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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255화 (255/346)

무림회귀백서 255화

87장 무명악인을 쫓는 자들

악살신괴는 그 눈빛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을 버린 이였다.

“이제 와 후회하는 건가?”

그의 어머니인 연유화는 남궁세가를 용서하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스스로 악살신괴가 된 이유도 남궁천과 같은 악인을 모조리 베어내기 위해서였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후회했다. 용서를 빌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를 치를 생각도 했으니까. 그러니까 말해다오.”

“추잡하군.”

그의 뒤틀린 입매에서는 좋지 못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런 모습을 보기 위해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가 평생 생각해 왔던 남궁천은 뻔뻔하고 자신만 아는 이였다.

아내와 핏줄마저 매정하게 저버린.

하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자는 악인이 아니었다.

“……가주님! 왜 그러십니까!”

“일어서십시오!”

당황한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일으켜 세우려 해도 손을 뿌리치며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평생을 갈고 닦아왔을 검마저 내팽개쳤다.

악살신괴는 그런 남궁천을 내려다보며 씹어먹듯 말했다.

“연유화는 평생을 기다리다 죽었다. 뒤늦게라도 당신이 찾아올까 희망을 놓지 않았지.”

“……다 내 잘못이다. 내 잘못이야.”

그는 꿇어앉은 채 악살신괴에게 잘못을 고했다.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일으켜 세우려 해도 뿌리치는 남궁천을 황망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악살신괴는 차마 머리 숙인 그에게 검을 휘두르지 못했다.

‘그는 악인이 아니야. 단지 멍청한 인간일 뿐이지.’

애써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검을 집어넣었다.

돌아나가는 그를 붙잡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가주전을 빠져나가던 악살신괴는 문득 자리에 멈춰 서서 인사처럼 남궁천을 향해 말을 남겼다.

“운남성 사모(思茅). 그곳의 오래된 은행나무 밑에 무덤이 있다.”

그 말을 끝으로 악살신괴의 신형은 사라졌다.

그가 말한 무덤의 주인은 그의 어머니이자 남궁천이 평생을 그리워하던 연유화.

살면서 평생을 그리워했던 남자이니 찾아가면 싫어하진 않을 터였다.

‘무뚝뚝한 나보다야 낫겠지.’

사라졌던 그의 신형이 천중산의 언덕에서 다시 나타났다.

소란스러운 남궁세가를 내려다보는 악살신괴의 눈은 어딘가 후련해 보였다.

“연 공자님. 가셨던 일은 잘 마무리되셨습니까?”

“그럭저럭. 황노도 전부 지켜봤을 거 아니야?”

“끌끌. 천리안으로 보는 것은 영 실감이 나지 않아서 말입니다.”

황노는 구중천(九重天)의 연가문의 사람으로서 어릴 때부터 연룡을 보살펴왔던 자였다.

남궁천은 몰랐겠지만 연유화 또한 평범치 않았던 인물이었다.

비록 그녀의 인생이 남궁천으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말이다.

“이제 가문으로 복귀하시렵니까?”

“복귀는 무슨. 연 가문에서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어릴 때는 사생아 따위라고 무시할 땐 언제고.

제법 이름을 얻고 무공 성취가 좋아지니 끌어들이려 난리였다.

“그렇게 싸고돌던 연 가문의 X신들이나 챙기라 그러지?”

“그 X신들도 이제 연룡님만 바라보는 실정입니다. 제 분수를 안 거죠.”

연룡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래도 아직은 돌아갈 때가 아니야. 이왕 악살신괴로써 마지막 악인은 붙잡고 들어가야지.”

“흐음. 무명악인 권진, 그자 말이시죠?”

만약 진백천이 들었다면 갑자기 튀어나온 자신의 이름에 화들짝 놀랐을 터였다.

그만큼 뜬금없었다.

“무림대회에서 보인 모습만 봐도 그렇고, 황노가 말한 바에 따르면 이번 안휘성 사태에서도 그자가 끼어 있다며?”

“맞습니다. 옥무기와 함께 움직이는 듯했습니다. 건방지게도 공자님의 신분을 도용해서 말입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황노가 이미 충분히 알아봤다.

