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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204화 (204/346)

무림회귀백서 204화

68장 친구가 된 기념으로(4)

유소어에게 친히 걸개구타권을 보여주는 진백천을 바라보는 이들의 표정은 꽤나 웃겼다.

특히 사령령의 말만 듣고 그 무공에 기대했던 사자혁이 더욱 그러했다.

“이게…… 걸개구타권?”

어딘가 감탄하는 것 같으면서도 실망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진백천은 속이는 것이 없으니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후로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일사천리였다.

짐을 정리하고 부족한 식자재를 사패천에서부터 보급받았다.

“이제 정말 정도회로 복귀야.”

“하아. 드디어, 네요.”

“드디어 입니다.”

당소예와 황대원은 진백천의 말에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몇 달 안 되는 사이에 꽤나 고생을 한 듯싶었다.

“그래도 재밌었지?”

“……목숨을 놓고 싸우는 게 재밌다면 참으로 재밌었죠.”

“살면서 웬만하면 겪고 싶지 않은 일들도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마인과의 목숨을 건 싸움이었다.

좋게 풀렸기에 망정이지 만약 자칫 잘못했으면 이곳에 누가 없거나 진백천 혼자 서 있었을지도 몰랐다.

“정도회로 얼른 돌아가서 아영이랑 놀 거예요.”

“놀긴 무슨. 수련해야지.”

진백천의 말에 황대원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번 대결을 끝내고 나더니 제2의 무광(武狂)이라도 되려는 듯이 쉬지 않고 도끼를 휘둘러댔다.

“……왜요? 이제 정도회로 가면 한동안 안 나오실 거잖아요?”

진백천이 턱을 쓰다듬는 모습에 소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설마…… 아직도 회주 자리를 버리고 돌아다니시려는 생각을…… 갖고…… 계시구나!”

당소예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소리치자 황대원도 그것만은 안 된다는 듯이 쳐다봤다.

하지만 딱히 진백천은 거기에 대해 계획이 없었다.

“우선 무림대회부터 신경 쓰고. 그 이후의 일은 차차 생각해 보자고.”

“그건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니라고요. 회주님이 갑자기 그만둔다고 하면 그거야말로 엄청난 난리가 날 걸요?”

“그런가?”

진백천은 대충 머리를 긁적이며 한 귀로 흘렸다.

“우선은 정도회에 가서 생각해 보자.”

당소예가 어딘가 불안한 눈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내 어디선가 가져온 보따리를 주섬주섬 열었다.

그곳에 담긴 것은 다름 아닌 옷이었다.

“으음? 이건 뭐야?”

“돌아갈 때 입으려고 챙겨놓은 거예요. 처음하고 다르게 지금 옷차림이…… 조금 낡았잖아요.”

낡았다고 표현했지만 진백천의 옷은 넝마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다.

사천당가에서 줬던 질긴 옷은 해져서 버린 지 오래였고, 그나마 깨끗했던 옷은 사자혁과의 전투에서 전부 갈기갈기 찢어졌다.

“호오. 좋은데?”

평소 입던 검은색이나 회색빛의 어두운색이 아니라 진한 푸른빛을 띠었다.

그래서 그런지 진백천의 회색빛 머리카락과도 잘 어울렸다.

“황 무사님 것도 있어요.”

“제 것도 말입니까?”

“네. 정도회에서 가져온 것은 아니고…… 제가 포목점에서 개인적으로 맞췄어요.”

그 말을 하는 당소예가 황대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당 소저.”

“그동안 해주신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둘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방금까지 없던 그동안 붙어 있던 강호행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빠져줄까?”

진백천의 은근한 물음에 당소예가 힐끔거리며 노려봤다.

“얼른 옷부터 갈아입고 오세요. 마차도 새로 준비하라고 미리 말해두었어요.”

정말 정도회로 복귀하는 것이니만큼 이번만큼은 화려한 마차를 타야 했다.

그에게 쏠리는 이목이 대단할 만큼 보이는 것도 어느 정도는 중요했다.

‘더구나. 사패천의 친선 대련에서 이기고 돌아가는 것이니까.’

하지만 막상 준비된 마차를 보니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쓸데없는 장식은 물론 그 크기가 관도를 꽉 채울 만큼 커다랬다.

“……이거 말들이 제대로 끌 수나 있어?”

“팔두마차예요.”

“내가 관인도 아니고 무슨.”

“관인이시기도 하시잖아요. 물어봤는데 괜찮대요.”

당소예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보통 사두마차까지는 돈만 있으면 아무나 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올라가면 관직에 있는 자가 아니면 엄격히 통제가 되었다.

