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225화
77장 무인쟁패(武人爭覇)(1)
‘청성파 무인들을 보고 왜 비웃는 거지?’
진백천은 마화린의 의미 없어 보이는 시선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곧바로 뒤편에 있는 황대원에게 청성파 무인에 대한 것을 알아오라고 지시했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 전부였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황대원의 전음이 들려왔다.
-청성파 그 자체로는 별달리 문제 될 게 없었습니다. 무림대회에는 일대제자인 벽호일을 비롯해 3명이 참가했고 전부 본선에 들었습니다.
-전부?
-네. 도중에 과격한 비무가 있었지만 여유롭게 이기고 올라왔습니다.
진백천이 아는 청성파는 그렇게 잘 나가는 문파가 아니었다.
무공보다 정치에 더 신경을 쓰다 보니 자연스레 쇠퇴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대전 운이 좋았다고 쳐도 본선까지 운으로만 올 수는 없었을 거야.’
만약 그가 직접 비무을 봤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겹치는 경우가 없었다.
‘단시간에 갑자기 강해지는 건 뭔가 이상해.’
진백천은 안력에 집중하며 그들을 살폈다.
청성파 무인들은 대제자인 벽호일을 비롯해 전부 날 선 칼처럼 곤두선 모습이었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연무장 옆에서 대기 중인 광소산이었다.
가까이 있었다면 속마음이라도 들어볼 텐데 지금은 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들의 목소리만 들을 수 없었다.
‘적의감마저 드는 모습인데 왜지?’
진백천은 더욱 안력에 집중하며 청성파 무인들을 자세히 살폈다.
그때 유난히 진백천의 신경을 거슬리는 뭔가가 보였다.
‘저 검. 혹시 마검인가?’
겉으로 보이는 것은 평범한 검이었다.
하지만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마기는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종마검(從魔劒)과 비교하면 별것 아니었지만, 사람의 이지를 제압하고 흩뜨리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마검이라 짐작되는 검을 든 이들은 총 네 명이었다.
‘강호 곳곳에 흘러 들어갔다고 하더니 그중에 청성파가 있었나?’
명문정파의 제자들이니 쉽게 이지를 상실하는 경우는 없을 테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진백천은 조만간 그들을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시선을 돌렸다.
-황대원. 청성파 무인들에게서 눈을 떼지 마.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첫 비무가 시작되었다.
개방의 아이와 구촉무인 중 하나였다.
“흐음. 제법 볼 만하겠군.”
어딘가 꾀죄죄한 모습은 비슷했지만 풍기는 기운은 정반대였다.
개방 쪽은 정명한 기운이 눈빛에서부터 역력했고, 구촉무인은 아니었다.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데?’
중혁이라는 아이와 달리 눈에 사기가 가득했다.
구촉비전의 부작용인 편집증적인 증세가 발현된 것일 터였다.
“저는 개방의 소걸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소걸아는 당당히 포권하며 주변에 인사했다.
그리고 구촉무인도 어슷하게 그의 모습을 따라 했다.
“저는…… 사혈방의…….”
뭐라 하는지 제대로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이내 경기가 시작되고 소걸아는 기수식을 취하며 상대를 주시했다,
‘취팔선권(醉八仙拳)인가?’
개방의 총타(總舵)의 제자가 아니면 익힐 수 없는 무공이었다.
“친구가 자신감이 부족하군. 좋은 비무을 해보도록 하지!”
호방한 말에 돌아온 것은 갈고리 형태의 손아귀였다.
손아귀는 정확히 소걸아의 목덜미를 노렸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잔인한 공격이었다.
“흐읍!”
하지만 소걸아는 당황하지 않고 몸을 비틀거리듯 흔들며 그의 손을 쳐냈다.
마치 술 취한 것 같은 움직임은 순식간에 구촉무인의 몸을 후려치며 그를 몰아붙였다.
퍼억!
하지만 평범한 공격은 그를 밀쳐내는 것 정도밖에 안 되었다.
“몸이 상당히 단단하군. 외공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꺼림칙해.”
“고통을 못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요.”
피부가 푸르게 물드는 것을 보면 그편이 더 정확해 보였다.
고통이 차오를수록 오히려 두 눈에 일렁이는 독기가 점점 강해졌다.
‘일금영(一禽影)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구촉비전이야. 아직 대성하지 못했기 때문인가?’
