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254화
86장 금마왕(金魔王)(2)
‘정확히 심장을 노린다.’
상단전이 점점 더 활짝 열릴수록 주변의 보이는 시야가 달라졌다.
단순히 눈으로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직접 보지 않는 주변의 풍경도 뇌리로 들어왔다.
멀찍이서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중혁을 비롯해 마인들과 싸우는 관군들 따위였다.
‘금마왕만 베어내면 상황 종료야.’
금마왕에게 집중하다 보니 서서히 그의 가죽과 근육 너머로 두근거리는 심장이 눈에 들어왔다.
생긴 것답게 크고 강한 심장이었다.
진백천은 의념상으로 날카로운 비수를 떠올렸다.
그의 미간 앞으로 바람이 일렁이며 비수가 만들어졌다.
“흐음. 뭐 하는 거지?”
무려 나무가 닿으면 시들고, 동물이 갇히며 피를 토하며 죽는 살기였다.
금마왕은 자신을 노려보는 진백천의 시선에서 불길함을 느꼈다.
하지만 상단전이 발전하지 못한 금마왕은 사자혁처럼 비수를 직접적으로 보지는 못했다.
“이놈! 내가 물었지 않느냐!”
금마왕은 여전히 멈춰서 있는 진백천을 향해 성난 짐승처럼 뛰어들었다.
그것은 분노라기보다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와 동시에 진백천의 미간 앞에서 만들어진 비수가 쏘아져 나왔다.
‘꿰뚫어라!’
달빛처럼 서늘하며 지독할 정도로 날카로운 비수였다.
비수는 그대로 금마왕의 두꺼운 근육을 통과하며 심장에 틀어박혔다.
흑미령의 등을 꿰뚫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허억!”
금마왕은 달려들던 그대로 몸을 움츠리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비수는 심장을 비롯해 주변의 기혈을 뒤틀며 난도질했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아니어도 진백천에게는 정확히 보였다.
‘후우. 이 정도로는 겨우 상처를 내는 게 전부인가? 과연 흑미령 따위와는 다르다 이거군.’
그런데도 심장이 조문이라는 화산신검의 말은 정확했는지 금마왕의 얼굴은 검게 죽어갔다.
놈은 피를 토해가면서도 진백천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쿨럭.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말하면 알고?”
진백천은 아쉬움이 가득한 눈으로 그를 살폈다.
방금 전력을 다한 호무살이 실패했으니 무승부였다.
검으로는 그의 몸에 상처를 줄 수 없고 금마왕도 더는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특별히 이번 한 번만 봐줄 테니까 썩 꺼지지?”
“뭐라?”
금마왕은 억지로 무릎을 움켜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핏발 선 눈으로 진백천을 노려봤다.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망가진 심장이 회복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 인정하지. 마지막 수는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대단했다. 하지만 네놈은 나를 이 자리에서 죽이지 못한 것을…….”
“시끄럽고. 슬슬 마무리되니까 우리도 좋게좋게 가자고.”
진백천은 손을 휘휘 저었다.
마인들은 관군들에 대부분 소탕이 되었고, 성주도 안전하게 확보된 상태였다.
금마왕은 입매를 비틀며 뒤로 물러났다.
재차 이름을 물으려던 그는 진백천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또 보도록 하지.”
“나는 싫은데.”
금마왕은 한결같은 건방짐에 실소마저 터뜨리며 자리를 벗어났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진백천의 눈동자에 진한 아쉬움이 어렸다.
“형님. 괜찮으세요?!”
지켜보고 있던 도홍경과 중혁이 다가왔다.
“응. 성주는?”
“관군들에게 넘겼어요.”
“그러면 이제 우리도 슬슬 빠지자.”
부끄럽지만 진백천은 도홍경의 부축을 받고서야 성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진즉에 빠져나간 줄 알았던 금마왕은 멀찍이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저놈의 정체가 뭔지 알려진 게 있나?”
“살아남은 화야루의 마인들에 따르면 무명악인 권진이라는 자라고 합니다.”
“무명악인?”
처음 들어보는 별호였다.
“그자에게 대해 샅샅이 조사해라.”
“존명(尊命).”
* * *
우물우물-
“하아. 제법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이렇게나 부족하다니.”
