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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215화 (215/346)

무림회귀백서 215화

74장 제자(3)

“……네?”

상장은 진백천의 말에 순간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되물었다.

그리고 두 눈만 꿈뻑거렸다.

진씨세가의 독문무공.

다른 말로 하자면 진씨세가에 속한 이들이 아니면 절대 익혀서는 안 되는 무공이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진씨세가에 남은 이는 많지 않지. 대를 이은 나를 빼면 아는 이가 없다고 봐도 될 정도니까.”

“그, 그러면…… 제가 어떻게?”

상장은 자신이 어떻게 그런 무공을 익히게 된 것인지조차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진씨 아저씨가 단순히 외부에 비밀이라고 말했을 뿐이지 이런 비밀이 있을 줄은 몰랐다.

서서히 굳어지는 표정이 현재 사태에 대해 인지를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정작 진백천은 어깨를 으쓱이며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내가 지금 궁금한 건 그 진소가라는 사람이 대체 누구냐는 거야.”

상장은 자신이 아는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매사 껄렁거리며 술을 무척이나 좋아하긴 했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그가 오기 전에 상당히 오래 정도회에서 근무한 위사기도 했고 말이다.

“……절대 나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래? 혹시 나나 정도회에 대해서는 한 이야기도 있나?”

“지금의 모습이 보기 좋다고 몇 번씩 말하기는 했습니다. 전과 다르다고요.”

진백천은 상장의 속마음을 들으며 속이는 것이 없음을 알아차렸다.

‘딱히 적의가 있던 자는 아니야. 설마 우리 가문의 유령 호법 이런 건가?’

단 한 번 마주쳤을 뿐이지만 속마음이 들리지 않았을뿐더러 그 실력을 전혀 가늠하지 못했다.

‘정체가 들통나자 몸을 숨겼을지도.’

하지만 혼자 고민해 봤자 나오는 답은 없었다.

진백천은 그에 대한 생각을 지우며 상장에게 집중했다.

그는 방금 들은 말에 제법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진백천이 훔쳐 익힌 무공에 대한 벌로 근골을 자르고 단전을 폐해도 할 말이 없었다.

“……회주님. 죄송합니다.”

“괜찮아. 우리 가문의 무공을 익혔지만 계속해서 익힐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상장은 그 말에 눈을 부릅뜨고 쳐다봤다.

“왜? 내가 설마 단전이라도 폐할까 봐?”

“……보통은 그렇게 한다고 들었습니다.”

“맞아. 대부분의 가문은 직계가 아닌 이상 독문무공을 알려주지 않지. 하지만 진씨세가의 직계라고 해봤자 따지고 보면 나 하나뿐이거든. 내가 내 제자한테 알려주겠다는데 무슨 상관이야.”

상장은 진백천의 말을 듣다가 ‘제자’라는 단어에 움찔했다.

그리고 자신이 잘못 들었을 거라 확신하는 표정으로 진백천을 쳐다봤다.

“왜?”

“……방금 제자라고…….”

“응. 제자에게 알려주는 거라면 상관없을 거야. 싫어?”

상장은 고개를 크게 흔들며 자세를 고쳐잡았다.

“……받아만 주신다면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그래.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어. 아까 나를 닮고 싶다고 했지?”

“네.”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어떻게든 나를 뛰어넘어.”

상장은 아무 말 없이 진백천을 올려다봤다.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아챘지만 알았다는 대답은 쉽게 하지 못했다.

진백천에 대한 존중이나 이런 것 때문이 아니었다.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저따위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니, 가능해. 지금과 같은 노력이라면 충분히.”

그것은 단순히 상장의 기를 올려주기 위한 말뿐이 아니었다.

진백천은 지금 이 순간에서도 상장이 습관적으로 청룡백상심법을 운용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위험할 수도 있지만 그는 매 순간 그 정도를 조절하며 내력을 움직였다.

어떻게 보면 진백천의 그릇으로는 절대 알아보지 못한 새로운 재능의 영역이었다.

‘대기(大器)였던 거야.’

너무 큰 그릇은 작은 그릇보다 못했다.

자신의 용량을 알지도 못할뿐더러 아무리 채워도 그것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적당한 그릇을 가진 이들은 대기를 보면 어리석다- 재능이 없다- 욕했다.

즉시 그 결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무인의 고하를 결정하는 것은 근골과 내력이 대부분이지만 근성이 포함되지 않는 것은 아니야.’

근성.

그것은 일류가 되는 모든 무인이 갖춰야 하는 것임과 동시에 겉으로는 절대 알 수 없었다.

