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206화
69장 화려한 복귀(2)
진백천은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밖의 풍경을 감상 중이었다.
팔두마차는 느리지만 힘 있게 앞으로 전진했다.
마차를 보는 사람마다 정도회임을 알아보고 화들짝 놀랐다.
과연 소문은 사람보다 빠른지 지켜보는 이들은 알아서 사패천과의 대련에 대해 말을 꺼냈다.
호위하는 천군지사대를 비롯한 무사들은 자연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와아! 저자 좀 봐봐! 엄청난 도끼를 등에 메고 있어!”
“그렇다면 분명 4신위 홍혈도를 꺾은 충부대군(忠斧大軍) 황대원일 거야!”
“과연 소문대로 엄청나! 진백천 회주의 오른팔이 될 만하군!”
‘충부대군?’
그동안 여러 차례 이런저런 별호가 생기다 사라지곤 했지만 황대원은 이번 것이 가장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황대원은 괜한 헛기침을 하며 천천히 말을 몰았다.
“그렇다면 저 마차에는 역시 운룡심검(雲龍心劍)이 타고 있겠지?”
“당연하지. 팔두마차라니. 과연 위용이 엄청나군!”
“나는 쌍수미랑(雙手美狼)을 보고 싶은데 같이 마차에 타고 있나?”
진백천은 그 별호를 듣자마자 당소예를 쳐다봤다.
양손에 단검을 들고 아름다운 늑대란 별호가 붙을 이는 그녀뿐이었다.
당소예도 그 말을 들었는지 눈을 꿈뻑거렸다.
“지금 저에 대해서 말하는 거예요? 설마 아니겠죠?”
“맞는 거 같은데?”
“와아. 그럼 저 별호 생긴 거예요? 쌍수미랑이라니. 너무 좋잖아요!”
“그래. 축하해. 미랑이.”
당소예는 놀리는 듯한 진백천의 말투에도 히히거리며 기뻐했다.
그리고 문을 빼꼼 열고 황대원을 향해 대군- 하며 부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진백천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 둘은 이렇게 행복한데 나만 그러지 못하는구나.”
운룡심검이든 욱룡심검이든 그토록 여유로웠던 여행이 끝이 나자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불안했다.
‘후우. 3달이란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가다니.’
그의 시선이 무사들 너머 넓은 들판으로 향했다.
나올 때만 해도 이제 갓 익어가던 가을의 벼들이 전부 잘려나가고 눈이 소복하게 깔렸다.
그만큼 진백천의 마음도 차가워졌다.
그나마 남은 것이라곤 최고급 명주인 모타주(茅台酒)뿐이었다.
‘아끼고 또 아껴서 마셔야지.’
가슴을 두드리는 그의 손이 왠지 쓸쓸했다.
“어휴. 왜 이렇게 춥지.”
“추우세요? 이거 덮으세요. 이 미랑이가 특별히 드릴게요.”
진백천은 당소예가 건네주는 모피를 어깨에 둘렀다.
마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도회가 있는 마을까지 도착했다.
진백천이 계산한 것보다 1시진은 더욱 빨랐다.
“으음? 아직 조금 더 가야 할 텐데?”
조금 더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던 진백천은 창밖을 내다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원래 시골길만 있어야 하는 거리가 어느새 커다란 마을이 된 채였다.
팔두마차가 족히 지나갈 정도로 닦인 관도는 물론이고 지어진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건물들이 줄을 이었다.
“뭐야? 여기 왜 이렇게 발전했어? 정도회와도 한참 떨어진 곳이었는데?”
그 목소리를 듣고 다가온 강량호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전부 회주님 덕분입니다.”
“내 덕분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회주님께서 구한 사람들이 자리 잡을 곳을 마련하다 보니 여기까지 넓어졌습니다. 회주님이 보내주신 막대한 자금으로 건물과 도로를 만들었고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도로 옆에 나와서 손을 흔들고 소리치는 사람들의 얼굴이 어딘가 낯이 익었다.
‘혈화궁(血花宮) 놈들이 가두고 노예처럼 부리던 이들인가?’
예전과 다르게 살도 오르고 얼굴이 활짝 펴서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다.
“회주니이임! 사랑합니다아아!”
“보고싶었습니다아!”
진백천은 창문을 열고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환호 소리가 폭발적으로 커졌다.
누군가는 자신이 지은 농사로 수확한 감자 구운 것을 들이밀기도 했다.
“회주님 저희 가게 오시면 술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언젠가 들리도록 하지!”
“감사합니다아!”
진백천은 그들에게 하나하나 인사하며 손을 흔들어주다 보니 어느샌가 정도회 앞까지 다 와 갔다.
바뀐 것은 주변의 거리뿐만 아니라 정도회도 마찬가지였다.
