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233화
79장 전투준비(1)
강량호와 황대원은 회주전에 들어서자마자 주변 상황에 대하여 설명했다.
불과 어제오늘 이틀 사이에 지켜보고 있던 천군지사대 무사 10명이 사라지거나 사체로 발견이 되었다.
강량호의 수라검대는 일부 마인들과 전투까지 벌였지만 놈들은 유유히 자리를 도망쳤다.
“수는 얼마나 돼?”
“지켜본 바로는 최소 300명 정도로 짐작됩니다.”
“흐음. 눈에 보인 게 그 정도라면 숨은 놈들까지 하면 더 많을 거야.”
오마군종대 중 가장 작은 이들의 수도 100명은 훌쩍 넘었다.
4개의 무력대대와 구악정까지 뭉쳤다면 예상되는 마인의 수는.
“적어도 1,000명 이상.”
진백천의 말에 강량호와 황대원이 흠칫한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라면 정도회의 무력대대 전체를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숫자였다.
물론 단순히 숫자가 많은 것뿐이라면 무섭지 않았다.
무인이란 숫자로 싸우는 게 아니니까.
‘문제는 저들이 마교의 정예일 뿐만 아니라, 살인귀들이라는 구악정마저 함께 있다는 거지.’
저들이 이대로 쳐들어 닥친다면 정도회 무사들로는 결코 막을 수 없었다.
“지원 요청은?”
“회주님의 말씀대로 무림대회 전에 미리 전서구를 보내놨습니다. 긴급상황에 도움을 준다고 약속받았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버티기만 해도 우리가 유리해지지.”
그 무엇보다 날카로운 창과 무엇이든 막아내야 하는 방패의 싸움이었다.
“그건 그렇고 놈들의 움직임이 너무 급한데? 아직 무림대회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대놓고 움직인다고?”
“보고에 따르면 몇은 갑옷과 같은 옷을 겹쳐입기도 했다고 합니다.”
“흐음. 뭔가 이상해.”
진백천은 놈들의 공격하려는 순간이 무림대회가 끝나고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놈들에 대해 잘못 생각했나?’
놈들이 기습을 한다면 최적의 순간은 모두의 긴장이 풀리는 무림대회 마지막 날 새벽이 맞았다.
‘하지만 놈들이 노리는 게 다른 거라면?’
진백천은 다시 한번 마교의 입장에 서서 생각했다.
어떻게든 정도회의 타격을 주면서 모든 이에게 공포를 새겨주고 싶어 할 게 분명했다.
‘그러려면…… 단순히 정도회의 무사를 더 많이 죽이는 것쯤은 목표가 될 수 없어. 아무리 피에 미친 놈들이라 해도 그 정도쯤은 생각할 테니까.’
그때 진백천의 뇌리에 뭔가가 번뜩하고 스치듯 지나갔다.
“관중들과 일반인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갑작스러운 진백천의 말에 대주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놈들의 목표가 정도회를 쓰러뜨리는 게 아니라 그저 타격을 주는 거라면?”
그렇다면 모든 게 설명 가능했다.
진백천은 단지 마인의 수를 가늠하며 놈들이 자신과 정도회를 직접 노릴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 단지 강호에 경고를 하는 목적이라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관중과 사람들을 죽여서 공포를 퍼뜨리려 할 거야.”
“……설마…… 일반인들에게까지 그런 짓을…….”
“놈들은 마교야.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아. 정마대전(正魔大戰)의 시작을 알리는 축포(祝砲)라 생각한다면 그 어떤 것보다 공포와 많은 이들의 피가 필요로 하겠지.”
힘없는 관중과 정도회 주변의 일반인들이라면 충분히 그에 부합했다.
더구나 무림대회를 보기 위해 찾았던 사람들을 학살하고 유유히 떠나 버린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정도회의 몫이었다.
“바로 집 앞에서도 놈들의 학살을 못 막았다고 비난이 쏟아지는 건 물론이고 말이지.”
“……무사들의 피해는 적어도 사람들은 정도회를 더는 신뢰하지 않을 겁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단기간에 성장한 정도회로써는 최악입니다.”
