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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245화 (245/346)

무림회귀백서 245화

83장 꼬리를 밟다(1)

다음 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진백천은 이동할 준비를 끝마쳤다.

새벽 늦게까지 술을 마셨더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몸에 남아 있는 주정을 전부 날려버리고 나서야 머리가 조금은 맑아졌다.

‘어휴. 이것들하고는 다시는 술을 마시지 말아야지.’

도홍경은 술에 취하자 계속해서 했던 말을 반복했다.

그의 술버릇인 모양이었는데 어제 꽂힌 것은 ‘내가 누군지 알아? 23대 모산파 장문인 도홍경이야!’ 였다.

아무래도 모산파의 비기를 얻은 것이 꽤나 자랑스러운 듯한데 자랑할 때가 없어서 속에 쌓였던 모양이었다.

그 말을 지쳐 쓰러질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했다.

‘그래도 중혁이보다는 나았지. 저놈은 최악이었으니까.’

술을 배운 적이 없어서 그런지 계속해서 넙죽넙죽 받아마셨다.

그러다 한 번에 훅 갔는지 어느 순간부터 울기 시작했다.

진백천에게 감사하다고 말할 때만 해도 그랬거니- 했지만 그것도 몇 시진이나 반복되자 짜증이 치솟았다.

‘어휴. 이것들하고 다시는 술을 마시나 보자.’

더 놀라운 것은 둘은 자신들의 술버릇을 기억 못 한다는 것이었다.

“일어나셨습니까?”

“그래. 물건 챙기고 이동하자.”

“네.”

그들의 첫 번째 목적지는 호북 동쪽에 위치한 안휘성(安徽省)이었다.

그곳에서 산동으로 가 배를 타고 요녕으로 넘어가야 했다.

그리고 바닷가 해안가를 따라 길림을 넘으면 북해였다.

가는 길목에 흑룡강 또한 있으니 황금마전(黃金魔殿)에 들러 손봐줄 생각이었다.

“듣기만 해도 꽤나 바쁜 일정이겠네요.”

“굳이 그럴 것도 없어. 안휘성만 제외하면 전과 달리 다 외딴 지역이니까.”

안휘성은 오대세가의 우두머리 남궁세가가 위치한 곳이었다.

하지만 무림대회 비첩을 돌릴 때처럼 굳이 들릴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지금 내가 나와 있는 것도 비밀이고 말이지.’

진백천은 피풍의를 푹 눌러쓰고 걸어 다녔다.

굳이 들춰보지 않는다면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야 한다면 이미 누구로 할지도 정해놓은 상태였다.

진백천이 이것에 대해 말하자 도홍경이 궁금해하며 물었다.

“흐음. 너는 처음 볼 텐데.”

피풍의를 뒤집어쓴 그의 키가 점점 줄어들며 외모가 바뀌어 갔다.

그리고 다시 피풍의 벗자 반응은 중혁에게서 터져 나왔다.

“……무명악인(無名惡人) 권진!”

“……무명악인?”

도홍경도 얼핏 그 이름을 듣긴 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무림대회의 이립전의 우승자이기도 했고 그가 비무 중에 행한 악명은 지독히도 높았으니.

오죽하면 무림대회가 끝난 뒤 몇몇 형산파는 그를 현상 수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찾아낸 것은 이미 낡아 무너진 무관뿐이었다.

“……역용하더라도 그런 자라니요.”

“아니. 오히려 악인이니까 더 좋지.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니까. 우리가 누구를 상대해야 할지 잊지 말라고.”

마인을 상대하는 악인.

어떠한 짓을 저질러도 악인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지도 몰랐다.

명분과 강호의 협의를 지켜야만 하는 정도회와는 무척이나 다른 결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정명하신 회주님께서 그런 자의 흉내를 내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진지한 중혁의 물음에 도홍경이 자기도 모르게 입가가 흔들렸다.

그동안의 진백천의 모습을 보면 도저히 저런 말을 하기 어려웠으니까.

“후우. 그렇지. 힘들겠지. 그래도 어쩌겠어. 다 정도회와 강호를 위해서인데.”

“……역시 대단하십니다.”

진백천은 별말 없이 다시 피풍의를 뒤집어쓰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 * *

안휘성에 들어서면서 일행은 꽤나 기대를 많이 했다.

호북이나 다른 성들에 비해 면적이 좁았지만, 인구밀도는 훨씬 높았고 날씨도 온화했다.

더구나 명산도 많고 절경도 많아서 차(茶)와 술(酒)이 유명했다.

진백천은 자연스럽게 기대가 되었다.

“안휘성의 화백에서만 나는 구자주(口子酒)를 안 마셔보고 지나갈 수 없지.”

“그게 유명한 술이에요?”