몸을 피한 진백천은 요상단을 과자처럼 씹어먹으며 중얼거렸다.
흑미량을 호무살로 꿰뚫었을 때만 해도 제법 자신이 있었는데 역시 오마(五魔)는 달랐다.
만약 조금이라도 자신이 부족했다면 죽임을 당하는 것은 자신이었을 것이다.
“회주님. 식사 가지고 왔습니다.”
중혁은 죽이 담긴 그릇을 탁자에 내려놨다.
현재 그들은 성에서 빠져나가자마자 마을의 외곽에 위치한 객잔에 숨어든 상태였다.
몸이 회복될 때까지는 꼼짝없이 이곳에 있어야 했다.
“도홍경은 아직이지?”
“네.”
도홍경은 객잔에 오자마자 진백천의 명령을 받고 남궁세가로 향했다.
남궁천에 대한 자료를 그들에게 전하기 위해서였다.
남궁세가의 경계가 심하다 하더라도 그의 은형술이면 서신 하나 두고 올 정도는 충분했다.
‘괜히 내가 나서기에는 골이 깊은 문제야. 그들이 알아서 행동하게 내버려 두자.’
그것이 진백천의 결정이었다.
그런데도 서신을 남궁세가에 두고 오려는 것은 그들이 조금이라도 그들의 양심을 믿어보기 위해서였다.
직접 죄를 묻지 않더라도 익명으로 그 서류를 두고 간다면 남궁세가에서도 생각이 깊어질 터였다.
‘가장 좋은 일은 남궁천이 직접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속죄하는 것이겠지.’
제3자인 진백천은 그 피해자가 어디 있는지조차 몰랐다.
만약 이것으로 악살신괴가 남궁세가를 찾아간다 해도 그는 신경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들이 잘못한 것은 맞으니까.’
진백천은 간조차 되지 않은 죽을 호호 불어가며 배를 채웠다.
기력을 채우려면 많이 먹어야 했다.
그리고 얼마 뒤 도홍경이 객잔에 도착했고 그들은 안휘성을 빠져나갔다.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쥐도 새도 모르게였다.
* * *
남궁세가(南宮世家) 천주산(天柱山).
장문인 남궁천의 속마음은 타들어 가는 듯했다.
얼마 전에 날아왔던 서편 탓이었다.
그곳에는 자신이 마음속 깊이 묻어두고 살았던 젊은 날의 과오에 대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는 담담한 문체로 한줄기 문장이 함께였다.
[피 값을 받으러 가겠다.]
남궁가의 사람들은 누군가의 짖궂은 장난이라 생각했지만 남궁천은 아니었다.
그 내용이 어떻든 그 문체는 자신이 아는 자의 것이 분명했다.
‘유화의 문체다.’
미혼약을 먹은 실수로 자신의 아이를 밴 여인.
남궁천은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책임지겠다고 말했지만 남궁가의 어른들은 아니었다.
남궁천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모녀는 어디론가 떠나 버린 이후였다.
추후 남궁가에서 암수를 썼다는 사실을 알아냈지만 어디로 갔는지 찾아낼 수 없었다.
“죽었다고 생각했거늘.”
그 후로 남궁천은 대외적인 일에서 모두 손을 떼버렸다.
그나마 마교와 같은 큰일에 대해서만 힘이 필요하면 나서기로 약조한 상태였다.
그리고 오늘.
그의 집무실에 또다시 서신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남궁세가를 제집처럼 드나들 정도의 뛰어난 신법을 가진 자였다.
서신을 펼쳐본 남궁천의 눈동자가 또 한 번 흔들렸다.
[나 남궁세가 무인 남궁천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연유화를 책임지겠다.]
증언서에 반쯤 물든 피는 자신의 것이었다.
남궁천은 맹세의 의미로 경동맥에서 한 치 앞까지 베어냈다.
그 흉터는 아직까지 목덜미에 남아 있었다.
“내가 쓴 것이 맞군.”
이것은 자신도 연유화도 아닌 관리가 가지고 있던 게 분명했다.
“나를 협박하려는 자가 옥무기였나?”
자신의 아버지인 성주를 쓰러뜨리고 대리로 권좌에 앉은 자였다.
그 뒤에 마교가 자리 잡고 있는 것쯤은 알았지만 아직까지 지켜보는 중이었다.
