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회귀백서-260화 (260/346)

무림회귀백서 260화

88장 흑점(黑店)(5)

“돼지 같은 놈이라 그런지 사람도 음식으로 보이는 모양이구나!”

도홍경은 큰소리로 일갈하며 뛰어올랐다.

그의 신형이 희끗하며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것은 저계춘의 바로 머리 위에서였다.

철검이 정확히 그의 정수리를 내리찍었지만, 놈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런 뭉툭한 검 끝은 나를 찌르지 못해.”

저계춘의 몸이 크게 출렁이나 싶더니 사방으로 충격파가 이어졌다.

도홍경은 그것에 휩쓸리며 튕겨 나갔다.

“나를 유일하게 상처 낸 자가 15년 전에 무당파 검수였지? 정말 죽을뻔했는데 결국 이긴 건 나였어. 그리고 놈을 통째로 구워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지.”

“닥쳐!”

중혁이 구촉비전의 기운을 끌어올리며 놈의 등 뒤를 노렸다.

두 주먹이 쉬지 않고 뒤통수를 내리쳤지만 저계춘의 담담한 음성은 멈추지 않았다.

“확실히 수련을 많이 한자라 그런지 근육이 부드러웠어. 덕분에 내 내공도 크게 늘고 말이야.”

후우우욱-

갈고리 형태의 기형창이 허공을 가르며 중혁을 노렸다.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에 창날에 튕겨 났다.

“네놈은 무척이나 질길 것 같군. 내 날카로운 창에 부딪혀도 베이지 않는 걸 보면 말이야.”

“……네놈은 대체 누구지? 단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강해지다니.”

“하룻밤 사이?”

저계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이내 중혁이 누구와 착각하는지 알아차린 듯 가볍게 실소를 터뜨렸다.

“내 동생과 만난 적이 있나 보군. 그 멍청이와 나는 차원이 다르지. 아마 동생을 생각하고 덤빈다면 큰코다칠 거야.”

“그렇군.”

중혁은 몸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라리 다른 사람이라고 하니 오히려 마음이 정리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의 시선이 뒤편에 있던 도홍경과 마주쳤다.

-내가 시선을 끌 테니까 한 방 노릴 수 있겠냐?

중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구촉비전의 기운에 주먹을 휘두르는 것으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얼마 전 진백천에게 배운 혈수인(血髓印)뿐이었다.

‘거기에 구촉비전의 기운을 실으면 충분해.’

아직 불안정하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해내야 했다.

도홍경은 그의 대답에 곧바로 움직였다.

품속에서 부적을 한 움큼 꺼내더니 사방에 흩뿌렸다.

화르르륵!

부적들은 마치 생명을 가진 것처럼 스스로 움직이며 지하 여기저기에 달라붙었다.

“흐음? 진법인가? 꽤나 특이한 도사로군. 이처럼 술법을 자유자재로 쓰는 놈들은 모산파 이후에 처음이다.”

“뭐? 모산파 도사를 만났었나?”

“만나기만 했을까. 맛도 봤지!”

저계춘이 씨익 웃으며 기형창을 휘둘렀다.

하지만 중간에 끈이라도 걸린 것처럼 창이 튕겨 나갔다.

도홍경이 펼친 옥쇄진(獄鎖陳)의 효과였다.

부적끼리 이어진 내력이 저계춘의 몸을 옥죄기 시작했다.

“모산파 도사들도 부적들을 꽤나 잘 다뤘지. 그런데 전부 부상을 입었던 터라 반항하지 못했다. 나로서는 무척이나 다행인 일이었지. 크큭.”

도홍경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마 부상을 당했다는 말을 사실일 것이다.

강시를 다루는 몇몇 도사들 때문에 무림 공적으로 쫓기던 그들이었으니.

복잡해지는 그의 표정을 보며 저계춘이 환하게 웃었다.

“흐음. 설마 했더니 모산파의 도사였나? 과거의 연을 만나는구나!”

“시끄럽다!”

옥쇄진의 기운이 한층 더 강해지며 저계춘을 억눌렀다.

놈이 한쪽 무릎을 꿇었지만 여전히 여유만만했다.

그 뒤를 노리고 중혁이 뛰어올랐다.

붉게 달아오른 눈동자와 함께 오른손이 핏빛으로 일렁였다.

“끝이다!”

구촉비전의 내력과 합쳐진 혈수인의 장기가 터져 나오며 지하의 공동이 순간 붉게 물들었다.

저계춘의 창이 힘없이 튕겨 나가며 그의 전신이 장기에 깔렸다.

콰아아앙!

진한 모래 먼지가 피어오르며 시야가 가려졌다.

“콜록콜록. 끝났나?”

“……아직이에요.”

도홍경의 물음에 중혁이 대답했다.

마지막 순간 그는 환하게 웃는 저계춘의 미소를 확인했다.

자신이 죽어가면서까지 그렇게 태연할 놈은 많이 앉았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 모래 먼지가 갈라지며 창이 뻗어 나왔다.

