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236화
80장 심장의 비밀(2)
정도회 정문.
평소 수백 명의 인파가 지나다니는 거대한 길목은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그 누구도 그런 것을 신경 쓸 여력 따위 없었다.
그저 눈앞에 뻗어오고 부딪쳐오는 무기를 막고 상대를 베는 데 집중할 뿐이었다.
“막아! 놈들이 더 온다!”
“벽을 못 타게 해!”
“황충님을 따라라!”
아수검마대(牙獸劍馬隊)와 흑렬마전대(黑裂馬戰隊).
정도회 정문에 나타난 놈들의 정체였다.
그들은 얼굴이 보이지 않는 철제 가면을 뒤집어쓴 채였다.
아수검마대의 마인들은 어떻게든 벽을 타고 넘어가려 했고, 흑렬마전대는 말을 몰며 정도회 무사들을 끊임없이 공격했다.
드드드득-
일반적인 공격과 말을 타고 하는 공격은 차원이 달랐다.
놈들이 휘두르는 칼날이 닿을 때마다 웬만한 무인들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밀려났다.
그나마 황충과 황대원을 비롯한 천군지사대 가장 앞에 서서 마인들을 막는 중이었다.
금부일선(金鈇一線).
황금빛 서기가 번쩍일 때마다 말머리와 마인의 몸이 잘려 나갔다.
쓰러진 말과 마인은 새로운 장애물이 되어 놈들의 진로를 방해했다.
안으로 들어가는 자들과 막으려는 자들의 치열한 접전이었다.
끊임없이 돌아가며 달려드는 말머리를 보면 헛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다들 체력을 비축해라! 제대로 된 싸움은 아직 시작도 안 됐다!”
정작 그렇게 말하는 황충의 안색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최근 들어 몸이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한 것을 느끼던 그였다.
‘세월 앞에 덧없군!’
씁쓸한 속마음이 먼저 들었지만 겉으로는 절대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한 발자국 나서며 등 뒤에 선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려 했다.
‘내가 쓰러져서는 안 된다. 죽더라도 서서 죽어야 한다!’
후우우욱-
도끼가 허공을 가르며 또 한 명의 마인을 베어 넘겼다.
하지만 잠깐 다른 생각을 해서일까?
마인이 몸이 잘려 나가면서 마지막으로 뻗은 칼을 미처 막아내지 못했다.
푸욱-
가까스로 칼날을 손으로 붙잡았기에 심장이 꿰뚫리는 것을 모면했다.
대신 손바닥은 뼈가 보일 정도로 갈라진 상태가 되었다.
“……친, 친위대장!”
“어서 뒤로 모셔라! 상처 치료부터……!”
황충은 소란스러워지는 무인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호들갑 떨지 마라! 이깟 상처 따위 별거 아니다!”
그는 천을 찢어 손에 둘둘 감았다.
천이 금세 붉게 물들며 젖어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칼날에 독이 묻어 있었는지 왼손이 저릿해졌다.
하지만 지금 그가 맥없이 물러설 수는 없었다.
“다들 자리를 지켜라!”
황충이 떨리는 손으로 도끼를 들어 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의 앞으로 나아갔다.
제 몸집만 한 도끼를 들고 단숨에 마인을 베어내는 것은 다름 아닌 황대원이었다.
“황대원. 물러나라!”
“친위대장님이야말로 물러나시지요.”
“뭐?”
황대원의 단호한 말투에 든 감정은 분노나 당혹감 따위가 아니었다.
황보세가 내에서도 유난히 몸이 작던 놈.
그런 못난이 손자가 자신의 앞을 지키겠다며 당당히 등을 보였다.
그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절기를 마음껏 펼치는 모습이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이제 제가 앞에 서겠습니다. 그러니 할아버지께서는…….”
뒤돌아선 황대원의 등이 점점 커졌다.
단순히 느낌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환력신공(煥力神功)으로 거대해진 근골은 황충을 내려다보는 정도가 되어서야 멈췄다.
“그만 쉬십시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젊은 무사들이 그를 두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들은 전부 황대원의 등을 바라보는 이들이었다.
‘허허.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는 건가.’
자신에게는 절대 있지 않을 거라 생각한 세대교체였다.
하지만 썩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단지 조금 슬픈 게 있다면 아쉬움이랄까.
황충은 뒤편에서 손을 치료받으며 전장을 살폈다.
“이대로면 막아내는데 어렵지 않겠어.”
마인들도 왜인지 아직까지는 필사적인 느낌이 아니었다.
