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266화
90장 남녀쌍귀(男女雙鬼)와 부골오백조(腐骨五白爪)(4)
완성되지 않은 부골오백조였지만 그런데도 그 기운은 매서웠다.
손에서 풍기는 사기만으로도 도홍경의 눈이 시큰거리며 시야가 흐려졌다.
‘피, 피해야……!’
서둘러 몸을 뒤틀었지만 손톱 끝이 그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피잇-
금세 상처가 썩어들어가며 검은 피가 흘러내렸다.
추묘령은 손끝에 살점이 걸리자 공격이 더욱더 집요해졌다.
“놓치지 않는다!”
철검으로 다급히 손을 막았지만 역부족이었다.
허무할 정도로 쉽게 검이 부서지며 우악스럽게 손아귀가 뻗어왔다.
도홍경이 화들짝 놀라며 양손을 들어 올리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끔찍한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특유의 짓궂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그렇게 눈 감고 있다가는 죽는다.”
“히익!”
그의 앞을 막아선 것은 흔적을 보고 쫓아온 진백천이었다.
추묘령은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뒤로 물러난 상태였다.
두 시선만큼은 불덩이처럼 분노로 달아올랐다.
“네놈은 누구냐! 왜 우리를 공격하는 거지?!”
“왜냐니.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안 그래?”
“우린 잘못한 게 없다!”
처음에는 단순히 잡아떼려고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과연 남녀쌍귀답게 사람들을 죽이고 무공을 익힌 것을 전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무인이라면 당연한 거다! 놈들은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죽은 것뿐이야!”
“그렇다면 내가 너를 죽여도 억울한 건 없겠네?”
추묘령은 악인답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결국 구색 좋은 말이지 자신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희생양일 뿐이었다.
“난 쉽게 죽지 않는다!”
오행삭륜(五行削輪).
그녀는 단말마의 외침과 함께 강하게 양손을 휘둘렀다.
광증에 진원진기까지 끌어올렸는지 입가에서 선홍빛 피가 흘렀다.
하지만 그런 만큼 손가락에 맺히는 검은 기운은 심상치가 않았다.
“도홍경. 뒤로 물러나 있어.”
진백천은 독고구검을 뽑아 들며 앞으로 나섰다.
그와 동시에 추묘령의 손가락에서 뻗어 나온 5가닥의 지강이 거칠게 회전하며 뻗어왔다.
제대로 통제하지는 못하는 듯 흉포한 기운은 갈피를 못 잡고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 중의 가장 큰 줄기가 진백천을 향했다.
“흐읍!”
쿠우웅!
검과 지강이 부딪치며 묵직한 충격파가 퍼져나갔다.
만약 추묘령이 제대로 대성을 했다면 진백천이라고 해도 쉽게 상대하지 못했을 공력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진백천의 몸은 절벽 바로 앞까지 밀린 상태였다.
“형님! 괜찮으세요?”
“괜찮아. 남녀쌍귀는?”
“숲속으로 도망쳤어요. 기운을 붙여놨으니 추적하는 데 문제는 없어요.”
그렇다면 조금 숨을 돌려도 괜찮았다.
“후우. 생각보다 더 끔찍한 기운이었어.”
그나마 다행이라면 추묘령의 상태는 한눈에 봐도 정상이 아니란 점이다.
부골오백조는 대성하지 못했고, 낭랑인지 뭔지가 황보세가에 붙잡히면서 심적으로 많이 흔들린 듯싶었다.
“혹시라도 회복하기 전에 붙잡아야 돼.”
진백천은 도홍경과 함께 추묘령의 뒤를 쫓았다.
그녀의 흔적은 의외로 다시 성도를 향해 이어졌다.
서서히 이성을 잃는지 안개로 변하는 은형술을 사용하지도 않고 거침없이 나아갔다.
“흐음!”
추묘령이 지나간 자리에 머리에 구멍이 뚫린 사체들이 발견되었다.
아무래도 우연히 이곳을 지나가다 마주치고 변을 당한 듯싶었다.
그런 사체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이 정도면 광증을 떠나 주화입마라고 봐도 되려나?”
“으으. 미친 여자가 주화입마라니. 황보세가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되겠어요?”
“우선은 멈춰 세우는 게 먼저야. 그 후에는 알아서 나서겠지.”
성도에 가까워지자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허억! 도, 도망가! 누군가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관군을 불러!”
“마, 마인이야!”
진백천의 생각대로 추묘령은 마침내 주화입마에 빠져들고 말았다.
