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257화
88장 흑점(黑店)(2)
점소이는 봉투를 건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고객님. 여기 있습니다. 읽어보시고 나면 부디…….”
“바로 처리하지.”
“감사합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방을 빠져나가며 문을 닫았다.
진백천이 정보를 받을 때는 상관없었지만, 원래대로라면 하오문의 정보를 사더라도 그 자리에서만 읽고 폐기하는 것인 규칙이었다.
“흐음. 생각보다 규모가 상당한데?”
흑점이라고 해서 작은 가게 하나 정도를 꾸리는 놈들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서신에 적힌 것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소주에 위치한 동월루. 거대한 장원을 소유했으며 평소에는 평범하게 영업을 함. 인육은 아주 소수의 고객만 상대하고 있으며 그 고객 중에는 고관대작을 비롯해 상당히 뛰어난 무인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짐. 주로 소속이 없는 길거리 거지들을 노림.]
“동월루라. 대놓고 장사하는 놈들이네.”
더구나 힘 있는 것들과 붙어먹으니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다.
서신을 함께 읽어나가는 중혁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갔다.
[겉으로만 보면 거지들과 노숙자들을 위한 자선사업을 활발하게 하는 중. 동월루의 주인은 저계춘으로 십대악인 중 인육귀(人肉鬼)로 의심됨.]
갑자기 나온 십대악인이라는 말에 진백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육귀라고 하면 얼마 전 악살신괴(惡殺神魁)에 죽은 식괴라는 놈과 비슷했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인육귀는 그 무공의 실력이 훨씬 더 뛰어났다.
‘이런 곳에서 십대악인을 또 마주치다니.’
지금까지 마주친 놈들은 도광귀를 제외하면 전부 진백천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죽임을 당할 만한 놈들이기도 했다.
“흐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도홍경이 평소와 다르게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단순한 흑점이 아니었다.
십대악인일지도 모른다는 것은 그렇다 치고 이놈을 잡는다는 것은 그 뒤에 있을 관군과 무인들도 함께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이상 꽤나 힘든 싸움이 되겠지.’
진백천은 서신을 다 읽자 한 손에 들어 올렸다.
화르륵-
곧 스스로 불이 붙으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오히려 더 정체를 감춰야 하기에 재밌는 싸움이 될지도 몰랐다.
하오문이 알고 있는 그의 신분은 무명악인 권진.
권진의 이름으로는 어떤 짓을 해도 상관이 없었다.
“형님. 가만두실 생각은 아니시죠?”
“그렇게 보고 아직도 나를 모르냐?”
진백천은 주변에 기막을 치며 혹시 모를 조금의 소리도 빠져나가지 않게 만들었다.
“우선 내일 동월루인가 뭔가부터 들려서 둘러보자. 그리고 확실해지면 바로 줘패버리자고.”
“좋습니다. 형님.”
하오문이 듣기에는 서운할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정보만 믿고 움직이기에는 불확실성이 컸다.
더구나 놈들의 배후에 있다는 자들도 파악해두는 편이 좋았다.
그날 밤.
일찍 잠이 든 도홍경과 달리 중혁은 조심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들을 잡아 식육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쉽사리 잠을 잘 수 없었다.
눈을 감으면 자신과 함께 생활했던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후우. 잠시만 둘러보고 오자.’
그는 조심스럽게 창밖으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그가 나간 뒤 진백천이 언제 잤냐는 듯이 눈을 떴다.
이미 아까 전의 표정 변화만 보고서도 그가 가만있지 않을 것쯤은 알아차렸다.
어차피 말린다고 해봤자 갈 것이 뻔했기에 굳이 말을 꺼내진 않았다.
“잠시 갔다 올 테니까 짐 잘 지켜.”
“네. 형님.”
역시나 도홍경도 언제 코를 골았냐는 듯이 눈을 뜨며 대답했다.
진백천은 중혁이 사라진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밤하늘에 희끗하는 점 하나가 생겨나며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 * *
중혁은 빠르게 밤거리를 나아갔다.
어차피 밤이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리는 밝았고 시끌벅적했다.
‘회주님의 말대로야.’
술에 취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낮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 이들 사이에서 중혁은 능숙하게 골목길로 들어섰다.
그 또한 길거리의 거지로 오래 생활을 하며 그들이 어디에 모여 있는지 쯤은 잘 알았다.
‘저기다.’
사람들의 시선에 잘 띄지 않는 곳.
