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253화
86장 금마왕(金魔王)(1)
진백천은 그제서야 왜 그렇게 이자가 눈에 익었는지 떠올랐다.
자신과 직접 마주한 적은 없지만 이야기로 전해 들은 적만 있었다.
‘화신신검에게 베어 죽는 2마 중 하나였으니까.’
두꺼운 창을 휘두르는 만큼 금마왕의 능력은 단순했다.
금강석처럼 단단한 몸뚱이였다.
[금마금신공(金魔錦身功).]
익히는 방법이 어려운 무공은 아니었다.
단순히 그 과정을 견디지 못하면 죽을 만큼 악독할 뿐이었다.
끓는 물 속에서 30일, 타들어 가는 모래 속에서 30일, 녹아드는 독극물 속에서 30일을 버티면 되었다.
그 과정에서 근골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것은 당연했다.
‘살아남는 게 용한 거지.’
그래서 그런지 그는 자신의 무공에 자신감이 넘쳐났다.
소림의 금강불괴지신을 이룬다 하더라도 자신에게는 안 된다고 떠들고 다녔다.
그리고 그것이 거짓은 아닌 듯 수많은 강호의 명숙들이 그의 몸에 상처조차 내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보통의 외공과 달리 눈과 급소마저도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하지?’
추후 화산신검에게 듣기로는 약점이 될까 봐 남자의 성기조차 전부 떼어버린 상태였다고 했다.
오히려 그곳을 노리는 이들을 함정에 빠뜨리는 영악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런 금마왕조차도 화신신검의 검을 버티지 못하고 목이 잘렸다.
‘그런 금마왕이 도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진백천은 상단전을 열어 그자의 속마음을 들어보려 했지만 역시나 들리지 않았다.
“이놈! 왜 아무 말도 없느냐! 내 위명에 쫄기라도 한 것이냐!”
금마왕은 불쾌한 듯 그대로 창을 들어 올려 내리꽂았다.
진백천은 종마검을 뽑아 들며 창을 쳐냈다.
가벼운 동작과 달리 묵직한 내력이 검신으로 전해져왔다.
“호오. 어린놈치곤 내력이 제법이구나! 이름을 말하지 않으면 다음에는 심장을 꿰뚫겠다.”
“굳이 내 이름 따위 알아서 뭐하려고?”
“내가 죽인 놈의 이름 정도는 알아야 원수를 갚겠다 찾아와도 알지 않겠느냐? 크하하하하!”
진백천은 금마왕을 경계하며 밖에서 대기 중일 도홍경에게 전음을 날렸다.
쓰러진 성주를 두고 싸움을 벌일 수 없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고아라서 말이지.”
“쯧. 혓바닥이 짧다 싶더니 역시 그렇군.”
“거시기가 없는 것보단 낫잖아?”
진백천의 도발에 금마왕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그의 급소가 없다는 것은 마교 내에서도 아는 자가 극히 드물었다.
“네노오옴! 눈알을 뽑고 근골을 잘라주마!”
“그래 봤자 거시기가 없는 것보다 낫다니까.”
한껏 약 올린 진백천은 천장을 부수며 하늘 위로 튀어 올랐다.
금마왕은 그의 예상대로 성주 따위 내버려 두고 그의 뒤를 쫓아왔다.
금빛의 두 눈동자가 살기로 일렁였다.
회륜강(會輪强).
뻗는 창에서 강기가 회전하며 진백천의 뒤를 노렸다.
“전신이 갈기갈기 찢기고도 그딴 소리를 할 수 있는지 보자꾸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닥쳐라!”
콰앙!
검과 창이 맞부딪치며 진백천의 신형이 뒤편으로 튕겨 나갔다.
그렇다고 해도 그의 시선이 창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창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집요하게 살폈다.
그간의 많은 경험 탓인지 빠르게 초식을 분석했다.
‘잘하면 끊어낼 수 있겠는데?’
금마왕은 다시 한번 창을 들어 올리며 진백천을 향해 다가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백천도 물러서지 않았다.
“건방진!”
회륜강(會輪强).
방금과 똑같이 회전하는 강기의 초식이었다.
진백천은 이때다 하고 검을 뻗었다.
파초식(破招式).
바람처럼 뻗은 검이 창끝을 막아섰다.
