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234화
79장 전투준비(2)
진백천은 눈을 뜨자마자 바쁘게 움직였다.
우선 정도회 밖에 있는 민간인들이 유사시 대피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그것이 불가능한 이들은 정도회로 들였다.
무림대회를 위해 하루만 고용한다고 말했더니 전부 진백천을 위해 공짜로 일하겠다고 한 것은 제법 감동이었다.
‘이럴 때 회주 할 맛이 난다니까.’
이후는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정도회를 천천히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
어차피 연무장으로 이목이 쏠렸기에 어렵지 않은 과정이었다.
“회주님. 명령하신 대로 끝마쳤습니다.”
정문에는 황충을 비롯해 천군지사대와 장로들이 자리 잡았다.
그들은 제외한 1대의 무인들은 연무장 가 있는 상태였다.
“나머지 2대와 3대는?”
“당 가주님을 비롯해 2대는 비밀리에 움직이신다고 새벽같이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알았어. 그러면 나도 슬슬 연무장으로 가볼까?”
적어도 마인들의 확실한 움직임이 있기까지는 멀쩡히 무림대회가 진행되는 것처럼 보여야 했다.
연무장에는 역시나 인파로 시끌벅적했다.
대부분은 연륜전의 우승자가 누가 될지에 대한 것으로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서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한 자가 있었다.
“회주 나랑 잠깐 이야기하지.”
다름 아닌 사자혁이었다.
진백천이 어제 회의에서 사자혁을 빼놓은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그 존재만큼은 충분히 강하지만 어찌 되었건 그는 사파였다.
흑도방파의 수장격이라 볼 수 있었고, 신위들과 그 밑에 있는 자들 중에 끄나풀이 존재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무슨 일인데? 사혈방이 또 덤벼댔나?”
“흐음. 그런 건 아니고 뭔가 이상한 기류가 흘러서 말이지.”
“기류?”
사자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진백천도 혹시나 하고 올려다봤지만 보이는 것은 우중충한 먹구름뿐이었다.
“내가 익힌 회천극상룡천(會千極上龍天)은 주변의 기운에 극도로 민감하다. 그것은 비단 단순히 내력의 흐름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지.”
그는 진백천이 보지 못하는 뭔가를 확인하고는 불쾌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정도회를 중심으로 거대한 살기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친다. 단순히 한둘의 싸움으로 이뤄질 만한 것이 아니야. 이것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나?”
“흐음.”
진백천은 순간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러한 기색을 알아차린 사자혁에게까지 속인 이유는 없었다.
“곧 마교의 마인들이 이곳을 쳐들어올 거야.”
“마인들이?”
그는 어제 회의하면서 나왔던 것들을 사자혁에게 설명했다.
사자혁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듯 눈을 빛냈다.
다행히도 진백천이 미리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딱히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군.”
“아니다. 비밀스러운 작전이었을 텐데 쉽게 입을 떼기가 어려웠겠지. 지금이라도 말해준 것이 고맙군.”
사자혁은 잠시 생각하더니 결정을 내렸는지 신위들을 불러모았다.
“회주. 나는 2대와 함께 움직이겠다.”
“무림대회에 참석도 안 하고?”
“어차피…… 내가 보는 흐름이라면 곧 전투가 벌어질 거다. 그리고 이곳으로 오는 마인들도 상당할 테고.”
그는 그 말과 함께 신위들을 이끌고 정문으로 향했다.
‘마인들이 상당할 거라고? 정말 뭐라도 보는 건가?’
사자혁이 빠져나가자 그것을 알아본 관중들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진백천은 매화검수들과 무당팔검을 사방에 배치하고 사혈방을 중점적으로 관찰했다.
‘저놈들이 슬슬 움직일 때가 되었는데?’
그리고 마침내 연륜전의 비무가 시작되었다.
진백천이 직접 나서서 진행했지만 비무는 생각보다 재미없었다.
우승 후보였던 매화방의 검노를 비롯해 비우무관의 당초우가 전부 기권을 해버리고 사자혁은 자리를 비워 버렸다.
남은 이들은 그나마 마화린을 비롯한 사파의 인물들이었다.
“다들 대체 어디로 간 거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전부 사라져 버렸잖아.”
“그러고 보니 분위기도 조금 이상하지 않아?”
관중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은 다름 아닌 정도회 무사들의 태도였다.
원래도 딱딱하고 단호한 얼굴이었지만 오늘은 그 궤를 달리했다.
