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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241화 (241/346)

무림회귀백서 241화

81장 피의 추수(3)

“후우. 회주. 왔군. 정문도 역시나 정리가 된 모양이지?”

“맞아. 후문도 마찬가지네.”

진백천은 피와 살점으로 변한 마인들을 둘러봤다.

하나같이 소용돌이에 휩쓸리기라도 한 듯한 모습이었다.

사자혁은 피곤한 얼굴로 조금 쉬어야겠다며 신위들과 자리를 벗어났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당염이 혀를 차며 다가왔다.

“너…… 어떻게 저런 괴물하고 싸워서 이긴 거냐?”

아무래도 후문은 사자혁 혼자서 마인들을 전부 쓸어버린 모양이었다.

설마 하며 지켜보던 당염을 비롯한 당가의 무인들은 압도적인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진백천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 실력이랄까요?”

“허참!”

당연은 스스로 오왕이라는 사실이 허탈할 만큼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하긴. 처음 그 모습을 보면 누구나 당황할 수밖에 없지.’

자신보다 약한 다수를 상대로 한다면 사자혁의 무공은 가히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그 많은 마인을 초살하면서 겨우 피곤함을 느끼는 게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들어보면 상성의 운도 따라주었던 모양이었다.

정문과 달리 후문의 묵호겁마대(墨虎刦魔隊)와 지옥혈귀대(地獄血鬼隊)는 그 실력보다는 수로 승부를 보는 놈들이었다.

“어쨌거나 이제 슬슬 마무리부터 하시죠.”

진백천이 다시 정도회로 돌아가자 매섭게 내리던 비가 천천히 그치기 시작했다.

먹구름 사이로 햇빛이 비치며 짙은 무지개가 일어났다.

피로 절은 정도회와는 퍽이나 다르게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리고 곧 승리 소식을 들은 관중들의 환호 소리가 하늘을 가득 메웠다.

* * *

정도회 회주전.

붕대를 이곳저곳에 휘감은 무인들은 모두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사망자 수는 287명입니다.”

죽은 마인들에 비하면 반의반도 되지 않는 숫자.

하지만 단순히 덜 죽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실에 기뻐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바로 어제까지 전우였고 친구였던 이가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그것도 갑작스러운 마교의 기습으로 인해서 말이다.

“……복수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무사들을 모아 마교를 토벌해야 합니다!”

“명령을 내려주신다면 천군지사대와 저 황대원은 제일 앞에 서겠습니다!”

“수라검대도 그 옆에 서겠습니다!”

몇몇의 무인들이 피를 토하듯 소리치며 무릎을 꿇었다.

진백천은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폈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과 분노에 찬 눈동자.

모두 이번 전투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이들이었다.

그것은 진백천도 마찬가지였다.

‘……황충.’

진백천의 시선이 그의 오른편으로 향했다.

언제나 흡족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던 황충의 자리였다.

사실 지금 당장만 해도 황충이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후우.”

진백천은 길게 한숨을 내뱉으며 답답한 심정을 드러냈다.

그리고 힘겹게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 힘들다고 해도 분노에 판단을 맡기지 마. 언젠가 몇 배고 더 이자로 쳐서 되돌려줄 때가 있을 테니까. 지금은 그저 죽은 자들을 위해 슬퍼해 주자.”

그 말은 회주전에 모인 모두이자 그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며칠간 정도회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들로 하늘이 검게 물들었다.

다행히 구름 한 점 없이 건조한 날이라 나무는 잘만 타올랐다.

그들의 비통함과 다르게 강호에는 정도회의 승리만이 불 번지듯 퍼져 나갔다.

정도회를 제외한 다른 곳은 전부 엄청난 피해를 봤기 때문이었다.

강호의 연합군과 다름없는 이들의 완벽한 승리는 사람들이 환호하기에 충분했다.

“회주. 이제 슬슬 우리도 의견을 내야 하지 않겠나?”

며칠 동안 당염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진백천의 눈치를 살폈다.

애도 기간이라고 하지만 적들이 그런 것을 지켜줄 리 만무했다.

놈들의 움직임은 점점 더 대놓고 드러났고 사람들의 이목은 정도회로 향했다.

마교에 대항해 강호의 기치를 세울 유일한 세력이었다.

“흐음. 만약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거라면 기다려주지. 대신 사패천은 단독으로라도 마교에 선전포고를 하겠다.”

사자혁의 당당한 말과 달리 유소어와 신위들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사패천이 강호의 거대한 톱니바퀴이기는 하나 그 구심점은 절대 아니었다.

