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208화
71장 상처 봉합?
“큰일이라니? 누가 쳐들어오기라도 했어?”
진백천의 물음에 당소예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대로 두면 누가 쳐들어오기도 전에 크게 싸움이 날지도 몰라요.”
“싸움?”
진백천이 어제 배부르게 먹고 자는 동안 당소예는 오랜만에 정도회를 돌아다녔다.
가장 먼저 정도회로 이사 온 동생들을 만나고 회포를 풀었다.
그녀의 생각보다도 더 동생들은 밝았고 좋아 보였다.
그 후에는 그동안 못 만났던 시녀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었다.
“시녀들이 뭐라고 하길래 그래?”
당소예가 만난 시녀들은 대부분 지객당에서 외부손님을 모시는 일을 했다.
그리고 그녀들의 말에 따르면 현재 지객당은 크게 두 파로 나뉘어 있다고 했다.
“검왕 어르신을 따르는 이들과 사천당가를 따르는 이들로요.”
“허 참. 나눌 때가 없어서 그렇게 나눠? 어차피 다들 손님으로 와 있는데 싸울 이유가 있나?”
“……이유야 있죠.”
“무슨 이유?”
당소예는 진백천의 눈치를 살피며 대답했다.
“정도회의 안주인이 누가 될지 따라서요.”
“안주인?”
진백천은 그제서야 당소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그러니까 떡 줄 놈은 생각도 안 하는데 지들끼리 나눠서 싸운다 이거지?”
얼핏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세상에는 별 같잖은 사람들이 다 있었다.
실력은 안 되지만 주둥이가 길어서 모기처럼 남의 피나 빨아먹으려는 자들이었다.
그런 이들은 검왕이나 당천아가 가만히 있어도 굳이 세력을 만들고 분란을 일으켰다.
그래야 실력 없는 자신들이 앞으로 나서고 말할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그거 준동하는 이들이 누구야?”
혹시나 이번에도 전풍객이 그러는가 싶어 물었지만 당소예의 대답은 의외였다.
“외부에서 온 이들인데 지금까지는 회주님이 오시기 전까지 전풍객 장로가 자중하라고 타일렀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막상 진백천이 도착하고 회포를 푸는 동안 그들 사이에서도 분쟁이 일어났다.
밤사이에 누군가 다치는 일이 발생했고 지객당 주변은 흉흉해졌다.
“허 참. 그딴 것들을 왜 안 내보내고 들이고 있어?”
“그러게요. 저도 그게 이상해서 물어봤더니. 밖에서도 꽤나 방귀 뀌는 자들인가 보더라고요.”
“지들이 그래 봤자지. 여기가 어디라고.”
진백천은 당장 장로들부터 싹 다 불러들였다.
* * *
장로들에게 지객당의 일을 묻자 대부분이 그 사실을 인지 중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날을 세운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투자 명목으로 정도회에 이것저것 돕기도 하고 마을에 사람들을 뿌려두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관계라는 것이 생겨나 버린 것이다.
“그래서 저따위로 싸우는데 가만히 내버려 둡니까? 형찰 당주님. 어제 놈들이 싸웠다죠?”
“……네. 그렇습니다.”
형찰 당주는 전풍객을 따르던 자들 중 하나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돌아섰다.
지금은 약왕당주를 비롯해 진백천에게 광적인 믿음을 보였다.
“그자들 정체가 뭐예요?”
“각자 소속이 명확한 이들입니다. 당 소저를 따르는 이들은 주변 상인연합이고, 검왕을 따르는 이들은 관리와 친한 이들입니다.”
“상인들과 관리들이라.”
딱히 이름난 무인도 아니었고 그저 단체로 움직이는 자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머리가 누구라고 정확히 대표할 수도 없었다.
“경고를 주고 처벌을 해보기도 했지만, 그때뿐이고 양쪽으로 더 극명히 나뉘었습니다. 어차피 회주님만 오시면 다 해결될 거라 생각했기에…….”
형찰 당주는 진백천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줄였다.
진백천이 설수련이나 당천아 둘 중 한 명을 선택하면 이러한 갈등은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진백천은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겨우 내 선택에 흔들릴 정도로 정도회가 연약한 조직이에요?”
“그건 아닙니다만…….”
“아니면…… 둘을 전부 선택하시면 되는 거 아니신지……?”
그때 눈치 없는 장로 중 하나가 헛소리를 꺼냈다가 눈초리를 받으며 입을 다물었다.
‘어휴. 이런 것도 내가 일일이 나서서 해결해야 되나.’
그들이 아무리 많이 투자해 봤자 그 돈이 그 돈이고 모조리 쳐내면 그만이었다.