마치 조금이라도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무기에 손까지 올려놓은 상태였다.
그들이 슬슬 비무에서 관심이 사그라들 때쯤 마화린의 차례가 되었다.
상대는 검군(劍君) 유일환이었다.
“화산파의 유일환이오.”
정중한 소개에도 마화린은 그저 서서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다 진백천에게로 시선이 고정되었다.
“역시 눈치챈 건가?”
“뭐를 말이지?”
마화린은 대답 대신 한쪽 입가를 끌어올렸다.
“어차피 이미 늦었다. 말발굽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거든.”
진백천을 비롯해 유일환은 그가 하는 말의 뜻을 알아차렸다.
말발굽이라면 역시나 오마군종대가 분명했다.
그리고 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문 쪽에서 거대한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전부 사혈방을 제압해라! 반항하면 죽여도 좋다!”
정도회 무사들은 관중들을 통제하며 뒤로 물렸다.
관중들은 갑작스레 밀어내는 탓에 화를 내려 했지만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기겁했다.
“마교의 마인들이 공격 중이오! 통제에 따르시오!”
“통제에 따르지 않으면 남녀노소 구분 없이 전부 마교의 간자로 치부하겠오!”
“마, 마교라고? 그들이 갑자기 왜?”
단순히 말뿐이라고 하기에는 들려오는 폭음이 보통이 아니었다.
거친 금속음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그 사이 무당팔검과 매화검수는 사혈방을 전부 포위한 상태였다.
“크큭. 아무것도 모르는 천치라 비웃었더니 뒤로 이렇게 준비를 끝마쳤다 이건가?”
“왜? 우리가 네놈처럼 멍청이인 줄 알았냐?”
“설마 내 정체도 알고 있나?”
“그 재수 없는 희멀건 한 얼굴을 보고 모를 리가 있나.”
“크하하하하하!”
진백천의 노골적인 비웃음에도 마화린은 거칠게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이 상황을 주도하고 있다고 생각했거늘 알고 보니 자신이 어항 속 물고기였다.
“그렇단 말이지? 크크큭.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들이 감히 나를!”
감정이 격해지자 구촉비전의 부작용이 드러나며 그의 두 눈이 붉게 물들었다.
그는 살기 넘치는 눈으로 진백천을 노려왔다.
‘왔다 갔다 하는 꼴이 이놈도 결국 오래 살진 못하겠는데? 쯧.’
“혈라독검(血儸毒劍) 마영. 혈랑대는 들어라.”
“네. 소교주님!”
“곧 이곳을 쑥대밭으로 만들 구악정을 비롯한 마인들을 기다린다. 그동안 미리 이들의 피로 갈증을 없앤다!”
“존명(尊命)!”
사혈방으로 둔갑해 있던 마인들은 마화린의 명령에 검을 빼 들며 주변을 공격했다.
하지만 이미 대기하고 있던 무당팔검을 비롯해 무인들은 능숙하게 그들을 상대했다.
아무리 혈랑대라고 하나 이곳까지 데려온 이들의 수는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이곳이 어디라고 감히!”
“다들 한 놈도 놓치지 마라!”
“네 대사형!”
무당팔검 중 현강의 외침에 다른 이들도 굳게 외치며 달려들었다.
그들은 각기 상대하지 않고 무당의 검진을 펼쳤다.
반대쪽에서는 매화검수들이 막아서니 혈랑대와 혈라독검은 기세와 달리 점점 안으로 몰렸다.
“이게 전부라 생각하지는 않겠지?”
마화린은 애써 속에서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을 가라앉히려 했다.
하지만 곧 이어지는 진백천의 비웃음에 또다시 평정심을 잃었다.
“멍청한 놈아. 대가리란 게 있으면 생각을 해봐라. 내가 진즉에 네놈의 정체를 알면서도 받아준 게 왜 그랬다고 생각하냐? 지금쯤이면 이미 남아 있던 마인 놈들은 전부 처리되었을 거다.”
“헛소리!”
마화린이 거칠게 소리치며 진백천을 향해 손을 뻗었다.
혈수인(血髓印).
손바닥 모양의 핏빛 강기는 진백천이 움직이기도 전에 검에 잘려 나가며 사그라들었다.
마화린을 막아선 것은 검을 늘어뜨린 유일환이었다.
“당신 상대는 나로 알고 있는데?”
“비무 따위를 할 생각이라면 혼자 해라!”