소걸아는 무척이나 노련하게 그를 몰아붙였다.
적당히 힘을 보전하면서 승리를 취해갈 생각이었다.
“크으.”
하지만 그것은 옳지 못한 선택이었다.
마치 짐승처럼 이를 드러낸 구촉무인은 땅을 박차며 무작정 소걸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어리석은!”
무영각(無影脚).
소걸아는 몸을 빙글 돌면서 빠르게 그의 머리를 후려 찼다.
구촉무인의 머리가 크게 흔들리며 전신에 힘이 빠져나갔다.
이대로 기절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그를 상대하는 소걸아가 오해하기에 충분했다.
“크아아악!”
그러나 구촉무인은 순간 힘이 풀어진 그의 다리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손가락이 단단한 근육을 파고들었다.
“흐읍!”
소걸아가 다급히 반대 발로 재차 머리를 후려 찼지만, 상대는 한번 잡은 기회를 절대 놓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살점을 뜯을 듯 움켜쥐며 그를 깔고 뭉갰다.
“허억! 저게 뭐야? 무인이라기보다 짐승 같잖아!”
“세상에 저런 짐승이 어디 있나? 괴물 같은 놈이군!”
구촉무인의 기이한 모습에 관중들도 서서히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마화린만이 만족한 미소를 띠며 지켜보는 중이었다.
비무을 지켜보던 정도회 무사가 진백천의 눈치를 살폈다.
말려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아직 아니야. 소걸아의 눈빛이 살아 있어.”
소걸아는 한쪽 다리에 구촉무인을 매단 채로 허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양손으로 바닥을 밀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놀라울 정도로 단련된 신체였다.
“소형제! 왜 그렇게까지 되었는지는 몰라도 나를 원망 말게!”
그는 거칠게 그를 발로 차내며 떨어뜨렸다.
움켜쥔 손아귀가 빠져나가며 살점이 뜯겨 나갔다.
소걸아는 이를 악다물며 양손을 크게 휘둘렀다.
취선쇄심권(醉仙碎心拳).
강경한 내력이 담긴 두 개의 주먹이 양 가슴을 강하게 후려쳤다.
퍼억!
구촉무인의 몸은 실이 끊어진 연처럼 튕겨 나가 연무장 너머 바닥을 굴렀다.
“……승자 소걸아!”
소걸아는 만신창이가 된 한쪽 다리를 접은 채 한 다리로만 자리에 섰다.
그의 승리로 판정이 났지만 시선은 여전히 구촉무인을 향해 있었다.
“크으으윽!”
놈은 입가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몸을 일으켰다.
두 눈은 여전히 짐승처럼 광기와 독기를 흩뿌렸다.
놈은 재차 앞으로 달려들며 소걸아를 노렸다.
“허억! 저놈 미친 거 아닌가!”
마화린은 여전히 그를 지켜볼 뿐이었다.
“쯧.”
진백천은 가볍게 혀를 차며 자리를 박찼다.
그의 신형이 희끗한 순간 소걸아 앞에 나타났다.
“그만 좀 하고 쉬어라.”
진백천의 손에서 피어난 부드러운 태허무극진결의 기운이 구촉무인을 감싸 안았다.
그러자 방금까지 으르렁대던 놈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릇됨을 쫓고 올바름을 행하는 파사(破邪)의 기운은 흐트러진 그의 정신을 바로잡았다.
“두 아이를 당장 약왕당으로 데려가.”
“네. 회주님!”
“잠깐.”
그들을 막아선 것은 다름 아닌 사혈방의 무인들이었다.
마화린은 여전히 자리에 앉은 채 말했다.
“저것은 우리 물건이니 알아서 치료하지.”
진백천은 연무장에 서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칼날 같은 시선의 끝이 마화린에게 향했다.
그 눈빛을 보자 황대원이 다급히 그에게 다가오려 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뭐?”
그리고 진백천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은 모두가 입을 쩍 벌리기에 충분했다.
“너. 뒈질래?”
“뭐라?”
“뭐가 뭐라는 거야. 쫄리면 지금 당장 올라와. 그대로 희멀건 한 얼굴 검게 만들어 줄 테니까.”
“회, 회주님!”
그의 파격적인 말에 정도회 무사들이 다급하게 말리려 했지만 시선 한 번에 움찔하며 물러섰다.
