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214화
74장 제자(2)
상장의 일과는 그가 쥔 장식 없는 검만큼이나 단순했다.
수위 일과 후에 집안일을 보고 수련.
잠자는 시간 따위는 딱히 정해두지 않았다.
그렇게 해야 남들 하는 만큼 할 수 있다 생각했으니.
‘나는 둔재니까 더 열심히 해야 돼. 동생들보다도 더.’
동생들이 무관에서 3시진을 수련하고 오면 그는 잠을 자지 않고 4시진을 수련했다.
보통은 미친 짓이라고, 말도 안 된다고 그만하라고 했지만 그를 지도하는 이는 진씨 아저씨였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상장을 더욱 채찍질하며 고삐를 놓지 않았다.
“겨우 그 정도로 되겠냐? 1시진 더 한다고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 건 아니지?”
상장은 말 그대로 남들도 똑같이 이러는 줄 알았다.
차츰 그의 뇌리 속에 인이 박히듯 진씨 아저씨의 말들이 새겨졌다.
그것은 곧 상장의 신념이자 가치관이 되었다.
-평범한 사람은 천재를 못 이기지만 둔재는 천재를 이기는 법이다.
-뭐든지 한 번에 되는 천재들은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뭐든지 실패하는 둔재는 아주 쉽게 미치지.
-무공에 미쳐라! 단순무식해져라!
-그렇게 무공에 몰두하면 천재의 발꿈치라도 물어뜯을 수 있다!
어딘지 모르게 미친 사람의 술주정 같은 말들뿐이었다.
하지만 자신도 할 수 있다는 격려 같아서 나쁘진 않았다.
-예에. 더 열심히 하라는 말씀으로 알고 노력하겠습니다.
-짜식이.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구나.
상장은 정문 앞에 수위를 서면서도 뇌리 속에서는 끊임없이 광풍칠성검법(狂風七星劍法)의 자세를 떠올렸다.
숨 한번 내뱉는 짧은 시간이 아까워 청룡백상심법(靑龍白上心法)을 끊임없이 머릿속에 되뇌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제법 날카로운 검이 되어갔다.
스스로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말이다.
“흐음.”
진백천은 마주 선 상장을 보며 낮은 침음성을 내뱉었다.
방금까지 시끄럽게 들려오던 상장의 속마음은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가 내적 수련이 강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검을 손아귀에 쥐자 조금의 잡생각도 없이 온전히 그것에 집중한 것이다.
‘진검이라서?’
아니었다.
이것은 집중도와 몰입도의 차이였다.
근골이 가진 재능과 또 다른 영역이었다.
“상장.”
“네. 회주님.”
상장은 더는 떨지 않았다.
“어떤 무인이 되고 싶지?”
“회주님처럼 되고 싶습니다.”
“나처럼?”
“네.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 더 나아지게 만들 힘을 가지고 싶습니다.”
그리고 상장에게 있어 그런 이들 중에 가장 강하고 닮고 싶은 사람이 바로 진백천이었다.
“그렇구나. 제법 부담스러운데?”
진백천은 지금까지 맨손으로 한 것과 다르게 옆의 나뭇가지를 꺾어 들었다.
“한번. 최선을 다해 보여봐.”
그 말이 기폭제가 된 듯 상장의 두 눈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지극히 들끓는 흥분감과 함께 매일같이 계속되었던 실전 같은 대련의 효과였다.
진백천은 거칠게 뻗어오는 검을 보며 이를 꽉 깨물었다.
‘기수식을 보고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광풍칠성검법(狂風七星劍法)이다. 그것도 꽤나 자연스럽고 정식으로 배운 티가 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어디서 훔쳐 배운 이가 가르쳐준 게 아니란 뜻이었다.
그리고 몸에서 뿜어져 오는 내력은 청룡백상심법이었다.
이것 또한 광풍칠섬검법과 마찬가지로 진씨 가문의 무공이었다.
‘진소가라는 이름에서부터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가문 사람이었나?’
진소가에서 이름의 위치만 바꾸면 진가소.
다름 아닌 진백천의 할아버지이자 정도회를 설립한 초대 회주의 이름이었다.
그런 이가 도대체 왜 이토록 오랜 기간 정문에서 위사로 위장했는지 의문이었다.
