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261화
88장 흑점(黑店)(6)
인육을 하는 놈.
그것도 오갈 데 없는 길거리 어린 거지들을 잡아다 가게까지 차린 놈.
아무리 진백천이 회귀를 하면서 봐온 인간군상이 여럿이라지만 이런 놈들은 많지 않았다.
“네놈은 죽어도 할 말이 없을 거야. 그렇지?”
가늘어진 진백천의 양 눈에서 살의가 물씬 피어올랐다.
단순히 기세뿐만은 아니라 주변을 그나마 밝히던 도홍경의 부적들이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대신 주변을 가득 채운 것은 닿으면 베일 것 같은 진백천의 살기였다.
수없이 사람을 잡아먹은 저계춘 조차 그 기운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스르릉-
검이 뽑히는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리며 소리쳤다.
“자, 잠깐만!”
“뭐. 아직 할 말이 남았어?”
“길거리 거지새끼들을 잡아 죽인 것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 우리는 아무 잘못도 없다!”
어둠 속에서 진백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놈들의 개소리에 살의가 더 짙어져 갔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저 거지새끼들! 어차피 부모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놈들이야! 하다못해 개돼지 같은 가축보다 더 못한 취급을 받던 놈들이라고! 그런 애들이 굶어 죽어갈 때 밥을 준 이들이 단 하나라도 있었을 것 같아?!”
진백천은 아무 말 없이 저계춘을 내려다봤다.
개소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줄 용의가 있었다.
“아무도! 그 잘나신 무인들은 거지들이 다가오면 옷이 더럽혀질까 봐 쫓아냈고 관리들도 사라져주면 보기 흉한 것들이 없어졌다며 기뻐했다! 오로지 우리만……!”
이내 저계춘은 지하가 가득 울릴 정도로 크게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형제만이 놈들을 먹여 살렸어! 그러니 그 생명도 당연히 우리 거다! 그러니 네놈은 우리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어! 그러니……!”
순간 진백천의 뒤편에서 두 개의 손바닥이 그의 머리를 향해 뻗어왔다.
정신을 차린 뚱뚱한 저계춘의 기습이었다.
단숨에 머리를 박살 내려는 듯 자신의 전 기운을 양손에 실은 상태였다.
“……뒈져라!”
하지만 놈의 기세와 달리 이어지는 결과는 너무나 잠잠했다.
두 개의 손바닥이 맞부딪치는 대신 날카로운 절삭음만이 울려 퍼졌다.
“……혀, 혀엉.”
그리고 희미한 불빛 속에서 주춤거리고 선 것은 양손이 잘린 저계춘이었다.
놈은 곧 숨을 헐떡거리더니 머리가 잘려 뒤로 넘어갔다.
“개소리는 다 끝났냐?”
상단전이 열린 진백천에게 이깟 놈들의 기습 따위는 진즉에 알아차린 지 오래였다.
저계춘은 마지막 한 수조차 통하지 않자 눈을 부릅떴다.
핏발선 눈은 역시나 포기하지 않는 눈치였다.
“네놈이 뭔데 우리 형제를 비난하느냐! 그냥 똑같이 죽이고 싶어서 죽이는 것뿐 아니냐!”
“맞아. 네놈을 죽일 거야. 하지만 그전에 여러 가지 확인할 게 있어서.”
어둠 속에서 재차 날카로운 파공이 들려오며 저계춘의 힘줄을 잘라냈다.
“끄으윽!”
양다리에 힘이 풀린 놈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무래도 네놈이 이렇게까지 대놓고 흑점을 운영한다는 것에서 의문이 들거든. 내 결론은 분명 누군가의 도움이 있다는 거야. 관리든 누구든 간에 말이지.”
“크흐흐흐. 어차피 나를 죽이게 되었으니 자연스레 알게 될 텐데 뭐가 급하다고 그러지?”
“그러니까 그 배후가 누군지 네 입으로 말해봐.”
저계춘의 시선이 멀찍이 떨어져 있는 자신의 창으로 향했다.
“……인육을 즐겨 하는 이들이 있다. 그중에는 고관대작뿐만 아니라 꽤나 이름을 날리는 무인들도 있지. 하지만 그들은 그저 잘 굴러가기 위한 기름 정도에 불과해.”
“그러면 또 누가 있다는 건가?”
“악인들을 위한 악인. 소악마(小惡魔).”
이것은 진백천도 처음 들어보는 별호였다.
하지만 놈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속마음을 확실히 엿듣고 있었으니까.
“소악마는 그 누구보다 악인들을 환영한다. 네놈도 분명…… 우리 같은 분류니 환영받을 수 있겠지. 내가 소개해 주겠다. 그러니…….”
“헛소리 말고 놈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그저 흑점 운영을 하고 있던 나에게 서신 한 통을 보냈을 뿐. 아마 네놈에게도 똑같이 서신을 보내겠지.”
‘소악마라.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억에 없어. 그렇다는 것은 별 볼 일 없는 놈이거나 그저 이놈을 앞세운 것뿐이겠지.’
저계춘의 손끝은 어느 틈인가 창의 손잡이까지 뻗어간 상태였다.