마화린은 땅을 박차며 유일환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단숨에 그의 목을 붙잡고 뜯어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유일환은 그동안 마화린이 상대하던 어중이떠중이들과 달랐다.
매화인동(梅花忍冬).
카앙!
그의 양손이 매화검에 막히며 뒤로 물러났다.
발버둥 치듯 양손을 휘저었지만 단단한 검의 봉우리는 뚫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기세가 주춤거렸다고 생각할 때쯤 유일환의 검이 변화했다.
매화점개(梅花漸開).
마화린의 요혈에 검이 파고들며 몸이 거칠게 흔들렸다.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공격이 성공했지만 유일환은 검을 조금 더 추켜세웠다.
“몸이 쇳덩어리처럼 단단하군.”
“알긴 아는구나. 그깟 공격은 내 몸을 베어낼 수 없다.”
마화린은 조금 전 충격으로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온 듯 보였다.
유일환을 본격적으로 상대하기로 마음먹었는지 전신에서 검은 마기가 일렁이며 피어올랐다.
“기뻐해라. 내가 진심을 다해 상대해 주는 것을!”
유일환은 오만한 그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진백천을 힐끔 쳐다봤다.
“저자는 내가 맡을 테니 볼일 봐. 회주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 많을 테니.”
“그러지. 혹시라도 위험한 상항이 오면 신호탄을 쏴.”
유일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백천은 정도회 무사들과 함께 관중들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갔다.
이대로 정도회 밖으로 나가는 것은 위험했고 전투가 끝날 때까지 잠시 대피해 있을 공간이었다.
상장을 비롯해 아영도 정도회 무사들과 이곳에 있었다.
“혹시 이들 사이에 마교의 간자가 있을 수 있으니 잘 지켜보고 있어.”
“네. 회주님!”
자리를 벗어나려 하자 누군가 큰소리로 외쳤다.
“회, 회주님! 마교라뇨! 그들이 왜 갑자기 쳐들어온 건지 말씀이라도 해주십시오!”
“이대로 여기 뭉쳐 있다가 다 같이 죽는 거 아닙니까?!”
“차, 차라리 지금이라도 밖으로 나가는 게……!”
‘흐음. 이대로 나가 버리면 이들의 불안만 더 커지겠지.’
진백천은 굉음이 울려 퍼지는 정문 쪽을 쳐다봤다가 사람들 앞에 섰다.
기세를 피우자 소란스럽던 장내가 서서히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현재 정도회를 비롯해 각 문파의 무인들이 마교의 마인들과 목숨을 걸고 싸우는 중입니다. 그들의 목표의 강호의 혼란이고 이번 무림대회에서 대규모 기습을 계획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미리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대응 중입니다.”
내력이 깃든 묵직한 목소리는 많은 이들의 귓가에 쏙쏙 들려왔다.
“그러니 불편하더라도 잠시 이곳에서 대기해 주시길 바랍니다. 모든 사태가 해결되면 제가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진백천이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뒤돌아섰다.
그러자 뒤늦게 뒤편에서 사람들의 응원 소리가 들려왔다.
그 응원에는 지금까지 마교를 상대로 항상 이겨왔으니 이번에도 당연히 그럴 거란 믿음이 실려 있었다.
“후우. 상황은 어때?”
진백천의 물음에 당소예가 빠르게 대답했다.
“정문에는 아수검마대(牙獸劍馬隊)와 흑렬마전대(黑裂馬戰隊)가 나타나서 1대와 접전 중이고 후문에는 묵호겁마대(墨虎刦魔隊)와 지옥혈귀대(地獄血鬼隊)가 나타나서 사패천주와 2대가 상대 중이에요.”
“구악정은?”
“아직이에요.”
화산검신은 아직 전투에 나서지 않고 구악정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화산검신 어르신을 보고 놀라서 도망치기라도 하면 좋겠는데.’
그럴 리 없겠지만 진백천의 작은 바람이었다.
“회주님은 어디로 가시게요?”
“정문으로. 그곳에 힘을 모아서 잡아낼 수 있을 만큼 잡아내야지.”
어차피 이곳에서 못 잡더라도 추후에 적으로 다시 만날 놈들이었다.
진백천은 자신을 기다리던 검왕과 함께 정문으로 향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발걸음을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러나?”
검왕과 당소예가 의아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하지만 진백천은 그들을 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 기운. 안 느껴지세요?”
진백천의 시선이 회주전으로 향했다.
경악할 만한 마기는 그곳에서 피어오르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