카앙!

중혁은 구촉비전을 끌어올렸지만 살점이 찢겨져 나가며 뒤로 밀려났다.

창에 담긴 내력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달랐다.

꾸르르르륵-

“후우. 배고파.”

배곯는 소리와 함께 드러난 놈의 모습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전신을 감싸던 살점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호리호리한 놈이었다.

“그동안 열심히 모은 살점인데 아까워어.”

기형창이 기이한 경로로 뻗어오며 중혁의 팔을 노렸다.

도홍경은 재빨리 그를 뒤로 잡아당겼다.

“흐읍!”

창은 마지막 순간에 변화를 일으키며 도횽경의 허벅지를 할퀴고 지나갔다.

저계춘은 창끝에 묻은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먹으며 눈을 빛냈다.

“걱정 마. 둘 다 잡아먹을 테니까. 도망가려 해도 소용없다고.”

“……역겨운 놈이구나. 쯧.”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말과 달리 베인 도홍경의 발이 잘게 떨렸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놈은 정확히 혈도를 노리고 파고들었다.

나긋나긋하게 말하고 움직이는 것과 달리 무척이나 독사 같은 놈이었다.

“아저씨. 제가 저놈 막고 있을 테니까 아이들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나보고 너를 두고 가라고?”

“최소한 버틸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쯧. 그거야 아까 돼지 같은 놈일 때나 그랬지. 지금은 아니야.”

도홍경은 상황을 확실하게 파악했다.

‘쯧. 애초에 처음 마주쳤을 때 전력으로 도망쳤어야 했어.’

애초에 이놈과 지하에서 마주칠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십대악인을 우습게 본 탓도 있었다.

진백천이 만나는 족족 박살을 내버리니 상대적으로 약하게 느껴진 탓이었다.

‘……형님이 얼마나 괴물이었는지 새삼 알 수 있어지네.’

지금으로써는 둘이서 최대한 놈에게 버티며 진백천이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형님만 오면 끝이야. 그러니 버텨.”

“네. 알겠습니다.”

“형님? 그게 또 누구지?”

“네놈 따위 단숨에 으깨 버릴 멋있는 분 있지.”

저계춘은 딱히 귀담아듣지 않았다.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던 이들은 한둘이 아니었고 결국 자신에게 전부 찢겨 죽었다.

“그 형님이라는 자가 운룡심검(雲龍心劍)이라도 된다는 말이냐?”

비웃기 위해 한 말이었지만 중혁과 도홍경은 입을 꾹 다물었다.

진백천이 이곳에 와 있는 것은 절대적인 대외비였다.

“뭐. 비슷하시지.”

“크큭. 설사 정도회 회주가 직접 내 앞에 온다고 해도 나를 이길 순 없다!”

그의 창의 머리가 빙그르르 돌며 도홍경을 노렸다.

중혁은 재빨리 땅을 박차며 앞으로 뛰어나갔다.

극도로 끌어올린 구촉비전으로 인해 상반신이 검게 물들었다.

카앙!

덕분에 아주 잠깐이지만 기형창을 버텨낼 정도는 되었다.

전신을 갉아대는 창날을 뚫고 저계춘의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중혁은 그대로 놈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혈수인의 기운이 섞인 손아귀라면 단숨에 목뼈를 부러뜨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까드득-

하지만 놀랍게도 강철도 뜯어내는 그의 손가락이 살점조차 뜯어내지 못했다.

“내 살점은 그 무엇보다 단단하고 두껍다. 그렇게 여린 손으로는 어림없지.”

놈은 그대로 입을 벌리며 중혁의 손가락을 집어삼키려 했다.

창날처럼 번뜩이는 이빨은 톱니처럼 날카로웠다.

하지만 그때.

손가락에 이빨이 닿으려는 순간, 놈의 머리 위로 무엇인가 희끗하며 나타났다.

‘저계춘?’

돼지 같은 몸은 분명 놈이 변하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콰아앙!

저계춘은 또 다른 저계춘에 깔리며 뒤로 물러났다.

“후우. 많이 기다렸냐?”

목을 이리저리 비틀며 나타난 것은 진백천이었다.

* * *

진백천은 지하에 또 다른 놈이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서둘렀다.

반항하는 저계춘을 개 잡듯 후드려 패며 지하로 끓고 내려갔다.

그리고 처음 확인한 장면이 이상하게 호리호리한 놈이 중혁의 손가락을 뜯어먹으려는 모습이었다.

‘짐승 새끼도 아니고 저게 뭐야?’

비계만 잔뜩 있는 저계춘보다야 인간적인 모습이었지만 저놈은 또 저대로 역겨운 기운을 풍겼다.

그는 급한 대로 손에 들고 있던 저계춘을 있는 힘껏 집어던졌다.

우드득-

머리가 전부 쥐어 뜯겨 나갔지만 덕분에 중혁의 손가락이 씹어 먹히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형님!”

“어어. 저게 그 계춘이 형이냐?”

