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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213화 (213/346)

무림회귀백서 213화

74장 제자(1)

“왜 그러십니까?”

진백천의 시선이 순간 흔들려서였을까.

황충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진백천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이것들을 보아하니 속이 좋지 않아서.”

“후우. 그러실 겁니다. 끔찍한 일을 저지르던 놈들의 것이니.”

“네. 이건…… 제가 천천히 읽어보고 보관해둘게요.”

진백천이 쉬고 싶다고 말하자 검왕과 황충은 회주전을 빠져나갔다.

그는 그들이 나갔음을 확인하고 다시 서신을 확인했다.

[정도회. 수위 진가소]

[의뢰자 : 황보세가]

직인이 찍히지 않은 것을 보면 아직 살행이 시행되기 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가 단순히 수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의문이었다.

‘황보세가에서 대체 왜?’

황보세가는 황충의 가문이었다.

그리고 정도회에 있는 자들 중에 황보세가에 적을 둔 이들은 많지 않았다.

황충과 황대원.

황대원이 이런 의뢰를 할 리 없고 남은 이는 황충 뿐이었다.

“지금으로써 바로 속단하기는 어렵지. 후우. 그나저나 진가소가 누구길래?”

아무리 진백천이라지만 수위의 이름을 전부 기억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문득 상장과 대화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진씨 아저씨가 말하지 말라 그랬다고 했지?”

단순히 직감이었지만 그 진씨 아저씨가 진가소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진백천은 왠지 찜찜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몇 번의 회귀를 걸쳤던 자신이었기에 주변의 모든 것을 전부 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자신이 알던 것들은 단지 빙산의 일각이 아니었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흐음.”

진백천은 혹시 몰라 나머지 서신도 전부 뒤져봤지만 딱히 중요한 것들은 나오지 않았다.

그는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곧바로 정문으로 향했다.

굳이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모습을 감추는 것도 잊지 않았다.

‘흐음? 지금은 근무할 때가 아닌가?’

진백천은 상장이 평소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정도회에 출퇴근하는 것을 잘 알았다.

여기까지 몰래 나온 이상 진백천은 그의 집까지 한번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상장의 집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한 집의 자식들 전부가 정도회를 오다니는 집은 많지 않았다.

단촐하지만 따스해 보이는 집은 한창 식사 준비 중인지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여기가 맞는 거 같은데?’

진백천이 긴가민가 하는데 누군가 물지게를 들고 집에서 빠져나왔다.

“……어어?! 회, 회주님!”

그를 알아보고 놀라서 물지게를 떨어뜨린 것은 그가 찾던 상장이었다.

“으응? 누구라고?”

그리고 비슷하게 집에서 의문 섞인 목소리와 함께 중년의 여자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상장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광산에서 얼굴을 봤기에 단번에 진백천을 알아봤다.

“……회주님? 여, 여기는 어떻게 오셨어요?”

당황한 듯한 그녀의 목소리에 진백천이 어색하게 대답했다.

“하하. 산책하다가…… 들렸습니다.”

“산책 중이셨구나. 아. 밥은 드셨어요? 저희는 이제 막 먹으려는 중인데…….”

길게 말꼬리를 늘이는 그녀를 보며 진백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떨결에 상장의 집에서 함께 밥을 먹게 되었다.

상장이 잠깐 물을 지러 간 사이 진백천은 자리에 앉아서 집을 둘러봤다.

밖에서 보던 것과 달리 안은 무척이나 깔끔했다.

“전에 장이가 회주님 뵀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도 열심히 한다고 칭찬해 주셨다고 애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싹싹하고 잘하니까요.”

상장의 어머니는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은 채 이것저것 음식을 가지고 왔다.

산처럼 쌓인 나물부터 아끼던 것으로 보이던 말린 생선, 고기까지 있는 것은 전부 내온 듯 보였다.

“……어후. 이렇게까지 많이 안 주셔도 되는데.”

“아니에요. 저희 집에 이렇게 귀한 손님이 왔는데 이 정도는 차려드려야죠.”

남들 집에 비해 족히 두 배나 커 보이는 그릇에는 밥이 고봉처럼 수북히 담겨 있었다.

그것도 꾹꾹 눌러 담은 채였다.

그사이에 물을 길러 갔던 상장이 돌아왔다.