-조금만 더 닿으면 된다!
그리고 마침내 손에 창이 잡혔을 때 전력을 다해 진백천을 향해 휘둘렀다.
하지만 진백천은 어느 순간 시야에서 사라진 후였다.
“뭐, 뭐냐?”
“쯧. 꼭 지 같은 무기를 쓴다니까.”
진백천의 목소리는 바로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놈이 재차 창을 휘두르기 전에 손잡이를 붙잡고 그대로 끌어올렸다.
창날이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커헉!”
“네놈이 그동안 그 무기로 사람들을 죽여댔으니 똑같이 겪어봐.”
톱니처럼 깎아놓은 날은 한번 살점을 파고들면 쉽게 빠지지 않았다.
저계춘은 창날을 부여잡은 채 헐떡이다 숨을 멈췄다.
과연 놈다운 최후였다.
진백천은 그곳을 빠져나가다 문득 지하를 뒤돌아봤다.
만약 그가 바쁘다는 이유로 그냥 넘어갔다면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었을지는 상상하기 싫었다.
“후우. 참으로 역겨운 장소야.”
우우우웅-
진백천은 독고구검에 천천히 내력을 불어넣었다.
3갑자가 넘는 내공이 쏘아져 들어가자 검강이 길게 솟구치며 검신이 부르르 떨렸다.
“그냥 다 무너져라.”
진백천은 명령처럼 내뱉으며 검을 휘둘렀다.
파강식의 강기가 지하의 기둥을 차례대로 부수며 나아갔다.
드드드득-
그리고 서서히 천장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 * *
진백천이 지상으로 올라올 때쯤에는 이미 동월루의 전각들은 주저앉는 중이었다.
생각보다 지하가 더 넓고 컸는지 그 여파는 계속해서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저, 전부 동월루에서 물러서!”
“휩쓸리기 전에 빠져나가!”
동월루 주변은 몰려든 사람들과 빠져나가는 이들로 인산인해였다.
뒤늦게 온 관군들이 통제하려 했지만 그것이 가능할 리 없었다.
진백천은 흑의를 푹 눌러쓰며 혼란스러운 현장을 벗어났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일천루(一天樓)에서였다.
“중혁은?”
“아이들은 안전한 곳에 데려다주고 온다고 합니다.”
“다친 애들은 없고?”
“네. 전부 멀쩡합니다.”
진백천은 중혁이 돌아오기 전까지 도홍경과 거지들에게 대해 이야기했다.
의외인 것은 소주에 머무는 거지들의 수가 생각보다 더 많다는 것이었다.
“개방이나 흑도방파에 소속되는 아이들을 제외하고도 꽤나 많습니다.”
“전부 어린아이들이지?”
“맞습니다.”
아무리 개방이라고 해도 어린 거지들을 도맡아 보살피고 신경 쓰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강소성은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가 없는 곳이었다.
이런 곳에 개방이나 하오문의 분타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없으니까.’
진백천은 중혁에게 약속한 대로 아이들을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해 생각했다.
무작정 정도회에 보내 애들 좀 보살피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말 그대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자금이 천문학적으로 들어갈 겁니다. 거지들이 이곳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렇겠지. 그러니까 그 누구도 하지 않는 것일 테고.”
그나마 떠맡더라도 일을 할 수 있는 나이의 아이를 맞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누군가 꼭 해야 할 일일지도 모르지.”
단순히 돈이 많이 든다고, 쓸모가 없다고, 그들로부터 시선을 돌려 버리면 지금 당장은 편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면 자신 또한 위선자가 될 뿐이었다.
인육귀(人肉鬼)를 베면서 아니 그전에 아이들의 일에 개입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이미 결정했다.
“정도회가 못하더라도 내가 하면 돼.”
“……형님이요?”
“그래. 돈이야 나쁜 놈들한테서 털면 되고 부족한 사람은 발품 발아 구하지 뭐.”
도홍경은 진백천의 무덤덤한 대답에 멍하니 그를 쳐다봤다.
그리고 도저히 못 이기겠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설마 했더니 정말…… 형님은 제 수준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네요.”
그러면서 품속에서 은표를 수북이 집어 꺼냈다.
“이게 다 뭐냐?”
“동월루에서 빠져나올 때 제가 그냥 나왔겠어요? 있는 대로 다 털어버렸죠.”
원래대로라면 입 싹 닦고 자신이 먹으면 그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진백천이 아이들을 위해 나선다는데 도홍경이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동월루는 그동안 인육을 팔아 제법 돈을 벌었는지 전표도 빵빵했다.
“짜식. 이왕 도와주는 김에 한 번 더 도와줘라.”
“……저 이제 돈 없는데요.”
“돈이 아니라. 서신 한 통만 보내라.”
“네?”
고개를 갸웃거리는 도홍경에게 진백천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털어놨다.
그것을 들은 도홍경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하아. 형님의 일거리 넘기기 기술은 정말…… 최상급이네요.”
“원래 나 정도 위치되면 그렇게 해도 되는 거야.”
* * *
다음 날 아침.
하오문 강소성은 역대 최고의 금액으로 의뢰를 받았다.