“맞습니다. 창을 다루는 솜씨가 제법입니다. 형님도 조심하시는 게…….”

“쯧. 걱정 마.”

진백천은 아무렇지 않게 앞으로 걸어나갔다.

저계춘의 창이 회전하며 뻗어왔지만 종마검에 부딪치며 오히려 뒤로 밀려났다.

“창도 꼭 지같이 요사스럽게 생긴 걸 쓰네.”

“……흐음!”

놀란 저계춘과 달리 진백천은 그저 중혁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근골이 상한 곳은 없어. 다행이야.”

“……네.”

“저놈은 이제 내가 상대할 테니까 도홍경하고 애들 풀어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저계춘이 그를 비웃으며 재차 창을 뻗었다.

방금과 달리 묵직하게 실린 내력으로 강기가 휘몰아쳤다.

“어차피 곧 줘터질 텐데 뭘 이렇게 떼를 쓰냐?”

파강식(破彊式).

강기에는 강기로.

굳이 받아칠 것도 없이 진백처은 더욱 강하게 그를 몰아붙였다.

저계춘은 창을 뻗던 그 자세로 강기의 파도에 휩쓸리며 뒤로 튕겨 나갔다.

벽면의 감옥이 박살 나면서 그 안에 처박혔다.

“……역시…… 형님이시네요.”

도저히 방금까지 그들을 몰아붙이던 강자라고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응? 뭐가?”

진백천은 도홍경의 말을 다르게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쯧. 나라고 약한 놈들 괴롭히고 싶은 건 아니라고. 그래도 어쩌겠냐. 저렇게 맞고 싶어서 날뛰는데.”

무너진 잔해가 터져나가며 저계춘이 거칠게 달려들었다.

진백천은 봤지? 란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종마검마저 바닥에 쑤셔 넣고 앞으로 나섰다.

“네놈 동생도 똑같이 당한 건데 너도 버텨봐.”

“닥쳐!”

저계춘은 그대로 진백천의 어깨를 씹어먹으려 했다.

하지만 벌어진 입에 틀어박힌 건 단단한 주먹이었다.

퍼억!

강기에 휩싸인 주먹은 단단한 이빨도 버티지 못하고 금이 갔다.

‘흐음. 몸이 생각보다 단단한데?’

단번에 으깨 버릴 강도로 휘둘렀던 주먹이었다.

그런데도 저계춘은 공격을 버티며 양팔을 뻗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조금 더 강한 완력으로 몰아붙이면 그만이었다.

환력신공(煥力神功).

진백천의 몸이 급속도록 커지며 근골이 두꺼웠다.

그에 따라 전신을 휘감는 내력도 점점 흉포해졌다.

콰악-

거대해진 손으로 저계춘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놈은 벗어나기 위해 물어뜯으려 했지만 놈을 반긴 것은 반대쪽 주먹이었다.

“무는 개는 맞아야지.”

“네, 네놈은 누구냐!”

“누구긴. 네놈 인성교육 담당 교관이다.”

“죽여 버리겠다!”

놈이 눈을 사납게 뜨며 손을 뻗었다.

심장을 노렸지만 그런 간단한 수에 진백천이 당할 리 없었다.

가볍게 공격을 흘러내며 머리통을 짓이겼다.

“그 싸가지 없는 주둥이부터 손봐주마.”

콰드득!

“커헉!”

대포알 같은 주먹에 저계춘의 이빨이 옥수수알처럼 사방으로 튀었다.

하지만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저지른 죗값이 있는데 이대로 끝내는 것은 아쉬웠다.

“버텨봐.”

진백천의 두 주먹이 허공을 가르며 저계춘의 전신을 두들겼다.

딱히 초식조차 없는 주먹질이었지만 한 방 맞을 때마다 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주먹에 담긴 태허무극진결의 파사의 기운은 사특한 저계춘의 기운을 간단히 찢어발겼다.

중혁의 손아귀에도 끄떡없던 살점이 짓이겨지며 피가 튀었다.

“자, 잠까안!”

“잠깐은 무슨.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어. 새끼야. 이 꽉 깨물어.”

안타깝게도 놈에게는 꽉 깨물 이따위 남아 있지 않았다.

진백천이 두 손을 탁탁 털 때쯤에는 저계춘은 이미 반쯤 시체가 된 상황이었다.

바로 뒤에 늘어져 있는 그 동생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후우. 역시 걸개구타권(乞丐毆打拳)만큼 속 풀리는 무공이 없다니까.”

“…….”

아이들을 감옥에서 빼내던 중혁은 그 말에 하던 것도 멈추고 멍하니 그를 쳐다봤다.

“왜? 너도 배우고 싶냐?”

중혁이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짜식. 하는 거 봐서. 일단 애들 데리고 나가 있어.”

중혁과 도홍경이 아이들을 끌고 나가자 지하에는 진백천과 저계천 쌍둥이만 남았다.

그러자 진백천에게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장난기가 사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