“유명하지. 전국 8대 명주에 안에 들어가니까.”

그는 도홍경의 질문에 자신이 아는 구자주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했다.

구자주는 보리와 수수, 콩을 원료로 하기에 도수에 비해 순하고 끝에 남는 단맛이 특징이었다.

도홍경과 중혁은 진백천의 설명만으로도 입맛을 다셨다.

당소예와 황대원과는 달리 둘도 주당의 기질이 엿보였다.

“으음? 그런데 여기 분위기가 왜 이래?”

하지만 막상 안휘성 성문에 다다르면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전과 퍽이나 달랐다.

상시 상인들과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시끌벅적해야 하는 성문은 마차 몇 대를 제외하곤 한적했다.

성문을 지켜선 위사들은 칼날처럼 눈빛을 빛내며 사람들을 노려봤다.

진백천의 일행이 다가가자 위사 중 한 명이 다가오며 말했다.

“호패.”

진백천은 미리 준비해 둔 것을 내밀었다.

문제는 중혁이었다.

살면서 평생 호패라는 것을 만져본 적이 없었다.

그가 우물쭈물하자 위사의 눈빛이 점점 험악해졌다.

“중혁아. 그렇게 내가 말했는데도 또 호패를 잊어버렸구나?”

진백천은 자연스럽게 품속에서 은자 몇 개를 꺼내 위사에 손에 쥐여주었다.

“별건 아니고 고생하시는데 술값이나 하시죠.”

“크흠! 앞으로는 조심해라!”

위사는 헛기침을 하며 품속에 은자를 챙겨 넣었다.

진백천은 이왕 뇌물을 준 김에 왜 이렇게 분위기가 험악한지 물었다.

“그걸 몰라서 묻나? 죄다 마교놈들 때문이지. 황실에서도 공격받았으니 철통같이 보호하라는 성주님의 지시다. 성문뿐만 아니라 안에서도 행동을 조심해야 할 거야.”

그 말은 의외였다.

남궁세가가 존재하는 한 마교와 관련된 일은 그들이 행동할 거라 생각했다.

관리들은 대게 이런 쪽에 무심했으니까.

진백천이 의문을 가지고 성내에 들어서자 또 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길게 늘어진 사람들에게서 관리들이 무언가를 거둬가는 중이었다.

“식기?”

병사가 이끄는 수레에는 철 그릇부터 금속으로 된 것은 무엇이든 실려있었다.

사람들은 식기를 제출하면서도 불평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아니, 마교와의 전쟁을 준비하는데 굳이 숟가락 하나까지 거둬가야 하나?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

“그것뿐인가? 세금도 쉬지 않고 걷어가니 아주 죽을 맛이야! 가뜩이나 성문을 틀어막아서 손님도 없는데 말이지!”

“세금도 이번부터 5할을 더 내라더군. 우리를 말려 죽일 셈이야!”

목소리가 제법 컸지만 병사들은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들이라고 숟가락마저 거둬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위에서 시키니 어쩔 수 없이 하는 모양이었다.

‘남궁세가는 대체 뭘 하길래 이 꼴이야?’

보통 그 성에 자리 잡은 문파라면 관리들과도 끈이 맞닿아 있었다.

특히나 남궁세가는 왕족에 그 뿌리를 두고 있어서 남궁 성을 가진 관리들도 적지 않았다.

‘오대세가의 힘이 약해져서 그런가? 단순히 그렇다고 치기에는 변화가 너무 빠른데?’

제대로 전투가 발발하지도 않았음에도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이런 명령을 황실에서 내릴 이유도 없고 말이다.

하지만 진백천의 의문은 그가 객잔에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렸다.

“전부 비켜라! 옥무기 공자님이시다!”

“물러서! 길을 막으면 가만두지 않겠다!”

말을 탄 병사들이 사람들을 밀쳐내며 몰려왔다.

그 뒤로 따라온 것은 한눈에 봐도 크고 화려한 마차였다.

마차가 열리고 내린 것은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젊은 놈이었다.

이곳에 온 게 처음이 아닌 듯 기생들이 양옆으로 달라붙으며 아양을 떨었다.

“하하하. 잘들 있었느냐?”

어린놈임에도 불구하고 기생들의 몸 여기저기를 만지는 손놀림이 제법 익숙했다.

그들은 소란스럽게 떠들며 객잔의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허허. 방금 성주의 아들이라고 그랬죠?”

그런 이가 대놓고 기생들을 주물럭거리며 술을 마시러 왔다.

그것도 무려 병사들을 이끌고 말이다.

벌써부터 거나하게 한잔하며 노는 건지 기생들의 교태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그런 소리는 해가 지고 밤늦게까지 지속되었다.

“쯧쯧. 이럴 줄 알았지.”

“뭐가 말입니까?”

