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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256화 (256/346)

무림회귀백서 256화

88장 흑점(黑店)(1)

진백천은 일행과 함께 강소성으로 향했다.

꽤나 깐깐했던 들어올 때와 달리 안휘성을 빠져나가는 동안 별다른 일은 없었다.

대충 호패를 확인하고 내보내는 게 전부였다.

“생각보다 너무 간단하니까 허무한데?”

“그러게 말입니다.”

안휘성에서 특별히 중혁의 호패를 만들기까지 했다.

하지만 딱히 보일 일도 없자 그도 내심 아쉬운 모양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강소성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크흠 문제 일으키지 말고 다니게!”

수위는 그 말을 끝으로 그들을 안으로 들여보내 줬다.

그도 그럴 것이 강소성의 유동인구는 워낙 많았다.

관군들이라고 해도 겨우 여행자들까지 붙잡아서 이것저것 확인할 수는 없었다.

“후우. 확실히 사람이 많긴 하네.”

짐을 잔뜩 실은 마차들이 성문 뒤로 줄지어 이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강소성은 동쪽으로 서해, 서쪽으로는 안휘, 북쪽으로는 상동, 동남 쪽으로 절강과 인접한 구역이었다.

안휘성이 통제되다 보니 그 옆의 강소성으로 상단이 더욱 몰렸다.

“형님. 강소성하면 소주 아닙니까?”

“그렇지.”

마시는 소주가 아니었다.

강소성은 장강 하류에 있기 때문에 넓은 평원지대에 강이 곳곳까지 뻗어 있었다.

그런 지류 중 하나가 만들어낸 것이 강호 절경 중 하나인 호수 태호(太湖)였다.

소주(蘇州)는 그 호수에 접해 있는 도시였다.

그곳이 유명한 이유는 흔히 말해 밤에 들지 않는 도시, 밤새도록 환락과 유흥이 끊기지 않기 때문이었다.

“유명한 문파 하나 없이도 강소성이 유명해진 이유기도 하고 말이지.”

기회가 된다면 며칠 더 머물고 싶었지만 지금은 한가롭게 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단지 여독을 하루 정도 풀고 걸음을 서둘러야 했다.

“중혁아 괜히 시선 팔려서 길 잃지 마.”

“네. 알겠습니다.”

진백천이 우스갯소리로 말했지만 꼭 장난만은 아니었다.

객잔과 기루로 줄지어 이어진 거리는 마치 미로 같았다.

얼핏 보면 그곳이 그곳 같았고 대낮부터 술에 취한 사람들부터 거지들까지 인산인해였다.

거기에 자신의 기루로 끌어들이려는 자들까지 모이니 정신이 없었다.

“공자님! 저희 가게로 오시죠! 음식이 아주 맛있습니다!”

“화루에 뭐가 볼 게 있다고! 저희 지객루에 오시죠! 유명 숙수가 직접 요리를 합니다!”

진백천은 그런 호객꾼들을 밀치며 그중에 제일 크고 고급스러운 객잔에 들어섰다.

1층부터 앉아 있는 사람들로 가득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환영합니다! 강소 제일 객잔 일천루(一天樓)입니다!”

“방 있나?”

“가장 작은 방은 없고 제법 큰 방만 남아 있습니다만…….”

점소이는 슬쩍 진백천의 옷차림을 살피며 말했다.

돈이 많이 드는데 괜찮겠냐는 시선이었다.

진백천은 품속에서 금자 하나를 꺼내 튕겼다.

점소이는 먹이를 발견한 고양이처럼 반사적으로 손을 뻗으며 금자를 집었다.

“공자님들! 이품향(二品香)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점소이는 한층 더 짙어진 영업용 미소를 띤 채 계단으로 안내했다.

그들이 올라간 곳은 5층이었다.

일천루는 특이하게도 각층에 이름을 붙이는데 가장 높은 곳이 특품향, 그 아래로 일품향부터 사품향까지 있었다.

일 층과 이 층에는 숙박을 하지 않는 이들이기 때문에 굳이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일품향하고 특품향은 다른 점이 있나?”

“그곳은 미리 예약을 하는 손님들이 주로 사용하십니다.”

“그렇군.”

이품향이라고 하나 진백천이 들어선 곳도 화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부드러운 비단으로 치장된 커다란 침상은 무척이나 깨끗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방 한가운데에 인위적으로 만든 계곡이 졸졸거리며 물이 흘러내렸다.

점소이가 기다란 창문을 열자 멀리 태호가 한눈에 들어왔다.

“호오. 풍경 한번 끝내주는군!”

도홍경과 중혁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놀라워하자 점소이가 만족스러워했다.

“식사는 여기서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내려가시겠습니까?”

“내려가서 먹지.”

