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263화
90장 남녀쌍귀(男女雙鬼)와 부골오백조(腐骨五白爪)(1)
황보세가는 성도에 위치했지만 다른 세가들과 달리 북적이지 않았다.
그 출신이 원래부터 무관이라 그런지 폐쇄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높게 쌓인 담부터 적막한 분위기가 그랬다.
누군가는 이런 분위기가 싸늘하다거나 무섭다고 하지만 진백천은 아니었다.
‘오히려 황충의 가문답다고 해야 할까?’
소림과 달리 따로 찾는 이들도 많이 없기에 조용히 방문하기도 좋았다.
진백천은 마차를 근처에 맡기고 황보세가까지 걸어갔다.
중혁이 커다란 대문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하게 떴다.
“크지?”
“네. 성문이라고 해도 믿겠습니다.”
“실제로 처음 이 대문을 만들 때 작은 성문이라고 생각하고 만들었다고 하지.”
두꺼운 기둥과 문은 전부 황충의 생각이 반영된 것들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진백천의 시선에는 애정이 깃들었다.
그들이 문 앞에 서성이자 목소리를 들은 수위들이 다가왔다.
“이곳은 어쩐 일이십니까?”
“조문을 하러 왔습니다.”
“금부(金鈇) 어르신의 조문 말씀이시죠?”
“맞습니다.”
조문이란 말에 수위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지금은 황대원이 그 역학을 이어받았다고 하지만 황충은 근 50년 동안 정도회를 위해 일해왔다.
그만큼 황보세가에서도 황충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고 조문을 하러 온 자를 박하게 대하지 않았다.
“혹시 어디서 오셨는지……?”
“정도회입니다.”
그들은 더욱 공손히 변하며 일행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잠시 별당에 계시면 안내인이 올 겁니다.”
“감사합니다.”
진백천은 공손히 그들에게 인사했다.
정도회의 이름으로 온 이상 적어도 황충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야 했다.
‘소박하다.’
주변을 둘러보는 진백천이 느낀 감정이었다.
황충을 닮은 황보세가는 사치스러운 것 없이 소박하면서도 실용적이었다.
대부분 정도회에서 살아왔을 그가 이곳에 올 일은 많지 않았을 터.
‘아마도 이러한 검소한 모습은 황보세가의 특징이겠지.’
그들은 기다리는 동안 시녀가 가져다준 다과와 차를 마셨다.
도홍경과 중혁은 예비 술주정뱅이답게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차가 채 식기 전에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섰다.
“반갑습니다. 황표라고 합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조문하러 오셨다고요?”
그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띠며 인사했다.
한눈에 봐도 황보세가의 핏줄이라고 느껴지는 게 무척이나 거구였다.
곰 같은 몸에 순둥순둥한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맞습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저희 할아버지와 어떤 사이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정도회에서 근무하면서 신세를 끼친 적이 있습니다.”
“그러셨군요. 이쪽입니다.”
진백천과 일행은 황표의 뒤를 따라 유골이 안치된 무덤으로 향했다.
무덤조차도 황보세가답게 거대한 돌판에 비석과 향을 꼽는 향로가 전부였다.
진백천은 준비된 향을 태우고 향로에 꽂았다.
잠시 눈을 감고 그의 명복(命福)을 빌어주었다.
[금부(金鈇) 황충.]
[정도회 친위대장.]
비석에는 흐드러지는 글씨체로 황충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진백천이 그것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자 황표가 자랑하듯 말했다.
“평범하지 않죠? 그게 정도회의 진백천 회주께서 직접 검으로 새겨 주신 거라고 합니다.”
맞다.
진백천은 황충의 유골을 황보세가로 보내며 친히 비석에 검으로 글을 새겨넣었다.
원래는 조금 더 길게 쓰고 싶었지만 그렇다면 끝이 없을 것 같아서 이렇게만 적었다.
나머지 하고 싶은 말은 직접 찾아와서 하고 싶었으니까.
‘황충. 정도회에 있는 동안에는 한시도 쉴 틈 없이 바빴는데 여기서는 편안히 쉬는 모양이야.’
