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259화
88장 흑점(黑店)(4)
족히 수백 년을 살아왔을 관목들이 여기저기가 터져나가며 쓰러졌다.
육중한 무게의 몸이 땅에 처박힐 때마다 일대의 바닥이 잘게 떨렸다.
그것은 철렁이는 동월루 무인들의 심장과 마찬가지였다.
“……당장……! 저놈을 죽여라!”
그들은 이제 더는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다급하게 달려들며 검을 휘두르는 무인들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물론 진백천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 주인이라는 자가 꽤나 무섭나?’
진백천은 그들의 태도에서 주인이라는 자가 인육귀(人肉鬼)라는 것에 조금 더 무게를 실었다.
그리고 마침내 모래 먼지 사이에서 돼지놈이 등장했다.
골목길에서 봤던 동파육이란 놈이었다.
다만 느껴지는 기운이 조금은 더 흉포했다.
“저계춘님!”
놈은 쓰러진 나무들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과연 동파육이란 별명답게 몸이 푸들거리며 떨렸다.
제 딴에는 분노로 가득 찬 모습이었지만 진백천이 보기에는 우스울 따름이었다.
“네놈은 누구냐. 누군데 감히 여기서 행패를 부리는 것이냐!”
“나? 손님인데. 답답해서 가지 좀 쳐냈을 뿐인데.”
“이놈!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가지를 친다는 놈이 나무를 이렇게 베어내!”
옆에 있던 무인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 말에 반응한 것은 저계춘이었다.
솥뚜껑 같은 손을 휘둘러 무인의 머리를 내리쳤다.
콰드득!
머리가 단숨에 으깨져 나가며 뇌수가 흩날렸다.
저계춘은 머리가 없어진 무인의 몸에 손을 닦아내며 진백천을 노려봤다.
“네놈이 누군지 몰라도 살아서 돌아나갈 생각 마라! 온몸을 싹싹 발라먹어 주지!”
“과연 돼지 새끼답게 먹을 생각뿐이구나?”
“건방진 놈!”
호환마수(護環魔手).
놈이 내력을 끌어올리자 가뜩이나 커다란 양손이 점점 부풀어 올랐다.
얼핏 보면 두 개의 방패를 손에 달고 있는 모습이었다.
단순히 외형이 바뀐 것만은 아닌 듯 손바닥으로 땅을 내리치자 움푹 파이며 박살이 났다.
그 반탄력으로 뛰어오른 저계춘이 진백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무리 두꺼운 비계가 있다고 해도 검까지 막을 수는 없을 텐데?”
“베어 보거라!”
손바닥이 그대로 진백천의 머리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베어내려면 못할 것도 없지만 진백천은 일부로 맞부딪치는 것을 피했다.
지하로 내려갔을 중혁과 도홍경에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였다.
콰아앙!
저계춘의 손바닥이 닿는 것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물론 놈이 정신없이 달려들게 하기 위한 적절한 약 올림은 계속되었다.
“돼지가 손을 휘두르니까 돼지 두루치기인가?”
“닥쳐라!”
“그러고 보니 저계춘의 저자도 돼지 저 아니야?”
“끄아아아악!”
가뜩이나 맞지 않는데 약까지 오르니 저계춘의 내력이 조금씩 흔들렸다.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진백천의 의문은 커졌다.
‘십대악인이라고 하기에 너무 약한대?’
흑백신의, 흡정마녀, 도광귀.
그동안 만나왔던 십대악인은 사악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매우 강했다.
그 악살신괴조차도 함부로 악인곡에 처넣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지금의 저계춘이 일반인들에 비해 강하다고 해도 십대악인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그런 의문이 들자마자 진백천은 곧바로 놈의 배를 강하게 후려 찼다.
“커, 커헉!”
순간 무릎까지 발이 살점을 파고들었을 정도의 강한 일격이었다.
분노에 미쳐 날뛰던 놈이 단 한 방에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뒤늦게 주변에 서 있던 동월루의 무인들이 달려들었지만 더 빠르게 처맞으며 튕겨 나갔다.
진백천이 싸늘한 기세를 풍기며 저계춘 앞에 설 때쯤에는 아무도 그의 앞을 막아서지 못했다.
“야. 내가 이상해서 그러니까 딱 한 번만 물어볼게.”
“감, 감히 내가 누군지…….”