구파일방을 비롯해 이토록 다양한 무인들을 한 힘으로 모을 수 있는 것은 정도회뿐이었다.

진백천은 그런 마음을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마교는 절대 단일로 맞설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그렇다면……?”

모두가 기대에 찬 눈으로 그를 지켜봤다.

“마교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지. 이번에는 우리 쪽에서 먼저 말이야.”

그동안은 항상 공격을 당하는 쪽이 강호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순서를 바꿔보려 했다.

진백천은 그날 곧바로 강호 전역에 정도회의 이름으로 선전포고를 했다.

정마대전(正魔大戰)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이자 마교에 대한 엄중한 경고였다.

<십만대산(十萬大山)은 마교의 그 잔악한 술수의 대가로 산산히 무너져 내리게 될 것이다!>

그 누구도 심지어 황실조차도 제대로 못 해냈던 일이었다.

모두가 경악할 때쯤 정도회를 따라 수많은 문파가 그 뒤를 이었다.

가장 먼저 화산파와 개방과 같은 구파일방, 뒤이어 사패천과 하오문, 녹림과 장강도 함께였다.

뒤늦게 오대세가도 한목소리로 칼을 치켜들었다.

그야말로 강호와 마교의 전쟁이었다.

“전쟁이 시작되었으니 가장 먼저 강호에 숨어들어와 있는 놈들의 손과 발부터 잘라낸다.”

진백천은 기다렸다는 듯이 마교의 간자들과 놈들을 돕는 이들의 목록을 만들어 사방에 뿌렸다.

전부 회귀 전의 기억을 토대로 하오문과 교차 검증한 것들이었다.

그것은 곧 살생부(殺生簿)가 되어 마교의 목을 베는 데 일조했다.

<마인들이 뼈도 못 추리고 베어져 나간다!>

<악인들조차도 혹시나 마인으로 오해받을까 악인곡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다!>

<호랑이가 어금니를 드러내니 사악한 여우는 꼬리를 말며 도망가는구나!>

정도회가 무모하다며 욕하던 이들도 곧 그들의 계속되는 승리에 환호하며 기뻐했다.

이대로 정말 마교가 모조리 베어져 나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곧 어느 순간부터 놈들은 강호 전역에서 슬금슬금 자취를 숨겼다.

“후우. 전부 숨어들었군. 마교가 이렇게 쉽게 물러날 리가 없는데?”

황실에서 서신이 한 장 도착한 것도 그때쯤이었다.

진백천의 의문은 정확했다.

강호에서 모습을 감춘 대신 놈들의 움직임은 새외에서 발견되었다.

[북해빙궁의 궁주가 의식을 잃은 상태가 3년 가까이 지속되었음. 숨이 끊어졌다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 형제 사이의 골육상잔(骨肉相殘)이 벌어질 듯. 유일하게 셋째인 막내만이 세력 없이 감금되어 있는 중. 다만 두 형제를 지지하는 자들은 전부 마인들이며 마교임을 숨기지 않고 드러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임.]

황제에게 보고 되었던 서신 그대로였다.

유일하게 추가가 된 것은 그곳에 개방의 태상장로와 적의단이 가 있으며 그들의 생사가 불분명하다는 것이 전부였다.

“북해빙궁은 마교가 눈독을 많이 들이는 곳이기도 했지. 이미 마교의 손에 넘어갔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이었나?”

이것 또한 진백천으로 인한 변화였다.

죽어야 할 태상장로가 살고 황실이 전쟁에서 무너지지 않았다.

태상장로 일행이 북해빙궁으로 가면서 동창의 무인들과 함께 궁주를 돕는 모양이었다.

“북해빙궁을 마교에게서 빼내 온다면 제법 큰 타격이 되겠지.”

그들의 연줄을 타고 남만 야수궁을 비롯해 포달랍궁 등과 연결이 될 수 있었다.

마교에 더더욱 핍박을 받는 이들이니 정도회의 힘이 되어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진백천에게 기다렸다는 듯이 하오문에서 의뢰했던 정보가 도착했다.

진백천은 서신의 첫 번째 줄을 읽을 때부터 눈이 휘둥그레졌다.

[황금마전의 위치를 알아냈습니다.]

과연 하오문이었다.

* * *

서신에는 황금마전이라 예상되는 위치뿐만 아니라 진법에 뛰어난 인물들도 전부 구해놨다는 첨언도 함께였다.

마기자의 비동을 들어갈 때 필요한 이들이었다.