대체 어떻게 그것에 대해 알아내고 서신을 중간에 낚아챘는지 몰라도 평범한 놈은 아니었다.

“황노조차도 뒤를 모르는 놈이니 분명 거대한 배후가 있을 게 분명해.”

“마교와 관련된 자일수도 있습니다.”

“환야루의 기생들을 베었어. 마교는 아닐 거야.”

그렇기에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의 이름, 소속, 무공, 배후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악살신괴로써 마지막 잡아넣을 악인으로는 제법 괜찮은 놈이지.”

“흐음. 그렇다면 제가 뒤를 쫓겠습니다.”

황노는 진백천과 마찬가지로 상단전의 무공을 사용하는 자.

인물을 추적하는데 있어서는 그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곧 악살신괴의 신형이 언덕에서 사라지며 어디론가 향했다.

진백천의 일행이 사라진 방향이었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흐음. 이건 또 무슨 꼴이지?”

살왕은 지금 막 안휘성에 들어선 상태였다.

그리고 약속대로 철마방에 들어섰지만, 그가 만나야 할 환야루의 기생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은 관군들이었다.

“여기 철괴가 발견되었습니다!”

“저쪽에도 있습니다!”

관군들은 바쁘게 오다니며 마교와 결탁한 증거를 찾아냈다.

그들 앞에 서서 지휘하는 이들은 휘황찬란한 금빛의 갑옷에 형형한 눈빛을 뿌리는 금의위들이었다.

“고유빈 공주님의 말씀이 맞았군. 당장 옥무기를 비롯해 관련된 자들을 끌어내라!”

“잠, 잠깐! 나는 아니라고! 다 마교의 짓이라고 했잖아! 나는 사람들을 도왔어! 내 사재를 풀어서……!”

“닥쳐라! 네놈이 결탁했다는 증거는 이미 넘쳐난다! 그리고 일어난 성주가 이미 네놈의 짓을 전부 말했다!”

“……그럴 리가.”

성주를 꿈꿨던 옥무기는 관군들에게 붙잡혀 끌려갔고 모아놨던 재산을 전부 회수되었다.

살왕은 돌아가는 꼴을 보며 대충 상황을 짐작했다.

“쯧. 도움이 필요하다기에 왔더니 한심하기 그지없군!”

이럴 줄 알았으면 굳이 바쁘게 이리 오지 않아도 됐을 터였다.

추후 정도회를 친다는 말에 덜컥 받아들인 자신이 멍청이였다.

하지만 막상 돌아가려던 그는 멀지 않은 곳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홀린 듯 그곳으로 향했다.

동굴에 처박혀 숨어 있는 자들은 마교의 무인들이었다.

“……누구냐!”

“비켜라.”

살왕의 기운에 마인들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며 물러섰다.

곧 그는 안쪽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금마왕과 마주쳤다.

“호오. 이런 거물이 쥐새끼처럼 숨어 있다니 의외군.”

“……살왕인가?”

금마왕의 낯빛이 굳어졌다.

같은 마교에 속했지만 풍기는 결이 달랐다.

평소 금마왕을 비롯한 십만대산에 머무는 이들은 살왕을 인간 백정이라며 무시하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

“누구한테 당했길래 이런 X신 같은 꼴이지?”

살왕의 이죽거림에 금마왕이 창을 움켜쥐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금마금신공(金魔錦身功)의 기운이 피어오르며 동굴 안에서 은은한 바람이 불어왔다.

아직까지 심장의 부상이 완벽하게 나은 상태가 아니었기에 내력의 운용에 무리가 있었다.

“한판 붙어보자 이건가?”

“설마 내가 그러겠는가? 가뜩이나 패배만 하는 마교 안에서 그럴 수는 없겠지.”

어둠 속으로 뒷걸음질 치는 살왕의 두 눈이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대신 누가 심장에 그런 상처를 남겼는지 알려주면 순순히 물러나지.”

“알려주지 않는다면?”

“금마왕을 죽일 순 없으니 졸개들이 피를 봐야겠지.”