그 양옆으로는 이제는 훌쩍 커버린 두 형제도 함께였다.

“회주니이임!”

“진짜 회주님이시다아!”

그들은 전에 봤을 때와 다르게 살도 제법 오르고 키도 훌쩍 컸다.

상장에게 듣기로 무관에서 수련을 한다고 하더니 근골도 제법 자리잡힌 상태였다.

“도강이 하고 천도. 잘 지냈어?”

“……저희 이름도 기억하세요?!”

하지만 큰 것은 외모뿐인지 방방 뛰며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는 못했다.

상장과 그의 어머니가 한 차례 꾸짖고 나서야 입을 꾹 다물었다.

“얌전히 밥 먹어!”

“……네.”

그것도 잠시 밥상을 본 그들의 눈이 다시 휘둥그레졌다.

“와아. 오늘 누구 생일이에요?! 육고기에 물고기에…… 다 있어!”

“도강아. 천도야. 조용히 하고 먹어.”

“칫. 형도 놀랐으면서!”

진백천은 북적북적한 그 모습에 은은히 웃으며 수저를 들었다.

보기만 먹음직스러운 것이 아니었는지 하나같이 맛도 뛰어났다.

문제는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고봉밥이었다.

겨우 반쯤 비어냈을 때 밥을 더 주겠다는 말에 진백천이 고개를 흔들었다.

“생각보다 적게 드시네요.”

이렇게 먹는다는 게 빈말은 아니었는지 삼 형제는 금세 한 그릇을 뚝딱 비어냈다.

그리고도 모자라 한 그릇씩 더 먹었다.

밥을 다 먹자 가마솥에 뜨거운 물을 부어 숭늉까지 가져다줬다.

구수하면서 속도 뜨끈한 것이 나쁘지 않았다.

“아 참. 둘은 무관에 다닌다고?”

“네. 열심히 해서 정도회 무사가 될 거예요.”

“장하네.”

어린아이들답게 칭찬을 해주니 무척이나 기뻐했다.

하지만 오늘 외출의 목표는 그것이 아니었다.

진백천은 상장을 보며 지나가듯 물었다.

“상장은 어때? 일은 힘들지 않고?”

“네. 같이 일하시는 분들도 좋고 이제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그래? 같이 일하는 사람이 누구라고 했지?”

“진씨 아저씨라고. 정문 위사로 오래 일하신 분입니다.”

오래 일했다고 하기에는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상장의 가족과 무척이나 친한지 도강과 천도도 아는 척을 했다.

“그러고 보니 진씨 아저씨 왜 안 와?”

“원래 밥도 같이 먹었었는데.”

“휴가 써서 당분간 여기 안 계셔. 꼭 가봐야 할 곳이 있으시대.”

‘휴가라.’

그 말을 하는 상장의 목소리가 어딘지 어두웠다.

진백천은 눈치 빠르게 상단전을 열며 그의 마음속에 집중했다.

-……갑자기 그렇게 가버리시다니. 대체 무슨 일이시지.

들려오는 속마음에 따르면 진씨 아저씨란 사람이 찾아온 것은 출근하기 전 늦은 새벽이었다.

그는 어딘가 아쉬운 얼굴로 그에게 익혀야 할 무공책자를 건네고 사라졌다.

자신은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말과 함께였다.

-……그러고 보면 진씨 아저씨도 참으로 비밀이 많은 분이셨지.

“그 진씨 아저씨라는 분 성함이 어떻게 돼?”

“으음. 진가소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

진백천의 눈이 알 듯 모를 듯 반짝였다.

역시 황보세가에서 혈막에 의뢰한 대상은 그 진씨 아저씨가 맞았다.

‘대체 그자가 누구기에?’

더 알아보고 싶어도 그는 의도한 것인지 주변에 정보를 남긴 것이 전혀 없었다.

사는 집도 떠날 것을 대비했는지 텅텅 비었고, 주변과 벽 없이 지내는 것 같으면서도 개인적인 정보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듣기론 진가소라는 이름조차 본명인지 아닐지 몰랐다.

‘전형적인 간자들이 보이는 행태지. 유일하게 남긴 건 무공뿐인가?’

상장이 말은 안 했지만 그가 무공을 배운 대상이 진씨 아저씨라고 했으니, 그 무공을 알면 정체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진백천은 들이켜던 숭늉을 내려놓으며 삼 형제를 둘러봤다.

