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219화
75장 무림대회 준비(4)
정파는 크게 구파일방(九派一幫)과 오대세가(五大世家)로 나뉘었다.
둘을 나누는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하면 바로 혈연이었다.
무공과 사상으로 묶인 것이 구파일방이라면 오대세가는 자신들의 혈족을 중심으로 뿌리 깊게 내려왔다.
그만큼 자신들의 가문에 대한 자긍심도 높았고 서로에 대한 연합도 끈끈했다.
‘대표적인 게 사천당가였지.’
당천기만 하더라도 몇 차례 맞기 전까지는 자신이 최고 인양 살아왔고 실제로 그렇게 믿어왔다.
그것은 다른 오대세가들도 더욱 심하면 심했지 부족하지 않았다.
‘팽가만 해도 하북에서 왕처럼 군림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끈끈했던 그들도 잠시.
사천당가가 돌연 정도회를 맹우로 표현하며 당천아와 무인들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북팽가마저 진백천의 손에 박살이 나며 봉문을 해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이 이들에게는 불안감이 되어버린 거야.’
어떻게 보면 자신들을 직접적으로 노리는 게 아닐까 의심도 들었다.
그것도 그런 것이 오대세가 중 무려 2곳이 구심점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다.
그나마 남은 세가는 독자노선으로 움직이는 황보세가를 제외하고 제갈세가와 남궁세가였다.
‘이들 입장에서는 내가 미울 만도 하지.’
남궁세가가 오대세가에서 오른팔이었다면 제갈세가는 두뇌였다.
바로 눈앞에서 살덩어리들이 찢겨나갔는데 날이 갈수록 정도회는 번창했다.
이들의 눈이 뒤집히지 않을 리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하는 마음가짐부터 다른 이들과 달랐다.
-어떻게든 이자를 꺾어서 실추된 명예를 되찾고 이름을 알리겠다!
아직 피 끓는 젊은 이들이기에 이러한 마음을 더 뜨겁게 타올랐다.
제갈풍과 달리 남궁휘는 자신의 경계를 감추지 않고 드러냈다.
-앞으로 내가 세가를 이어받으면 계속해서 맞붙어야 할 상대이다. 이번 기회에 어떻게든 꺾어버려야 한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남궁휘는 당당히 손을 뻗으며 말했다.
굳게 선 자세와 정명한 눈빛은 명문(名門)으로 통용되는 무림세가(武林勢家) 중의 으뜸이라 하는 남궁세가의 소가주다웠다.
이미 어릴 때부터 벌모세수와 가주의 내력인 천뢰기(天雷氣)를 도인받아 또래에서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강했다.
‘내 눈에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꼴이지만.’
남궁휘의 뻗은 오른손에는 천뢰기의 기운이 가득했다.
평범한 이가 저 손을 마주 잡는다면 그 기운에 전신이 비틀어지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하찮은 내력 싸움이라도 하며 기선제압을 하려는 모양인데 진백천은 이런 것을 피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내력이라면 나도 지지 않거든.’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손을 뻗었다.
그러자 남궁휘가 먹이를 낚아채는 매처럼 손을 움켜쥐었다.
찌릿- 하며 천뢰기가 그의 손을 타고 맹렬히 들어왔다.
하지만 곧 마주친 진백천의 내력에 순한 강아지가 되어 멈춰 섰다.
“……흐음.”
남궁휘는 자신이 내력을 쏟아부음에도 멀쩡히 서 있는 진백천을 보며 의아해했다.
“왜 뭔가 이상한가?”
진백천은 어렴풋하던 미소가 점점 진해졌다.
그에 따라 뭉쳐가던 천뢰기와 진백천의 내력이 서서히 역류하기 시작했다.
목표는 당연히 남궁휘였다.
“허억!”
역류하는 내력을 느낀 남궁휘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떼려고 했지만 꽉 붙잡힌 채 옴짝달싹 못 했다.
진백천은 그런 그를 무심히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하면 모두가 무릎을 꿇었지?”
“……그게 무슨?”
“너희들이 알아야 할 게 하나 있는데 말이야.”
“끄으윽!”
남궁휘의 한쪽 무릎이 휘청이며 쓰러졌다.
그런데도 여전히 손은 떨어지지 않았다.
“여기는 네놈들 안방이 아니야. 정도회라고. 또 같잖은 생각을 한다면…….”
