님. 저기입니다.”

사림채는 뱀 사(蛇)에 수풀 림 자(林) 그 이름 그대로 덩굴로 가득한 산채였다.

얼핏 그 모습이 뱀에 휘감긴 모습 같아 보였다.

그 규모가 생각보다 컸지만 그 안을 돌아다니는 산적들은 많지 않았다.

표국을 공격하려다 실패하고 대부분 도망갔기 때문이었다.

대신 가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진백천과 전투를 벌였던 흑의의 마인들이었다.

“건물 안에 있는 자들까지 50여 명 정도 되어 보입니다.”

“흐음. 생각보다 많아.”

만약 일반적인 비영대 마인들이었다면 크게 위험부담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구촉비전을 익힌 마인들이었다.

저들과 더불어 천살대의 마인을 함께 상대하려면 진백천조차도 위험했다.

“흐음. 저자는 뭐지?”

그때 산채 안에서 마인들과 함께 나오는 녹림도가 보였다.

금제를 당한 이 같지는 않고 연신 실실 웃으며 고개를 숙이는 것이 어떤 부류의 놈인지는 알 것 같았다.

“녹림에는 아무 문제 없다고 제가 보고 했습니다.”

“그래. 오지헌 그런 식으로 충성을 다하면 본교에서도 너에게 큰 상을 내릴 것이다.”

“물론입니다. 저야 언제나 본교를 향한 마음뿐입니다.”

과연 사림채가 이유 없이 비영대의 손으로 넘어간 게 아니었다.

이미 안에서부터 첩자가 있었으니 이렇게 소리소문없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쯧쯧. 저런 박쥐 새끼들은 어딜 가나 있다니까.”

“흐음. 우선 지하감옥부터 찾자.”

“저쪽인 것 같습니다.”

감옥은 찾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간마다 지하감옥을 교대하는 마인들이 수시로 오고 다녔고 마땅히 있을 만한 곳도 많지 않았다.

“둘 다 여기 있어. 혹시라도 저놈들과 절대 맞붙지 말고.”

“네. 신호만 주시면 바로 뛰어들어가겠습니다.”

진백천은 은형비단을 뒤집어쓰고 지하로 숨어들었다.

비영대의 마인들의 이목을 속이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

* * *

지하감옥으로 들어서자 그를 반긴 것은 지독한 악취였다.

제대로 청소를 하지 않는 듯 바닥의 오물과 함께 풍겨온 것은 시체가 썩는 내였다.

‘이곳에 시체까지 넣어두나 보군.’

아마 이곳에 갇혀 있는 이들은 고문하지 않더라도 오래지 않아 병으로 죽을 게 분명했다.

진백천은 그나마 더럽지 않은 천장에 올라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오래 지나지 않아 감옥을 지키고 있는 마인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철퍽-

“쯧. 언제까지 이곳에서 개고생을 해야 하지?”

“북해에서 슬슬 아사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하니 만간이야.”

“젠장. 우리 비영대가 이런 일이나 하게 되다니.”

놈들이 주로 떠들어대는 것은 신세 한탄이었다.

거기에 정도회를 비롯해 진백천에 대한 욕은 덤이었다.

“진백천 그놈도 알고 보면 별거 아니야. 머리가 좋을 뿐이지 항상 수하들이 대신 싸워줬으니까. 검왕이니 뭐니 결국 세 치 혀로 꼬셔서 데리고 다니는 거 아니겠어? 그런 놈이야말로 여우 같은 놈이라고.”

“맞아. 비영대가 다시 기회를 얻으려면 그 여우놈을 없애야 하는데 말이지. 크큭.”

‘쯧. 한주먹거리도 안되는 것들이 입만 살아 가지고.’

진백천은 놈들을 지나 지하 아래까지 내려갔다.

다행인 것은 악취 때문인지 마인놈들은 웬만해서는 아래쪽까지 내려오는 일이 없었다.

‘흐음.’

곧 그가 마주친 것은 두꺼운 쇠창살로 된 철문이었다.

그가 작게나마 속으로 경호성을 터뜨린 것은 그깟 철문 때문이 아니었다.

그 창살 틈새로 보이는 무인들 탓이었다.

커다란 공동에는 녹림의 무인들이 금제되어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끄으윽.”

“아, 아파.”

간혹가다 신음을 내뱉는 것을 보면 살아 있는 이들이 맞았다.

하지만 상처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서 살이 썩어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어차피 죽일 생각이라 이건가?’

진백천은 독고구검을 꺼내 휘둘렀다.

내력을 머금은 예리한 칼날은 조금의 소리도 없이 창살을 끊어냈다.

안으로 들어간 진백천은 가장 먼저 채주라는 자를 찾았다.

괜히 소란이라도 나서 마인들이 들이닥치게 되면 애써 이곳을 찾은 고생도 물거품이었다.

‘저자인가?’

채주를 찾아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가장 많은 구속을 당하고 상처가 많은 이였으니까.

정신이 혼미해 보이는 그 옆으로 몇몇의 녹림도들이 그를 살피는 중이었다.

벽에서 흐르는 물을 손으로 모아 그의 입으로 흘러내렸다.

“채주님. 정신을 차리셔야 합니다. 정신을 잃으시면 안 됩니다.”

“왕방. 그만하게. 이미 늦었어.”

“무슨 소리야! 녹림에서 알고 우리를 구하러 올 테니 그때까지만 버티면 돼!”

“……마인들이 하는 말을 못 들었어? 놈들은 사림채의 이름으로 여전히 움직이는 활동하는 중이라고! 오지헌 그놈이 채주님의 등을 찌르는 순간 끝이 난 거야!”

“그 개 같은 배신자 새끼!”

‘오지헌이 아까 위에서 봤던 그놈인가 보군.’

진백천은 박쥐 같은 인상의 놈을 떠올렸다.

“그놈의 기습이 아니었다면 채주께서 이렇게 허무하게 쓰러지시지는 않았겠지.”

채주의 등 뒤에는 여전히 날카로운 비수가 박혀 있었다.

뽑으면 출혈로 죽을 것을 알고 어쩔 수 없이 꼽아놓은 상태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슬슬 감염으로 인해 위태로웠다.

“젠장. 제발 누군가 도와준다면…….”

절망에 빠진 녹림도들이 읊조리듯 중얼거렸다.

심지어 말하는 그들조차 누군가 들어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치 그 기도에 응답하듯 허공에 누군가 모습을 나타냈다.

그들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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