결국 말하지 않으면 부하들을 전부 죽이겠단 뜻이었다.

금마왕은 코웃음 치며 창을 바닥에 내리꽂으며 말했다.

“말해주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지. 무명악인 권진. 살왕보다 더 은밀한 암수를 쓰더군.”

“뭐?”

그의 붉어진 눈이 더더욱 살의로 달아올랐다.

다른 것은 몰라도 자신의 살인 기술에 대해 비교를 당하는 것은 참기 힘들었다.

금마왕은 그런 살왕을 비웃으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단지 노려보는 것만으로 내 심장을 찢어놨다.”

“웃기는군. 그놈이 심검이라도 썼다는 건가?”

살왕이 꿈에 바라지 않는 살인의 경지.

눈에 보이지 않으며 거리에 상관없이 적의 심장을 자유자재로 베어낸다.

그가 익힌 무공의 최종 도달점이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손에 닿지 않았다.

이제는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그럴지도.”

너무 쉽게 인정하는 금마왕의 목소리에 살왕의 눈이 꿈틀거렸다.

“안 그렇고 서야 내 단단한 몸뚱이를 피해갈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살왕의 시선이 재빠르게 그의 온몸을 살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붉은 눈동자는 마치 불경 속에서나 나오는 악귀와 다름없었다.

그 눈동자에 담긴 욕망이 커질수록 금마왕은 만족했다.

“……그렇군. 상처가 없어. 무명악인 권진이라.”

살왕은 짧은 인사조차 없이 동굴에서 사라졌다.

그만큼의 시간도 아깝다는 뜻이었다.

금마왕은 귀찮은 자를 떨쳐내었음에 안도했다.

‘지금 상황에서 놈과 맞부딪치면 상처 회복이 느려졌겠지.’

하지만 곧 무명악인 권진을 떠올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살왕이 그 뒤를 쫓기 시작했으니 아마도 오래 살아남긴 힘들 터였다.

‘혹시라도 그자에게서 살아남는다면 그만큼 건방졌던 것을 인정해 주지.’

* * *

호북 정도회(正道會).

진백천이 폐관수련에 들어가고 나서 분위기는 제법 뜨거웠다.

혈사가 있었던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무공 수련에 매진하는 그의 모습에 모두가 감명받은 것이다.

“나도 회주님을 본받아서 더 열심히 해야겠어.”

“언제 또 마교놈들이 쳐들어올지 모르니까 지금이라도 실력을 쌓아놔야지.”

더구나 마교에 원한을 가지고 있거나 싸우고 싶어 하는 자들이 몰려드니 신입 무사들은 계속해서 만원이었다.

정도회가 바빠질수록 상대적으로 장로들의 얼굴은 까맣게 죽어갔다.

“허허. 회주님과 황충 친위대장의 빈자리가 이렇게 클 줄이야.”

“전풍객 당주도 안 계시니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래도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더욱 열심히 해야 합니다.”

자금이라도 부족하면 불평이라도 할 텐데 진백천이 벌어놓은 돈으로 인해 써도 써도 모자람이 없을 지경이었다.

오죽하면 총관과 춘식이 승자 맞추기로 번 돈을 공개하자 놀라기보다 단지 기립박수를 칠 뿐이었다.

이제 그 아무도 약왕당주의 [진백천은 재신(財神)이다]설을 코웃음 치지 않았다.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겠군.”

“이쯤이면 정도회가 아니라 황금회라고 해도 어울리겠어.”

그리고 어차피 불과 5년만 지나면 다음 세대의 무인들이 정도회를 이끌어 나갈 터였다.

그들은 더더욱 이를 악물고 업무에 몰두했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정도회는 시간이 갈수록 세를 확장했다.

거기에 더해 당천아가 이끄는 운룡상단 또한 점점 큰 수익을 벌어들이기 시작했다.

“회주님의 말씀대로였어. 벌써부터 시중에 철이 동이 나다니.”

황실에서 금속을 통제하기 시작했다지만 그것만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누가 봐도 인위적일 정도로 빠르게 줄어들었다.