무덤 주변은 낙엽 하나 떨어진 것 없이 깨끗했다.
고즈넉한 풍경과 살살 불어오는 바람이 무척이나 평화로웠다.
진백천의 표정을 보고 의아했는지 황표는 진백천에 대해 물었다.
“정도회의 무사입니다.”
“그렇다면 혹시 혈사의 그 날에도 할아버지와 함께 싸우셨습니까?”
황표는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그 누구도 황충의 마지막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자가 없었다.
그저 마교의 마인들과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고만 알려졌다.
그 사체마저도 정도회에서 장례를 치렀으니 어떤 상처를 입었는지조차 몰랐다.
하지만 그것은 진백천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천마의 신체로 인해 말라비틀어져 죽은 황충의 사체를 그대로 보일 수 없었으니까.’
진백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황표의 얼굴이 밝아지며 역시나 황충의 마지막에 대해 물었다.
“과연…… 친위대장다웠습니다. 적들을 앞에 두고 결코 물러섬이 없었고 도끼를 휘두를 때마다 적들의 목이 베어져 나갔습니다. 함께 싸운 정도회의 무사들이라면 그 뒷모습을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그렇군요.”
황표는 어느새 붉어진 코끝을 어루만졌다.
조문이 끝나자 황표는 이야기를 들려준 것에 대한 보답인지 식사를 대접한다고 했다.
진백천은 딱히 거절할 것 없이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에게도 황충을 닮은 황표와 조금 더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아직 줘야 할 것도 남았고.’
“차린 것이 부족하지만 많이 드십시오.”
그의 말과 달리 식사는 제법 화려했다.
진백천은 평소 황충의 식습관을 잘 알았다.
무관 출신답게 밥과 국, 고기와 반찬이면 족할 정도로 단출하게 식사를 했다.
음식물을 남기는 것도 싫어했기에 술과 곁들어 먹는 안주도 즐기지 않았다.
‘그런 황보세가에서 이 정도면 제법 신경 써 준 거겠지.’
“아 참. 얼마 되지 않지만 조의금입니다.”
진백천은 식사가 끝날 때쯤 봉투에 담긴 조의금을 꺼내 건넸다.
보통 조문객이 의례적으로 주는 것이지만 그 두께가 제법 두툼했다.
별달리 기대하지 않았던 황표는 봉투를 받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 마음껏 넣었으니 사양은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진백천은 황표가 금액을 확인하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추억에 빠져 있다 보니 어느덧 해가 지평선 너머로 걸쳤다.
이 시간에 관도를 달릴 순 없으니 노숙을 하거나 늦기 전에 객잔을 잡아야 했다.
하지나 그들이 황보세가를 빠져나가기 직전 황표와 다른 무인들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무사님!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무슨 일이십니까?”
황표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숨을 가다듬었다.
봉투 안을 보고 놀란 탓이리라.
“……아무리 조의금이라지만 너무 많습니다. 잘못 넣으신 게 아닌지…….”
“금자 1만 냥이라면 맞습니다. 저와 정도회에게 있어서 황충 친위대장에 비하면 무척이나 적은 돈입니다.”
금자 1만 냥에 두 눈이 휘둥그레진 이들은 진백천의 말에 다시금 침을 꼴깍 삼켰다.
황충이 정도회에서 얼마나 인정을 받았었는지 알게 돼서 기쁨과 함께 눈앞에 무사의 정체가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1만 냥을 이렇게…….”
“절대 많은 돈이 아닙니다. 그냥 받으셔도 됩니다.”
진백천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황표는 이대로 진백천을 보낼 수 없었다.
“밤이 깊었으니 하루 머물고 가심이 어떠십니까? 그 정도는 해드려야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하루만 신세를 끼치겠습니다.”
황표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를 객당으로 안내했다.
처음 안내했던 방이 아닌 훨씬 크고 넓은 방이었다.
나름 황표로써는 최선을 다해 모시는 것이었다.
“돈 때문이라면 굳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꼭 그런 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처음 오는 개인 조문객이라 그렇습니다.”
