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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229화 (229/346)

무림회귀백서 229화

77장 무인쟁패(武人爭覇)(5)

중혁은 순간 현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분명 자신의 몸과 손은 눈앞의 아이보다 빨랐고 날카로웠다.

원래대로라면 그의 검보다 자신의 손이 먼저 닿아야 했다.

‘그런데 왜?’

바닥을 나뒹군 것은 바로 중혁이었고 왼쪽 팔이 덜렁거렸다.

만약 광소산의 검이 자신의 머리나 가슴을 향했다면 이런 생각을 할 것도 없이 즉사였다.

이것이 비무이기에 살아남았고 사유할 수 있었다.

광소산은 자신의 승리를 짐작한 듯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물러섰다.

‘안 돼. 이대로 끝내선 안 돼.’

중혁의 시선이 관중석으로 향했다.

마화린은 싸늘한 눈빛으로 입술을 말아 올렸다.

그것은 명백한 살소(殺笑)였다.

-일어나라. 남은 아이들이 전부 죽어도 상관없다는 거지?

중혁은 피에 젖은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땅을 밀어내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자신의 피에 미끄러지며 바닥에 엎어질 뿐이었다.

“일어나지 마. 상처가 깊어서 한동안은 요양해야 할 거야.”

담담한 광소산의 말투.

진심으로 중혁을 생각해 주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내가 일어나지 못하면…… 이겨내지 못하면 모두 죽어.’

으드득-

악다문 이가 깨져나가며 핏물이 흘러나왔다.

두 눈이 다시 붉게 변하며 전신에서 구촉비전의 내력이 피와 함께 빠르게 돌았다.

그의 상처가 눈에 띄게 빠르게 회복되었다.

“흐음. 정말 다시 한번 해보겠다고? 다음에는 팔이 아니라 가슴을 향할 거야.”

“……상관…… 없다.”

‘내가 져서 다른 아이들이 전부 죽는다면 차라리 나도 함께 이 자리에서 죽는 것이 나아!’

사혈방의 아이들.

떠돌이 거지였던 자신과 생활을 함께하던 가족이었다.

비록 자신은 이 기이한 무공에 잘 맞아서 선택되었고 이곳에 왔지만 단 한 순간도 가족을 잊은 적 없었다.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그들을 책임져야 돼.’

그런 목표야말로 중혁을 움직이고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었다.

드드득-

중혁은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는 데 성공했다.

전신의 근육이 꿈틀대며 몸을 조금 더 빠르고 강하게 만들었다.

그만큼 구촉비전의 부작용이 커지겠지만, 오히려 그런 것이 그로 하여금 비무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편집증적인 증세는 눈앞의 상대를 이기기 위한 것, 더 나아가 강해지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절대 질 수…… 없다.”

“후우. 역시 쉽게 끝낼 수는 없는 건가?”

광소산은 다시 기수식을 취했다.

정도회의 무사가 금방이라도 비무를 중단시킬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광소산이 원하지 않았다.

“마음껏 덤벼봐. 나는 또다시 베어내 줄 테니.”

중혁은 바닥을 박차며 앞으로 쏘아져 들어갔다

순간 바닥이 깨지며 돌이 사방으로 튈 만큼 강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광소산의 검은 똑같이 중검의 묘리를 담은 채 뻗어 나갔다.

중혁은 알면서도 빨려 들어가듯 검에 베어져 나갔다.

“……크으윽!”

전과 다른 점이라면 중혁은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았다.

어차피 베일 거라면 양손이 아닌 다른 곳을 베게 해주면 되었다.

‘이깟 고통 따위! 아무것도 아니야!’

어깨에서부터 허리까지 길게 베이며 또다시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광소산이라고 해도 아직은 어린아이.

피가 그렇게까지 튀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흠칫하는 순간 중혁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휘이익-

양손을 뻗어 광소산의 어깨를 붙잡으며 매미처럼 달라붙었다.

그리고 목을 끌어안으며 숨통을 조였다.

초식도 공략도 없는 과격한 움직임이었다.

붉게 물든 눈동자와 악다문 입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충분히 그가 악귀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허억! 저놈도 역시 사혈방의 다른 놈과 마찬가지로 짐승 같은 놈이었군!”

“저 정도라면 마공이라도 익힌 게 아닌가?!”

관중들은 하나같이 중혁을 손가락질하며 욕했다.

그것은 중혁에게도 적나라하게 들려왔지만 그렇다고 손에 힘을 풀 수는 없었다.