진백천은 저계춘의 이야기를 들어줄 생각 따위 없었다.
쓰러진 놈의 발목을 그대로 짓밟았다.
우드득!
“크아악!”
“두 번 말하게 만들지 마. 알았어?”
저계춘은 고통에 울부짖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 인육귀 아니지?”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저계춘은 화들짝 놀랐다.
다짜고짜 그런 질문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나, 나에 대해서 어떻게…….”
콰드득!
“질문에 대답만 하라고.”
저계춘은 고통에 얼굴이 새하얘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깨진 양쪽 발목이 흉물스럽게 덜렁거렸다.
“맞, 맞다! 내가 인육귀다! 인육귀라고!”
“그런데 왜 이렇게 약해? 진짜 맞아?”
“맞다고!”
진백천은 단순히 놈을 괴롭히면서 대답을 듣고 싶은 게 아니었다.
아까 전부터 상단전은 활짝 열려 있었고 놈의 속마음도 엿듣는 중이었다.
-형만 온다면 이깟 놈도 별거 아니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돼……!
‘형이라고?’
“네놈 형에 대해서 말해봐.”
그 질문에 저계춘은 순간 통증마저 잊을 정도로 놀랬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밝혀진 적 없던 그들의 비밀이었다.
놈들은 사실 쌍둥이로 저계춘이라는 이름 하나로 지금껏 살아왔다.
똑같은 외모, 비슷한 성격이었지만 유일하게 다른 점은 무공실력이었다.
-형은 나와 다르게 천재니까.
십대악인에 들게 된 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전부 쌍둥이 형의 실력 덕분이었다.
“어, 어떻게 그걸? 네놈은 대체 누구지?”
“너는 대답만 하라고 했을 텐데?”
다시 발을 들어 올리자 놈이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소리쳤다.
“후, 후회할 거다! 지금이라도 도망치는 게 네놈이 유일하게 살길이다!”
“호오. 그렇게 형에 대한 믿음이 큰가?”
“……물론이지! 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하니까.”
“그 형은 어디 있는데?”
저계춘은 그의 눈치를 살피며 대답했다.
“지, 지하에 공간이 있는데 그곳에서 쉬고 있다.”
“지하에 있다고?”
이건 진백천도 예상 못 한 상황이었다.
그와 동시에 거친 충격음이 느껴지며 바닥이 잘게 떨렸다.
근원지는 바로 중혁과 도홍경이 향한 지하였다.
* * *
진백천과 헤어진 후.
중혁과 도홍경은 구석에 숨어 소란이 일어나길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백천은 확실하게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쿠우웅!
“마, 막아라!”
콰앙!
“어서 관군을 불러와!”
무슨 짓을 하는지 몰라도 계속해서 울려 퍼지는 비명과 충격음에 모든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우리도 들어가자.”
“네.”
도홍경은 품속에서 은신부와 은형부를 꺼내 중혁의 몸에 붙였다.
단지 부적 두 장일 뿐이었지만 그의 기척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여러 번 봐도 놀라운 술법이었다.
“가능한 아이들을 찾을 때까지 조용히 움직이자고.”
상대적으로 움직임이 좋은 도홍경이 앞서고 중혁이 그 뒤를 쫓았다.
지하에 들어서자 파낸 지 얼마 안 된 듯 축축한 습내가 피어올랐다.
구조는 단순했다.
커다란 공동같이 파인 구조에 벽면으로 쇠창살이 처져 있고 감옥이 늘어져 있었다.
“흐음. 단순히 감옥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크지?”
“맞습니다. 감옥보다는…… 식당 같달까요?”
중혁은 자신이 말하면서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걸 것이 지하에 굳이 식당을 만들어놓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이런 곳과 비슷한 흑점이 있다고 들어본 적은 있어. 시장처럼 사람을 고르고 그 자리에서 요리해 먹는 곳 말이야.”
“……역겹군요.”
“그러니 흑점이지.”
그들은 조금 더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잡혀들어왔다는 아이들은 이곳에 없는 듯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 우린 다 죽을 거야.”
“시끄러. 우리가 전부 사라졌는데 관군들이 그대로 지켜보겠어?”
“……관군들도 한패라고 들었단 말이야.”
중혁은 그 목소리가 자신에게 뭐라 하던 송강이란 아이의 것임을 알아차렸다.