핏빛으로 변한 두 눈동자를 짐승처럼 번들거리며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그녀는 입에서 침이 새어 나오는지도 모르고 계속해서 똑같은 말만 되뇌이는 중이었다.
이미 주변에는 머리에 구멍이 뚫려 죽은 사체가 여러 구였다.
“대성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더 많은 머리가 필요해…… 머리…….”
아무래도 그것에 집착하다 보니 광증과 합쳐져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한 듯 보였다.
“머리를 내놔라!”
“꺄아아악!”
추묘령이 짐승처럼 뛰어오르며 가까이 있는 여자를 노렸다.
진백천은 재빨리 그녀를 뒤로 밀쳐내며 독고구검을 휘둘렀다.
카앙!
“나를…… 방해하지 마!”
흑혈마조(黑血魔爪).
손톱에서 길게 이어진 강기가 갈고리처럼 펼쳐지며 진백천을 휘감았다.
“흐읍!”
가까스로 막아냈지만 과연 그 악랄함과 공격력만큼은 평균을 훌쩍 넘었다.
추묘령은 강한 공격을 뻗어낼 때마다 입에서 피를 토해냈다.
분명 무리를 하면서 기혈이 뒤틀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스스로 인지를 못 하는 거겠지.’
그렇다면 진백천은 굳이 무리해서 대응할 것 없이 버티기만 하면 되었다.
추묘령은 활활 타오르다 결국 제풀에 쓰러지고 말 터였다.
“도홍경. 사람들을 대피시켜.”
“네!”
그는 주변에 쓰러져 있던 이들을 부축하며 멀찍이 떨어뜨려 놨다.
“야. 말은 알아들을 수 있냐?”
진백천의 물음에 추묘령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흔들리는 시선에 일말의 남아 있는 이성이 보였다.
“왜 이곳으로 온 거지? 네가 그토록 구하려는 낭랑은 황보세가에 있는데 말이야.”
“……낭랑!”
낭랑이라는 단어에 추묘령이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고 비틀거렸다.
“……낭랑을 구하려면…… 요화귀에게 가야 한다.”
“요화귀?”
진백천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별호에 귀(鬼)자가 들어가는 것을 보면 악인이거나 그에 준하는 놈임을 알 수 있었다.
“요화귀의 술법이라면…… 나를…… 크으윽!”
추묘령은 다시금 머리를 움켜쥐더니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 뽑아냈다.
그러고도 고통을 못 느끼는지 진백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머리를 내놔라!”
오행삭륜(五行削輪).
이번에는 공력이 흔들리지 않았다.
다섯 개의 빛나는 지강이 직선으로 뻗어오며 정확히 심장을 노렸다.
하지만 머리가 아닌 가슴을 노리는 것은 추묘령의 명백한 실수였다.
진백천은 호연보의(護燃保衣)에 내력을 불어넣으며 그대로 검을 뻗었다.
까드드드득-
악랄한 지공이 갑옷을 긁으며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과연 황음각에서 얻은 보물답게 추묘령의 지공은 호연보의를 뚫지 못했다.
반면에 추묘령의 목은 아니었다.
스걱!
독고구검은 정확히 허공을 가르며 멀어졌다.
검이 베어내고 나서야 추묘령은 자신의 목을 움켜쥐었다.
광증에 차올랐던 그녀의 눈이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회광반조(回光返照)였다.
“커헉! 낭, 낭랑은?”
“곧 너의 뒤를 쫓아갈 거다. 한참 더 고통을 받고.”
“……안, 안 돼…….”
곧 추묘령의 손틈 사이로 핏물이 새어 나오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진백천은 혹시 몰라 그녀의 머리를 완전히 베어냈다.
그리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후우. 부골오백조. 생각보다 더 끔찍하군.”
그도 그럴 것이 천하의 보물인 호연보의마저도 그녀의 공격에 날카로운 흔적이 남았다.
지금까지 그가 겪어봤던 그 어떤 수보다 가장 악랄한 무공임이 분명했다.
이런 무공은 남녀쌍귀(男女雙鬼)를 비롯해 그 누구도 익히지 못하게 해야 했다.
‘분명 어딘가 비급을 뒀을 텐데.’
진백천은 추묘령의 사체를 뒤졌지만 품속에서 나온 것은 조금의 은자가 전부였다.
그렇다면 도홍경이 공격을 당했던 그 절벽의 은신처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이놈들! 당장 멈춰라! 감히 성도에서 살인이라니!”
“당장 저놈들을 추포하라!”
뒤늦게 나타난 것은 관군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수와 실력이 제법이었다.