그가 주변에 어떻게 보이든 지금 이 손에 힘을 푸는 순간 그의 친구들은 전부 죽게 될 테니까.

“미…… 미안…… 하다.”

그는 덜덜 떨리는 입으로 이해 못 할 말을 내뱉으며 손아귀를 조금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

광소산은 그 와중에도 자신의 몸을 떼어내려 발버둥 쳤다.

허리를 감싼 다리뼈가 부러지고 회복되기를 여러 번.

마침내 서서히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소, 소산아!”

광소산은 자신을 지켜보는 사형제들을 바라보며 중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만약 그가 검을 휘두른다면 찰거머리 같은 중혁을 떼어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대신에 등 뒤에 매달린 중혁의 목숨은 장담하지 못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한 수는 자신 또한 수위를 조절하지 못하니까.

“크윽!”

그리고 광소산은 비무 따위를 이기기 위해 상대의 목숨을 취할 정도로 독하지 못했다.

그가 고민하는 사이 눈앞이 희뿌옇게 변하며 서서히 다리에서 힘이 풀렸다.

그런 그의 시야 너머로 누군가 천천히 다가왔다.

“너의 승리니까 그만해라.”

“……크으윽”

중혁은 바로 앞에 선 자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여전히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진백천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중혁을 밀쳐냈다.

태허무극진결의 기운은 역시나 흐려진 그의 정신을 되잡아 주며 이성이 돌아오게끔 만들었다.

그제서야 중혁은 광소산에게서 떨어졌다.

“커헉!”

진백천은 기침하는 광소산의 등을 두드리며 그의 상태를 살폈다.

작은 생채기가 난 것을 제외하면 별것 없었다.

“회, 회주님.”

광소산은 뒤편에 널브러지듯 쓰러져 있는 중혁을 쳐다보다 진백천을 올려다봤다.

두 눈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우승하고 인사드리려 했는데…….”

“아니야. 잘했어. 실전이었다면 더 잘했겠지.”

진백천은 피식 웃으면서 그를 칭찬했다.

이건 단순히 말뿐이 아니었다.

이 나이에 이만한 실력을 가진 아이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더구나 그의 미래를 아는 진백천은 광소산이 얼마나 더 강해질지 잘 알았다.

“나뿐만 아니라 전부가 알았을 거다. 그러니 5년 뒤에는 이립전에 우승해 버려.”

“……네. 알겠습니다.”

칭찬에 다소 풀어진 기색이었지만 여전히 표정은 어두웠다.

진백천은 일부러라도 그의 손목을 붙잡고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지켜보던 관중들에게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웃어. 첫술에 배부를 수 있겠냐?”

“……회주님은 첫술부터 배가 잔뜩 부풀었지 않았습니까?”

“어쭈? 말하는 거 보니까 아직 팔팔한데?”

말장난을 하는 것을 보면 제법 과거의 모습이 떠올랐다.

‘남은 건 중혁이라는 놈과 상장인가?’

중혁은 광소산이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는 동안 비틀거리며 연무장을 벗어났다.

그 뒷모습을 보며 진백천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겨야…… 돼.

비무가 진행되는 동안 그의 속마음은 모조리 엿들었다.

그렇기에 그가 왜 그렇게 승리에 집착하는지는 전부 알게 되었다.

‘……마화린 저 새끼랑 마교놈들 때문이라는 거지.’

설마 어린아이들에게마저 협박을 아끼지 않고 파렴치한 짓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마화린은 진백천을 쳐다보며 비릿한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 모양이 뒤틀리며 문장을 만들어냈다.

-다음 상대인 네 제자도 곧 바닥에 뒹굴게 될 거다.

그 말을 이해한 진백천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웃고는 있지만 어딘가 계속 보고 있으면 무서워지는 섬뜩한 표정이었다.

‘누가 바닥을 나뒹굴게 될지는 끝까지 지켜봐야지.’

* * *

결승까지 올라갔다는 사실 때문일까?

평소 쳐다보지도 않던 마화린은 쉬고 있는 중혁을 찾아왔다.

그리고 친히 자신이 가지고 있던 요상단을 건네기까지 했다.

“먹어라.”

“……감사합니다.”

중혁이 구촉비전의 기운을 끌어올리며 단숨에 뒤틀린 내기를 가라앉혔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마화린의 표정이 어딘가 뒤틀렸다.

처음 보는 그의 운기조식을 통해 어쩌면 자신보다도 더 구촉비전에 익숙한 것을 깨달은 것이다.