상장은 그것을 타고난 것이 분명했다.

진백천이 지금까지 봐 왔던 그 누구보다 더더욱 말이다.

‘너무 커서 다 못 채울 그릇이라는 건 없어. 적어도 나한테는.’

그가 아는 것들을 전부 쑤셔 넣어 주면 된다.

그게 얼마나 되건 대기는 그것을 모조리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테니까.

“상장. 너는 무공을 왜 배우려 하는 거지?”

이것은 진백천의 순수한 호기심 섞인 질문이었다.

무엇이 그토록 상장을 이끄는지 그 근원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상장은 질문이 어떠한 시험이라고 생각했는지 표정이 진지해졌다.

얼굴이 일그러졌다가 펴지길 반복되길 여러 번, 마침내 그는 입을 열었다.

“……검을 휘두를 때 행복합니다.”

“행복하다고?”

진백천으로써는 도저히 예상치 못했던 대답이었다.

“검을 잡고 있으면 아무 생각도 안 납니다. 휘두르고 또 휘두르다 보면 친구만 남아서 저와 함께합니다.”

“친구?”

진백천은 상장이 말하는 친구가 바로 자신의 검임을 알아차렸다.

하도 휘둘러서 이빨이 여기저기 나간 싸구려 철검이었다.

‘행복이라. 이건 전혀 기대치 않던 대답인데.’

진백천은 그저 상장의 머리를 토닥였다.

“그래. 나는 잘 모르겠지만 그 친구랑 오래 지내게 해주마. 어때? 내 제자가 될래?”

상장은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절을 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스승님이 생기면 구배지례를 해야 한다는 말을 떠올린 것이다.

원래는 진소가에게 하고 싶었지만 그는 한사코 거절을 했었다.

-……진씨 아저씨가 나에게는 또 다른 스승이 찾아올 거라 했지. 그게 회주님이었던 건가?

그는 감정이 격해졌는지 붉어진 눈시울로 9번의 절을 끝마쳤다.

“좋아. 이제 스승하고 불러봐.”

“……스, 스승님.”

“그래.”

진백천은 어색한 그 부름에 피식 웃었다.

어쩌면 처음 산적 분장을 하고 나타났을 때부터, 나아가 아버지를 잃고 울부짖으며 강해지고 싶다고 말하던 때부터.

이런 순간이 찾아올 것을 예감했는지 몰랐다.

‘이런 걸 보면 운명이라는 게 존재하긴 하는가 봐?’

그것은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기도 했다.

과연 진백천 자신의 운명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수위는 그만두고 당장 내일부터라도 회주전으로 찾아와.”

“알겠습니다.”

그 대화를 끝으로 상장의 집에서 나왔다.

물론 그전에 삼 형제의 어머니에게 음식을 차려준 값에 대한 비용은 두둑이 드렸다.

너무 놀라서 입을 벙긋거릴 만큼.

“후우. 너무 오래 있었나?”

진백천은 슬슬 지평선 너머로 넘치듯 사라지는 해를 지켜봤다.

분명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그저 지켜볼 시간은 없었다.

당염이 오늘 중으로 이야기하자고 했고 조금 더 늦었다간 꼬라지를 부릴 게 분명했다.

‘으으. 또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나 몰라.’

진백천은 서둘러 회주전으로 향했다.

그러자 웬일인지 안절부절못하던 당소예가 그를 발견하고 황급히 다가왔다.

“회주님! 어딜 갔다 이렇게 늦으세요!”

“무슨 일인데 그래?”

“지금…… 별당에서 당 가주님이 기다리고 계세요. 벌써 기다리신 지 1시진이 넘었어요.”

이건 진백천도 예상 못 한 상황이었다.

자존심 센 늙은이가 이렇게까지 먼저 와 있던 것을 보면 꽤나 급한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단순히 당천아와 정혼하라는 이야기는 아닐 테고. 역시 그 일 때문인가?’

그 일이라면 황실 상단과의 갈등을 말했다.

사천의 이권을 손에 꽉 쥐고 상단을 여러 개 운영하던 당가는 욕심을 부리다 대차게 박살이 나버린다.

꼬리 자르듯 상단 하나를 처분하지만 황실 상단에 밀려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줘야 했다.

‘황실 상단을 운영하던 고유빈의 상재가 있었지만 당가가 지나칠 정도로 독점을 하던 것도 문제였지.’

힘으로만 독점하던 이들이 오히려 황실 상단에 힘으로 밀려 버린 것이다.

