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205화
69장 화려한 복귀(1)
황궁의 태화전(太和殿).
상아의 여의주를 문 거대한 황금용이 내려다보이는 아래.
거대한 옥좌에 앉은 황제는 어딘가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것은 그 앞으로 줄 지어선 고관대작들도 마찬가지였다.
“흐음. 사례감. 보고해.”
“네이. 현재 황군은 마교와 관련된 자들을 축출해내고 있으며 크게 다른 충돌은 없습니다아.”
“흐으으음.”
길게 끌며 내뱉는 콧바람은 분명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사례감은 황제의 눈치를 살피며 그의 속내를 가늠하려 했다.
“크게 충돌이 없다라.”
“마교의 마인놈들이 전부 황상의 군대를 두려워해 감히 눈앞에 나서기라고 하겠습니까?!”
나름 속이 풀어지라고 아첨을 떨었지만 황제가 그런 말을 좋아할 리 없었다.
단지 비스듬하게 고개를 꺾으며 사례감을 내려다봤다.
“사례감. 황군의 앞에 놈들이 나타나지 않는 건 꼬리가 잡히지 않아서 아니겠어? 사소한 충돌도 없다는 것은 둘 중에 하나라는 거야. 놈들이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거나. 아니면 황군이 무능하거나.”
정도회가 소금 밀매조직을 없애기 전까지도 마교의 무리들이 강호로 숨어들었는지조차 제대로 모르던 그들이었다.
‘바퀴벌레처럼 곳곳에 몸을 숨기는데 도가 튼 놈들이 마교로 전부 돌아갔을 리 없지.’
그렇다면 남은 이유는 두 번째뿐이었다.
괜히 황군이 무능하다 생각하자 입맛이 씁쓸해지는 황제였다.
이런 와중에 진백천에 대한 소문마저 곳곳으로 들려오니 기분이 묘했다.
‘진백천의 절반만큼이라 되는 자가 있었다면 좋으련만!’
이번 황군의 규모를 대폭적으로 늘릴 수 있었던 것도 진백천이 발견한 전 황조의 보물 덕분이었다.
그곳에서 얻은 무기와 방어구는 황군을 치장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원래 계획했던 황군의 규모는 이것보다 훨씬 작았었다.
“쯧. 황군은 적당히 둘러보다 회군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눈에 보이는 활약은 없었지만 어쨌거나 대외적으로 마교를 적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되면 마교의 끄나풀들은 물론 마교로써도 몸을 사리긴 할 터였다.
“운남성과 귀주성에서 일어나는 혈사는 어떻게 되어가는 중이지?”
“동창의 무인들이 그들에게 기이한 물건을 전한 이들을 발견했고 꼬리를 쫓는 중입니다!”
“그래?”
“네. 마마. 조만간 그들의 몸통까지 도달하면 머리를 잘라내겠습니다.”
모처럼 성과 있는 보고에 황제의 표정이 펴졌다.
사례감은 속으로 크게 안도하며 동창의 무인을 과할 정도로 파견한 것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굳이 그들을 쫓으면서 수십 명의 동창 무인이 죽어갔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그러면 오늘 석전 회의는 이것으로 파하지.”
황제의 말에도 사례감은 굽힌 허리를 펴지 않았다.
아직 그가 미처 못한 보고가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말을 해도 될지 고민 중이었다.
“뭔데 그래? 고민할 시간에 어서 말하지?”
고민하던 사례감은 이내 결심했는지 서신을 꺼내 황상의 앞에 올렸다.
“멀리 북해에서 온 서신입니다.”
동창의 무인은 황제가 다스리는 곳 어디든 퍼져 있었다.
북해라고 해도 그 영향이 끼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황제는 무심하게 서신을 읽었다.
[북해빙궁의 궁주가 의식을 잃은 상태가 3년 가까이 지속되었음. 숨이 끊어졌다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 형제 사이의 골육상잔(骨肉相殘)이 벌어질 듯. 유일하게 셋째인 막내만이 세력 없이 감금되어 있는 중. 다만 두 형제를 지지하는 자들은 전부 마인들이며 마교임을 숨기지 않고 드러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임.]
“흐음. 북해빙궁을 마교가 차지하면 어떻게 되지?”
“황실에는 그다지 크게 영향을 끼칠 일은 없습니다. 어차피 사는 사람에 비해 제대로 농사도 짓지 못하는 척박한 땅이옵니다. 다만 그곳의 대부분이 무인이라는 것이 조금 걱정이옵니다.”
