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회귀백서-249화 (249/346)

무림회귀백서 249화

85장 옥무기가 시켰어(1)

‘혈강옥불상(血腔玉佛狀)의 무공과 혈수인(血髓印).’

단순히 생각하면 구촉비전과 궁합이 좋은 두 무공이었다.

물론 그중에 혈강옥불상의 무공은 그 특유의 사특한 기운으로 인해 좋지 못했다.

그렇다면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혈수인이었다.

‘애초에 마교의 무공도 아니고 익혀서 나쁠 것은 없지.’

원래 혈수인은 천하 무공 중 순위에 드는 포달랍궁의 무공이었다.

그 특유의 붉은 손바닥 모양의 강기 또한 부처의 손바닥을 뜻했다.

생각을 정리한 진백천은 중혁에게 물었다.

만약 그만 괜찮다면 자신이 무공을 알려주고 싶었다.

‘추후에 도움이 되면 되겠지. 나쁜 아이는 아니니까.’

이렇게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 순간만 하더라도 중혁은 자신의 욕심보다 진백천에게 폐를 끼치는 게 아닐까란 생각부터 했다.

“재능이 있으니까 금방 배울 거야. 대신 조건이 있어. 쉴 때 동안은 나와 대련을 하는 거야. 어때?”

둘 다에게 나쁜 제안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이러한 것은 진백천이 중혁의 부담감을 줄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저야 물론입니다! 언제든 원하시면 대련을 하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어.”

진백천은 말이 나온 김에 바로 소림삼십육권(少林三十六拳)을 알려주었다.

과연 중혁이랄까?

그는 단 한 번 본 것만으로도 소림삼십육권의 동작을 전부 외우며 따라 했다.

그리고 펼칠 때마다 점점 익숙해지며 스스로 나아지는 모습조차 보였다.

‘하아. 역시 괴물은 괴물이네.’

속마음과 달리 진백천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추후에 완성된 상장과 중혁이 서로 대련을 하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퍽이나 궁금해졌다.

* * *

객잔으로 돌아간 진백천은 배를 채우고 슬슬 움직일 준비를 마쳤다.

그가 악살신괴를 사칭하며 흑미령을 만나는 동안 도홍경과 중혁에게는 다른 임무를 내려주었다.

“철마방을 싹 다 털어.”

“전부 다 말입니까?”

“응. 철괴 같이 무거운 건 놔두고 돈 되는 건 다.”

옥무기의 비밀 금고도 이미 알려주었다.

어차피 도홍경이라면 몇 번 훑어보는 것으로 전부 알아낼 수 있을 터였다.

“알겠습니다. 그런 거야 제 분야죠. 비싼 속옷 한 장까지 싸그리 챙겨오겠습니다.”

해가 저물고 슬슬 어둠이 찾아오자 그들은 흑의로 갈아입었다.

다시 철마방으로 향한 일행은 모든 일이 끝나면 다시 객잔에서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진백천이 전각으로 들어서자 옥무기는 이미 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표정이 불만으로 가득했다.

-이름을 넘겼는데 왜 죽이지 않은 거지? 아직도 뭐가 부족한 건가?

자신에게 사사건건 반대를 다는 자들이었다.

악살신괴가 자신과 계약을 하고 곧바로 행동에 돌입할 줄 알았던 그는 무척이나 기대했었다.

그들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다.

“……왜 아직까지 그들이 살아 있는 겁니까?”

어제 호되게 당했던 것 때문인지 함부로 말을 하지 못했다.

“넘겨준 명단의 인물들을 확인해야 하니까. 설마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이름만 보고 죽일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그러다 착각해서 다른 사람이라도 죽이면? 그래도 상관없나?”

진백천의 말이 틀린 것은 없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족히 10명이 넘는 자들이었으니 얼굴과 이름을 확인하는 정도는 필요했다.

그제서야 옥무기는 악살신괴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믿고 안도했다.

“그렇다면 언제쯤 끝날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내일까지는 마무리하지.”

당장 내일이란 말에 그의 얼굴이 눈에 띄게 펴졌다.

-그렇다면 그 앵무새 같던 늙은이들도 이제 끝이구나!

그래서 그런 걸까.

처음과 달리 진백천을 대하는 태도가 무척이나 부드러워졌다.

“차라도 드시겠습니까?”

“필요 없다. 흑미령은?”

“곧 이곳으로 올 겁니다. 제 호위인 척만 해주시면 별문제 없을 겁니다.”

진백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뒤편에 섰다.

그리고 혹시나 의심을 버리기 위해 두건을 내렸다.

