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회귀백서-232화 (232/346)

무림회귀백서 232화

78장 무명악인(無名惡人) 권진(2)

정도회 지하고.

천장을 떠받치고 있던 기둥이 부서지자 거대한 암석들이 그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거대한 떨림이 그곳을 지배하고 떠나가자 남은 것은 망가진 잔해들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도 움직임은 존재했으니.

꿈틀-

천마의 신체는 천장이 무너지는 그 짧은 사이에 만년한철의 쇠사슬을 뻗어 통로를 만들어냈다.

겨우 기어갈 만한 작은 틈이었다.

그것은 죽어가는 진가소가 위치한 곳까지 단 2장 길이밖에 되지 않았다.

드드득-

피떡이 된 신체는 아주 느리게, 아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 끝에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이 존재했기에.

힘차게 피를 뿜어내는 살아 있는 심장.

천마의 신체는 지금 그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마침내 목표한 곳에 도달했을 때에는 진가소의 신체도 서서히 생명이 꺼져가는 상태였다.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는다.

몸 위를 덮듯이 올라간 천마의 신체에서 피를 비롯해 모든 기운이 쏟아져나왔다.

그것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진가소의 몸으로 스며들어 갔다.

그러자 망가졌던 진가소의 몸이 스스로 회복되며 금방이라도 멈출 것 같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나는…… 이대로…… 죽지 않는다.

다시 그가 눈을 떴을 때 그 안에는 진가소의 정신은 없었다.

오직 남은 것은 천마의 사념뿐이었다.

* * *

천마의 신체가 꿈틀거리며 지상으로 올라오기 위해 노력 중일 때.

진백천은 이립전의 마지막 비무를 준비 중이었다.

놀랍게도 그는 연달아 이기면서 이제 한 사람만 이기면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물론 비무가 이어질수록 그의 악명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후우. 이제 물만 마셔도 상대의 피를 마신다는 소리가 돌 정도이니.’

소문은 소문을 만들어냈다.

누군가는 권진이 정도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악인곡에서 빠져나온 악인이라는 소리까지 해댔다.

그도 그럴 것이 혹시나 해서 권진에 대해 뒷조사를 했던 자들은 그 어떤 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소문이 없는 자를 골랐으니 당연한 걸 테지만 다른 이들의 시선에는 그렇지 않겠지.’

진백천은 이제 그 소문을 즐기기로 하며 머리를 비웠다.

어차피 무림대회만 끝나면 다시 볼 일 없는 권진이었다.

“……권진. 결승을 시작할 테니 올라오시오.”

진백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무장 위로 올라갔다.

그의 마지막 상대가 될 자는 사천당가의 당웅이었다.

사천당가에 처음 찾아갔을 때 진백천도 본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함께 술을 마시면서 주사위 놀이까지 했던 때가 참 엊그제 같은데 말이지.’

그가 어딘가 아련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당웅이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경계했다.

어딘지 그 눈빛을 오해한 모양이었다.

“사천당가 당웅이오. 마지막 결승이니 좋은 경기를 바라오.”

“권진이오. 나도 같은 마음이오.”

관중들의 반응은 극명히 달랐다.

당운이 소개할 때는 환호하며 응원하던 이들이 권진의 말에는 야유로 돌변했다.

“우우우! 믿을 수 없다! 같은 마음은 무슨!”

“분명 말은 저렇게 하면서 결국 어떻게든 벗겨 먹을 생각뿐일 테지!”

관중석에는 그에게 당했던 청성파의 벽호일부터 형산파의 고당춘까지 전부 나와 있었다.

하나같이 이를 가는 것이 권진에게 갖는 원한이 적지 않은 모양이었다.

‘크흠. 사내놈들이 쪼잔하기는!’

진백천은 어깨를 당당히 펴고 먼저 기수식을 펼쳤다.

사실 기수식이라고 해봤자 손을 뻗어 상대를 경계하는 동작 정도였다.

당웅은 비무가 시작되자마자 거리를 벌리며 물러섰다.

얼핏 펄럭이는 그의 장삼 안쪽으로 검게 칠한 암기들이 보였다.

‘암기술로 결승까지 올라오다니. 제법 실력이 있는 모양인데?’

품속에 넣었다 빼낸 그의 손가락 사이에는 각기 다르게 생긴 암기가 끼워져 있었다.

당웅은 그것을 거침없이 뿌려댔다.

추혼연미표(追魂燕尾標).

각각의 암기는 아무렇지 않게 뻗어오는 것 같았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우습게 보고 쳐내려고 하면 오히려 그 반탄력에 다른 암기들이 더 강하게 뻗어왔다.

보통 당가의 암기술을 떠올리면 만천화우(滿天花雨)를 떠올리지만 실제로 많은 이들이 보는 비수의 비는 이것이 더 많았다.