팔두마차라는 것이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안에 대단한 사람이 타고 있다는 과시이기도 했다.

“사실…… 더 십이두마차까지도 괜찮다고 했는데 팔두마차로 했어요. 표기장군이라는 힘이 엄청난가 봐요.”

“그렇긴 하지.”

아마도 이러한 특권이나 배려는 황제가 지시한 것과도 연관이 있을 터였다.

연왕부를 조사하는 데 있어서 증거가 확실하면 즉결처형을 하라고 까지 말한 황제였다.

그런 진백천에게 준 금패(金牌)와 표기장군의 이름은 가볍지 않았다.

“얼른 가자.”

“네. 회주님!”

진백천은 사자혁과 마지막으로 인사를 했다.

인사라고 해봤자 모두가 보는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한 번 껴안고 친한 모습을 보이는 것뿐이었다.

“나중에 또 놀러 오지.”

“당연하지.”

‘미쳤다고 또 오냐?’

그런 진백천의 속마음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사자혁은 잡은 손에 꾸욱 힘을 줬다.

“나도 정도회에 놀러 가도 되겠지? 친구?”

“……뭐. 기회가 되면?”

“기회라. 초대한 걸로 알지.”

진백천은 어쩐지 그 말이 불안하게 느껴졌지만 주변에서 쏟아지는 환호와 박수에 묻혔다.

진백천을 태운 마차는 묵직한 바퀴를 굴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양옆으로 정도회 무사들이 바위 같은 기세를 뽐내며 마차를 지켰다.

역시 그중에 제일 눈에 띄는 것은 거대한 도끼를 멘 황대원이었다.

“정도회에 도착할 때까지 경계를 늦추지 마라!”

“알겠습니다!”

사자혁은 신위들과 함께 마차가 떠나는 모습을 한동안 지켜봤다.

그 뒤를 바라보는 사자혁의 눈은 어딘지 모르게 복잡해 보였다.

“천주님. 무슨 걱정 있으십니까?”

유소어가 퉁퉁 부은 얼굴로 말했다.

진백천에게 맞고 아직 붓기가 덜 빠진 탓이었다.

“이후의 일을 생각할 따름이다. 유소어. 네가 보기에는 어떻지?”

“흐음.”

유소어는 망가진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옛말에…… 떨어지는 칼날을 잡지 말고 쏟아지는 비는 피하라 그랬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령령이 피식거리며 웃었다.

“유소어. 그거야 당연한 말이지. 두들겨 맞더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크흠! 비유입니다! 비유! 책사가 하는 말을 이렇게 무시만 하니까 8신위 같은 사태가 벌어지는 겁니다!”

평소와 다른 유소어의 호통에 사령령이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

“둘 다 그만. 유소어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해.”

“네. 천주님. 그러니까 지금의 강호에 쏟아지는 비는 바로 정도회입니다. 떨어지는 칼날은 진백천의 눈 밖에 난 자들…… 그러니까 마교나 그 외의 세력이겠죠. 이왕 정도회의 기세가 올랐으니 저희도 그 위에 올라타는 게 맞습니다.”

“질주하는 말에 올라타라?”

“맞습니다. 지금 추세로 보면…… 한동안은 정도회가 강호의 주류가 될 테니까 말입니다.”

사자혁은 유소어의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강호의 주류는 언제나 존재했다.

그것은 개인이기도 했고 단체이기도 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매번 바뀌어왔다는 것이다.

“영원한 건 없지. 유소어. 다음 주류가 사패천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집어삼켜야 합니다.”

“집어삼켜?”

사자혁이 생각한 것은 정도회처럼 무인들을 지원하고 더 많이 모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소어는 절대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사패천은 본질적으로 정도회와 다릅니다. 저희는 무(武)를 숭상합니다.”

강호와 무림을 지배하는 관념에는 여러 가지가 존재했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의협심(義俠心)이었다.

약자를 돕고 정(正)과 협(俠)을 따르며 그것을 위해서는 개인의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정도회와 대부분의 명문정파가 추구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사패천은 그들처럼 의협심으로만 움직이는 단체가 아니었다.

“그러한 고리타분함이 싫어 뭉친 이들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정도회와 마찬가지로 지원을 해준다고 좋아할 리 없습니다. 오히려 뜨내기들만 모여들 뿐입니다.”

“그렇다면?”

“저희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방식으로 하면 됩니다.”

곧 이어지는 말에 사자혁과 신위들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하던 것처럼 주변의 강자들을 더 끌어모아서 대련을 하면 됩니다. 약한 자는 도태되고 자연스레 강자만 남을 겁니다.”