“마교의 종이 되고 순간 미친 짓을 할지도 모른다?”
거의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였지만 마교가 꼭두각시로 세워 충분히 저지를 만한 짓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온 보고에 따르면 그곳에 중원인들도 모습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누구?”
“개방의 태상장로와 무인들입니다.”
“그들은 뭘 주워 먹겠다고 북해빙궁에 간 거지?”
“태상장로와 죽어간다던 궁주와 오랜 친구 사이입니다.”
사례감이 그렇게 말했지만 황제는 그것이 함정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다 죽어가는 인간이 태상장로를 굳이 불러낼 이유가 없었다.
“흐음. 파견 나가 있는 동창의 무인에게는 최대한 나서지 말고 지켜보기만 하라고 전해. 그리고…… 이 일은 잘 정리해서 회주에게 보내. 무림의 일은 무림이 나서야지.”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사례감은 그제서야 허리를 깊게 숙이며 물러섰다.
* * *
광동성 사혈방(使血房).
마화린은 체내의 들끓는 기운을 가라앉히기 위해 숨을 내뱉었다.
하얀 입김이 허공에 뭉글거리며 피어올랐다 사그라들었다.
사라지는 입김 사이로 마화린은 어딘가 만족스러우면서도 미심쩍은 표정이었다.
“분명 엄청난 무공이다. 그런데 본교에서 왜 이것을 나한테 보냈을까?”
자신의 아버지이자 마천영 교주의 이름으로 보내진 것은 구촉비전(口燭非典)이라 적힌 무공서였다.
자신이 본교에 있을 때도 이름만 들어봤을 뿐 실제로 익히지 못했던 무공이었다.
“원래대로라면 교주의 직속 단체인 천살대와 지살대의 일부만이 익힐 수 있는 무공이야.”
지금쯤이라면 교주는 물론이고 마뇌도 이미 자신의 뜻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자신을 생각해서 무공을 보내줬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마교는 절대 아버지나 자식이라 해서 정을 주는 단체가 아니었으니까.
혹시라도 무공에 무슨 짓을 했는가 싶어 자신의 고아들 중 몇을 뽑아 익혀 보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본교에서 봤을 때보다 더욱 효과적이고 빠르게 무공을 익혔다.
“혈강옥불상을 얻지 못한 지금으로써는 고마울 따름이다.”
혈수인(血髓印) 따위의 무공은 일정 수준 이상의 강자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현재 강호를 뜨겁게 달구는 진백천이나 사자혁 따위의 것들이었다.
진백천은 자신의 혈강옥불상을 훔쳐갔을 거라 가장 의심이 되는 자일뿐더러 은형살수를 비롯해 암살자들을 전부 없앴다.
“그것만 봐도 일정 수준 이상은 된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그것도 내가 구촉비전을 대성하는 순간 전부 끝이다.”
마화린은 시기와 분노가 섞인 감정을 속으로 감추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붉은 도포를 펄럭이며 밖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커다란 연무장에는 무공을 연마하는 마인들이 수십이었다.
이미 사혈방은 광동 일대의 흑도방파를 전부 흡수한 후였다.
마교에 비하면 초라할 수준이었지만 온전히 자신의 세력임을 생각하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방주님.”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혈라독검(血儸毒劍) 마영을 비롯한 마인들이 전부 그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그를 따르던 혈랑대는 교관이 되어 마인들을 수련 중이었다.
“중혁을 비롯한 구촉무인들은 어디 있지?”
“지금 기어 올라오는 중입니다.”
“그렇군.”
마화린은 거침없이 연무장 가운데로 향했다.
그곳에는 지름 1장 크기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어둠 속에서는 거친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차가운 눈으로 그 아래를 내려다보던 마화린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너무 쉬워 보이는군.”
“고치겠습니다.”
마영이 즉각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마화린이 쉬워 보인다 말한 것 치고는 구멍 아래는 현세지옥(現世地獄)이나 다름없었다.
가장 아래는 떨어지면 살이 녹아버리는 부식독과 함께 온갖 독물이 들끓었고, 벽면은 독이 발라진 칼날이 박힌 채였다.
마화린이 구촉무인이라 불린 아이들은 내공 없이 맨손으로 이곳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다.
이미 상당수가 죽고 남은 아이는 단 세 명뿐이었다.
“끄으윽!”
그때 벽면을 짚고 올라오던 아이 중 하나가 고개를 들어 마화린을 올려다봤다.