‘제대로 된 암기술이야.’

진백천은 생각보다 날카로운 공격에 받아치기보다 뒤로 물러나서 거리를 만들었다.

그러자 당웅은 기다렸다는 듯이 쌍장을 뻗어대며 그를 한쪽으로 몰았다.

“내 강철 비수에는 각각 절독이 묻어 있으니 혹시라도 밟지는 마시오!”

그가 그렇게 외치는 것은 전부 이유가 있었다.

추혼연미표로 뿌려진 비수들은 전부 연무장 위에 여름철 꽃잎처럼 깔리기 시작했다.

진백천의 주변으로 쌓이는 것을 보면 의도적인 노림수였다.

‘암기술도 좋고 조급하지도 않으면서 상대를 몰아넣는 머리도 있어.’

어차피 진백천에게 독이야 통할 리 없지만 괜히 그런 모습까지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이제 슬슬 끝내볼까?’

삼양신장(三陽神掌).

뻗어오는 쌍장을 피하며 진백천은 빠르게 하늘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벼락같이 당웅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허공으로 뛰어오르다니! 한심하군!”

당웅은 기다렸다는 듯이 품속에 있던 암기를 전부 쏟아냈다.

진백천의 주변이 순간 비수로 가득 찰 만큼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나라고 생각 없이 뛰어오른 건 아니라고!’

그는 손바닥을 펼치며 흡(噏)자결로 암기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독이 묻은 암기를 손바닥으로 모은다는 것이 자살행위 같아 보였지만 그는 거리낌 없었다.

“죽으려고 작정……!”

그리고 독웅의 머리 위까지 도달했을 때 흡자결을 곧바로 발(發)자결로 바꾸며 모았던 암기를 흩뜨렸다.

독웅은 수십 개의 암기가 쏟아져 내리자 당황하며 몸을 굴렸다.

암기를 던지는 수 외에 몸을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많이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가 다시 몸을 일으켰을 때는 이미 진백천이 그의 목덜미를 움켜쥔 후였다.

“……크윽! 졌, 졌습니다!”

그는 이렇게 허무하게 진 것이 억울한지 이를 악다물며 고개를 떨궜다.

진백천은 자신도 쉬운 비무가 아니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자신의 손을 들어 보였다.

오른팔 전체가 독으로 검게 물든 상태였다.

“실전이었으면 내가 졌을 거요.”

그는 손바닥을 찢어 모아둔 독을 체외로 방출했다.

“……독웅도 대단하지만 그것을 뚫고 들어간 권진도 제법이군!”

“그러게. 인정하긴 싫지만, 이번에는 비무다운 비무였어.”

“사실은 그렇게 나쁜 자는 아닐지도…… 으윽!”

관중들의 목소리를 듣던 진백천은 갑자기 들려오는 신음 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무장에 가까이 있던 자가 갑자기 입을 틀어막고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의 손가락은 방금 진백천이 쏟아낸 독을 가리켰다.

“저, 전부 물러서! 독 기운이 퍼지고 있어!”

그의 말대로 독은 뭉글거리며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뒤늦게 정도회 무사들이 제독을 시행했지만 내공이 약한 자들은 구토를 하며 쓰러졌다.

“……이번에는 관중들을 노린 게 분명해!”

“악독한!”

진백천은 자신을 향해 쏟아져 오는 비난을 들으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그리고 자신 또한 독으로 인해 힘든 척 머리를 붙잡고 쓰러졌다.

이럴 때는 아픈 척이 최고였다.

* * *

이립전의 마지막은 독으로 인해 흐지부지하게 끝이나 버렸다.

관중들은 굳이 권진의 소감을 들어보고 싶지도 않았고, 그 또한 아프다고 하니 그대로 넘어갔다.

‘나야 다행이지. 흐흐.’

역용술을 푼 진백천은 자신의 방에서 춘식과 함께 이해 못 할 웃음을 흘렸다.

그들의 앞에 수북하게 쌓인 것은 어느 누가 감히 상상도 못 할 금액의 전표였다.

연륜전을 제외한 약관전과 이립전의 도박으로 벌어들인 수익이었다

“이게 다 얼마라고?”

“네. 회주님! 수수료를 제하고 전부 금자 4만 냥 하고도 은자 128냥입니다!”

“흐흐흐.”

몇 번이나 물어봤지만 듣는 진백천도 말하는 춘식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처음 투자할 때의 금액을 생각하면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 것만 같은 일이었다.

춘식은 이 금액을 회수하면서 적어도 돈에 관해서 만큼은 진백천의 말을 무조건 따르리라 다짐했다.

왜 그렇게 정도회의 장로들이 재신(財神)이라 떠받드는지 재차 알게 되었다.