정도회의 정보기관인 관음당(觀音堂)에 따르면 곳곳에 모이는 물자들이 서장으로 빠져나가는 게 포착되었다.

“분명 마교일 테지.”

이러한 사항을 황실에 보고한 당천아는 당가의 상단과 황실의 상단과 함께 그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철을 비롯해 금속을 사들이는 자들을 막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물자를 쌓아놨다.

무시객주의 일을 하고 있는 정도회는 이미 10년 치의 금속을 쌓아놓은 지 오래였다.

아직까지는 무기가 부족하지 않기에 숟가락이나 솥 따위를 만들고 있지만,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야금장인들이 쉬지 않고 무기를 만들어낼 터였다.

“회주님이 폐관수련에서 돌아올 때 맞춰서 준비하면 되겠지.”

당천아는 진백천이 3개월의 시간을 잡고 폐관에 들어간 것이 전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의 오라버니인 당천기와 다르게 말이다.

“백천이 그렇게까지 생각을 했을까?”

“그럼 괜히 놀기 위해서 폐관에 들어갔단 말이에요?”

“크흠.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니고.”

당천기는 상단의 일을 도우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요즘에 들어서야 그나마 수련에 몰두했다.

그래도 무재였기에 슬슬 당가주의 비전도 물려받기 시작했다.

‘쯧. 내가 볼 때는 분명 백천이 순순히 수련을 위해서 폐관을 한 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당천기의 감은 의외로 정확했다.

그리고 그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이가 또 있었다.

바로 당소예였다.

그녀가 처음 그런 생각을 가진 것은 진백천의 방을 청소하면서였다.

“으음? 회주님이 웬일로 모타주를 놓고 가셨지?”

평소 무기보다도 더 꼭꼭 챙기고 다니셨기에 수련동에도 당연히 가져갈 거라 생각했다.

“이번 수련에는 정말 진심이신가 보네. 너무 무리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그런 생각도 정도회 인근에 나타났다는 수상한 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조금씩 의심의 싹이 생기기 시작했다.

기생과 사라졌다는 이들 중 하나는 분명히 도홍경이 분명했다.

산적 같은 외모에 말만 하면 모산파 어쩌구 저쩌구 해댔으니 그가 확실했다.

“나머지 하나는…… 그날 정도회에서 나갔다는 구척무인 중 하나일 테고.”

중혁은 아영과 상장이 정문에서 마주쳤었다.

마지막으로 그 의심에 불을 지핀 것은 바로 그 인근에서 발견된 붕대였다.

산길에서 누군가 풀어놓고 간 것을 수색하던 정도회 무사가 발견한 것이다.

당소예는 한눈에 그것이 진백천의 오른팔에 감겨 있던 붕대란 것을 알아봤다.

왜냐하면.

“……내가 마지막으로 갈아드렸던 붕대니까.”

붕대에서 은은히 풍기는 냄새는 자신이 묻혀놓은 금창약 냄새가 맞았다.

“내 의심이 맞다면 회주님은 분명히 딴 길로 샌 게 틀림없어!”

그것도 도홍경과 중혁이라는 아이만 데리고서였다.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수련동 안으로 쳐들어가고 싶지만 그렇게까지 무대포 정신은 없었다.

대신 확인해 볼 수 있는 방법은 또 있었다.

“아영아. 통통이 좀 잠깐 빌릴 수 있을까?”

“네.”

당소예는 통통이에게 붕대의 냄새를 맡게 했다.

킁킁-

-이건…… 돈 많은 주인의 냄샌데?

청서생인 통통이는 단번에 진백천의 냄새를 맡았다.

“통통아. 냄새의 주인을 찾을 수 있지?”

-당연하지!

당소예에게는 단순히 찍찍- 거리는 소리로밖에 안 들렸지만 통통이의 코는 수련동이 아닌 다른 곳을 향했다.

그날.

당소예는 외출을 신청하고 정도회를 빠져나왔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당천기를 비롯해 여러 무인과 함께였다.

“당 소저. 어디를 가려고 그렇게 급하게 나왔소?”

“집 나간, 아니, 나가신 탕아를 잡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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