구석진 골목에 어린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그들은 배 나온 중년 남자가 건네주는 음식을 받아 허겁지겁 먹는 중이었다.
‘저자는 누구지?’
중혁은 기척을 감추며 중년 남자를 관찰했다.
돼지를 닮은 남자는 웃음을 감추지 않고 아이들을 살폈다.
그자의 시선이 왠지 소름 끼쳤다.
“자자. 이번에는 누가 나와 함께 갈 테냐?”
아이들은 음식을 받아먹으면서도 그의 눈길을 피했다.
그들은 분명 남자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내가 정해줘야 한다는 거구나. 알았다.”
남자는 얼굴만큼이나 퉁퉁한 손가락으로 아이들을 훑었다.
그러다 이내 멀찍이 떨어져 있는 여자아이를 가리켰다.
“좋다. 너다.”
“……저, 저요?”
“그래. 이리 와라.”
남자가 가볍게 손바닥을 펼치자 여자아이가 무형의 힘에 이끌려왔다.
“자, 잠시만요. 저는 아직 어리고요. 말랐…… 아악!”
“시끄럽다. 그저 나와 같이 가면 되는 거다.”
아이의 말은 듣지도 않고 짐짝처럼 들어 올렸다.
절망한 아이와 달리 주변에 있던 애들은 안도하며 남자가 가져온 음식에 집중했다.
‘……지옥이구나.’
중혁은 더는 참지 못하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멈춰라!”
남자는 갑자기 튀어나온 중혁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놈은 누구지? 거지는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아이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지?”
“그건 네놈이 알 바 아니다. 썩 비켜라.”
중혁은 숨을 내뱉으며 기수식을 취했다.
소림삼십육권(少林三十六拳)의 자세였다.
그것을 보고 남자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 어디서 꼴에 무관이라도 다녔던 모양이구나! 크게 혼나고 싶지 않으면 끼어들지 말 거라!”
“당신이야말로. 혼나기 싫으면 아이를 내려놓지?”
중혁의 두 눈이 점점 붉게 물들었다.
“쯧.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군.”
남자는 아이를 내려놓으며 커다란 손바닥을 휘둘렀다.
어마어마한 거력이 담긴 공격이었지만 중혁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깟 느린 동작으로는 내 머리털 하나 뽑기 힘들다!’
단숨에 남자의 품 안쪽으로 파고 들어가며 명치를 비롯해 옆구리에 주먹을 쑤셔 넣었다.
두꺼운 비계 덩어리가 거칠게 출렁거렸다.
“이노옴!”
지방이 충격을 흡수했는지 남자는 딱히 충격을 받은 얼굴이 아니었다.
중혁은 당황하지 않고 양손을 피하며 재차 주먹을 뻗었다.
조금 전의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면 이번에는 조금 더 빠르고, 강하게 공격하면 그만이었다.
퍼억!
중혁의 두 눈이 조금 더 붉어진다 싶더니 팔꿈치까지 주먹이 배를 파고들었다 빠져나왔다.
“커헉!”
이번에는 효과가 있었다.
몇 대 더 맞자 남자는 허겁지겁 뒤로 물러났다.
“허억! 내, 내가 잘못했다!”
남자는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가진 실력에 비하면 무척이나 담이 작은 놈이었다.
“후우. 괜찮아?”
중혁은 아이를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감, 감사합니다.”
아이는 백지장처럼 질린 얼굴로 대답하며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아이의 시선이 닿은 곳은 방금까지 자신이 먹던 감자였다.
“…….”
중혁은 그 모습을 보며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아이들 사이에서 중혁의 또래로 보이는 아이가 걸어 나왔다.
어딘지 불만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야! 너 뭔데 끼어들어?”
“끼어들다니?”
“동파육을 쫓아냈으니 다음에는 안 올지도 모른다고! 네놈 때문에 여기 있는 애들이 전부 굶으면 책임질 거야?”
중혁은 그 비난에 순간 당황했다.
“잠깐. 방금 아이를 납치하려던 것을 못 본 거냐?”
“봤지! 하지만 그 한 명으로 굶주리던 아이들이 전부 배를 채울 수 있다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곳에 있는 아이들 전부 그걸 각오하고 모인 거다!”
중혁은 아이들을 둘러보며 암담해졌다.
설마 했지만 그 말이 사실인 듯 보였다.
하나같이 피골이 상접하고 아픈 아이들이었다.