‘그런 이를 황보세가에서는 왜 죽이려 한 거지?’
의문이 잔뜩 피어올랐지만 진백천은 애써 가라앉히며 상장에게 집중했다.
지금은 그런 것보다 상장에 대한 호기심이 점점 더 커져 갔다.
자신도 두 무공을 꽤나 오래 익혔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에 성과를 보일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더구나 상장은 두 동생에 비해 근골이 좋은 편도 아니었다.
‘특이해.’
투둑-
날카로운 검 끝이 바닥을 스치자 움푹 파였다.
검이 가진 기세가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이런 모습은 도강과 천도도 처음 보는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파앙-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검이 진백천을 노리고 뻗어왔다.
일반 무인이라면 당황할 만큼 빠르고 힘이 실린 한 수였다.
진백천은 몸을 빙그르르 돌며 옆으로 물러났다.
동시에 기막을 펼쳐 주변의 소리를 차단했다.
‘어디까지 끌어낼 수 있는지 확인해봐야겠어.’
광풍칠성검법의 오의는 그 태풍을 만들어내는 개수에 있었다.
진백천은 압도적인 내력을 억지로 개수를 늘리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 익히는 태천검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다.
‘지금의 상장은 그저 태풍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성과이겠지. 하지만 내가 모르는 오의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상장은 점점 대련에 몰두하면서 내력을 더 끌어올렸다.
‘초식은 대부분 익힌 게 분명해. 이어지는 과정도 매끄럽고.’
이렇게까지 자연스럽게 초식을 펼치려면 방법은 하나였다.
끊임없이 수련하고 또 수련하는 것뿐.
자신도 익혀봤던 검법이었기에 상장이 얼마나 노력했을지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그의 검 손잡이는 피로 물들었다 닦이길 반복해서 검붉게 변한 상태였다.
‘조금 더 강하게 밀어붙여 볼까?’
진백천은 한 발자국 걸어 들어가며 나뭇가지를 휘둘렀다.
상장의 동작이 미처 이어지기 전이라 나뭇가지는 무척이나 간단하게 그의 견정혈(肩貞穴)을 찔렀다.
어깨에 있는 견정혈은 강하게 찔리며 팔에 힘이 풀리며 잠시 동안 검을 쥘 수조차 없었다.
“흐읍!”
하지만 놀랍게도 상장은 그것을 단지 기합을 이겨내며 검을 휘둘렀다.
검은 진백천의 주변에도 와 닿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놀라웠다.
‘상당히 거칠어. 평소의 유한 모습과는 전혀 상반되네.’
이것은 단순히 성격만으로 가능한 움직임은 아니었다.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단련이 되어야만 가능했다.
진소가라는 작자가 얼마나 상장을 굴렸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진백천은 멈추지 않고 전신의 요혈을 노렸다.
가볍게 튕기는 느낌이 내력도 제법 단단히 자리 잡은 느낌이었다.
‘상장도 약왕단주의 단약을 받아먹었나?’
진백천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원래 상장은 단약 배부대상이 아니었지만 진씨 아저씨는 자신이 받은 것을 그에게 먹였다.
덕분에 지금은 제법 내력의 기틀이 잡힌 상태였다.
“제법인데?”
검 끝이 거침없이 허공을 가르며 진백천의 급소를 노렸다.
다소 지나치게 실전적인 검로였지만 그는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투욱-
검을 위로 밀어내며 상장을 도발했다.
“그게 전부라면 실망할지도 몰라.”
“……아직입니다.”
진백천의 예상대로 그는 가볍게 숨을 내뱉으며 새로운 기수식을 취했다.
그가 마침내 기다리던 광룡폭(狂龍爆)의 자세였다.
진백천은 일부러 멈춰서 상장이 초식을 펼칠 때까지 기다려줬다.
온전히 힘을 다했을 때 그 위력을 살펴보고 싶었다.
그리고 곧 그의 검에서 터져 나온 거친 검기는 태풍이 되어 쏟아졌다.
콰과과곽-
‘흐음!’
단지 광룍폭을 시전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인정해 주려 했다.
하지만 폭풍의 개수는 무려 2개였다.