‘뭐지? 단순한 관군들은 아닌 듯 보이는데?’
그리고 뒤이어 모습을 보인 것은 진백천에게도 익숙한 금색의 갑옷을 입은 금의위들이었다.
그들을 통제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남진무사 장우량이었다.
‘허허. 이런 곳에서 또 만나다니. 인연은 인연인가?’
진백천은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려다 자신을 노려보는 장우량을 보고 현재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다.
아직까지도 그는 악살신괴의 모습이었다.
정체를 밝힐 수도 그렇다고 이대로 빠져나가기도 애매한 상황에서 그를 구한 것은 황보세가의 무인들이었다.
“멈추십시오! 저자들은 황보세가의 손님들이외다!”
뒤늦게 무인들을 이끌고 나타난 황표는 관군들을 막아섰다.
무관 출신답게 금의위들과 인사를 나누며 사정을 설명했다.
“흐음. 그러니까 저 목이 잘려 죽은 여자가 남녀쌍귀 중 추묘령이라는 건가?”
“맞습니다.”
장우량은 여자의 사체를 살피며 인상을 찌푸렸다.
“과연. 지독할 정도로 사기를 풍기는군.”
그는 무당파 속가제자 출신답게 단번에 내력을 파악했다.
그리고 상황을 목격한 이들의 의견까지 전부 듣고 난 후 관군의 포위를 풀었다.
“자네들 말대로인 거 같군. 하지만 그렇다고 관도에서 함부로 살인을 저질러서는 안 될 것이다.”
진백천은 그저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물러났다.
황표는 사정을 봐준 그가 고마운지 포권을 취했다.
“금의위께서 이곳은 어쩐 일십니까?”
“흐음.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해서 나와봤지. 너무 신경 쓰지 말게.”
그러고 보면 장우량의 근무지는 사천이었다.
그런 그가 먼 산동성까지 왔다는 것은 그만큼 특별한 일이 있다는 뜻이었다.
진백천은 상단전을 열며 그의 속마음에 집중했다.
그러자 역시 무표정한 얼굴과 달리 복잡한 속내가 들려왔다.
-후우. 사람 하나를 쫓아 강호를 떠돌아다닌다고 하면 이자들도 우습게 보겠지. 겨우 요화귀라는 별호 하나를 가지고서 신출귀몰한 놈을 도대체 어떻게 찾는가 말인가!
‘요화귀?’
추묘령이 언급하던 악인이었다.
장우량이 황제의 명을 받아 북경을 벗어난 것은 꽤 된 일이었다.
그가 받은 명령은 말 그대로 요화귀라는 자를 잡아 올 것.
그 이유도 꽤나 특이했다.
-한낱 남의 흉내나 내는 놈이 감히 황상을 능욕하려 하다니. 찢어 죽여도 모자랄 놈이지.
요화귀는 스스로의 모습을 바꾸는 역용술과 변장에 무척이나 능했다.
자신의 능력에 자신이 생겼는지 놈은 고관대작의 모습으로 바꾸고 감히 황궁으로 향했다.
그리고 대담하게도 황제를 죽이고 그를 흉내 내려 했다.
-황상을 지키는 은영사검(隱影四劍)이 아니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지.
요화귀는 은영사검에 치명상을 입었지만 가까스로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단순히 살수라 생각하면 황제도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놈을 쫓지는 않았다.
문제는 놈이 도망가는 와중에 황제를 향해 뱉은 말 때문이었다.
-황제의 자리를 차지 못했으니! 그 주변부터 차근차근 먹어 치워주겠다! 앞으로 황제는 주변 사람들을 믿지 못하리!
마치 저주와도 같은 말이었지만 황제의 입장에서는 꽤나 고역이었다.
어차피 주변 사람들을 믿지 않는 그의 칼 같은 성격은 그렇다 쳤지만, 동생인 고유빈이 걱정이었다.
놈이 혹시라도 고유빈을 노릴까 금의위들을 시켜 요화귀를 잡아들이게 한 것이다.
‘폐관한 탓에 몰랐던 모양이군.’
진백천은 이 요화귀란 놈을 붙잡아야 할 이유가 생겨났다.
추모량이 본능적으로 이곳에 달려왔다면 분명 놈도 이 근처에 있다는 뜻.
‘뒤져보다 보면 나오겠지.’
역용술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들리는 속마음은 역용할 수 없는 법이었다.
진백천은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빠져나오려 했다.
더 있을 이유도 없었고 남녀쌍귀의 은신처를 살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곧 들려오는 장우량의 속마음에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공주님과 표기장군이 함께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