하지만 오히려 금마왕의 얼굴에 살소가 진해졌다.
힘없어 보이는 검 따위가 자신의 창을 감히 막아낼 거라 생각조차 안 했다.
역시나 검은 창을 밀어내지 못했다.
“……!”
아니,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검은 창끝에 마치 달라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동시에 밀고 들어오는 파사(破邪)의 기운에 기겁했다.
그 기운은 창을 움직이는 내력을 뚝뚝 끊어놓았다.
“이게 무슨……!”
지금껏 꽤나 많은 검을 경험했지만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기이한 수였다.
분명 공격을 하고 있던 것은 금마왕이었건만 그의 초식이 파괴되며 반대편에서 진백천의 검이 뻗어왔다.
카앙!
검 끝은 정확히 그의 눈동자를 노렸다.
과연 불괴지신이란 말이 허언은 아닌지 얇은 점막과 부딪쳤음에도 무거운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뒤이어 진백천의 두 번째 공격이 이어졌다.
다른 손으로 휘두른 독고구검이었다.
까드득-
무엇이든 베어버리는 검답게 이번에 들린 소리는 조금 전과 달랐다.
아주 미세하지만 두 번의 공격을 허용한 각막에 실 같은 흠집이 생겨났다.
하지만 금마왕도 그냥 당하지만은 않았다.
눈이 베어지는 그 상황에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고 진백천을 덮치려 했다.
‘어림없지!’
혈수인(血髓印).
마화린의 기억을 흡수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무공이었다.
대신 그가 펼치던 것과 다르게 검붉은 색의 손바닥 모양의 장기가 금마왕을 밀어냈다.
역시나 혈수인이라고 해도 금마왕의 몸에 조그만 흠집도 내지 못했다.
“……혈수인?
뒤늦게 다시 쫓아오려 했지만 유령신법으로 멀찍이 떨어졌다.
신법만큼은 금마왕이 진백천을 쫓아오지 못했다.
“포달랍궁의 무공을 어찌 네놈이 알고 있는 거지?”
외부와 철저히 단절되어 있는 포달랍궁의 무공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더구나 그들의 성명절기나 다름없는 혈수인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붙잡아야 할 이유가 더 늘었군.”
-형님. 성주는 뒤편으로 옮겨놨습니다!
그때 멀리서 도홍경의 전음이 들려왔다.
그렇다면 더는 싸울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추후에 화산신검에 의해 베어질 놈이니까.’
그런 기색을 느꼈는지 금마왕이 전신의 기세를 더더욱 끌어올렸다.
흡천강(吸天强).
창에서 시작된 강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주변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구멍 뚫린 전각이 분해되듯 파괴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콰드드득!
“도망가지 못한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단순히 빨아들이는 것만은 아닌 듯 끈끈한 실 같은 기운이 진백천의 전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마인이 그 기운에 휩쓸리며 강기에 빨려 들어갔다.
“으으윽! 자, 잠깐! 저는 아닙니다!”
하지만 겨우 그 하나를 살리겠다고 초식을 멈출 리 없었다.
마인은 곧 창에 갈가리 찢기며 피 안개가 되어 사라졌다.
지칠 만도 했건만 금마왕의 강기는 점점 더 그 기세가 커졌다.
곧 일대에서 보일 만큼 하늘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나 하나 잡겠다고 이렇게까지 한다고?”
“걱정 마라. 그만큼 아주 천천히 고통을 주며 즐겨줄 테니까!”
금마왕은 점점 끌려오는 진백천을 보며 기뻐했다.
‘젠장. 화산신검이 금마왕을 어떻게 베었다고 했더라?’
분명 여러 차례나 이야기를 들었지만 딱히 관심이 없던 터라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
여러 번의 회귀에서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분명히 기억나는 것은 이런 금마왕이라도 약점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화산신검도 그의 약점을 파악해서 베어냈다고 했으니까.’
물론 화산신검처럼 일검에 금마왕을 베어낼 자신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맥없이 질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이래 봬도 산전수전 다 겪은 몸이라고!’
파강식(破彊式).
검에서 뻗어 나간 강기의 파도가 금마왕을 덮쳤다.
금마왕은 놀랍게도 제 자리에서 멈춰 서서 물러나지도 않았다.
드드드득!
몸이 거칠게 떨리는 와중에도 진백천을 정확하게 노려봤다.
