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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238화 (238/346)

무림회귀백서 238화

80장 심장의 비밀(4)

죽은 황충을 바라보는 진백천의 눈은 복잡미묘했다.

황충이 마교의 간자였었다는 것을 물론이고, 자신에게 천마의 심장을 박은 존재라는 것이 커다란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에게 느꼈던 충성심 또한 분명 진심이었다.

‘하아. 이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찌 되었든 진백천에게 있어서 황충은 제2의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그것은 절대 변하지 않는 진실이었다.

그렇기에 방금 자신이 봤던 기억을 잊기로 했다.

‘……내가 기억하는 황충은 정도회를 자신의 몸처럼 아끼고 평생을 강호를 위해 살아가던 고집불통이야. 그게 전부야.’

진백천은 떨리는 손으로 황충을 눈을 감겼다.

“……회주님.”

“난 괜찮아. 황충을 안전한 곳에 옮겨놔.”

당소예는 조심스럽게 그의 사체를 들고 움직였다.

진백천은 잠시 그 뒷모습을 지켜보다 고개를 돌렸다.

아직은 슬퍼하거나 분노해서는 안 되었다.

수많은 무인이 아직 목숨을 걸고 전투 중이었다.

“……저희는 3대로써 활동을 이어나가겠습니다. 정문과 후문 상황이 어떤지 들은 게 있어요?”

“후문은 사패천주와 2대가 다른 오마군종대와 맞부딪쳤습니다.”

정문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묵호겁마대(墨虎刦魔隊)와 지옥혈귀대(地獄血鬼隊)였다.

그들은 정문에 이목이 몰린 틈에 뒷길을 노리다 당염의 눈에 딱 걸린 것이다.

그 옆에는 사자혁과 신위들이 함께 있으니 충분히 붙어볼 만한 정도였다.

“후문 쪽은 한 시름 놔도 괜찮겠어.”

“정문 쪽은 조금 복잡합니다. 구악정이 모습을 드러냈고 화산신검께서 그들을 막아섰습니다.”

황충이 빠졌고 그 앞에서 황대원이 싸우고 있지만 지독할 정도로 늘어지는 소모전이었다.

사자혁 같은 괴물이 아니라면 말을 탄 무인들을 상대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1대를 도우러 가죠.”

진백천의 말에 검왕과 유일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굳은 얼굴로 돌아서는데 머리 위로 차가운 빗방울이 떨어졌다.

투둑-

아침부터 먹구름이 지독하게 쌓이더니 결국 쏟아지기 시작했다.

진백천은 점점 젖어 드는 얼굴을 느끼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차라리 다행이군. 피가 굳기 전에 씻겨져 내려갈 테니.’

차가운 비처럼 진백천의 얼굴은 싸늘했다.

* * *

정도회 후문.

사자혁은 내리는 비를 맞으며 환하게 웃었다.

뜨겁게 달구어진 몸이 차갑게 식어가며 김이 피어올랐다.

그의 눈앞에는 검은 구름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마인이 밀집해 있는 상태였다.

묵호겁마대(墨虎刦魔隊)와 지옥혈귀대(地獄血鬼隊).

간을 보며 싸우는 정문과 달리 이놈들은 상대를 끈덕지게 늘어지기를 좋아했다.

검은호랑이나 지옥혈귀와 같은 이름에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암왕. 저자들은 내가 상대하지.”

“뭐? 사패천만으로 상대하기에는 인원이 너무 많다.”

사자혁은 한쪽 입술을 말아 올리며 당염을 쳐다봤다.

오왕 중 하나인 암왕을 상대하는 것 치고는 무척이나 건방진 태도였지만.

여기에 있는 그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분위기가 당연히 그래도 될 것만 같이 느껴졌다.

“사패천이 아니다. 나 사자혁이 상대한다.”

“……미친 건가? 제정신이 아니란 소리는 들었지만…….”

사자혁은 대답 대신 질퍽거리는 땅을 밟으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의 전신에서 서서히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

회천극상룡천(會千極上龍天)을 본격적으로 끌어올릴 때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미풍은 차츰 약풍으로, 약풍은 강풍, 강풍은 곧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할 만큼 매서워졌다.

“신위들은 들어라.”

“네. 천주님!”

“옆으로 새어나가는 놈들을 잡아 죽여라.”

신위들은 굳게 고개를 숙이며 길게 옆으로 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당염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마찬가지로 옆으로 늘어섰다.

“쯧. 사패천주가 굳이 나서겠다는데 우리야 좋지. 뒤에서 지원한다.”