남궁천에게는 그까짓 것보다 연유화와 관련된 일이 더욱 컸으니까.
하지만 막상 이것이 연유화가 보낸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자 커다란 실망감이 몰려왔다.
“원망이라도 분노라도 그 얼굴을 직접 보고 받아내고 싶었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허울뿐인 자리 따위 다 내려놓고서라도 다시 그녀의 옆에 서고 싶었으니까.
그는 서신을 찢을 듯 꽈악 붙잡았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가주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
남궁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분간은 손님을 받지 말라고 말해둔 상황이었다.
그리고 어딘가 잘게 떨리는 시녀의 목소리도 그의 위화감을 자극했다.
문의 얇은 창호지 너머로 시녀와 함께 서 있는 남자의 그림자가 비쳤다.
어딘가 그림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날카로운 칼이 떠올랐다.
‘살수인가?’
그는 천천히 문가로 걸어갔다.
그럴수록 점점 땅이 울렁거리며 세상이 뒤틀리는 듯한 기시감이 들었다.
이러한 기운을 내뿜는 자는 당금 강호에 많지 않았다.
하지만 남궁천은 멈춰 서지 않았다.
촤아아아악!
사정거리에 들자 상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문이 순식간에 조각나며 검기가 뻗어왔다.
남궁천의 전신에서 자연스레 제왕검형(帝王劍形)의 기운이 솟구쳤다.
“어림없다!”
검기는 몸에 닿기도 전에 바스라지 듯 사라졌다.
하지만 상대는 그것이 단지 견제였을 뿐인지 상관하지 않으며 더욱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두 개의 검이 파공성조차 없이 남궁천의 급소를 노렸다.
하나같이 철저하게 살인을 위한 검이었다.
카앙!
남궁천의 검과 두 개의 검이 맞닿으며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곧바로 반격을 하려 했지만 남궁천은 순간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살수의 얼굴을 보니 도저히 검을 뻗을 수 없었다.
“너는 누구냐!”
“나에 대해 알 것 없다. 단지 당신의 죗값을 물으러 왔을 뿐.”
두 개의 쌍검은 옅은 빛무리를 흘리며 허공을 갈랐다.
남궁천조차 쉽게 보고 넘길 수 있는 검이 아니었다.
피잇-
목덜미 근처가 베어지며 핏물이 튀었다.
지독하게 날카롭고 집요한 검이었다.
남궁천은 이를 악다물며 다시 한번 제왕검형을 끌어올렸다.
이렇게 된 이상 우선 그를 제압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검을 휘두르려고 할 때마다 뭔가에 걸린 것처럼 몸이 움찔했다.
시간이 갈수록 상처가 늘어나는 것은 남궁천이었다.
“……너는 대체 누구지? 대답해라. 누구길래…… 유화의 얼굴을 하고…….”
“더러운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마라. 남궁천.”
육혼자화(戮魂赭花).
스걱!
남궁천은 다급하게 물러났지만 붉은 기운을 흩뿌리는 검이 그의 가슴을 베어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이었다.
“역시 너는 자화의 아들이군! 자화는 어디 있지? 나에게 복수를 하라고 했나? 대답해라!”
흥분해서 소리치는 남궁천과 달리 남자는 점점 더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나는 악살신괴다. 그저. 불쌍한 그녀의 넋을 받아 악인인 너를 베러 왔을 뿐이야.”
“악살신괴라. 그런 건가.”
남궁천은 그녀의 넋이란 말에 숨이 턱 막혔다.
죽었을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그 이야기를 직접 들으니 전신에 힘이 빠져나갔다.
악살신괴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검을 뻗었다.
목덜미를 향하는 검에도 남궁천은 멍하니 서 있었다.
카앙!
“가주님!”
악살신괴의 검을 튕겨낸 것은 뒤늦게 나타난 남궁가의 무인들이었다.
“이노옴!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당장 살수를 포위해라!”
악살신괴는 몰려드는 무인들을 보고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남궁천에게 집중하면 그뿐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어딘가 힘이 빠진듯한 모습으로 무인들을 물렸다.
“……유화의 마지막은 어땠지?”
그의 눈에 담긴 것은 지독한 회한과 그리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