“그나저나 황금마전의 위치가 흑룡강성(黑龍江省)이었다니. 그래서 회귀 전에는 찾을 수가 없었던 건가?”

흑룡강은 요녕과 길림을 지나 동북에 위치한 험한 산지 지역이었다.

황실의 영향력도 거의 없는 곳이다 보니 거침없이 행동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니 마검 따위를 만들고 뿌려댔겠지.’

하오문에서 그들을 추적할 수 있었던 것도 마검을 추적해서였다.

워낙 복잡하게 과정을 꼬아놨지만 놈들도 하나 놓친 것이 있었다.

흑룡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황금이었다.

금노산이 집착하는 황금으로 인해 그곳에 뭔가가 있음을 짐작하고 파내다 보니 황금마전의 꼬리를 잡아낸 것이다.

“위치를 알아냈으니 박살 내는 건 천천히 해도 돼. 어중간한 것보다는 확실한 게 중요하니까.”

진백천은 앞으로 마교의 움직임에 대해 예상했다.

회귀 전 놈들의 행동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한동안은 눈치를 보며 물밑 작업을 들어갈 게 분명했다.

진백천이 일수에 잘라내 버린 마교의 간자들을 다시 만들어내고 강호에 밀고 들어올 기회를 만들려고 할 터였다.

‘가장 큰 목표는 아무래도 황실이겠지?’

강호에서의 마교의 움직임이 거의 없어진 반면, 반역가인 연왕부는 오히려 활발히 움직였다.

연왕부의 무사들 중 태반이 마인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예측이 가능했다.

관과 무림은 물과 기름이니 서로 간섭하면 안 되었지만 진백천은 아니었다.

‘표기장군의 이름으로 놈들을 전부 박살 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지금이라도 당장 움직이고 싶었지만 아직은 정도회를 조금 더 다져놔야 했다.

진백천은 자신의 방에서 정리한 생각을 서신에 옮겨적어 놨다.

그리고 곧바로 회주전으로 향했다.

“회주님 오셨습니까.”

총관과 춘식이 진백천을 반겼다.

그날의 혈사가 있던 뒤 정도회는 생각보다 더욱 차분해졌다.

무림대회로 시끌벅적하던 분위기가 가라앉으며 참가자들이 각각의 문파로 돌아가면서 더욱 그렇게 변했다.

잠시 후 회주전에 장로들을 비롯해 대주급 인사들이 모였다.

“다들 특별한 상황은 없지?”

정보기관인 관음당을 담당하는 전등신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

“네. 마교도 자취를 감추었고 다른 문파에서 들어오는 전서구에도 별다른 내용은 없습니다.”

“상단도 걱정했던 것과 달리 제대로 운영 중입니다. 전에 말씀하셨던 무시객주(無時客主)도 차근차근 진행 중입니다. 이번 혈사 때문인지 곳곳에서 야금 장인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아마도 정마대전이 선포된 이상 정도회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한 듯했다.

더구나 정도회는 야금 장인뿐만 아니라 그 가족까지도 함께 받아들였으니까.

‘그런 이들조차 지금의 평화가 단지 일시적이라는 것쯤은 잘 아는 거겠지.’

진백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적어온 서신을 펼쳐 보였다.

그리고 미리 생각해놨던 것을 말했다.

“나 이번에 폐관수련 좀 하려고.”

갑작스러운 말에 모두가 의문이 섞인 시선으로 쳐다봤다.

“별건 아니고 이번에 깨달은 게 조금 있어서 말이야. 지금 당장은 아니고 일주일 후부터 한 3달 정도면 되겠는데…….”

그가 말을 늘이자 당소예의 서서히 가느다래졌다.

진백천 특유의 놀고 싶어 하는 기질이 또 발동된 게 아닌가 하는 눈치였다.

‘눈치 한번 빠르다니까.’

“크흠. 앞으로 지금 같은 시간도 없을 거야. 굳이 내가 없어도 한동안은 조용할 거고.”

폐관수련에 들어가는 것을 비밀로 하면 굳이 괜한 말도 나오지 않을 터였다.

몇몇이 만류하는 목소리를 보냈지만 이미 결정을 내린 일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적어도 단순히 폐관수련이란 핑계로 처박혀 쉬려는 것이 아니었다.

‘저번처럼 나갔다 온다고 하면 기를 쓰고 말릴 테니까.’

수련동(水連洞)에는 바깥으로 통하는 비밀 통로가 있었다.

그곳을 통해 잠깐 밖으로 나갔다 올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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