오히려 지금 당장 편해서 내버려 두었다가는 충치처럼 완전히 썩어서 뿌리가 흔들릴지도 몰랐다.
‘문제는 누가 그 일을 앞장서냐는 거야.’
진백천이 나서서 해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매번 그가 나서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었다.
진백천이 장로들을 한심하게 훑어보자 누군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제가 다 쳐내겠습니다.”
지금까지 무심히 지켜보기만 하던 전풍객이었다
“전 당주님이요?”
진백천은 혹시나 무슨 의도가 있을까 싶어 상단전을 열어 그의 속마음을 엿들었다.
-이런 사달이 벌어질 거라 예상하기는 했지. 지금이라도 회주가 나서서 처리하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야.
그는 진심으로 진백천을 위해 나섰다.
“회주님이 직접 손을 써도 되겠지만 그러면 지금까지 쌓아온 명성에 흑점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제가 나서서 그들을 처리하겠습니다. 이럴 줄 알고 그들이 저지른 사소한 잘못 하나도 전부 관음당에 보관 중이었습니다.”
“……그래요? 괜찮으시겠어요?”
“안 괜찮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어차피 다 늙어가는 몸 정도회를 위해서 쓰임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족합니다.”
전풍객의 마지막 말은 그동안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던 다른 장로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갑자기 왜 이렇게 바뀌었지?’
그동안 진백천이 품고 있는 전풍객에 대한 인상은 마지막 남은 정도회의 악당이었다.
그런 이가 이렇게 직접 손을 더럽히며 나서자 살짝 감동까지 왔다.
‘……철이 든 건가?’
그러고 보니 전과 다르게 얼굴에 살도 오른 것이 살짝 소림사에서 봤던 부처 같은 느낌도 들었다.
“크흠. 그러면 그렇게 하죠. 다들…… 전 당주님 좀 본받으세요!”
진백천은 막상 자신이 하면서도 평생 할 줄 몰랐던 말을 내뱉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전풍객은 곧바로 움직였다.
형찰 당주와 함께 지객당에 머무는 이들 중에 문제를 일으킨 자들을 전부 쫓아냈다.
그들이라고 쉽게 나가려 하지는 않았다.
“……나한테 이래도 괜찮소?! 내가 마을에 투자한 금액만 해도 보통이 넘소! 그것을 당장 뺀다고 하면……”
“빼든가 말든가 알아서 하지. 정도회가 겨우 그깟 푼돈으로 흔들릴 것 같은가? 더구나 자네는 마을 사람들에게 악성 돈놀이도 했지?”
“……정당하게 빌려주고 이자를 받은 것뿐이오!”
“정당하게라. 원금의 2배가 이자가 말이 되나? 그 건에 대해서는 관에서 나서겠지만 다시는 정도회와 관련된 일에 끼어들 수 없을 거야. 이건 경고네.”
전풍객은 옆에서 보기에도 가차 없었다.
서늘하게 한풍이 부는 태도로 일관되게 행동했다.
지객당에 머무는 이들의 절반이 한 푼 없이 쫓겨났다.
그런 와중에 원망과 불만이 온전히 전풍객에게 향했지만 그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정도회의 장로가 그깟 놈들을 무서워서야 되겠나.”
관과 관련된 이들에게는 적절히 진백천의 직책을 팔아넘기기도 했다.
그들이야 어차피 진백천의 말 한마디면 찍- 소리 못할 이들이었으니 얼굴을 붉히며 물러났다.
항상 사람들로 득실거리던 지객당은 오랜만에 조용해졌다.
“……전 당주. 정말 이래도 되겠습니까?”
“뭐가 말인가?”
“저들 개인이라고 해봤자 별거 아니지만. 전부를 더하면 귀찮은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감히 정도회를 건드리지는 못해도 그 화풀이가 전풍객을 향할지 몰랐다.
“하하하하! 뭐가 걱정인가. 지들이 나를 어쩌기라도 하겠나?”
이미 회주에 대한 욕심은 놓은 지 오래였다.
요즘은 발전하는 정도회를 이리저리 둘러보는 것이 삶의 낙이었다.
‘나도 늙은 거겠지.’
욕심을 버리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마음이 편해지니 이제 조금씩은 주변에 베풀기도 했다.
* * *
“……정말 깔끔히 해결했네.”
진백천은 전풍객이 처리한 일을 확인하면서 믿을 수 없었다.
“착해진 전풍객이라니.”
지난 회귀를 통틀어 단 한 번도 없던 변화였다.
자신이 정도회에 없던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을 지경이었다.