얼핏 무서운 말이었지만 그것이야말로 사자혁이 원하던 바였다.

그는 계속해서 싸워야 했다.

이번 진백천과의 대련에서 그것을 더더욱 뼈저리게 느꼈다.

싸우지 않는 나태한 사자는 결국 살이 찌고 느려져서 사냥당할 뿐이었다.

“나쁘지 않군. 정도회와의 친선 대련으로 뜨거워졌으니 계속해서 연마(硏劘)해야겠지.”

“맞습니다.”

사자혁은 잠시 생각하나 싶더니 신위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구룡성의 문을 열어라. 이제부터 100일 동안 무제한 대련 체제로 돌입한다. 약한 자는 떨어지고 강자는 남는다. 대신 그만큼 보상도 강해질 것이다. 그것이 강자에 대한 예의니까.”

“모든 것은 천주님의 뜻대로.”

사자혁은 그 말을 뒤로 구룡성으로 걸어갔다.

아마도 지금의 신위들 중에서도 100일 뒤에는 바뀐 자들이 상당할 것이다.

그들의 순위를 지키는 것은 제한된 대련이란 방패가 있었으니.

사자혁의 명령은 구룡성뿐만 아니라 사패천, 그리고 더 강해지고 싶은 떠돌이 낭인들에게도 흘러 들어갔다.

“무제한 대련? 또 말뿐이겠지! 그들이라고 다를 줄 알아?”

“이번에는 정말 달라. 강하기만 하면 신위들에게도 도전할 수 있다고 하던데?”

“만약 정말 그렇다고 하면 참여를 안 할 이유가 없지!”

그로 인해 수많은 강자들이 사패천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정파 무인들이 무림대회를 준비하는 정도회로 몰리는 것과 상반된 모습이었다.

* * *

진백천이 떠나고 정확히 하루 뒤.

사패천의 활짝 열린 정문을 보며 기세를 내뿜으며 다가오는 이들이 있었다.

질끈 묶은 머리와 옷은 흙먼지로 잔뜩 뒤집어쓴 채였다.

“대사형. 이곳이 사패천인가 봅니다.”

“후우. 드디어 도착했군.”

검군(劍君) 유일환은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변에 있던 이를 붙잡고 물었다.

제법 한 성질해 보이는 남자였지만 유일환의 검집에 새겨진 매화 문양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뭐 하나만 묻겠습니다. 이곳에 정도회 회주가 머물고 있습니까?”

“……운룡심검(雲龍心劍)? 어제 떠났는데 왜 그러시오?”

떠났다는 말에 유일환이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남자는 유일환의 눈치를 살피며 재빨리 자리에서 멀어졌다.

매화검수들과 함께 있기에는 딱히 바르게 살아온 자가 아니었다.

“후우. 바로 어제 떠났다니 또 놓쳤군.”

“……대사형 그러니까 제가 서두르자 하지 않았습니까. 그깟 산적들이 무어라고.”

허탈해하는 매화검수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투덜거리는 것은 평우한이었다.

평우진 장로의 조카인 그도 이번 강호행에 함께했다.

다만, 전처럼 파를 가르는 것은 아니고 단지 정말로 유일환의 행보에 불만을 가진 것뿐이었다.

“아니, 어떻게 된 게 화산을 나오자마자 저희가 한 거라고 산속을 헤매며 산적들이나 악적들을 찾아다닌 것밖에 없습니다! 화산을 나와서 푹신한 침대는커녕 제대로 등 펴고 누워본 적이 기억도 안 납니다!”

“사제. 우리는 편하게 지내기 위해서 나온 게 아니야.”

“그것도 적당해 해야죠! 지금 누가 저희를 보고 매화검수라 생각하겠습니까!”

다른 매화검수들은 이번만큼은 평우한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는지 그저 고개만 주억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유일환은 너무 빡빡했다.

애초 목적이었던 진백천과의 비무가 무색하게 보이는 족족 악적이나 산적들을 쫓는 게 대부분이었다.

조금 과장해서 그들이 관아에 잡아넣은 산적들만 수백 명에 달했다.

“잠은 그렇다 쳐도 밥이라도 제대로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요즘 저희보고 산귀(山鬼)라 부른다고 합니다.”

유일환은 그들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너무 무리했나 보군. 사제들 미안하군. 그렇다면 이제 노숙은 그만하고 객잔에서 쉬도록 하자.”

“그럼 이제 씻을 수 있는 겁니까?”

“그래. 마음껏 씻어라. 장문인께 받은 돈도 있으니.”

“감, 감사합니다! 대사형!”

그들은 뭐가 그렇게 기쁜지 연신 유일환에게 고마워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평우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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