“네. 그럼 바로 준비하고 모시겠습니다!”

점소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잠시 기다렸다.

도홍경과 중혁이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지만 진백천은 은자를 꺼내 재차 손가락으로 튕겼다.

“감사합니다! 손님!”

이번에도 빠른 움직임으로 낚아챈 점소이는 더 짙어진 웃음을 지으며 물러났다.

“허허. 저 점소이 무공을 익힌 게 맞죠? 그렇지 않고서야 보지도 않고 은자를 낚아챌 리 없잖아요.”

“이렇게 큰 객잔은 대부분 흑도방파가 운영하니까 당연한 거지.”

“흑도방파요? 그렇다면 설마?”

“맞아. 하오문이 하는 곳일 거야.”

진백천은 일천루의 입구에 새겨진 문양을 보고 한눈에 알아봤다.

굳이 의뢰할 것이 없다고 하지만 이곳에 들어온 이유는 배후가 하오문인 만큼 깔끔했기 때문이었다.

괜한 곳에 들어갔다가는 짐을 털리거나 시비가 붙기 마련이었다.

“하긴. 하루 숙박 금자 1냥에 평범한 곳일 리 없지.”

도홍경은 진백천과 함께가 아니면 언제 이런 곳에 와보겠냐며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그리고 점소이의 안내에 2층으로 내려갔을 때 식탁 위에 펼쳐진 음식들을 보며 입을 떡하니 벌렸다.

육해공을 가리지 않는 음식들에 간편히 곁들일 수 있는 술도 함께였다.

“공자님들 좋은 시간 되십시오!”

혹시라도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불러달라는 말과 함께 점소이가 물러났다.

2층은 1층과 달리 중앙이 뻥 뚫린 구조였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1층에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듯한 느낌으로 음식을 먹고 즐길 수 있었다.

1층에 있는 이들과 다르다는 허영심을 은은히 자극하는 배치였다.

‘우리한테 딱히 허영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형님! 이 오리고기 좀 드셔보시죠! 껍질이 바삭하니 술안주로 최고입니다!”

“……이 돼지고기 볶음도 맛있습니다!”

도홍경과 중혁은 쉴 틈 없이 입에 밀어 넣으며 감탄했다.

누가 보면 난생 처음 먹어보는 줄 알 터였다.

‘아니다. 중혁은 처음이려나?’

평생을 길거리 거지로 살다가 사혈방에 납치되었다.

아무래도 이런 고급 객잔은 와본 적 없을 터였다.

‘마화린 그 새끼가 그렇게 신경 써줬을 리 없고 말이지.’

진백천은 뿌듯한 얼굴로 그들을 내려보다가 1층의 떠드는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였다.

그가 2층으로 온 것은 괜한 게 아니었다.

사람들이 왁자지껄한 객잔 만큼 정보를 얻기에 좋은 곳이 없었다.

더구나 2층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되니 더욱 편했다.

“이번 안휘성의 이야기 들었나? 황군이 들이닥쳐서 쑥대밭이 되었다더군! 성주의 아들이 마교와 결탁한 모양이야!”

“허허. 어쩐지 얼마 전부터 이상하다더니!”

역시나 안휘성에 대한 소문은 빠지게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떠드는 것에는 정도회에 관한 것도 적지 않았다.

“정도회에서 또다시 사람들을 모집한다더군! 이번에는 운룡상단의 쟁자수와 표사들이라던데?”

“운룡상단이라. 하긴 요즘 거기만큼 대우가 좋은 곳도 없지. 천하 3대 상단도 전부 옛말이야. 요즘에는 황실상단이나 운룡상단 둘 중 하나라더군.”

“쯧. 그래도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 모르나? 정마대전이 끝나면 3대 상단도 곧 세를 되찾을걸세!”

의견이 분분했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당천아가 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운룡상단이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이름이 퍼져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아 참. 정도회의 진백천 회주가 폐관수련에 들어갔다더군!”

“내가 정도회 무인에게 듣기론 커다란 깨달음을 앞두고 있다고 하던데? 이번만 잘 해내면 마교의 교주도 단번에 베어낼 수 있을 거라고…….”

“예끼! 교주뿐이겠는가? 전설의 천마도 안 베어 넘기고는 못 배기지!”

도홍경과 중혁도 그 말을 들었는지 진백천을 올려다봤다.

어딘가 웃음기가 맴도는 표정이었지만 곧 헛기침을 터뜨리며 다시 음식을 먹어댔다.

“크흠! 형님 술맛이 좋습니다! 중혁아 너도 한잔 받아라.”

“네. 감사합니다.”

그밖에도 정도회에 관한 것은 대부분 긍정적인 것들이었다.