황대원과 전등신을 비롯한 대주들은 그제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했다.
단순히 쳐들어오면 막을 생각만 했지 그 밖의 다른 사안들까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후우. 그렇다면 놈들이 쳐들어올 거라 생각되는 시간을 재정립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지.”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릴 시간이 아니겠습니까?”
“무림대회가 진행될 때 말이지?”
연륜전의 결승전이라면 사람들의 이목을 완벽히 빼앗을 만한 순간이었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진백천은 생각을 정리하자마자 곧바로 대주급 이상의 인사를 모아 회의를 진행했다.
그 자리에는 정도회와 동맹 관계인 이들도 함께였다.
검왕과 암왕을 비롯해 사천당가의 무인들과 화산파, 무당파, 종남파, 하오문, 개방 등의 무인들 전부였다.
“그러니까 회주 말로는 연륜전의 마지막쯤에 마교가 정도회를 공격할 거란 말이지?”
당염의 말에 진백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주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괜한 소리는 아닐 테고 그 규모는 어느 정도로 예상하나?”
“마교의 오마군종대를 비롯해 구악정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흐음!”
자리에 모인 이들은 옅게 침음성을 내며 당혹성을 감추지 못했다.
대부분 각파를 대표하는 자들인 만큼 마교의 조직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강함에 대해서도 익히 들었었다.
“아무래도 상황이 좋지 못한 것 같군.”
“제 계산으로는 전면으로 맞붙어도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한 가지 문제라면 역시나 인력 소모였다.
정도회에 모인 이들은 대부분 추후 강호 무림을 이끌어나가야 할 인재들이었다.
그들을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마인들을 죽이는 것과 똑같이 생각해서는 안 되었다.
“그렇다면 제가 미리 짜낸 작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진백천은 이미 이들이 전부 모이기 전에 미리 머릿속으로 작전을 짜놨었다.
각각의 문파의 장단점을 잘 아는 그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황충과 정도회의 장로, 천군지사대, 개방과 소림의 무인들이 모여 1대를 맡습니다. 1대는 정문을 막아내는 역할을 합니다.”
“목숨을 걸고 막아내겠습니다!”
황충이 묵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림의 4대금강 중 하나이자 나한들의 수장인 언규도 깊게 합장했다.
“암왕 어르신과 당가의 무인들을 비롯해 수라검대와 응풍검대, 복건추룡대가 2대를 맡고 정도회 밖에서의 타격대 역할을 합니다. 놈들이 완벽히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모습을 감추세요.”
“끌끌. 타격대라. 우리 당가에게는 여유로운 임무지!”
그리고 나머지 검왕을 비롯해 화산파와 무당파 무인들과 진백천을 모아 3대를 구성했다.
“3대의 최우선 목표는 정도회 내부에 암약하는 마인들의 제거입니다. 그들을 발 빠르게 제거하고 1대와 2대를 돕습니다.”
이렇게까지 되면 이 자리에 있지 않은 정도회의 무인들도 그들을 돕기 시작할 터였다.
거기에 외부에서 올 지원까지 생각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하지만 진백천의 작전 설명에도 몇몇 이들은 아직까지 불안한 기색이었다.
“오마군종대를 막아내는 것은 그렇다 쳐도 구악정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들은 싸움에 도가 튼 놈들이다. 단순히 수성하는 것으로는 힘들 수도 있다.”
검왕이 냉철하게 말했다.
이런 생각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진백천보다 더 먼저 앞으로 나서며 말하는 자가 있었다.
화산파의 검군(劍君) 유일환이었다.
“구악정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절대 무리야.”
진백천은 더 들어볼 생각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유일환이 왜 자신이 나섰는지 정도는 잘 알았다.
구악정과 화산파에 얽힌 악연이 있었고 그들을 몰아냈던 이가 화산신검이었으니 이번에도 그 역할을 맡겠다는 것이었다.
“구악정은 이미 맡을 자가 있으니까 걱정 마.”