발걸음이 절로 빨라졌다.
“……저기 있습니다!”
아이들은 가장 끝쪽의 감옥에 갇혀 있었다.
하나같이 목에 사슬이 묶인 채로 옴짝달싹도 못 했다.
중혁은 재빨리 창살을 구부러뜨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너는 어제 봤던?!”
“그래. 이제 걱정 마. 나갈 수 있으니까.”
“……다, 다행이야! 우린 살았어!”
순간 안도와 기뻐하는 목소리로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쉬잇- 아직 나갈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조용히 해.”
“미, 미안.”
아이들을 묶고 있던 쇠사슬을 푸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당연히 도망 못 갈 거라 생각했는지 걸쇠가 전부 허술했다.
철컥-
마지막 아이의 것까지 전부 풀자 지체 없이 밖으로 향했다.
송강을 비롯해 아이들은 어두운 지하를 둘러보며 공포에 젖은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동파육은?”
“동파육이라니?”
“오면서 동파육 못 봤어? 계속해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뭐?”
중혁과 도홍경은 흠칫 놀라며 송강을 쳐다봤다.
그들이 감옥에 도착할 때까지는 아무런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지하에서 그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
“……네가 오기 전에 자리를 비우길래 당연히…….”
말을 하던 송강은 문득 뭔가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멈춰섰다.
그의 시선이 어둠 속을 향했다.
“저, 저기에서 뭔가 움직였어.”
송강이 가리킨 곳은 그들이 처음 지나왔던 식당이었다.
중혁은 아이들을 벽 쪽으로 붙이며 그곳을 유심히 살폈다.
“……중혁아 먼저 아이들하고 나가라.”
“아저씨는요?”
“쓰읍. 아저씨 말고 형.”
도홍경은 장난스레 말하면서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분명 어둠 속의 뭔가를 본 모양이었다.
그리고 재빨리 품속에서 여러 장의 부적을 꺼내며 사방에 흩날렸다.
화르륵-
부적이 스스로 불타며 주변을 밝혔다.
그러자 마침내 어둠 속에 가만있던 존재가 모습이 드러났다.
“흐으음. 술법인가?”
심드렁한 얼굴로 도홍경을 살피는 이는 다름 아닌 저계춘이었다.
그런데 그의 한 손에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거대한 기형창이 들려 있었다.
“밖이 소란스럽더니 아이를 구출하려 한 거야? 너희들 꽤나 웃긴 놈들이구나.”
도홍경은 잔뜩 긴장한 채로 검을 빼 들었다.
성령목검(聖領木劍)가 아닌 그가 장식처럼 들고 다니던 철검이었다.
중혁이 지금껏 보지 못했던 긴장한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자 때문에 저렇게 긴장을 한다고?’
골목길에서 한번 붙어봤지만 그렇게까지 강한 인물은 아니었다.
“흐음. 식재료들아. 더 움직이면 너희부터 짓이길 테니. 가만있어라.”
그의 담담한 목소리에 아이들이 멈춰섰다.
살기가 잔뜩 깃든 음성은 함부로 거역하기 힘들었다.
“무시하고 움직여.”
“그, 그렇지만…….”
“괜찮아. 내가 이겨.”
이제 얼마 가지 않으면 출구였다.
송강이 덜덜 떨리는 발을 억지로 움직였다.
하지만 한 발자국 더 내디뎠을 때 그의 시야가 이상하게 바뀌었다.
짐승의 이빨 같은 창날이 그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허억!”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눈을 질끈 감는 것뿐이었다.
까드득!
“움직여!”
중혁의 목소리에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저계춘의 기형창을 그가 맨손으로 막은 후였다.
구촉비전의 기운을 끌어냈음에도 강철같은 그의 손이 찢기며 피가 흘러내렸다.
도저히 어제 봤던 그 와 동일인물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무력이었다.
“순순히 나가게 둘 순 없지.”
저계춘은 갈고리 모양의 창을 끌어당기며 중혁을 반대편으로 떨쳐 버렸다.
그리고 가까운 감옥 문을 열어 아이들을 밀어 넣었다.
그 틈에 도홍경이 뒤를 노렸지만 무형의 기운에 맞으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끼이이익-
저계춘은 쇠창살을 엿가락처럼 휘며 입구를 틀어막았다.
그리고 도홍경과 중혁을 번갈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오늘은 특식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