미리 역용한 무명악인 원진의 얼굴이었다.

-과연 그 성질만큼이나 포악하게 생긴 자로구나.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환야루의 일행이 전각을 찾았다.

그들은 비밀로 점쳐진 이들답게 등장하는 것도 평범하지 않았다.

문이 열리며 십수 명의 기생들이 들어서고 나서야 무인 4명이 마차를 들고 나타났다.

마차 안에는 흑미령으로 보이는 여자가 면사포로 얼굴을 가린 채 앉아 있었다.

‘하나같이 평범한 자들은 아니군.’

기생들을 비롯해 마차를 들고 있는 4명의 무인까지 전부 일류의 실력을 가진 이들이었다.

마차 안에서 흑미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별다른 안부 인사 없이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옥무기 공자. 이번 만남이 마지막이 될 것 같군요. 저는 철괴와 함께 서장으로 돌아갈 거예요.”

“돌아가다니? 그러면 이곳은 누가 책임진다고?”

“나 대신 야화가 맡을 겁니다.”

마차 옆에 서 있는 야화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객잔에서 그와 필담을 나누던 기생이었다.

“그녀가 아무리 실력이 있다고 해도 흑미령만큼 할까?”

“무슨 문제가 생기면 바로 올 테니 옥무기 공자는 아무 걱정 마세요. 그저 편안히 쉬시다 성주가 되면 되는 겁니다.”

“꼭 너희들이 성주로 만들어주는 것처럼 말하는군.”

옥무기와 흑미령 사이에 미세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그러한 신경전 탓인지 흑미령은 뒤편에 서 있는 진백천에게 관심이 향했다.

“새로운 호위? 처음 보는 인물이군요? 신원이 보증되지 않으면 이곳에 들어오면 안 되는 것쯤은 잘 알 텐데요?”

“내가 데려왔다는 것만으로도 신원이 보증된 자다.”

“어디서 데려온 자죠? 우리가 파악하기로는 옥무기 공자의 주변에는 저런 자는 없었어요.”

“네년들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콰득!

옥무기는 평소와 다르게 더더욱 강경하게 나섰다.

의자 손잡이를 내리치며 그동안 참아왔던 화를 풀어냈다.

전부 뒤편에 서 있는 진백천을 믿고 하는 행동이었다.

“착각하지 마라! 나는 차기 성주가 될 사람이고 네년들은 그저 내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일 뿐이야! 주제넘게 나서지 마라!”

흑미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크게 짖는 개다 생각하고 옥무기의 말을 무시했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갑자기 툭 튀어나온 진백천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백천도 피차일반이었다.

이미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살폈다.

그들의 속마음까지도.

‘흐음.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군.’

진백천은 마차 안을 투시하며 앉아 있는 기생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녀의 속마음까지 확인한 결과 내린 판단은 흑미령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정마대전 내내 모습을 보인 적 없던 여자가 이런 곳에 나타날 리 없지.’

-새로운 자가 옥무기 옆에 나타나다니. 당당하게 소리치는 것을 보면 보통 인물은 아니다. 루주님에게 보고부터 해야 하나?

그녀는 야화와 전음을 나누며 어떻게 해야 할지 상의했다.

진백천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일화(日花). 우선은 물러나자. 저자와 옥무기의 건방짐에 대해서는 추후 루주님의 명을 들으면 돼.

-그럴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루주님을 찾아가 보고할까? 이미 이곳을 지켜보고 있으실 텐데.

그들의 대화에서 진백천은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찾아가 보고를 한다고? 그렇다면 이 근처에 있다는 건가?’

그리고 그러한 의문에 확신을 주는 대화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미 떠나실 채비를 끝마치셨어. 괜한 걱정을 드리고 싶지 않아.

“옥무기 공자님의 심려를 어지럽혀서 죄송해요.”

한발 물러서는 그녀들을 보며 옥무기가 만족한 미소를 띠었다.

하지만 그가 채 말을 꺼내기 전에 진백천이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느릿한 발검으로 소름 끼치는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환야루의 기생들뿐만 옥무기마저 기겁하며 뒤돌아봤다.

그리고 이어진 진백천의 말은 모두가 화들짝 놀라기에 충분했다.

“감히 옥무기 공자님을 무시하다니. 전부 죽여주마!”

“……뭐? 잠깐……!”

옥무기가 차마 뭐라 말하기 전에 진백천은 쏘아진 화살처럼 앞으로 튀어나갔다.

희끗해진 그의 신형이 다시 나타났을 때는 이미 야화 앞에 도달한 상태였다.