금방이라도 그의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은 질투심이 소용돌이쳤다.

“쯧.”

하지만 이내 자신이 이곳에 친히 찾아온 이유를 깨닫고 살기를 지웠다.

운기조식을 끝낸 중혁은 여전히 그가 남아 있자 의아한 표정이었다.

마화린은 눈을 뜬 그에게 알 듯 모를 듯한 소리를 내뱉었다.

“마지막 비무의 상대가 누군지 아느냐?”

“네. 정도회 회주의 제자라고 들었습니다.”

“맞다. 네가 꺾었던 계집의 사제이기도 하지.”

그는 품속에서 단검 하나를 꺼내 중혁에게 건넸다.

스치기만 해도 살이 갈라질 만큼 날카로운 비수였다.

“네놈에게 마지막으로 명령하지. 그놈을 죽여라.”

“…….”

짐작지도 못한 말에 중혁이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마화린은 그런 반응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네놈의 수준이라면 목덜미에 단검을 박는 것 따위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 그건…….”

“그렇게만 한다면 사혈방의 아이들을 전부 풀어주지. 그것뿐만 아니라 더는 무공을 강요하지도 않겠다. 평생 잘 먹고 살 수 있게 지원도 해주고 말이지.”

풀어주겠다는 그 말에 중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설마 이런 제안을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마화린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와 눈을 맞췄다.

그의 유리알 같은 무미건조한 눈동자가 오늘따라 더 무섭게 느껴졌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마지막 명령이다. 네놈이 죽이기만 하면…… 모든 것이 자유로워지는 거다. 그 아이들부터 바로 네놈까지도.”

그것은 위험하지만 무척이나 달콤한 제안이었다.

손을 뻗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중혁은 떨어진 비수를 품속에 챙겨 넣는 것으로 대신했다.

마화린은 뒤틀린 웃음을 지으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 * *

잠시의 휴식 이후.

약관전의 마지막 비무가 마침내 시작되었다.

상장은 아영을 비롯해 검왕과 설수련, 당소예의 응원을 받으며 연무장에 올라섰다.

“사제 꼭 이겨! 저놈 꺾어버리라고!”

“상장 무리하지 말고 하던 대로만 해!”

각기 다른 목소리가 상장의 귓가에 들려왔고 그는 당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반대편에서는 아무런 응원 없이 중혁이 초췌한 모습으로 올라왔다.

그는 메마른 시선으로 마화린을 쳐다봤다.

조금 전 잠깐의 휴식을 취하며 그가 했던 말이 자꾸 귓가를 맴돌았다.

-죽이기만 하면…… 모든 것이 자유로워지는 거다. 그 아이들부터 바로 네놈까지도.

‘그래. 단 한 번이면 돼. 그러면 이 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어.’

하지만 그것은 중혁의 커다란 착각이었다.

사혈방의 아이들 따위는 이미 처리된 지 오래였다.

정도회에 오면서 함께 왔던 다른 구촉무인들도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남은 구촉무인은 중혁 혼자뿐이었다.

마화린이 실패한 무인들인 그들을 그대로 놔둘 리 없었다.

‘죽이자. 한 번만…… 딱 한 번만 하면…….’

중혁의 두 눈에 살기가 맺혔다.

“정도회의 상장입니다!”

“……중혁.”

그는 짧게 자기소개를 하며 품속의 비수를 쥐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이왕 죽이기로 마음먹었으니 단숨에 살수를 쓸 생각이었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면 결코 피하지 못할 거야.’

중혁은 천천히 몸을 숙이며 내력을 끌어올렸다.

전신의 피가 불에 달아오른 기분이었다.

그리고 시작과 함께 전력으로 달려나갔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섬전과도 같은 움직임이었다.

후우우욱-

단검이 정확히 상장의 목덜미를 향했다.

하지만 문득 상장의 두 눈과 마주쳤을 때 중혁은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지독한 살의에도 그의 눈은 조금의 흔들림이 보이지 않았다.

‘……전혀 다른 사람 같다!’

그런데도 이미 손을 뻗어졌고 기호지세였다.

상장이 물러서더라도 끝까지 쫓을 생각이었지만.

스윽-

상장은 광소산과 달리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그저 흔들림 없는 눈으로 정확히 중혁을 직시하며 검을 내뻗었을 뿐이었다.

파지직-

벽력일섬(霹靂一閃).

그리고 곧 중혁의 시야가 새하얗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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