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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244화 (244/346)

무림회귀백서 244화

82장 너네 여기서 뭐 하냐?(3)

진백천의 말에 중혁과 도홍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피풍의로 깊게 눌러쓰고 있다지만 이런 말투와 눈빛을 가진 이는 많지 않았다.

중혁이 어찌나 당황했는지 끌어올렸던 구촉비전을 풀어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빠르게 도홍경이 펄쩍 뛰며 진백천에게 다가갔다.

“형님! 아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그거야말로 내가 묻고 싶은 거라니까?”

진백천은 그들과 기생을 빠르게 훑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혁 저 아이가 살아 있었다니. 루주님께 보고해야 한다!

들려오는 기생의 속마음만으로도 대충 상황을 짐작했다.

‘설마 환야루의 기생인가?’

루주를 직접 언급하는 것을 보면 평범한 기생은 아니었다.

“흐음. 여기서 말고 다른 데 가서 이야기하자. 저 여자 챙겨.”

“네. 형님!”

도홍경은 신이 났는지 별다른 대꾸도 없이 기생을 안아 들었다.

그리고 재빨리 객잔에서 벗어났다.

그들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도회 무사들이 도착했다.

* * *

인적 없는 산어귀.

진백천은 주변에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그곳에 멈춰섰다.

그리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기생을 내려놓는 도홍경에게 물었다.

“어떻게 여기 있냐? 모산파의 비기는?”

도홍경과 헤어진 지는 겨우 3달 정도였다.

그는 모산파에 돌아가자마자 곧바로 비고에 들어섰다.

전부 진백천이 황금각에서 가지고 나온 신물 덕분이었다.

“거기서 모산파의 비기와 성령목부(聖領木符)를 얻었어요. 흐흐흐. 이제 제가 모산파 23대 장문인입니다.”

진백천의 물음에 도홍경이 자랑하듯 자신의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붉은색의 목검이었는데 특이하게도 겉에 부적처럼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졌지만 강철만큼 단단했고 삿된 기운을 찢어버리는 강한 기운이 담긴 물건이었다.

방술(方術)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자라면 성령목부에서 전해지는 기운을 느끼며 경악했을 터였다.

그는 비고에서 나오자마자 정도회의 혈사(血史)를 들었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곳으로 향했다.

진백천을 돕기 위해서였지만 그가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나고 그가 폐관했다는 소문뿐이었다.

“정도회에는 왜 안 들리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왠지 불편할 것 같아서요.”

그는 대신 객잔에 가서 기생과 술을 마시며 이것저것을 물었다.

그들만큼 저잣거리 소식에 능한 이들이 없었으니까.

정마대전의 선포부터 제법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슬슬 떠나려는데 중혁이 달려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저 아이도 형님을 아는 것 같던데요?”

“아아. 구면이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진백천과 다르게 중혁은 여전히 어안이 벙벙했다.

산적과 같은 남자가 회주님께 형님, 형님- 그러는 것부터 이해가 가지 않았고, 폐관했다는 그가 호위 하나 없이 혼자인 것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진백천이 여기 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든 얼굴이었다.

“일주일 동안 생각은 많이 했냐?”

“……네. 우선을 살아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어. 원래 그렇게 꾸역꾸역 살다 보면 큰일도 닥쳐오고 개고생도 하고 그러는 거야. 나를 봐봐.”

진백천의 말에 도홍경이 키득거리며 웃어댔다.

“그나저나 저 기생은 왜 챙기라고 하신 거예요?”

“환야루(幻夜樓) 소속이니까. 맞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하는 질문에 기생은 순간 혈도가 짚인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그게 무슨 말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뒤늦게 살려달라는 말이 터져 나왔지만 애처로워하는 표정과 몸짓과 다르게 속마음은 딴판이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진백천이 정도회 밖으로 몰래 나온 것을 환야루에 알려야 한다! 무슨 생각으로 폐관이라 속이고 나왔는지 몰라도 본교와 환야루에 좋은 일일 리는 없다!

역시나 어떻게 하면 환야루에 이 사실을 전할까 고민 중이었다.

기생은 품속에 숨겨둔 전서구를 꼼지락대며 어떻게든 날릴 기회를 엿봤다.

그리고 진백천은 이미 그런 그녀의 속마음을 적나라하게 꿰뚫어 봤다.

“중혁아. 저 여자는 어떻게 알아?”

“방주를 따라다니던 시녀 중 하나입니다.”

“그래? 그럼 마교 소속이라는 거지?”

마교라는 말에 도홍경이 흠칫하며 그녀를 노려봤다.

현 강호에서 마교라는 단어는 척살과도 일맥상통했다.