어차피 굳세게 내리는 비로 암기나 독을 사용하기에는 적절치 못했다.

사자혁이 앞으로 나서자 지옥혈귀대의 대주인 혈귀마령과 묵호겁마대의 대주인 묵호검마가 동시에 나왔다.

그는 사자혁처럼 단신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어리석군.”

“저런 놈들을 잘 알지. 혀가 잘리면 울고 불며 비명을 질러댈 거다.”

놈들은 사자혁을 비웃었다.

그는 여전히 무표정하게 계속해서 걸어나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질척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사라지며 사자혁의 몸이 저절로 떠올랐다.

스르릉-

그의 손에 기다란 검이 들려 있었다.

“그래. 결정했다.”

쐐애애애액-

사자혁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한 줄기 빛처럼 뻗어 나간 검 끝은 정확히 혈귀마령의 얼굴을 노렸다.

카앙!

검을 간신히 막은 혈귀마령의 두 눈이 분노로 일렁였다.

그의 가면에 기다란 흠집이 남았다.

사자혁은 허공에서 그를 내려다보며 선언하듯 말했다.

“네놈들은 친히 혀를 뽑아주지. 그편이 어울리겠어.”

“어리석은 놈. 죽어라!”

사자혁은 나서고 혈귀마령과 묵호검마는 뒤로 물러섰다.

그 간극을 채우는 것은 수백여명의 마인들이었다.

마치 검은 물결과도 같은 모습에 사자혁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억지로 지어내는 것이 아니었다.

“회주와의 대련 이후에 이런 좋은 기회가 생기다니. 참으로 운이 좋은 날이다.”

사자혁은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신위들이 등 뒤에 지고 있던 검들은 바닥에 내리꽂았다.

푸욱-

검들은 서서히 사패천의 기운에 휩싸이며 허공에 떠올랐다.

회오리 안에서 수십 개의 검을 조종하는 무인.

마인들은 그를 올려다보며 어딘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자를 마주쳤을 때 드는 자연스러운 공포감이었다.

“두려워하라”

사자혁의 목소리가 주변을 울렸다.

스스스슥-

몸 안에 피어나기 시작한 작은 회오리는 곧 사방으로 넓혀가며 제법 날카롭게 휘몰아쳤다.

“어차피 강자는 살고 약자는 죽을 뿐이다.”

“닥쳐라!”

마인 중 하나가 참지 못하고 땅을 박차고 오르며 사자혁을 공격했다.

떠 있던 검이 그대로 심장에 틀어박히며 마인은 공격하려던 자세 그대로 추락했다.

“오늘은 강자인 내가 너희를 집어삼키는 날이다.”

약육강식(弱肉强食).

사자혁은 그것은 마인들에게 확실히 알려줄 생각이었다.

검들이 서서히 한 방향으로 회전하며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강기를 품은 칼날은 닿는 것이 무엇이든 철저히 피와 살점으로 분쇄했다.

사방에 꿈틀대는 기운 속에서 사자혁은 광적인 미소를 지으며 마인들 위로 내려앉았다.

콰과과과곽-

살육의 시작이었다.

“……허허. 미쳤군.”

“그러게 말입니다. 미친 마인놈들과 더 미친 사패천주의 대결 아닙니까.”

뒤쪽에 서 있던 당천기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쓸려나가는 마인들은 사자혁의 신위를 두려워할 법도 하지만 전혀 그런 기색조차 없었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달려드는 부나방 같았다.

“사패천주가 아무리 이런 싸움에 자신 있다 해도 사람이라면 지치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때 늦지 않고 확실히 지원한다!”

“네. 가주님!”

“가만히만 있지 말고 밀려오는 놈들을 처리해.”

당염은 소용돌이에 튕겨 밀려온 마인을 향해 비수를 던졌다.

목이 꿰뚫린 놈이 비틀거리다 주저앉았다.

당염은 장대비를 쏟아내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비를 뿌려대던 구름은 이제 번쩍거리며 벼락을 내비쳤다.

“아무래도 단순히 지나가는 소나기는 아닌 듯한데 말이지.”

* * *

사자혁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후문과 달리 정문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흑렬마전대(黑裂馬戰隊)는 끈질겼다.

말에서 절대 내리지 않고 계속해서 그들을 몰아붙였다.

강철의 전갑을 둘러싼 말은 또 다른 무기였고 치이기라도 한다면 가슴뼈가 함몰될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흐음! 다들 조금만 더 버텨라!”