태풍이 덮쳐오는 방향으로 바닥이 움푹 파이며 마당의 잡기들이 휩쓸리며 산산조각 났다.
하지만 진백천이 펼쳐놓은 기막으로 주변으로 조금의 잡음도 세어나가지 않았다.
“이거…… 점점 더 흥미가 생기는데?”
진백천은 충분히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나뭇가지에 내력을 불어넣었다.
상장이 이렇게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태풍이 진백천을 덮치지 직전.
나뭇가지가 날카롭게 허공을 갈랐다.
그러자 금방이라도 진백천을 찢어발길 것 같던 태풍은 순식간에 흩어지며 사그라들었다.
“허억허억.”
상장은 조금 전에 모든 것을 불어넣었는지 바닥에 주저앉아서 격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 와중에도 손에서는 절대 검을 떼지 않았다.
“오오. 상장. 제법이야.”
“그, 그렇습니까?”
상장은 진백천의 칭찬에 그제서야 어색하게 웃으며 기뻐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그의 무공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는데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이, 이게 다 뭐야!”
마당에 나온 삼 형제의 어머니는 손에 곶감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그녀의 눈이 상장의 광룡폭으로 엉망이 된 땅을 황망하게 쳐다봤다.
마당은 방금 상장의 초식으로 땅이 파이고 뒤집힌 상태였다.
기막으로 인해 소리를 못 듣다 지금에서야 보게 된 것이었다.
“…….”
그들의 주변으로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 * *
“그러니까 회주님은 저희 상장이 무공에 상당히 재능이 있다는 말씀이시죠?”
상장의 어머니는 방금까지 화를 냈다고는 무색할 만큼 활짝 웃었다.
혼자서 무관에도 못 다니고 위사를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상장이었다.
그의 어머니에게는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고, 언제고 그를 위해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러던 중에 회주인 진백천이 찾아와 이렇게까지 말해주니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혼자 매일 밤마다 나가서 무공을 수련하는 건 알았어요. 힘든 줄 알면서도 말리지 못했는데…… 잘됐네요. 정말.”
진백천은 그녀의 마음을 다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지금처럼 수위로 지내면서 무공을 수련하는 것보다 제가 직접 가르쳐보려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것이 그가 직접적으로 말하고 싶은 내용이었다.
상장을 제자로 들이겠다는 생각은 그가 광룡폭을 사용하면서 이미 마음먹은 것이었다.
그의 근골이나 재능과 상관없이 이만한 노력을 해내는 아이라면 그 길을 나아가는 데 자신이 돕고 싶었다.
“……회주님. 저야 상장이가 원한다면 어떤 길이든 응원하겠습니다.”
돌려 말했지만 결국 상장의 수락을 받으라는 말이었다.
진백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문밖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망가진 마당을 정리 중인 삼 형제의 모습이 보였다.
“상장 형! 언제 그렇게 무공을 익힌 거야!”
“맞아! 검기도 쓸 줄 알면서 우리한테 말도 안 하고!”
“조용히 하고 마당이나 정리해.”
상장은 동생들과 말하면서도 시선과 귀는 진백천에게로 향했다.
그와 어머니가 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그러다 진백천과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짜식. 평소에는 저렇게 소심한 척은 다 하더니 검을 잡으면 싹 돌변한다 이거지?’
진백천은 속으로 피식 웃으며 상장을 따로 불러냈다.
그는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며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하지만 곧 별말 없이 자리를 비켜주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왜? 어머니가 그렇게 무서워?”
“무섭죠. 아마 백발이 돼도 어머니는 무서울 것 같아요.”
진백천은 바구니에 놓인 곶감을 쭈욱 찢어서 그에게 건넸다.
곶감은 적당히 좋을 정도의 식감으로 말라 있었다.
“상장. 네가 익힌 무공이 뭔지는 알아?”
“……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씨 아저씨가 절대 외부에는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회주님이라고 해도…….”
“광풍칠성검법하고 청룡백상심법 맞지?”
진백천의 훅 들어오는 질문에 상장은 씹던 곶감에 사례를 들리며 켁켁 거렸다.
하지만 두 눈빛만은 도대체 어떻게 알았냐는 의문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진백천의 말에 눈은 더더욱 커졌다.
“그거. 우리 진씨가문의 독문무공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