우우우웅-
‘뭐지?’
그때 품속에서 뭔가가 거칠게 떨려왔다.
흑미령을 죽이고 얻었던 경각옥(警覺獄)이었다.
진백천은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며 호무살의 기운으로 기막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파강식의 강기를 찢으며 금마왕의 창이 뻗어왔다.
분암창(忿巖槍).
금빛의 강기는 그대로 기막을 깨뜨리며 진백천의 가슴팍에 꽂혔다.
“커헉!”
진백천은 끈 떨어진 연처럼 튕겨 나갔다.
순간 전신에 쩌릿하고 힘이 빠질 정도로 강력하고 빠른 일격이었다.
‘……기막으로 힘을 줄이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호연보의(護燃保衣)가 창을 막았지만 그 뒤로 전달 되는 충격까지 막아주는 것은 아니었다.
가슴뼈에 금이 갔는지 숨을 쉴 때마다 통증이 밀려왔다.
“제법이구나!”
반면에 파강식의 강기에서 빠져나온 금마왕은 상처 하나 없이 말짱했다.
그리고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재차 흡천강을 시전하면서 진백천을 끌어당기려 했다.
하지만 이미 그는 튕겨 나갔을 때 멀찍이 거리를 둔 상태였다.
그제서야 품속에서 울어대던 반지가 다시 잠잠해졌다.
‘이런 용도였다 이거지?’
진백천은 경강옥을 꺼내 손가락에 끼웠다.
확실히 평범한 물건은 아닌 듯 손끝으로 시원한 기운이 퍼졌다.
평범한 공격에는 반응하지 않는 듯 금마왕의 강기가 뻗어와도 얌전했다.
“생긴 거랑 똑같이 쥐새끼처럼 도망이나 가는구나!”
“어이쿠. 그쪽은 생긴 거 답지 않게 고자면서.”
“닥쳐라아!”
콰아아앙!
금마왕이 거칠게 달려들며 휘두른 일격에 바로 밑에 있던 전각이 무너졌다.
“말싸움으로는 상대도 안 되는 주제에 왜 자꾸 말을 거는 거야?”
어차피 아무리 도발을 하려 해도 금마왕이 가진 약점이 너무 커서 딱히 와 닿지도 않았다.
그리고 방금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물러서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순간 죽을뻔해서 그런지 몰라도 화산신검의 말이 떠올랐거든.’
금마왕의 약점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였다.
* * *
내공과 같이 외공(外功)에도 여러 종류가 존재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상피공(象皮功)이나 동갑공(銅甲功).
피부와 근육을 코끼리나 호랑이의 것처럼 질기다 못해 강철처럼 단단히 만드는 것으로 도검은 가볍게 튕겨냈다.
하지만 겉을 피해 안을 파괴하는 내가중수법에는 여지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내공이 약하기 때문이지.’
그 같은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외공이 바로 소림의 금종조(金鐘罩)나 철포삼이었다.
몸을 마치 쇠종처럼 단단하게 강화하며 내공이 흘러들어와도 충격을 밖으로 흘려보낼 수 있었다.
금마왕이 익힌 금마금신공(金魔錦身功)도 결국 이런 류의 외공에 불과했다.
‘그리고 외공에는 조문(罩門)이라는 게 존재하지.’
이것은 딱히 의도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전신이 강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약해지는 분위가 생기는데 그곳이 바로 조문이었다.
보통은 급소가 그러했지만 금마왕은 자신이 잘라버리며 그런 약점을 극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화산신검은 그와의 생사투를 통해 조문을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금마왕의 조문은 바로 그의 심장이다!
심장이 어떻게 조문이 되냐는 그의 질문에 화산신검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금마왕을 겉에서 베지 않았다. 단지 안에서 베었을 뿐이지!
몸의 겉을 아무리 단단하게 만들어도 속 안까지는 단련할 수 없었다.
화산신검은 그렇게 단 한수로 금마왕을 베어냈다.
그때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을 한 수였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심검(心劍)의 일종이었겠지.’
지금의 진백천은 도저히 흉내 낼 수조차 없는 한 수였다.
하지만 그에게 심검이 없어도 비슷한 수법은 존재했다.
‘호무살.’
진백천은 더는 생각할 것도 없이 활짝 열린 상단전에 내력을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