타악-
진백천이 손에 힘을 풀자 발버둥 치던 남궁휘가 뒤로 넘어졌다.
한없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진백천과 바닥에 널브러진 그.
마치 지금의 상황을 말해주는 듯한 위치였다.
“……그때는 지금처럼 단순히 바닥을 구르는 것만은 아니게 될 거야.”
으드득!
남궁휘는 이를 악다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잠시 푸르게 빛나는 눈동자로 진백천을 노려보다 훽 하고 돌아섰다.
-……지금은 싸울 수 없다! 무림대회가…… 우선이다!
남궁휘가 돌아나가자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제갈풍이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역시 평범한 이는 아니야. 하지만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법이지.
“흐음. 역시 호랑이 새끼는 어려도 호랑이인가. 겁을 줘도 기가 죽지 않으니.”
진백천은 가볍게 손을 털어내며 말했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천뢰기의 영향으로 손바닥이 검게 타들어 간 상태였다.
“제갈세가와 남궁세가에서 데려온 무인의 규모가 어떻게 되지?”
“50여 명 정도 됩니다.”
가주나 장로의 수는 적어도 전부 일대제자 이상의 정예들이었다.
한마디로 목에 힘을 팍 주고 나타난 것이었다.
“분명히 무림대회에 참가하겠지?”
“네. 물론입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무림대회 접수는 어디서 하냐는 문의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혹시 선착순 모집이 아닌지 걱정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관심이 많은 건 좋은 거지. 지금 당장 접수받지 말고 벽보부터 걸자.”
벽보라는 말에 춘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곧 진백천이 미리 적어둔 종이를 주자 그것을 읽어보고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림대회 공지사항, 이라 시작된 글은 이번 무림대회를 어떻게 진행할 것이며 그 우승 상금에 대해 적혀 있었다.
춘식이 놀란 것은 단연 그 상금 때문이었다.
“회, 회주님. 이거 정말로……?”
“응. 그대로 할 거니까 객당과 정문을 비롯해 잘 보이게 붙여놔.”
“……알겠습니다.”
춘식은 군말 없이 시키는 대로 했지만 이 벽보가 붙는 순간부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술렁거리게 될지는 충분히 짐작이 갔다.
* * *
사람들의 반응은 춘식의 예상대로였다.
춘식이 붙인 벽보는 무림대회에 참가할 사람들부터 단순히 그것을 관람할 생각이었던 이들까지 놀라게 만들었다.
무림대회에 관심 없던 이들부터 강호의 호사가들,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도 모이면 모두 그것에 대해 떠들어댔다.
“자네 이번에 붙은 벽보 봤나?”
“봤기만 했겠나.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몇 번이나 살펴봤지.”
“그런데 정말 그렇게까지 우승자들에게 상금을 줄까?”
“이 사람아! 언제 회주님이 거짓을 말한 적이 있던가?”
“그건 그렇지. 하지만 너무 안 믿겨서 하는 말일세.”
그들이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5년 전과 비슷하게 진행이 될 줄 알았던 무림대회가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나이제한 없이 하나로 진행되던 것이 이번에는 세 분야로 나뉘었다.
<20세 미만만 참여 가능한 약관전(弱冠戰).>
<20세부터 30세 미만만 참여 가능한 이립전(而立戰).>
<나이 상관없이 아무나 참여 가능한 연륜전(年輪戰).>
“이번에 약관전을 연다고 하니까 각 문파에서 뒤늦게 이대, 삼대 제자들도 전부 불러모으기 시작했다더군.”
“하긴. 그 보상을 보면 참여하지 않으면 손해일 정도니까.”
진백천은 통 크게 상금을 걸겠다고 한 만큼 정말로 눈이 뒤집힐 정도의 상금을 내걸었다.
<약관전(弱冠戰) 우승자 은자 1만 냥 및 만년한철(萬年寒鐵)의 보검>
<이립전(而立戰) 우승자 은자 2만 냥 및 대환단 1알>
<연륜전(年輪戰) 우승자 금자 1만 냥 및 차기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황금패>
“……하아. 은자 1만 냥이라니. 우승자는 20살이 채 넘기도 전에 부자가 되는 거 아닌가! 내 자식도 공부 말고 무공이나 시킬 걸 그랬어!”