-아무래도 회주와 저자를 속여 넘기기에는 힘들 것 같군. 그렇다면 전서구라도 날려야 해!

그녀는 역시나 속마음과 달리 뛰어난 연기력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저었다.

“……어린 공자께서 잘못 보신 겁니다! 방주라는 사람을 알지도 못합니다. 저는 그저…….”

“그저 뭐?”

그녀는 고개를 떨구는 듯하더니 사방으로 독침을 뿌리며 뒤로 물러섰다.

동시에 전서구를 뒤쪽으로 날려 보냈다.

이미 공격을 예상한 진백천은 손을 휘젓는 것만으로도 독침을 손아귀에 빨아들였다.

그 사이에 전서구는 비수가 닿지 않는 하늘 높이 떠오른 참이었다.

“하하하하! 회주! 이미 늦었다! 전서구가 날아갔으니 본교의 이목을 속이고 돌아다닐 수는……!”

호무살(虎武殺).

의념으로 만들어진 비수가 날아가는 전서구의 심장을 관통했다.

그리고 곧바로 영혼이라도 빠져나간 것처럼 바닥에 떨어졌다.

투욱-

환야루의 기생은 말하다 말고 즉사한 전서구를 멍하니 쳐다봤다.

“아, 아니 대체 왜?”

“어휴. 그러게 비둘기 좀 품종 좋은 것을 써야지. 애가 비실비실하니 픽픽 쓰러지잖아.”

진백천은 기생의 마혈을 짚으며 전서구를 집어 들었다.

“뭐라고 썼는지 한번 읽어볼까? 아아. 암호법은 걱정하지 마. 다 아는 수가 있으니까.”

날카로운 시선에 기생의 두 눈이 불안하게 떨렸다.

* * *

그 후로 펼쳐진 장면은 꽤나 괴이했다.

기생을 꿇려놓고 그 앞에 앉은 진백천은 취조하듯 계속해서 캐물었다.

마혈을 짚었기에 답변 하나 없었지만 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들었다.

“환야루의 루주가 직접 마화린을 보좌했다고? 정도회에도 함께 있었나?”

“…….”

“젠장. 그때 잡았으면 일석이조였는데 눈치 한번 빠르네. 그래서 지금 어디에 있지?”

“…….”

“아아. 환야루의 장소가 매번 바뀌는 건 나도 잘 알고 있고. 지금 현재 있는 위치를 말하라고.”

두 눈을 부릅뜨고 아무 말도 못 하는 중혁과 달리 도홍경은 역시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다시 봐도 역시 형님은 대단하단 말이지.”

“혹시 회주님이 지금 무엇을 하는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중혁은 조심스럽게 도홍경에게 물었다.

그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혼잣말을 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형님에 대한 소문 못 들어봤어?”

“소문 말입니까? 마교도의 목을 갈라 피를 마셨다는 그런…….”

“아니. 그런 잔인한 거 말고. 천리안과 천리통 말이야.”

얼핏 그런 이야기도 들었지만 단순히 과장된 소문일 뿐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바로 옆에서 봤던 마교의 소교주 또한 남의 속마음을 읽어내지 못했다.

“설마 회주님에 대한 소문이 정말 사실이었습니까?”

도홍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혁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소형제. 잘 생각해봐.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모습이 나올 수 있겠냐? 안 그래?”

“……그, 그건 그렇습니다.”

“혹시라도 정 못 믿겠다면 형님 옆에서 속으로라도 욕을 해봐. 그럼 바로 반응이 올 테니까.”

중혁은 굳이 대답을 하지 않고 진백천을 쳐다봤다.

그는 이제 전서구에서 얻은 암호문에 대해 질문하는 중이었다.

아는 것부터 모르는 것까지 탈탈 털리는 기생은 필사적이었지만 자살을 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다.

결국 반나절 꼬박 취조를 당한 뒤에야 마혈이 풀렸다.

“설마 붙잡은 기생이 루주의 제자 중 하나였다니. 덕분에 그림자에 숨어 사는 것들을 쉽게 찾아낼 수 있었어. 설마 가까운 안휘성에 숨어 있을 줄은 몰랐어. 찾으면 꼭 없애주도록 하지.”

진백천은 고맙다는 듯이 기생의 어깨를 툭툭 쳤다.

가벼운 동작과 달리 손바닥에서 파고든 내력은 혈도를 파괴하며 심장으로 향했다.

그대로 심장이 멈추며 기생은 즉사했다.

진백천은 시체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혹시라도 발견이라도 된다면 진백천을 비롯해 도홍경이나 중혁이 의심을 받을지도 몰랐다.