“회주가 겪어보지 못해서 그렇겠지만, 구악정은 단일로는 절대 막을 수가 없다.”
“맞아. 놈들을 우습게 봐서는 안 되네!”
“모두의 걱정은 저도 잘 압니다.”
진백천은 다른 사람들의 속마음을 짐작했다는 듯이 힘 있는 눈으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하지만 단순히 그의 말 한마디로 모두가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놈들이 악귀라 하는 구악정이라고 해도 가장 두려워하는 자가 있잖아요. 그렇죠?”
진백천의 물음에 뒤쪽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섰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 가장 놀란 것은 유일환을 비롯해 화산파 무인들이었다.
“허억!”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으며 인사했다.
“스승님! 어찌 이곳에?”
유일환의 말에 모두가 눈을 부릅뜨며 고개를 돌렸다.
“……화산신검(華山神劍)!”
“허허. 회주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서 유람차 나왔다.”
갑작스러운 화산신검의 등장은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검왕은 호승심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화산신검을 향해 마주 섰다.
자연스레 풍기는 기세는 덤이었다.
“크흠! 잠시만 진정 좀 하세요. 이제 마인들과 한바탕 해야 하는데 벌써부터 힘 빼지 말자고요.”
“…….”
진백천의 말에 검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다시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화산신검 어르신과 남은 무사들은 4대를 맡습니다. 그리고 4대의 역할은 구악정의 토벌입니다.”
“그거야 문제없지.”
“화산신검이 함께한다면 이번 전투는 오히려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겠군.”
“구악정을 제외한 놈들이라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지!”
그제서야 자신감을 찾은 이들이 안도해 했다.
전부 단 한 명, 화산신검의 등장 덕분이었다.
그 후로는 진백천의 주도하에 작전이 자세하게 설명되었다.
그 과정에서 현재 정도회에 머물고 있는 마화린의 정체에 대해 자연스레 알려졌다.
역시나 예상했던 것처럼 대부분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그자가…… 마교의 소교주였다고?”
“어쩐지 평범한 자라고 하기에는 손속이 지독한 자였어!”
“대체 왜 지금까지 감추고 있었던 건가? 그냥 지금이라도 당장 붙잡아야 하네!”
마교의 소교주라고 하니 그를 붙잡으면 쉽게 공격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진백천은 고개를 저었다.
“실력을 봐서 알겠지만, 말만 소교주이지 실상은 별것 아닌 자예요. 인질로서도 가치가 없는 놈이니. 3대에서 알아서 처리할게요.”
아직까지는 흑도방파의 탈을 쓰고 온 놈이었다.
괜히 확실한 증거 없이 나서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가능한 내일까지는 아무도 티 내지 말아주세요.”
진백천은 혹시 모르니 여기 있는 자들의 입을 단단히 단속했다.
소교주가 눈치라도 채는 순간 놈들이 어떤 변수를 일으킬지 몰랐다.
그밖에도 자잘한 사항까지 정리한 이들은 늦은 밤이 되어서야 흩어졌다.
심각했던 회주전의 분위기와 달리 정도회는 무림대회를 즐기는 이들로 시끌벅적했다.
“소예야. 늦게까지 수고했어. 어서 들어가서 쉬어.”
“네. 회주님도 푹 쉬세요.”
당소예까지 보낸 진백천은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마침내 정마대전의 시작이었다.
진백천이 바라보는 것은 당장 내일의 전투가 아닌 그 이후였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허무하게 죽고 사라질지 상상하기조차 싫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많이 준비했다. 전처럼 피로 점철된 강호를 만들지 않을 수 있어.”
그런 자신감의 이면에는 불안감도 피어올랐다.
그래서 그럴까.
심장이 평소와 다르게 쿵쾅거리는 느낌이었다.
“젠장. 며칠 전부터 이러네. 후우. 몇 번이나 반복하는 정마대전인데 긴장이 되긴 하나?”
한참을 심장을 꾹꾹 누르던 진백천은 해가 뜨기 전에야 겨우 눈을 조금 부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림대회의 마지막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