진백천은 그 대답에 그저 미소를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황충이 평생을 정도회에서 지내왔지만 그다지 친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굳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뽑자면 진백천이 전부였다.
“다들 때가 때인지라.”
“이해합니다. 하하하.”
황표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술상이 들어왔다.
따로 말하지 않아도 먼저 챙겨주었다.
당연히 도홍경과 중혁은 입맛을 다시며 상 앞에 앉았다.
“쯧. 술이라면 그저 좋아 가지고.”
“형님이 그렇게 말하기에는 손이 민망하지 않으세요?”
“나는 조의금 두둑이 냈잖아.”
진백천의 손은 이미 바쁘게 술 마개를 따며 냄새를 맡는 중이었다.
황주(黄酒)의 달콤쌉싸름한 향이 훅하고 맡아졌다.
백주와 다르게 색이 불그스름한 것이 무척이나 먹음직스러웠다.
“호오. 이건 술 색깔이 특이하네요?”
“증류해서 마시는 백주와 다르게 수수(高粮)나 흑미를 잔량이 남아서 그래. 하지만 도수가 높지 않아서 간단히 마시기에는 좋지.”
술병은 중탕으로 가열되어 손에 쥐기에 따뜻할 정도였다.
각자 잔에 따라서 나눠주니 마신 도홍경과 중혁의 눈이 커다래졌다.
“흐음. 술이 달달하고 맛있네요.”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술은 많지 않았지만 식사에 적당히 반주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들이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는데 순간 밖이 소란스러워지며 바쁘게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밤 중에 무슨 일이지?”
셋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몸 안의 술기운을 밖으로 배출하며 기척을 곤두세웠다.
“또 그놈들이다! 서둘러!”
“오늘만큼은 꼭 놓치지 마!”
‘그놈들이라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이 붉어진 황표가 나타났다.
어딘가 잔뜩 분개한 얼굴이었다.
“후우. 무사님들 죄송합니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놀라셨을 겁니다.”
“괜찮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시길래 그런 겁니까?”
황표는 생각만 해도 화가 치솟는지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얼마 전부터 자꾸 황보세가의 금지(禁地)에 출입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금지?’
진백천은 순간 보통 일이 아님을 깨닫고 상단전을 열었다.
“금지라면?”
“아아. 말이 금지이지.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숲이나 다름없습니다. 그저 예전에 근 전투가 있었다고는 하는데 저도 거기까지는 자세히 모릅니다.”
진백천은 황표가 말하는 그 금지가 예전에 도홍경이 조사했던 곳임을 알아차렸다.
천마가 찾아와 한차례 일전을 벌이고 마기와 온갖 기운이 섞여 시체의 잔해와 썩은 그곳은 나무도 못 자라는 기이한 곳이었다.
할 수 없이 금지(禁地)가 되어버렸지만 지금은 그저 황보세가가 지키는 곳일 뿐이었다.
‘도홍경의 말대로라면 별별 미친놈들이 다 모여든다고 했으니.’
“전에 도복편왕(逃蝠翩王)이라는 미친 자가 있었는데 사라져서 조금 괜찮아졌나 싶더니 더 이상한 놈들이 나타났습니다.”
도복편왕이라는 말에 도홍경이 움찔하며 놀랐지만 다행히 황표는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남녀 한 쌍인데 어디서 자꾸 시체를 가져와 금지에 파묻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끄집어 놓으니 저희 입장에서는 환장할 수밖에요. 누가 보면 저희가 꼭 사람을 죽이고 묻어놓는 것처럼 보일 테니 말입니다.”
“……흐음! 혹시 시체에 무슨 흔적이 있습니까?”
“네. 부패한 시체의 머리에 큼지막한 구멍이 5개가 있습니다. 혹시…… 아시는 자들입니까?”
진백천은 황표의 설명을 듣는 순간 바로 놈들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리고 이내 이어지는 말에 황표가 눈을 부릅뜨며 자세를 고쳐앉았다.
“남녀쌍귀(男女雙鬼). 놈들이 부골오백조(腐骨五白爪)를 연마하는 중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