“다 죽어가는 애를 보고 뭐? 저것은 우리 물건?”
진백천은 자신의 기세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천천히 마화린에게 다가갔다.
“내가 웬만하면 안 끼어들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다. 내 결정이 마음에 안 들면 당장 쳐 올라와. 그 낯짝을 뭉개줄 테니까.”
마화린은 쏟아지는 진백천의 포격 같은 말투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몇 번이나 올라오라는 도발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진백천이 단순히 보이는 것만으로 화를 내는 것이 아니란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지금 올라가면 정말 정도회 회주와 맞대결을 해야 했다.
‘지든 이기든 나에게는 악재다.’
그 도중에 혹시라도 정체라도 밝혀지면 마화린은 호랑이굴에 얼굴을 밀어 넣은 꼴이 되어버렸다.
아직 오마군종대와 구악정의 마인들이 채 도착하지 않은 지금은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그것은 전부 이성적인 핑계였고 본능적으로도 진백천과 맞붙는 것이 꺼려졌다.
‘마지막 구촉무인의 기운은 단번에 흩뜨렸다. 평범한 내력이 아니야.’
상대를 잘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싸움을 벌일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마화린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일그러진 듯 아닌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회주가…… 아주 사람 속을 뒤집어놓는데 소질이 있군. 저것은 잠시 맡기도록 하지. 어차피 쓰레기니까.”
그가 말하는 쓰레기는 다름 아닌 정신을 잃은 구촉무인이었다.
소림의 제자에게 진 이상 자신에게 더는 무가치했다.
마화린은 그 역한 말을 쏟아내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주변의 관중들이 마화린을 야유하며 비웃었지만 걸음을 멈추진 못했다.
“기분 나쁘면 쳐 올라오라고! 야! 어딜 가!”
진백천은 마화린이 사라질 때까지 염장을 뒤집는 소리를 해댔다.
그리고 그가 사라지자마자 안색을 싹 바꾸며 주변에 정중하게 포권을 했다.
방금까지 주먹을 휘저으며 욕을 해대던 이와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크흠. 사해동도 여러분. 갑자기 흥분한 점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회주님 멋있었습니다아!”
“그런 놈은 당연히 혼쭐을 내줘야 합니다!”
대부분은 진백천을 응원했지만 아닌 이들은 못마땅해하며 그를 쳐다봤다.
사혈방과 같은 흑도방 출신인 이들이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나서야 한 것은 이들이 앞으로 강호를 이끌어나갈 미래이자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몇몇 파렴치한 놈들 때문에 아이들이 망가지고 물건 취급당하는 것은 도저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적어도 정도회 무림대회에서는 말입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진백천은 마지막으로 고개를 숙이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의 강경한 말투에는 진심이 눅눅하게 묻어났다.
흑도방 출신들이라고 해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한 진백천의 말에 가장 큰 감명을 받은 것은 역시나 약관전(弱冠戰)에 참여한 이들이었다.
“회주님께서 우리를 저렇게 생각해 주고 계시다니. 생각지도 못했어.”
“상금을 떠나 약관전에 참여하기를 잘한 것 같군.”
그것은 남은 구촉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강호를 이끌어나갈 미래이자 희망…….”
중혁은 쓰러진 다른 구촉무인이 조심스럽게 실려 가는 것과 진백천을 번갈아 봤다.
처음부터 느꼈지만, 저 사람은 지금까지 자신이 만났던 이들과 뭔가 다른 것 같았다.
자꾸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사색은 뒤에서 내뱉어지는 거친 목소리에 끊겼다.
“중혁. 다음은 네 차례다. 방금 놈처럼 멍청하게 쓰러지지 마라.”
그를 항상 감시하는 혈랑대의 마인이었다.
중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인은 그것만으로 부족한지 그의 귓가에 대고 뭔가를 더 속삭였다.
“마화린님이 말씀하시길 만약 네놈이 진다면 사혈방에 있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다른 구촉무인들마저 전부 참수하신다더군.”
“…….”
“부디 목숨을 걸어라. 알았느냐?”
마인은 중혁의 등을 거칠게 밀었다.
흔들리는 그의 시야로 연무장 위로 걸어 나오는 상대가 보였다.
자신의 또래인 여자아이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정도회의 아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