하지만 전부 다 좋은 이야기만 들리는 것은 아니었다.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집중하자 상대적으로 좋지 못한 것들이 들려왔다.

“이번에도 강가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더군.”

“시체?”

“살점도 전부 없어진 걸 보면 또다시 흑점(黑店)의 짓인 모양이야.”

‘흑점이라고?’

흑점은 가게로 위장한 강도 소굴이었다.

주로 음식에 약을 타서 사람들을 쓰러뜨리고 물건을 강탈하는 짓을 많이 했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흑점은 조금 더 악독한 부류였다.

‘식인(喰人)인가?’

살점이 발려지고 버려진 것을 보면 대충 짐작이 갔다.

‘사회가 혼란스러워질수록 그런 놈들이 더더욱 판을 치기 마련이지.’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그런 놈들을 일일이 전부 잡아내기에는 무리란 사실이었다.

계속해서 모습을 감추고 나타나길 반복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더 진행될수록 점점 의아해졌다.

“그나저나 관군은 이번에도 덮고 넘어갈 생각인가?”

‘이번에도 덮고 넘어간다고?’

무려 살인에 식인이었다.

보통은 잡지 못하더라도 끈질기게 수사를 하며 물고 늘어졌다.

그렇기에 흑점이 모습을 감추었다.

“그렇겠지. 죽은 아이들이 거지들 아닌가? 요즘 들어 거지들이 많아지다 보니 대충 쉬쉬하며 넘어가는 모양이야.”

“아니. 그렇다고 해도 그게 말이나 되는가?”

이야기를 중혁도 들었는지 들어 올렸던 음식을 내려놓았다.

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은 상태였다.

길거리 거지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회주님. 방금 그 이야기…….”

“응. 들었어.”

“저희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없겠습니까?”

“글쎄. 우리가 이곳에 오래 머물지 않을 것쯤은 알지?”

중혁은 어두워진 낯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겨우 하루 머물고 당장 내일 움직일 그들이었다.

더구나 신분을 숨기고 있는 지금 직접 나서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쯧. 그렇다고 해도 그냥 가버리면 마음에 남겠지.’

중혁에게도 자신에게도.

진백천은 곧바로 찻잔의 물을 전부 다 마시고 빈 그릇 위에 거꾸로 올려놨다.

그리고 그것을 본 점소이의 표정이 바뀌며 고개를 숙였다.

-……방으로 모셔서 이야기 나눠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이지.

그들은 식사를 마치고 다시 5층의 방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아까 전과 달리 다시 일행은 하나같이 딱딱하게 굳은 기색이었다.

-형님. 방 안에 무인들이 숨어 있습니다.

-알아. 우선은 가만히 지켜봐.

진백천이 자리에 앉자 점소이와 또 다른 남자가 함께 들어섰다.

“반갑습니다. 고객님. 저희에게 의뢰하실 게 있으시다고?”

전의 그를 드러내고 의뢰를 할 때와는 무척이나 다른 태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진백천은 하오문의 막역지우였고 지금의 이 모습은 무명악인 권진이었다.

이들이 어디까지 파악했을지 몰라도 안다고 하면 결코 좋은 대우를 바랄 순 없었다.

“최근 발견되는 사체가 흑점하고 관련되어 있다고 하던데.”

“그런데요?”

진백천이 떠보는 질문에도 남자는 표정이 변화가 없었다.

“그들에 대해 자세히 조사해 줬으면 해서.”

“조사는 어디까지……?”

“놈들의 정체, 규모, 위치 전부다.”

“그렇다면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합니다. 정보비 은자 100냥에 의뢰비까지 해서 은자 500냥입니다.”

금자로 따지면 25냥.

진백천이 단순 의뢰할 때와는 확연히 다른 가격이었다.

하지만 그는 돈보다 시간이 아까운 사람이기에 아낌없이 금자를 건넸다.

“최대한 빨리.”

그리고 거기에 추가적으로 금자 1냥을 더 얹자 남자의 고개가 한치 더 숙였다.

“오늘 저녁 안으로 받아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무명악인.”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밖으로 빠져나갔다.

방 안에 있던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허허. 형님에 대해 알고 있었네요. 그러면 나에 대해서도 아는 건가?”

“산적 정도로 알고 있지 않겠습니까?”

“나를? 왜?”

도홍경의 물음에 중혁은 급히 입을 다물었다.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나온 말이었다.

그는 재빨리 진백천에게 고개를 숙이며 신경 써준 것에 대해 감사해 했다.

이번에 쓴 돈도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벌써부터 너무 고마워하지 마. 대체 어떤 놈들 짓인지 하오문의 자료를 보고 판단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하오문 남자의 말처럼 저녁이 되기 전 점소이가 두툼한 봉투를 가지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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