그 눈동자에 담긴 것은 지독하리만큼 강한 독기였다.
마화린은 그것이 퍽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래. 더더욱 분노하고 강해지거라. 너희들은 전부 나만을 위한 검이 될 테니.”
마화린은 발을 들어 강하게 진각을 밟았다.
그 충격에 아이 밑에서 기어오르던 다른 두 아이가 떨어져 내렸다.
“……끄으윽!”
그러자 가장 위쪽에 있던 아이가 스스로 손을 놓으며 떨어져 내렸다.
그러면서 다른 두 아이를 팔과 다리 사이에 끼며 남은 손으로 벽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구촉비전으로 강해진 손이었지만 칼날에 살점이 갈리고 찢기며 피투성이가 되었다.
“중, 중혁이 형.”
“괜찮으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마.”
중혁이라 불린 아이는 이를 악다물며 다른 아이들을 벽면에 올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화린이 혀를 찼다.
“아직 독기가 더 부족하군. 검에게 쓸데없는 배려심이나 인성 따윈 필요 없다. 독고무인들이 전부 죽어도 되니 더 몰아붙여라.”
“존명(尊命)!”
그는 더 볼 것 없이 돌아섰다.
독고무인들은 저 세 명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세 명일 뿐.
나머지들은 전부 숨겨진 수련장에서 인성을 철저히 파괴시키며 만들어지는 중이었다.
그들은 전부 정도회의 무림대회에 참가할 때 데려가기 위함이었다.
“진백천이 정도회로 복귀한다고?”
“네. 그렇습니다. 지금쯤이면 도착했을 겁니다.”
겨우 그따위 어린 회주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그대로 보내주었다는 게 자존심 상했다.
“어찌 되었든 서둘러라. 슬슬 우리도 움직여야 하니.”
마화린은 자연스레 다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마영은 그런 그의 뒤에 서서 잠시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그가 누구를 만나러 가기 위함인지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뭐지?”
“……소교주님. 제가 감히 말씀드리자면 본교에서 온 그 여자는 피하시는 편이…….”
“내가 다 생각이 있으니 개의치 마라.”
마영은 고개를 깊게 숙이며 물러났다.
이미 말을 꺼낸 것부터가 마화린의 성미를 건드리는 데 충분했다.
마화린은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도포를 휘날리며 문을 열고 들어섰다.
“흐응. 오셨어요?”
침상에 반쯤 눕듯이 앉아 있는 것은 여인이었다.
얇은 비단 한 장만 걸친 여인은 뇌쇄적인 눈빛으로 마화린을 쳐다봤다.
강력한 색공이 발휘되는 중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애교 정도로 생각했다.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너에게 들을 이야기가 많으니까.”
그녀는 다름 아닌 환야루를 이끄는 수장이자 마뇌의 제자 중 하나였던 기녀였다.
마뇌의 명대로 구촉비전을 건네주러 왔던 그녀는 자연스레 마화린의 옆에 남아 책사인 척 자리를 잡았다.
마영만 있어서 두뇌 회전이 느리던 소교주에는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었다.
“그럼 무슨 이야기부터 할까요?”
“혈막에 대해서.”
“흐응. 그건 제법 값이 비싼데요?”
“얼마든 치르지.”
둘은 정상적인 대화와 다르게 끈적하게 엉킨 상태였다.
환야루의 기녀는 가볍게 탄성을 내지르듯 그녀와 마뇌 밖에 모르는 비밀을 털어놓았다.
“진백천 회주는 곧 소중한 사람을 잃을 거예요!”
“혈막(血幕)이 움직이기 시작했군. 그 첫 번째 대상이 누구지?”
“그건 공짜로 말할 수 없죠!”
“공짜가 아니지. 값을 치르겠다.”
“어떤 값이라도요?”
마화린은 강하게 어깨를 움켜쥐며 그녀를 내려다봤다.
“소교주인 내가 치르지 못할 값은 없다!”
“그럼요. 물론이죠.”
루주는 속으로 그의 오만함을 비웃으며 매혹적인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붉은 입술이 다시 열리며 숨결처럼 말을 토해냈다.
“정도회에 남아 있는 그의 최측근이자 중요한 이. 그건 바로…….”
이어진 이름에 마화린의 눈이 잠시 커졌다 작아졌다.
“그렇군. 아주 재밌어지겠군. 놈의 얼굴이 아주 볼 만해지겠어.”
마화린은 그 후로 한참이나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만큼이나 꽤나 마음에 드는 희생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