아직은 일어나지 않아야 할 사건이었지만 대체적으로 흐름이 빨라지며 지금 일어나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별당이라고?”

“네. 회주님. 술이라도 같이 들여보낼까요?”

“좋지.”

진백천이 별당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곳에는 당염을 비롯해 당천아와 당천기마저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분위기가 왜 이래?’

방금까지 싸우기라도 한 듯 당천아의 얼굴은 붉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당천기를 힐끔 쳐다보자 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

-왜 이래?

-가주님하고 천아랑 대판 싸웠다.

-뭐 때문에?

-상단 문제 때문에…….

당천기가 뭐라 더 말하려 했지만 당염의 눈빛 한 번에 전음이 뚝 끊겼다.

“크흠. 회주. 조금 늦었군.”

“네. 죄송합니다.”

진백천은 더 뭐라 하기 전에 고개를 숙이며 들어갔다.

곧 당소예가 술과 함께 음식을 들여보내자 딱딱했던 분위기가 조금은 풀어졌다.

당천아는 진백천 앞에서 더 이런 모습을 보이기 싫었는지 애써 웃음을 지었다.

당염은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혀를 찼다.

“무슨 불만 있으세요?”

“뭐?”

“음식도 맛있고 술도 좋은데 혀를 차시니까요.”

진백천의 당돌한 질문에 당염은 그가 원래 그런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렸다.

“불만이야 많지!”

“그러면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보세요. 당 소저의 입장을 봐서라도 들어드리겠습니다.”

당염 본인보다 당천아를 더 앞세우는 듯한 말이었다.

“재밌군. 재밌어.”

그는 칼날 같은 눈을 빛내며 진백천을 노려봤다.

그리고 눈을 떼지 않으며 술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말하라고 하니 말하지! 왜 천아와 정혼하지 않는 거지?”

“어디 정혼을 맡겨두기라도 했습니까? 마음이 맞아야 정혼을 하죠.”

“천아가 마음에 들지 않나?”

그 물음에 당천아가 움찔했다.

진백천은 그녀를 쳐다보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건 아니에요. 당 소저 정도면 저야 과분하죠. 단지 지금 상황이 상황인지라.”

“무슨 상황? 마교라도 쳐들어온다고 하는가?!”

그가 탁자를 내리치며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진백천도 마찬가지로 탁자에 손을 올렸다.

두 가지 내력이 서로 상쇄하며 탁자가 부서지거나 물건이 튀지 않았다.

당염은 그 교묘한 술수에 놀라면서도 기세를 줄이지 않았다.

내력 싸움으로 이어질 만한 상황은 이어지는 담담한 말에 허무하게 끝이 나버렸다.

“네. 마교가 쳐들어온답니다.”

“뭐라? 되는 말이라고 막…….”

“……하는 거 아닌데요?”

진백천은 항상 메고 다니던 종마검(從魔劒)을 탁자 위에 올려놨다.

그것을 쳐다본 당염의 눈가가 가늘어지며 주름이 자글자글해졌다.

“마교에서 중원에 뿌리는 마검이에요. 집는 순간 이지를 상실하고 마인이 되어버리는 극악한 물건들이죠.”

마검이라는 말에 당천아가 놀라며 종마검을 쳐다봤다.

“그렇다면 최근 일어나는 혈사가 바로?”

“맞아. 전부 마교의 짓이지. 하오문과 개방이 알아본 바에 따르면 밝혀진 것만 10자루 이상이 넘는다고 하더군.”

당염도 최근 혈사와 기이한 검에 대해 못 들은 바는 아니었다.

전부 힘없는 자들이 하찮은 술수에 빠져든 거라 생각하고 무시했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종마검은…….

“위험한 물건이군.”

“맞아요. 자칫 잘못하면 고수들도 이지를 상실하고 마검의 노예가 되어버릴지도 몰라요.”

검을 보기 전이라면 비웃었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검은 마치 하나의 의지를 가진 것처럼 이 주변에 앉은 이들을 유혹했다.

그것이 음성으로 들리는 것은 아니지만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검을 집게 만들었다.

“이런 검들이 강호를 떠돌아다닌다면 마교의 짓이 분명하겠지.”

인정할 수밖에 없는 물건이었다.

“그나저나 그것뿐만이 아닌 듯싶은데?”

당염의 시선이 진백천의 가슴팍으로 향했다.

역시 괜히 당왕이 아니었다.

진백천은 그가 느낀 물건을 품속에서 꺼냈다.

종마검 못지않게 끈적한 마기가 흐르는 검붉은색의 패.

흑마패(黑魔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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