사패천에서 전등신이 구룡성을 보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지만 그닥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막상 보게 된 정도회는 정문부터 전부 새로 지었는지 휘황찬란했다.
“……이거 우리 집 맞냐?”
“와아아아. 뭐가 이렇게 커졌지? 저 전각은 뭐예요?”
당소예가 가리킨 것은 정문 넘어서도 보이는 커다란 건물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아. 대연전(待蓮殿)입니다. 손님들을 모시는 지객당 옆에 새로 지어진 전각입니다.”
“대연전이요?”
어쩐지 그 이름이 특이했다.
연을 기다리는 공간이라는 그 어감이 누군가와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설마?”
“네. 맞습니다. 당천아 소저가 머무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아.”
진백천은 그 이름을 듣자마자 정도회 내에서도 풀어내야 할 숙제 거리가 많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그리고 그가 왔다는 것이 안으로 전달되었는지 정문이 열리며 무사들이 빠져나왔다.
그 가장 앞에는 당연히 황충을 비롯해 약왕당주와 장로들이 함께였다.
“회주니이이임!”
황충은 새하얀 수염을 바르르 떨며 성큼거리며 다가왔다.
진백천도 왠지 지금 이 순간만큼 가슴이 울컥했다.
항상 아버지처럼 지내왔던 그였기에 더더욱 그랬다.
“……크흠. 뭐 저렇게까지.”
말과 다르게 진백천은 마차 문을 열고 황충을 맞이했다.
“회주니이이임! 더 헌양해지셨습니다아! 역시! 역시는 역시! 회주님의 활약을 듣는 황충! 당장에라도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전하신 명을 따라 정도회의 안팎을 열심히 갉고 닦았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제가 황충 아니면 누구를 믿겠어요.”
진백천과 황충의 옥루 같은 눈물을 바라보며 눈이 촉촉해졌다.
“……아프신 곳은 없으시죠?”
“이 늙은이는 회주님의 헌양한 모습을 봤으니 당장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아!”
정도회의 제2인자이자 지금까지 실질적인 권력을 휘둘렀던 황충이 이런 모습을 보이자 주변의 모든 이가 화들짝 놀랐다.
원래부터 정도회에 있던 장로들이야 진백천과 황충의 사이를 잘 알았으니 그러려니 했지만.
초임 무사들이나 지객당에 머무는 손님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둘을 번갈아 봤다.
“……소문으로 듣기는 했지만 저렇게 충심이 깊다니.”
“회주님이 이유 없이 강호를 주유한 게 아니었어. 믿을 만한 이가 있으니 그랬던 거였군!”
진백천은 열렬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장로들과 하나하나 인사를 했다.
그들도 전부 안 본 사이에 진백천의 추종자가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특히나 약왕당주는 황충과 마찬가지로 무릎이라도 꿇으려다 진백천에게 잡혀 다시 일어섰다.
“약왕당주의 활약은 저도 들었어요. 단약을 만들어냈다고요?”
“전부 회주께서 무한한 지원을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니에요. 저야말로 다른 이들은 몰라도 약왕당주는 무조건 믿었죠. 앞으로도 아끼지 말고 팍팍 만들어주세요!”
약왕당주는 아끼지 말라는 말에 흡사 반한 듯한 얼굴로 변했다.
그동안 황충이든 누구든 항상 아끼라고만 해왔던 터였다.
“감, 감사합니다. 회주! 저를 이렇게 믿어주시다니!”
“하하. 장로님들이 아니면 제가 누구를 믿어요?”
진백천의 시선은 장로 뒤편에 있는 자들에게로 향했다.
그들은 크게 두 파로 나뉘어 있었다.
당천아와 함께 당천기를 비롯한 사천당가를 주축으로 한 외부 인사들.
그리고 검왕과 설수련을 중심으로 뭉친 이들이었다.
‘……왜 남의 집에 와서 파벌싸움이야?’
그들이 가진 역할을 생각하면 누구 하나 무시할 수 없었기에 진백천은 환하게 웃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역시나 가장 먼저 인사를 드린 것은 검왕이었다.
“어르신! 안 본 사이에 얼굴이 좋아지셨어요. 설 소저도요.”
“그런가? 전부 회주가 신경 써 준 덕분이지.”
검왕과 설수련은 할 이야기가 많아 보였지만 주변의 시선을 신경 써서인지 말을 줄였다.
대신 그의 전음이 머릿속을 울렸다.
-회주. 안 본 사이에 더 강해졌군! 시간 나면 한번 대련이라도 하지.
-해주신다면야 저야 영광이죠.
검왕이 보일 듯 말 듯 웃었다.
설수련의 구음절맥이 회복되면서 마음에 여유를 되찾은 탓이었다.
그때였다.
“……쉿. 통통아. 가만히 있어. 장난할 때가 아니라고!”