“너같이 부모 잘 만나고 잘 사는 놈은 우리 같은 아이들의 사정을 모른다고!”
아이는 어딘가 적의에 휩싸인 눈으로 중혁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어깨를 강하게 밀쳤다.
“그러니 당장 우리 골목에서 꺼져!”
빼빼 마른 몸으로 단련된 중혁을 밀쳐낼 수 있을 리 없었다.
뒤로 나자빠진 것은 오히려 그 아이였다.
“잠깐. 도움이 필요하다면 내가 도와주겠다.”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돈이라도 있나 보지?”
중혁은 품속에서 집히는 대로 은자를 전부 꺼냈다.
정도회를 나올 때 약왕당주가 주었던 것이었다.
그는 한 푼도 남김없이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이거라면 당분간 그 돼지 같은 자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거다.”
“그 당분간이 지나면 우리는 또 굶어가겠지. 추위에 떨면서 말이야.”
중혁은 자신이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어린 여자아이의 몸을 감쌌다.
“내가 도와주겠다.”
“말뿐인 동정이라면 지긋지긋하니까 꺼져. 네놈 같은 도련님이 우리를 돕겠다고 괜히 나서서 희망 고문이나 하지 말고.”
아이가 이렇게까지 경계하는 이유는 중혁도 충분히 잘 알았다.
‘희망과 절망을 여러 차례 당해본 거야. 그러니까 이렇게까지…….’
그렇기에 중혁은 더더욱 그들을 두고 떠날 수 없었다.
“걱정 마라. 나는 떠나지 않아. 나를 믿어라.”
“못 믿는다니까!”
아이가 집어던진 감자가 중혁의 얼굴에 맞고 떨어졌다.
순식간에 더러워졌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에 길거리를 떠돌 때가 떠오르며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아까운 음식을 던지다니 아직 거지로써 너무 안일한 거 아니냐?”
중혁은 바닥에 떨어진 감자를 집어 입가로 가져갔다.
모래가 함께 씹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래 봬도 길거리 생활이라면 지긋지긋하게 해봤다. 그러니 한 번만 더 믿어봐라.”
“…….”
* * *
‘호오. 중혁이 녀석 제법인데?’
골목길 위.
건물의 위에서 진백천은 아이들의 모습을 전부 지켜보는 중이었다.
평소 말없이 묵묵히 있던 중혁이라 어떻게 할지 궁금했는데 제법 아이들을 휘어잡는 여유가 있었다.
‘돕겠다는 말. 진심인가 보군.’
하지만 중혁 혼자서는 저들을 전부 책임질 수는 없었다.
거지들을 돕는 일은 말 그대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었다.
아직 어린 중혁이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어른인 내가 이대로 지켜볼 수는 없겠지?’
동월루의 일이 해결되고 나서 정도회의 이름으로 자선사업을 시작하면 적어도 굶주리는 아이들은 사라질 터였다.
‘그건 그렇고 그놈은 왜 실력을 감췄지?’
진백천이 말하는 놈은 아이를 데려가려던 돼지였다.
아이들이 동파육이라고 부른 그놈은 중혁을 능히 상대할 실력이 있었다.
중혁은 몰라도 진백천은 그것을 명확히 꿰뚫어 봤다.
‘뭔가 이유가 있었겠지.’
이런 더러운 골목길 안에서 아이들의 시선조차 눈치를 봐야 할 이유는 많지 않았다.
그 후로 진백천은 아무렇지 않게 일천루에 돌아왔다.
잠시 후 윗옷 없는 중혁도 돌아왔다.
“이제 왔냐?”
“……회주님?”
“거참. 회주님말고 형님이라고 하라니까.”
중혁은 깨어 있는 진백천을 보고 제법 놀란 듯했다.
그리고 이내 어디를 다녀왔는지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아이들 도와주고 싶지?”
중혁은 단도직입적인 진백천의 물음에 잠시 침묵을 지켰다.
“솔직히 말하지. 나한테는 그 아이들을 도와주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야. 다만 모든 일에는 대가가 필요해. 그렇지 않으면 그 아이들이 지금껏 받았을 희망 고문이 되어버릴 확률이 높으니까.”
자선사업도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돈을 쥐여주는 것보다 돈을 대가로 일을 시키는 편이 더 결과가 좋았다.
대가 없이 취하는 돈이나 물건을 허투루 사라졌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도와주면 너나 아이들이 무슨 대가를 치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