그리고 황충이 다시 일어나려는 순간.
정도회 안쪽에서 거대한 마기의 기둥이 솟구쳤다.
“……무슨 일이지? 왜 정도회 내부에서 저런 마기가?”
“설마 안쪽에서도 공격당하는 중인 건가?”
무사들이 동요했지만 곧 단 한 명일 뿐이라는 것과 진백천과 검왕이 상대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진백천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덕분이었다.
하지만 황충의 눈이 조금 더 가늘어지며 정도회 안쪽을 쳐다봤다.
‘마기가 일어난 방향은 회주전이다. 그렇다는 건 설마…….’
이를 악다무는 그에게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회주님께 가보겠다.”
“지금 정문 상황도 좋지 않은데 빠져나가시면 안 됩니다!”
“아니. 대원이라면 잘 막아낼 거니 너무 걱정 말아라. 그리고 금방 돌아올 테니.”
황충은 대답도 듣지 않고 안쪽으로 향했다.
* * *
진백천은 자칭 천마라는 놈과 격돌했다.
스스로를 마의 종주라 칭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실력이었다.
“자신감 넘치길래 긴장했는데 별거 아니군.”
“단지 남의 기운을 뽑아먹는데 도가 튼 마인인가 봅니다.”
한가지 유일하게 위협적인 것이 있다면 바로 마기였다.
한 줌의 내력으로도 주변을 전부 뒤덮을 정도로 강력했다.
-회주. 여기서 어떻게든 저놈을 끝내야 하네.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말도 안 되게 강해진 것은 잘 알 테니!
그것은 사실이었다.
놈은 진가소가 가지고 있던 무공뿐만 아니라 마화린의 무공도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만약 무당팔검과 매화검수들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여유로울 수 없었다.
“놈! 벗어나지 못한다!”
조금이라도 뻗어 나가려는 마기는 무당팔검의 진법에 막혀 흩어졌다.
반대편에서는 유일환과 매화검수가 틈을 노리니 천마의 몸은 끊임없이 베어졌다 회복되기를 반복되었다.
‘저런 회복력은 가히 인간답지 않다고 해야 하나?’
이미 뜯겨 나간 살점은 전부 회복되고 평범한 모습이었다.
거기에 구촉비전의 무공까지 사용하니 경악스러울 정도에 도달했다.
“심장에 집착하는 놈이니 그곳을 노려보죠. 제가 마기를 뚫겠습니다.”
진백천은 무인들에게 신호를 주며 바닥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매화검수들이 살짝 틈을 벌리자 그곳으로 파고들며 독고구검을 휘둘렀다.
파강식(破彊式).
콰아아아앙!
강기의 파도가 마기의 벽을 두드리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재차 강기를 쏟아내는 진백천과 달리 천마의 신체는 그러지 못했다.
잠시의 틈이라도 생기면 유일환의 매화검이 그를 날카롭게 베고 지나갔다.
서서히 회복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몸이 망가져 갔다.
“회주 비켜라!”
검왕의 목소리의 진백천이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곧바로 자리를 교체하며 검왕이 뛰어들었다.
절단검이 공격의 뒤를 이으며 온몸을 잘게 찢어냈다.
‘후우. 나 혼자 싸울 때보다 확실히 편하네.’
방어는 무당팔검과 매화검수들이 해주었고, 공격은 유일환과 진백천 검왕이 번갈아가며 쏟아부었다.
아직까지 버티는 저 괴이한 몸뚱이도 대단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서서히 무너져나갔다.
-흐흐흐. 귀찮은 놈들! 버러지들이 감히……!
“버러지들에게 물어뜯기는 놈은 뭐? 버러지 먹이냐?”
진백천의 비웃음에 놈이 입술이었던 것을 길게 끌어올렸다.
-내 심장만 있었어도 이렇게 당하지는 않았겠지. 이 작은 것으로는 천마신공을 펼치지 못해.
의념 섞인 목소리는 오로지 진백천에게만 들려왔다.
천마신공이라는 말에 정신이 뜨끔해지는 기분이었지만 진백천은 딱히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진백천은 똑같이 의념으로 놈에게 물었다.
-혹시 네놈이 황보세가에서 격돌했다는 그 자칭 천마냐?
-자칭? 자칭이라.
뭔가 재미난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놈은 숨을 헐떡였다.
검왕의 절단검이 그의 손가락을 모조리 잘라냈지만 웃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그래. 맞다. 나였지. 조금 더 큰 심장을 가진 나였다. 천마의 신체를 가진 가장 천마에 가까운 자였지. 그런데 생각보다 그곳에 모인 놈들이 제법 강했어. 특히…… 검을 휘두르던 그 노인 말이지.