그 의뢰는 누군가의 뒷조사나 정보를 알아내는 것이 아닌 단순 호위와 운반.
그 대상은 다름 아닌 거지들이었다.
“거지…… 들을 말입니까?”
하오문 강소성 분타주는 혹시나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재차 질문했다.
하지만 진백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위치는 정도회. 그리고 이 서신은 황대원에게 전달하면 돼.”
“황대원이라면 충부대군(忠斧大軍) 말씀이시죠?”
“맞아.”
“그렇다면 보내는 자는……?”
진백천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도홍경.”
“알겠습니다.”
잘 먹고 닦인 거지의 수는 무려 200여 명.
전부 하나같이 오래 걷지도 못할 만큼 어린아이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행렬은 힘들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그런데도 워낙 힘들게 살아왔던 아이들이라 그런지 세끼 배불리 먹는 음식에도 기뻐했다.
“송강 오빠.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정도회.”
“으음? 거기는 왜 가는 거야?’
“밥도 주고 공부도 알려주고 해줄 거래.”
주변 아이들은 송강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누구도 자신들에게 호의를 베풀어준 적이 없었다.
음식을 주더라도 그저 멀리 떨어지라는 의미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대체 왜?”
송강은 아이의 물음 진백천의 얼굴을 떠올렸다.
마지막 헤어지기 전 그는 따로 진백천을 만났었다.
그것도 얼굴을 역용하지 않은 원래의 그를.
송강도 그에게 왜 그렇게까지 자신들을 도와주느냐 이유를 물었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었다.
“……그게 어른이 해야 할 일이니까.”
아이들은 여전히 송강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정확히 1달 뒤.
그들은 정도회에 도착했고 송강은 단독으로 황대원을 만나게 되었다.
황대원은 하오문의 문도가 가지고 온 서신을 이미 읽어본 상태였다.
[잘 지내시죠. 도홍경입니다. 제가 이렇게 따로 서신을 보낸 것은 다름이 아니라 전부 형님, 그러니까 회주님께서 시키신 일이 있으셔서요. 하하하. 정마대전이 일어나면 고아들도 늘어나고 죽어가는 민간들도 많을 테니 앞으로 고아원을 크게 지으셔야 한다고 하셨거든요…….]
한마디로 전국에서 불쌍한 아이들 보낼 테니 정도회에서 책임지고 맡으란 소리였다.
황대원은 순간 폐관수련하고 있을 진백천을 찾아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이번 일은 가뜩이나 바쁜 정도회에 커다란 짱돌을 집어던진 격이었다.
“후우. 듣기로는 나에게 전할 것이 있다던데?”
“……네. 맞습니다.”
송강은 애써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며 품속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건넸다.
그리고 황대원이 그것을 열자 튀어나오듯 전표가 쏟아져나왔다.
진백천이 원래 가지고 있던 것과 동월루에서 얻은 것들이었다.
“…….”
황대원은 그 전표를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뭔가를 깨달았다.
“……회주님께서 ……설마…… 나가셨나?”
송강의 격하게 흔들리는 동공을 보고 황대원이 길게 탄식을 내뱉었다.
진백천과 같은 재신(財神)이 아니고서야 이만한 돈을 뚝딱- 만들어낼 리 없었다.
“……미치겠군. 하아. 그래서 당소저도 외출을 한 거야.”
그는 잠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머릿속을 정리하려 애썼다.
간혹가다 ‘나는 이렇게 개고생을 하고 있는데-’라는 말이 들려왔지만 송강은 못 들은 척했다.
마침내 고개를 든 황대원이 두꺼운 손으로 송강의 어깨를 두드렸다.
“수고했다. 이만한 돈이라면 분명 유혹이 될 만했을 텐데 의지가 강하구나.”
“……아, 아닙니다.”
“도홍경, 아니, 회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지켜질 것이다. 항상 그래왔으니. 장로들께서 죽어 나가겠지만.”
그리고 정도회에서는 그동안 강호에서 그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일을 발표했다.
흔히 말하는 자선사업인 ‘유접원(留接院)’이었다.
어린아이들을 보살핀다는 이야기에 황실에서는 크게 반색했지만 대부분은 믿기 힘들어했다.
지금은 비록 호북 한 곳이었지만 추후에는 인근의 지역까지 뻗어 나간다고 하니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서서히 시간이 가면서 믿기 힘들어하던 이들도 의심의 눈초리에서 감탄으로 바뀌어 갔다.
<불쌍한 아이들을 돕는 것은 과연 강호의 빛인 정도회다운 일이었다.>
<진백천 회주가 사재를 털어 하는 일에 수천 명의 생명을 살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꼭 정도회에게 해가 되는 것만은 아니었다.
정확히 10년 후.
황도에서 시작된 장원급제의 행렬은 정도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그 황금 마차에서 내린 이는 다름 아닌 송강을 비롯한 유접원 출신의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충실히 자라 훌륭한 열매를 맺었다.
그것은 정도회를 유지하는 커다란 기둥 중에 하나가 되었다.
물론 그것 또한 진백천이 예상치 못한 것이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