“크흠. 춘식아. 그동안 남몰래 내 명령 듣느라 고생했다.”

진백천은 은자 1만 냥짜리 전표를 집어 춘식에게 건넸다.

“허억! 회, 회주님 너무 많습니다!”

“많긴 무슨. 이 돈이 전부 정도회에 쓰인다고 해도 나는 고생하는 수하를 그냥 보고 넘어갈 정도로 무정하지 않아. 그러니 넣어두었다가 총관에게 질 좋은 비단옷이라도 사드려.”

“…….”

받지 않으려던 춘식은 자신의 할아버지인 총관의 이야기를 꺼내자 움찔했다.

“……감사합니다. 회주님!”

진백천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남은 전표를 전부 품속에 밀어 넣었다.

‘후후. 이렇게 또 비자금이 하나 만들어지는구나. 이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지.’

이제 마지막 남은 연륜전에서 화산신검 어르신이 우승한다면 돈 걱정은 더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5년마다 이렇게 돈을 벌면 얼마나 좋을까. 흐흐.’

더구나 권진에게 줄 상금과 대환단도 그의 품에 그대로 남았으니 모든 것이 진백천의 뜻대로만 되어가는 듯했다.

황대원과 강량호, 전등신이 어두운 표정으로 회주전에 들어서기 전까지 말이다.

* * *

정도회 인근.

천군지사대의 무사들은 알게 모르게 모여드는 마인들을 관찰 중이었다.

관찰이라고 해봤자 그들이 하는 일은 주민들이 보고 들은 것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대부분 오가는 상단이니 낭인들처럼 보였지만 확실한 것은 그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최근 옥려산 근처에 2개의 상단이 머물고 있다고 합니다. 말이 상단이라고 하지만 그 수도 상당하고 근처로 다가가면 극도로 경계한다고 하니 평범한 이들은 아닙니다.”

“흐음. 그렇다면 바로 보고부터 하고 확인하러 간다.”

그들은 발이 빠른 자들을 위주로 뭉쳐서 상단을 살폈다.

“흐음. 이자들, 뭔가 이상합니다. 상단이라면 물건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지? 그리고 그 수도 상당해. 적어도 100명은 넘어 보여. 이런 상단이 물건도 없이 돌아다닌다는 건…….”

그때였다.

그들은 멀지 않은 곳에서 흔들리는 풀 소리를 느끼며 무기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낭인들이었다.

“휘이- 지킬 물건이 없는 건 제대로 봤어. 저 안에 있는 건 전부 무기들이거든.”

낭인들은 싸움에 익숙한 듯 천군지사대 무사들을 빠르게 포위했다.

“……너희들은 누구지?”

“하긴 죽어서 올라가면 누가 보냈는지 정도는 알아야겠지?”

낭인은 천천히 무기를 뽑아 들었다.

기다란 기형도에는 이미 한차례 살행을 마무리 지었는지 피가 진득하게 묻어 있었다.

“염라가 묻거든. 구악정의 악귀들이 보냈다고 그러면 알 거야. 이미…….”

낭인은 붉은 가면을 뒤집어썼다.

마귀의 얼굴이었다.

“……우리가 보낸 이들로 넘쳐날 거거든!”

천군지사대 무사들은 그들의 무기에 쓰러지며 죽어갔다.

그리고 그 피가 마르기도 전에 상단은 뒤집어쓰고 있던 겉옷을 집어 던지며 본모습을 드러냈다.

“하아. 오마군종대(八魔群種袋)가 드디어 제대로 나서려는 모양이군. 대장이 언제 쳐들어간다고 했지?”

“연륜전인지 뭔지 끝나갈 때라고 합니다.”

“뭘 그렇게 서둘러서 죽이려는 거야?”

“소교주 X신 새끼가 정도회 회주에게 지독히 무시를 당했는지 빨리 쳐들어오라고 성화랍니다.”

낭인은 기분이 더럽다는 듯이 침을 바닥에 뱉었다.

“퉷. 여기고 저기고 윗대가리 새끼들은 그저 지들 멋대로지. 어차피 뒈지면 다 똑같은 것을.”

그의 시선에 서서히 대열을 만들어가는 무인들의 모습이 담겼다.

오마군종대 중 가장 지독하다는 아수검마대(牙獸劍馬隊)와 흑렬마전대(黑裂馬戰隊)였다.

그들뿐만 아니라 나머지 묵호겁마대(墨虎刦魔隊)와 지옥혈귀대(地獄血鬼隊) 또한 다른 곳에 집결한 상태였다.

“우리도 슬슬 대장에게 돌아간다. 내일 피 맛 좀 보려면 오늘은 푹 쉬어야지.”

그야말로 폭풍전야(暴風前夜)의 밤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