“최소 3장(9m)은 파내야 시체 냄새로 파리가 꼬이지 않습니다. 비로 인해 땅이 묽어져서 짐승들이 파헤치는 것을 막는 것까지 생각하면 4장은 파내야 합니다.”

도대체 어린 중혁이 그런 것까지 알고 있는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기생을 파묻자 도홍경이 눈을 감고 죽은 자를 위로하는 진문을 외웠다.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냐.”

“혹시 모르잖아요. 귀신 돼도 저는 쫓아오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둘의 대화를 들으며 중혁은 자기가 품고 있던 진백천의 환상이 천천히 깨져갔다.

인간적이어서 좋았지만 지나치게 인간적이랄까.

“하아. 술이나 한잔하고 싶다.”

“애지중지하시던 모탁주는 어디에 두시고요?”

“폐관수련 들어간다고 하는데 술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겠냐? 당연히 숨겨놓고 왔지.”

도홍경은 씨익 웃으며 품속에서 술병을 꺼내 들었다.

“그럴 줄 알고 미리 준비했죠.”

“오오. 역시 중원 제일 도사 답네. 마음에 들어!”

진백천은 겨우 술 따위에 기쁘게 웃어대며 도홍경을 칭찬했다.

그런 모습에 중혁은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

“중혁아 너도 한 모금 할래?”

“에이. 아직 어린앤데 무슨 술입니까.”

“객잔에서 혼자 3병을 비우고 있었다. 그리고 너 얘 우습게 보다가는 큰코다친다?”

도홍경은 어깨를 으쓱이면서도 중혁을 은근히 살폈다.

그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 같긴 한데 딱히 먼저 묻지는 않았다.

터덜터덜 걷던 그들은 다음 마을에 도착하기 전에 밤을 맞이했다.

진백천과 도홍경은 익숙하게 커다란 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야영을 준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닥불과 편안한 자리가 만들어졌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중혁만이 그런 모습을 유심히 살필 뿐이었다.

“주변에 은형부(隱形符)와 은신부(隱身符)를 붙일게요.”

도홍경이 품속에서 꺼낸 부적을 나무와 돌 따위에 붙였다.

중혁은 저런 것 따위가 무슨 소용일까 했지만 놀랍게도 주변이 순간 흐릿해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마치 투명한 구름에 가려진 듯 이 안쪽만 흔적이 지워진 느낌이었다.

“신기하지? 이게 바로 대모산파(大茅山派) 23대 장문인의 부적술이다.”

하지만 그런 장난스러운 분위기도 곧 밤이 깊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도홍경이 진지한 얼굴로 이후의 일정에 관해 묻고 나서부터였다.

“왜? 함께 가려고?”

“그러면 황 무사와 당 소저도 없이 혼자 다니시려 하셨어요? 저라도 옆에서 모셔야죠.”

도홍경이 천방지축인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렇다고 실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무력은 몰라도 방술은 중원 제일이라 해도 부족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진백천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지도 몰랐다.

‘더구나 믿을 수 있기도 하고.’

“우선 가장 큰 목적지는 북행빙궁이야.”

북해는 전혀 예상 못 했는지 도홍경의 얼굴이 놀람으로 물들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 후에는 차례대로 악인곡(惡人曲)을 비롯해 황실과 함께 서장(西藏)의 연왕부를 조사하러 갈 거야.”

그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 하나하나가 무겁지 않은 것이 없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도홍경의 반응이었다.

“흐음. 그러면 더더욱 제가 모셔야겠네요. 가끔 용돈만 두둑이 챙겨주세요.”

“그거야 두말하면 잔소리지.”

진백천은 도홍경의 대답을 듣고 중혁을 쳐다봤다.

마치 그 눈빛이 너는? 이라고 묻는 것만 같았다.

중혁은 따닥- 거리며 피어오르는 모닥불과 진백천을 번갈아 봤다.

물론 따라가고 싶었다.

그를 따라가면 조금이나마 쓸모있는 삶이 될 거란 이유 모를 믿음 때문이었다.

“저는…….”

“하나하나 가르쳐줄게.”

진백천은 대답을 듣기도 전에 먼저 말을 꺼냈다.

“마화린 그 새끼처럼 쓸모없는 것들 말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전부 가르쳐줄 테니까 같이 가자.”

아무래도 그가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사실인 듯싶었다.

중혁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가 걱정하는 바를 생각해서 이렇게까지 대답해 주니 말이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 의미로 인생의 큰 행복 중 하나를 오늘 밤에 알려주마.”

진백천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도홍경에게 손짓했다.

역시나 품속에서 꺼내진 것은 술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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