“그러지 말고 자네가 이립전에 나가 우승하는 게 어떤가?”
“에이. 말이 되는 소릴!”
이것은 단순히 아무렇게나 정한 것이 아니었다.
진백천은 각 나이대별로 가장 원하는 것을 중점으로 상금을 내걸었다.
약관전의 어린 무인들에게는 만년한철의 보검을, 이립전의 청년들에게는 대환단이라는 보물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이든 무인들에게는 그들이 가장 욕심낼 만한 명예였다.
“차기 천하제일인이라. 그렇다면 화산신검의 뒤를 잇는 자를 뽑는 거겠지?”
“자네는 누가 될 거 같은가?”
“그거야 누가 지원하는가에 따라 달라지겠지.”
‘무인에게 있어서 명예란 목숨보다도 더 무거운 것이기도 하지.’
이러한 진백천의 의도는 사람들의 마음을 출렁이게 만들었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돈은 물론이고 보물이 기다리고 있으니 자신의 이름을 알릴 무인들이 도전하지 않을 리 없었다.
겨우 보름 가까이밖에 남지 않았지만 지금보다 더 많은 무인이 정도회로 향하기 시작했다.
전 강호의 이목이 다시 한번 정도회로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런 호사가들과 달리 다른 의미로 놀란 이들도 존재했다.
* * *
“……회주님. 벽보에 관한 설명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회주전에 모인 장로들과 대주급 이상의 무인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진백천을 쳐다봤다.
“총 은자 3만 냥에 금자 1만 냥, 대환단 1알, 만년한철 보검, 그리고 황금패…….”
그것을 무표정하게 읊조리는 것은 당천아였다.
아무래도 운룡상단의 운영을 맡다 보니 금전에 관한 것은 그녀가 제일 민감했다.
“아무리 창고에 금이 넘쳐나는 정도회라고 해도 이 정도 되는 재화를…… 후우…… 단발성으로 뿌려댈 수는 없어요.”
당천아는 차마 진백천이라 화를 내지 못하고 사근사근 말했다.
“더구나 대환단이라뇨. 현재 소림에서도 없어서 공개하지 못하는 단약…….”
진백천은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품속에서 목갑을 열어 대환단을 보여주었다.
“선물로 받은 거 있어. 이미 상금으로 쓴다고 소림에도 말해놨어.”
황충과 장로들 중 일부가 대환단에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진백천이 생각 없이 그것을 적어놨을 리 없다고 믿었다.
“……그렇다고 해도 다른 것들이 더 문제에요. 이만한 재화를 쏟아낸다면 장기적으로 볼 때…….”
진백천은 이번에도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얼핏 화산파에서 받았던 금두꺼비가 모습을 보였지만 그것은 다시 깊숙이 파묻혔다.
“잠깐만. 여기 있을 텐데…….”
좁아 보이는 품속에 어찌 그토록 많은 것들이 들어 있는지 꽤나 뒤적거리고 나서야 원하던 것을 끄집어냈다.
그것은 한 손에 채 다 잡히지도 않을 만큼 둘둘 말린 전표였다.
투욱-
탁자에 놓인 전표는 천천히 굴러서 중앙에 멈췄다.
모두의 시선이 그것을 따라 이동하는 게 꽤나 재밌었다.
“이게…… 다 뭐죠?”
“뭐긴. 돈이지. 하북팽가에서 받은 일부부터 여기저기서 받았던 것들이야. 전표만 합친 거니까 대략…… 5만 냥 정도 되려나? 현물들까지 합치면 7~8만 냥 될 거야. 다 세보진 않았으니까.”
꿀꺽-
누군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천아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충분히 정도회에 있는 돈과 합쳐서 무림대회의 상금을 지급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은자 8만 냥이면 충분히…….”
재차 설명하려던 당천아가 전표를 집으려던 동작 그대로 딱딱히 굳었다.
설마- 하는 생각이 그녀의 뇌리를 강하게 두드렸다.
“누가 은자래? 당연히 금자 8만 냥이지.”
지독한 침묵 속에서 유일하게 흔들리는 것은 황충을 비롯한 장로들의 눈동자였다.
무림대회의 상금을 몇 번을 내고도 남을 만한 금액에 모두는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의자째 뒤로 천천히 뒤로 넘어갔다.
“……끄어어억…….”
금자 8만 냥에 놀란 약왕당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