혼자 의아해하는 사이 회주전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수라검대 대주 강량호였다.
“회주님. 시키신 일은 마무리했습니다.”
“응. 잘했어. 반항은 없었고?”
“있었지만 모두 감내 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 적당히 팔다리 하나씩만 부러뜨리고 쫓아냈습니다.”
진백천은 강량호에게 따로 일을 지시했다.
전풍객이 제대로 일을 진행하는지 감시함과 동시에 분란을 일으키는 자들이 정도회 밖으로 나가면 뒤처리하는 업무였다.
강량호는 진백천이 말하지 않아도 눈치 빠르게 전풍객의 지시인 양 행동했다.
혹시라도 진백천에게 향할 손가락을 치우기 위해서였다.
“혹시 모르니까 기어들어 올 기색이 보이면 단호하게 행동해도 돼.”
“알겠습니다.”
대답을 하던 강량호의 시선이 진백천 앞에 있는 거대한 두루마리로 향했다.
“이거? 황충이 보고한 것들하고…… 처리해야 할 것들?”
“……고생이 많으십니다.”
“……때려치우든가 해야지.”
강량호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백천은 그를 내보내고 꼬박 하루가 가도록 보고서를 살펴봤다.
급격하게 세가 커진 만큼 여기저기 살펴봐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중에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 것은 역시 예산이었다.
‘상단이 제대로 움직여주기만 하면 걱정 없겠지만 아직까지는 조심해야겠지.’
두루마리에는 새롭게 시작하려는 사업의 목록이 끝도 없이 늘어져 적혀 있었다.
대부분 쓸모없는 것들이었지만 진백천의 시선을 끄는 것도 보였다.
약왕당주의 영물과 영약 재배였다.
“흐음.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단약을 만들 때 드는 비용은 가히 천문학적이었다.
그것이 매번 단약을 새로 만들 때마다라면 더욱 그러했다.
시중에 풀려 있던 약초가 전부 소진되면서 값이 천정부지로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정도회는 그나마 사천당가를 통해 약초를 싸게 공급받았기에 이 정도였다.
“하지만 사천당가에 얽매여서는 좋을 게 없어.”
이 때문에 약왕당주는 이럴 바에 직접 약초를 키워볼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도전을 하는 곳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진백천도 잘 알고 있는 집성의가(輯成醫家)였다.
도광귀에세서 얻은 공청석유 또한 그들이 만들어낸 산물 중에 하나였다.
“이걸 주면 약왕당주도 비슷하게 만들어낼 수 있으려나?”
단약을 만들어내기 전이라면 이런 기대조차도 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무려 새로운 단약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우연이든 아니든 실력이 없어서는 해낼 수 없는 성취였다.
잠시 고민하던 진백천은 소예를 시켜 약왕당주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회주님!”
약왕당주는 자신의 밑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가주전에 들렀다.
진백천은 돌아갈 것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약초를 키워보시겠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바로 성공하기는 어렵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분명 정도회에 크나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자신은 있어요?”
“관련된 책자를 꾸준히 살펴보는 중입니다.”
당당히 말하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기본지식은 있는 듯했다.
진백천은 공청석유가 담긴 도자기병을 그에게 건넸다.
“그것부터 살펴보세요.”
약왕당주는 의문이 섞인 눈으로 도자기병을 살폈다.
“열어봐도 되겠습니까?”
“네.”
냄새를 맡은 약왕당주는 이것이 공청석유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하지만 어딘가 의아한 표정이었다.
“……흐음. 이거 평범한 공청석유가 아닌 듯싶습니다만.”
“호오. 어떤 점이 다른지 알아보세요?”
“냄새가 어딘가 다릅니다. 공청석유는 공청 특유의 매운 향이 맡아져야 하는데 이것은 꿉꿉합니다.”
약왕당주의 제자들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맞아요. 집성의가(輯成醫家)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 좀 연구해 주세요. 약초 재배에 관한 건 제자들에게 넘기시고요.”
“오오. 집성의가! 물론입니다! 샅샅이 분석하겠습니다!”
그도 집성의가에 대해 잘 아는지 잔뜩 흥분한 기색으로 돌아갔다.
어떻게 얻었냐는 쓸데없는 질문 따위도 없었다.
그리고 그 날 밤.
약왕당주는 돌아갈 때보다 더 흥분한 채 진백천을 찾았다.
이번에는 제자들도 없이 혼자뿐이었다.
“회주님……! 이것 좀 보셔야겠습니다!”
그가 내민 것은 다름 아닌 공청석유를 담고 있던 도자기병이었다.
그것을 유심히 보던 진백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