“소화도 시킬 겸. 얼마나 무공 수련을 열심히 했는지 봐볼까?”

“네?”

“회, 회주님이요?”

* * *

무공을 직접 봐준다는 말에 삼 형제의 눈이 잔뜩 커졌다.

그만큼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말뿐이 아닌 듯 진백천이 마당에 서자 잔뜩 긴장했다.

“누구부터 할까? 막내부터?”

“저, 저요?”

천도는 어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기계처럼 걸어와 앞에 섰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포권을 쥐고 예의를 갖추는 모습은 제법 정식으로 배운 티가 났다.

“삼, 삼십육형검법을 익히고 있습니다.”

그는 목검을 꺼내 기수식을 취했다.

떨림이 있는 눈동자와 달리 목검의 끝은 진백천에게 고정된 상태였다.

예전에 자신들을 도와주었다고 산적분장을 하고 다리에 달라붙어서 빛 덩어리라 외치던 것이 엊그제 같았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의 앞에서 목검을 들고 배운 바를 뽐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 옛말에 틀린 말 하나 없어.’

진백천은 뻗어오는 검을 유유히 피하면서 즉시 그의 자세를 고쳐주었다.

“아직 하체가 부족하구나. 검 끝에 실리는 힘이 부족해. 그런 이야기 많이 듣지?”

“……네, 넵!”

놀랍게도 검 끝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툭 건드리자 자세가 흔들리며 뒷걸음질 쳤다.

“하체 단련을 해야겠어. 하지만 그것만 좋아지면 많이 향상될 거야.”

“감사합니다!”

천도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지도를 받았다는 기쁨보다 끝났다는 것이 더 좋은 모양이었다.

확실히 아직 아이긴 아이였다.

“그다음 도강.”

“네!”

도강은 동생의 모습을 보며 마음을 정리했는지 제법 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그는 천도보다 한 뼘은 더 커서 그런지 검도 마찬가지였다.

“후우.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마음껏 펼쳐봐.”

진백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도강은 기습적으로 목검을 뻗어왔다.

이런 점에서 확실히 천도와의 성격 차이가 드러났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전투를 할지 눈치가 빨랐다.

‘이런 모습도 나쁘지 않아.’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진백천에게 이런 수는 너무나도 익숙했다.

수많은 전투를 겪으며 모래를 뿌리거나 함정을 만들어 빠지게 만드는 놈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잡기술은 정식으로 갈고닦은 한 수를 이기지 못했다.

‘이번에는 그것을 알려줘 볼까?’

도강은 자신의 수가 전부 통하지 않음을 느끼면서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리고 슬쩍 넘어지는 척하며 몸을 비틀거렸다.

보통 이런 모습을 보이면 상대는 당황을 하기 마련이었다.

당연히 진백천도 그럴 거라 생각했지만 재차 검을 뻗으려고 할 때 그가 마주한 것은 손가락이었다.

“끝.”

진백천은 피식 웃으면 코끝을 튕겼다.

“기회를 만들고 상대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은 낭인이나 하수들이나 쓰는 방법이야. 상대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자들은 오히려 그 모습을 기회로 보고 검을 뻗어올 거야.”

한마디로 자신을 걱정해 주는 대상에게나 통하는 방법이었다.

“……으윽. 그, 그랬구나. 지금까지는 다 통했는데.”

“그런 버릇을 들이면 좋지 않아. 무공은 정도로. 그러니까 우리가 정도회인 거야. 알았지?”

반쯤 장난으로 말한 것이었지만 도강은 그랬구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네. 감사합니다!”

마지막 남은 것은 가장 형인 상장이었다.

상장은 동생들의 대련 모습을 보며 본능적으로 진백천을 파악하려 애썼다.

그동안 진씨 아저씨와 무수한 대련을 하며 배운 것은 첫째도 상대 파악, 둘째도 상대 파악이었다.

“상장. 나와 봐.”

“네. 회주님.”

그는 진백천 앞에 서자 오히려 떨림이 줄어들었다.

이야기하는 것보다 검을 맞대는 것이 더 편안했다.

그런 분위기는 그의 태도에서부터 역력히 묻어났다.

‘이 기운 왠지…… 익숙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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