황충 대신 앞에 선 황대원이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콰아앙!

황대원에게 동시에 3명의 마인이 무기를 휘둘렀다.

환력신공으로 단단해진 몸이 베이며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칼날에 발라져 있는 극독이 닿는 순간 피를 검게 태웠다.

“조금만 더 지나면 저자도 쓰러지겠군.”

흑렬마전대 대주 사마혈창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를 비롯해 다수의 마인은 아직 제대로 시작하지도 않았다.

말을 탄 마인들을 이용한 차륜전은 그들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분야였다.

더구나 아수검마대와는 무척이나 궁합이 좋았다.

“쇠살을 막아!”

“크헉!”

아수검마대는 검이라고 하기에는 얇고 긴 무기를 휘둘렀다.

그곳에는 기다란 철살이 숨겨져 있었는데 자칫 방심하면 그것이 몸에 박혀 살점을 도려내야 했다.

그 밖에도 각종 암수와 비수는 아수검마대의 자랑이었다.

보다 못한 화산신검을 비롯해 화사판 무인들이 나섰지만 그들이 맡은 마인들은 따로 있었다.

“오랜만이군! 화산신검!”

악귀 가면을 쓴 구악정의 마인들이 화산신검을 노려보았다.

그들의 손에는 정도회의 무사로 보이는 이들의 목이 들려 있었다.

“이것은 늙은이를 주려고 가져온 선물이다.”

수십 개의 머리가 화산신검의 발치로 굴러왔다.

“잔악한 놈들!”

화가 난 화산파 장로가 앞으로 나서려 하자 화산신검이 뒤로 밀어내며 검막을 만들어냈다.

콰아아앙!

폭발은 그들이 던진 머리에서 일어났다.

각각의 입안에 화약과 철 조각을 집어넣어 놓은 것이다.

만약 아무것도 모르고 다가갔다가는 꼼짝없이 폭발에 휩싸일 뻔했다.

구악정의 마인들은 아쉽다는 듯이 껄껄거렸다.

“크크큭. 대장 저 늙은이가 나이를 더 먹더니 눈치가 빨라졌습니다!”

“그만큼 죽을 때가 된 거니까 기뻐해라.”

“물론이죠. 오늘은 기필코 모가지를 따버리겠습니다!”

화산신검은 주름진 눈으로 천천히 구악정의 마인들을 훑었다.

더러운 말투와 달리 놈들은 쉽사리 다가오지 않았다.

여전히 화산신검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단순히 마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들의 실력 또한 과거와 달리 일취월장했다.

“강해졌군.”

“복수는 해야 하니까.”

구악정은 대장의 지시에 따라 천천히 다가왔다.

군대에서나 쓰는 진법이었다.

그들이 변방에서 이유 없이 살육만 자행한 것은 아니었다.

“살(殺)!”

“살(殺)!”

대장의 외침에 전부가 광기 어린 얼굴로 따라 외치며 달려들었다.

사마혈창은 그 모습을 보며 슬슬 마무리 짓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도 정도회 버러지들을 없애고 구악정을 돕는다.”

그동안 아수검마대가 정도회에 숨어 있는 쥐새끼들을 잡아 죽이면 완벽한 승리였다.

뒤편에서 쉬고 있던 3개 조의 흑렬마전대의 무인들이 동시에 황대원을 향해 달려갔다.

드드드득-

거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땅이 울렸다.

황대원은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끼며 전신의 내력을 끌어올렸다.

금혈화린어 내단의 기운의 영향으로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치이익-

희뿌연 김 사이로 투레질하는 말들의 모습이 보였다.

‘버텨야 한다.’

도끼를 쥔 그의 양손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금부일선(金鈇一線).

전심전력을 다한 일초가 빗줄기를 가르며 뻗어 나갔다.

순간적으로 일대의 빗줄기가 전부 앞으로 쏠려 나갔다.

“이히히히힝!”

말 몇 마리와 마인이 함께 베어져 나가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놈들을 짓밟으며 그 뒤로 더 많은 마인들이 질주했다.

그 상태에서 황대원이 할 수 있는 것은 도끼를 더 치켜세우고 자세를 고쳐 잡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암울한 그 상황에서 하늘이 번쩍이며 머리 위로 익숙한 강기의 파도가 쏟아져 내렸다.

콰과과과과곽-

강기의 파도는 빗물과 함께 물굽이 치며 마인들을 휩쓸었다.

그리고 황대원 앞에 떨어져 내린 것은 차가운 표정의 진백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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