놈이 말하는 것은 화산신검이었다.
그가 휘두른 일검은 아직까지 놈의 뇌리에 남아 있었다.
-아까부터 심장, 심장 그러는데 혹시 4개로 나뉜 천마의 것을 말하는 건가?
-네놈도 천마의 후보자 중 하나이면서 나한테 그런 것을 왜 묻는 거지?
‘천마의 후보자?’
이것 또한 역시나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놈은 이제 방어하는 것도 도외시한 채 진백천만을 쳐다봤다.
그의 몸은 잘려 나가고 회복되길 반복하다 넝마처럼 바닥에 나뒹굴었다.
-크크크큭. 설마 지 몸에 박힌 심장이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고 있는 것이냐?
-심장이 누구 거냐니. 당연히…….
진백천의 말을 끊으며 천마가 눈을 부릅뜨며 대답했다.
-당연히 내 것이었다! 내 몸에 있던 심장을 놈이 뽑아 너의 가슴에 박아넣은 것이다! 새로운 천마의 탄생을 위해서!
진백천은 놈의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도저히 믿기 힘든 말이었다.
‘내 심장이 내 것이 아니라고?’
살면서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었다.
하지만 천마의 신체는 진백천의 그런 반응이 재밌는지 쉬지 않고 말을 이었다.
-흐흐흐. 4개의 심장은 각기 천마의 권능이 담겨 있다! 그중에 네놈이 훔쳐간 그 심장은 천마신공을 펼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지! 천마신공이 비급만 있으면 개나 소나 익힐 수 있는 무공인 줄 알았더냐?
-……뭐라고?
진백천은 그 말에 쉽게 대꾸하지 못했다.
조금은 이상하다 생각했다.
마의 종주이자 만마(萬魔)의 주인인 천마의 무공이었다.
그런 무공을 숨 쉬듯이 쉽게 익혀냈고 연마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라났다.
‘그것이 전부 심장 때문이었다고?’
진백천은 그의 생각에 빠져드는 자신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믿을 수 없다. 전부 사특한 놈의 술수일 뿐이야.’
다 죽어가는 놈이 어떻게든 살기 위해 진백천을 흔들려는 속셈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도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보통이라면 평생을 쌓아도 갖지 못할 내력을 몸에 쌓고 깨달음에 비해 높은 무공 성취를 얻었다.
단순히 운이라고만 생각하기에는 모든 것이 의아했다.
‘그것이 전부 천마의 심장 때문이었다면?’
진백천의 복잡한 속내와 다르게 검왕을 비롯해 다른 이들은 철저히 천마의 신체를 박살 냈다.
마기가 더는 피어오르지 않을 때까지 박살 내고 목을 잘라냈다.
간헐적인 떨림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움직임도 전해지지 않았다.
“후우. 끈질긴 놈이군.”
“이런 끔찍한 무공이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 했습니다. 과연 마교라고 해야 할지.”
그들은 끝이 났다고 생각했는지 공격을 멈췄다.
하지만 진백천의 귓가에는 여전히 놈의 의념이 들려왔다.
-믿기 힘든가 보군. 그렇다면 나 말고 내 심장을 뜯어내 나를 지하에 가둔 녀석의 말을 들어보거라! 마침 이곳에 오는 중이니!
진백천은 놈의 말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멀지 않은 곳에서 다급하게 다가오는 황충의 모습이 보였다.
‘황충?’
그는 바닥에 널브러진 천마의 신체를 보고 경악했다.
그리고 다급하게 도끼를 뽑아 들며 달려들었다.
“물러나라!”
“황충 친위대장?”
-크크큭. 조금 더 놀아주려 했는데 역시나 저놈은 알고 있나 보군!
널브러진 몸뚱이가 격하게 들썩이더니 마화린을 덮칠 때와 마찬가지로 유일환을 향해 뻗어갔다.
“비켜라!”
황충은 거구로 유일환을 밀어내며 부강을 쏟아냈다.
하지만 신체에서 빠져나온 체액은 무기로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체액은 순식간에 황충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황충의 얼굴을 한 놈이 입술을 천천히 말아 올렸다.
-천마의 심장은 말이지. 같은 천마의 심장을 지닌 존재가 아니면 절대…….
그리고 환하게 웃는 얼굴로 진백천에게 대답했다.
“……파괴하지 못합니다. 회주님!”
그의 주변으로 폭발하듯 피어오르는 마기는 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