“시기가 혼란스러울수록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내는 것들이 있어. 그게 뭔지 알아?”

중혁은 고개를 저었다.

“탐관오리. 어떻게든 혼란을 틈타 제 뱃속을 가득 채우려고 하지. 그리고 대게 그런 놈들 뒤에는 똑같은 기생충들이 잔뜩 달라붙어 있더라고.”

그중에 제일 큰 기생충은 역시나 마교였다.

성주도 아니고 그 아들놈 따위가 이렇게 천방지축으로 놀아 다니는데 가만히 있는 것을 보면 안휘성도 뭔가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었다.

‘이대로 두고 보고 넘어갈 순 없겠는데?’

어차피 놈들의 하는 짓을 보고 술맛이 뚝 떨어졌다.

진백천은 곧바로 객잔에 방을 잡고 그곳에 올라갔다.

“도홍경. 성에 잠깐 들어갔다 나올 수 있겠어?”

“흐음. 단순히 살피고 나오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죠.”

“그러면 성주의 상태 좀 확인해 보고 와봐.”

“네. 알겠습니다!”

도홍경은 말이 끝나게 무섭게 허공에 희끗하며 사라졌다.

다시 한번 봐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은형술이었다.

“중혁아. 잠깐 여기 있어 봐.”

그 후로 진백천도 곧바로 밖으로 나가 객잔 뒤쪽으로 돌아나갔다.

그리고 사패천의 경매장에서 구매했던 은형비단(隱形緋緞)을 뒤집어썼다.

은형비단은 진백천의 내력을 흡수하자 마치 그림자처럼 어두워지며 인기척을 지웠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자세히 좀 들어봐야겠어.’

진백천의 신형이 마치 바람처럼 벽을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술을 퍼마시는 관리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크하하하! 지금처럼 계속됐으면 좋겠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걸 말이라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년만 마교놈들이 날뛰어줬으면 소원이 없겠어!”

성주의 아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관리들은 이미 불콰하게 취한 지 오래였다.

꺼릴 것 없이 마교에 대해 이야기하며 좋다고 술을 퍼마시는 것을 보면 현 상황에 더러운 구석이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나저나 옥무기 공자님은 아직도 그 여자와 함께인가?”

“요즘 들어 너무 빠진듯해서 걱정이긴 한데.”

“어허! 괜한 소리 말고 술이나 마시게!”

‘여자?’

진백천은 주변을 살피다 위쪽으로 향하는 비밀 공간이 있음을 눈치챘다.

일반인들은 절대 올라갈 수 없는 곳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고 안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림자가 짙게 진 곳을 따라 비밀 공간으로 향했다.

‘여기인가?’

문 너머로 두 명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무런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흐음. 안쪽을 살펴봐야 할 것 같은데.’

두 사람이 겨우 들어갈 것만 같은 공간이라 문을 열고 들어가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진백천은 상단전에 내력을 불어넣으며 문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후우. 저번처럼 보여라. 보여라.’

주문처럼 외우자 정말로 문이 흐릿해지며 그 너머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사자혁과의 친선대련 중 금혈화린어 내단의 기운이 상단전에 파고들면서 생긴 투시력이었다.

‘흐음. 필담 중인 건가?’

끈덕지게 놀아나고 있을 거라 예상한 관리들과 다르게 둘은 계속해서 종이에 뭔가를 써내려갔다.

종이에 집중했지만 딱히 알아볼 수는 없었다.

먹 없이 물로만 쓰고 있기 때문이었다.

‘뭐가 그렇게 조심스러워서 이렇게까지 대화를 나누지?’

하지만 아무리 이들이 감추려고 해도 속마음까지는 감출 수는 없었다.

마치 문을 뚫고 보이는 장면에 소리가 입혀지듯 그들의 속마음이 들려왔다.

-성주는 언제쯤 처리할 생각이신가요?

-헛소리! 아직까지 아버지를 따르는 이들이 많아!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 지금 물자를 모으는 것만으로도 이미 위험해! 그리고 남궁세가의 무인들도…….

-성주를 따르는 이들은 걱정 마세요. 이미 성내는 마인들이 점령한 거나 다름없으니. 그리고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 거예요.

기생의 말에 옥무기의 손끝이 움찔하며 멈췄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생은 신경 쓰지 않고 필담을 이어나갔다.

-옥무기 공자는 그저 우리가 말하는 대로 따르면 돼요. 혼란을 일으키세요. 어차피 마음껏 먹고 놀고 즐기시다 지겨울 때쯤이면 성주가 되어 있을 거예요.

-마교는…… 호북의 정도회를 칠 준비를 하고?

처음으로 마교라는 말이 나왔다.

그리고 기생은 낮게 눈을 치켜뜨며 옥무기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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