독고구검의 날이 정확히 그녀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뒤늦게 기생들과 무인들이 막으려 다가왔지만 기습에 가까운 그 공격을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스걱-

야화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진백천과 옥무기를 노려봤다.

“……대체…… 왜?”

그녀는 자신의 목이 떨어지는 그 순간에도 이해하지 못했다.

갑자기 자신을 죽인 이자는 누구인지 뒤편의 옥무기는 왜 또 그렇게 기겁한 얼굴인지.

투욱-

야화의 머리가 바닥을 구르자 그제서야 환야루의 기생들과 무인들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잠, 잠깐……!”

옥무기가 어떻게든 상황을 정리하려 들었지만 그보다 진백천의 말이 더 빨랐다.

“감히 옥무기 공자님을 해하려 들어? 전부 이곳에서 죽여주마!”

“헛소리……! 누가 먼저 검을 빼 들었는데…… 크윽!”

“문답무용(問答無用)!”

진백천은 또 다른 기생의 목을 베어내며 소리쳤다.

뒤늦게 무인들이 빠져나가려 했지만 마차는 산악에 눌린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호무살의 기운으로 마차를 찍어누른 탓이었다.

“옥무기 공자님의 명대로 네놈들을 전부 죽여주마!”

진백천은 마치 현신한 아수라처럼 검을 휘둘렀다.

뒤늦게 기생들이 무기를 뽑아 들며 대항했지만 그에게 상대가 될 리 없었다.

한번 기세가 꺾인 이들은 사자에게 사냥당하는 하이에나처럼 이리저리 쫓길 뿐이었다.

“옥무기 공자! 정녕!”

“잠깐 나는 모르는 일이다!”

“옥무기 공자께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전부 내가 저지르는 짓이다!”

진백천은 한눈에 봐도 짜고 치는 것처럼 눈을 찡긋하며 소리쳤다.

“전부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네놈들을 죽이는 것이니 옥무기 공자님에게는 잘못이 없단 말이다!”

“잠, 잠깐! 대체 지금 무슨 생각으로……!”

파강식(破彊式).

혼란스러운 상황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 강기의 파도가 검에서 터져 나왔다.

강기에 휩쓸린 기생들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원망하는 눈초리는 진백천이 아닌 옥무기를 향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었다.

옥무기가 직접 호위 무사라고 말했으니 그 말을 되돌릴 수도 없었다.

-……젠장. 이렇게 된 바에 전부 죽여야 된다!

어차피 방 안에는 이제 일화를 비롯해 무인 4명만이 남지 않은 상태였다.

-전부 다 죽이고 증거조차 없애야 해.

“……저자들도 전부 죽여 버려! 절대 놓치면 안 돼!”

그의 외침에 일화는 이를 갈았다.

“역시! 모두 네놈의 짓이었구나!”

일화와 무인들은 감히 맞상대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벗어나려 했다.

진백천은 지금까지 짓누르던 마차에서 호무살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친히 문을 박살 내며 놈들이 도망갈 수 있도록 뒷길을 열어주었다.

“옥무기 네 이놈! 마교를 배반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잠깐! 저년을 어서 죽여!”

진백천은 눈에 띄게 허공에 검을 휘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허허. 너무 빠르군. 도저히 못 쫓겠어.”

“뭐, 뭐?! 지금 네놈이 무슨 짓을 저지른 줄 알아?! 당장 쫓아가서 저년놈들을 죽이라고! 어서!”

옥무기가 자리에서 일어나 진백천의 앞섶을 움켜쥐려 했다.

하지만 그런 싸가지 없는 모습을 용납해줄 생각 따윈 없었다.

“어허허. 우리 옥 공자. 어제의 일을 또 잊었나 보네.”

진백천은 손목을 가볍게 움켜쥐며 옆으로 꺾었다.

“끄으윽!”

“금붕어야? 맞으면 3초 뒤에 잊고 또 덤벼들 거냐고.”

“……크윽! 이, 이게 전부 당신이……!”

“내가 뭐? 네놈이 시킨 거잖아.”

옥무기는 웃음기가 깃든 진백천의 눈동자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 모든 것이 그가 의도한 상황이라는 것을 이제야 눈치챈 것이다.

“도대체 왜? 당신에게 뭐가 이득이 있다고?”

“그거야. 앞으로 차차 지켜보면 될 거야. 그러니 잠시 쉬고 있으라고.”

진백천은 가볍게 목덜미를 내리치며 그를 기절시켰다.

옥무기가 다시 정신을 차릴 때쯤에는 꽤나 많은 것이 바뀐 후일 터였다.

‘물론 네놈이 원하는 대로는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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