설수련 뒤편에서 속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숨기듯 서 있는 누군가는 다름 아닌 아영이었다.
그녀는 왜인지 진백천을 어려워하고 있는 듯 보였다.
-……스승님이 나를 불편해하실 수도 있어! 밖에서야 제자이지…… 이곳은 아니니까.
아마도 이곳에서 누군가 하는 쓸데없는 소리라도 들었던 모양이었다.
더구나 그동안 생활하던 것과 다르게 화려한 정도회의 환경에 주눅이 든 것도 있었다.
그런 아영의 생각도 모르고 청서생은 뒤뚱거리며 진백천에게 다가오려 했다.
-이거 놔!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
진백천은 피식 웃으며 품속에서 금자 하나를 튕겼다.
그러자 청서생이 폴짝 뛰어오르더니 금자를 입에 물었다.
-아싸! 제일 맛있는 거!
진백천은 우물거리는 청서생의 뒷목을 잡고 내려놨다.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서 아영을 번쩍 안아 들었다.
“……스, 스승님!”
그녀의 말에 몇몇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영은 그 모습에 급하게 입을 다물며 고개를 숙였다.
진백천은 황충 앞으로 다가가 그녀를 내려놓았다.
“황충. 이미 알고 있겠지만 다시 소개할게요. 제 제자인 아영이에요.”
모두 앞에서 진백천이 직접 소개하자 아영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
“인사해야지.”
“아, 네! 안, 안녕하세요. 저는 아, 아영입니다!”
“검왕과 함께 다니는 모습을 몇 차례 봤지만 회주님의 제자일 줄은 몰랐습니다.”
“쑥스러움이 많아서 말 못 했을 거예요. 그래도 실력만큼은 진짜이니까 잘 부탁할게요.”
진백천의 말에 아영을 쳐다보는 이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제법 관심이 섞인 것들이었다.
아영은 도망치듯 당소예에게 가서 덥석 안겼다.
“언니! 보고 싶었어요! 아니지. 이제 미랑 언니라고 해야 하나? 헤헤”
둘이 회포를 풀 때 진백천은 마지막으로 사천당가 일행에게로 향했다.
가장 마지막이라 서운할 법도 했지만 당천아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당천아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괜히 가가- 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대신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갖췄다.
‘흐음. 천방지축이었던 모습과 제법 다른데?’
여전히 눈빛에는 당돌함이 남아 있었지만 겉으로 표출하지는 않았다.
“할 이야기가 많지?”
“네.”
당천아는 그것으로 살짝 뒤로 물러났다.
반면에 당천기는 고개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인사했다.
“어어. 잘 지냈…… 지?”
어딘가 반말을 할지 존댓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냥 반말해. 친구끼리.”
“후우. 고맙다.”
진백천은 어깨를 한번 툭 치고는 지나갔다.
이제 인사를 할 이들은 전부 했고 평화롭고 행복한 자신의 거처에서 두 발 뻗고 늘어지게 잘 시간이었다.
하지만 정문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던 진백천은 덜컥 멈춰섰다.
어딘가를 향한 그의 시선은 역시나 환한 미소가 함께였다.
“여어. 상장!”
위사로 근무 중이던 상장은 잔뜩 굳은 얼굴이었다.
“추, 추웅!”
설마 했지만 자신을 알아보고 인사할 줄은 몰랐는지 상장은 당황했다.
살짝 삑사리가 난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진백천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반가운 얼굴로 그에게 다가오더니 어깨를 툭툭 내려쳤다.
진백천은 한눈에 상장이 그동안 얼마나 많이 수련했는지 알아봤다.
“석 달 사이에 키가 많이 컸는데? 몸도 커지고. 열심히 했나 봐?”
“아, 아닙니다!”
“아니야. 이 정도면 대단한 거지. 무관에 다니는 중이야?”
“아, 아닙니다!”
“그러면 개인 스승? 누구?”
“아, 아닙니다!”
상장은 자기도 모르게 계속해서 아니라고만 소리쳤다.
“으음? 독학했는데 이 정도라고?”
“아, 아닙……!”
보다 못한 옆에 서 있던 진씨 아저씨가 대신 대답했다.
“수위들이 익히는 기본적인 무공을 알려줬습니다.”
진백천의 시선이 자연스레 진씨 아저씨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아주 잠시지만 그의 웃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단순히 수위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고수였다.
상단전이 활짝 열린 진백천은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혹시나 하고 상단전에 기운을 불어넣으며 집중했지만 그의 속마음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것도 검왕 어르신에 버금가는 정도의 고수.’
껄렁껄렁한 겉모습으로는 전혀 짐작되지 않는 실력이었다.
대신 그의 뇌리에 들려온 것은 상장의 속마음이었다.
-……진씨 아저씨가 무공을 알려줬다고 말하지 말랬는데.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