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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202화 (202/346)

무림회귀백서 202화

68장 친구가 된 기념으로(2)

그들은 진백천을 이곳에서 마주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딱딱하게 굳은 모습이었다.

“으음? 다들 이 밤중에 어딜 그렇게 돌아다녀?”

“잠시 쉬다가 보니. 오늘 대련이 떠올라서 말입니다. 허허.”

장로인 이개석이 말하자 뒤의 서 있던 전등신과 춘식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있는 황대원과 마찬가지인 이유였다.

각자 최선을 다한 대련이었지만 언제나 아쉬움은 남는다.

그것이 승리이건 패배이건 말이다.

“어차피 잠도 안 오고 살짝 몸이나 풀어볼까 하고 나왔습니다.”

진백천은 그들을 뿌듯하게 쳐다봤다.

특히 이개석은 장로임에도 불구하고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괜히 움직이다 상처 덧나지 말고 오늘은 푹 쉬어. 이 장로님도요.”

“알겠습니다. 회주님.”

하지만 문득 진백천의 시선에 전등신이 들어왔다.

아주 찰나였지만 왠지 아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고 보면 전등신은 대련에 참가하지 못했지?’

갑자기 툭 튀어나온 사자혁을 진백천이 상대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이들과 달리 상처 하나 없이 얼굴이 매끈했다.

그런데 전등신은 이런 것에서 차이를 느끼는지 다른 이들의 얼굴에 난 상처를 부러워했다.

-……나도 함께 싸웠다면 동질감을 느꼈을까? 살면서 이따위 상처가 부러울 때가 있다니.

그의 속마음을 들은 진백천은 가볍게 혀를 찼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소외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진백천은 굳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굳어진 몸을 풀었다.

전신 곳곳에서 비명 같은 뚜둑- 소리가 들려왔다.

“전등신. 몸 상태는 어때?”

“……네. 저는 대련에 참가하지 않아서 괜찮습니다.”

“그래? 그러면 나랑 가볍게 대련이나 할까? 나는 자기 전에 꼭 몸을 푸는 주의라서.”

전등신은 놀라면서도 거절하지 않았다.

그나마 이곳에서 정상은 자신뿐이었다.

진백천과 합을 맞추면서도 이것이 자신을 배려해 주는 것임을 알지 못했다.

몸에서 제법 땀이 나고 열이 후끈거릴 정도가 되자 진백천이 멈춰섰다.

“후우. 좋았어. 역시 대주라 움직임이 좋아.”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노력하는 복건추룡대 대주가 되겠습니다!”

잔뜩 기합이 들어간 목소리였다.

“그래. 오늘같이만 해. 전 대주가 있어서 다른 이들이 마음 놓고 최선을 다해 싸울 수 있었어.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얼핏 지나가는 식으로 말해준 것뿐이었지만 전등신은 그 말에 위로를 받았다.

그제서야 느껴지던 소외감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진백천은 그러한 것을 깨닫고 다시 방안으로 향했다.

“후우. 이제 날이 추워서 오래 나와 있기도 못하겠어.”

“그럴 것 같아서 오늘 아침은 뜨끈한 고기국수로 준비해 볼까 합니다.”

“좋아. 역시 춘식이야.”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전등신이 뒤늦게 그 뒤를 따라갔다.

처음과 달리 입가에 맺힌 것은 은은한 미소였다.

“춘식. 나도 도와줄까?”

“전 대주님이 말씀이십니까? 저야 환영입니다.”

그리고 정확히 반나절 후.

그들은 한데 모여 고기국수를 먹는 중이었다.

평소보다 무려 2배나 양이 많았지만 먹는 것도 전투적으로 잔뜩 기합이 들어간 모습이었다.

“사자혁이 깨어났다고?”

“그렇습니다. 식사 후에 약속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야지. 상태는 어때?”

진백천의 물음에 유소어가 살짝 웃고 말았다.

“……패배하셨다는 사실에 우울해하십니다.”

“쯧. 이래서 천재들이란 상종하기 힘들다니까. 무인이라면 적어도 수십 번의 패배를 겪고 거기에서부터 더 배워나갈 줄 알아야지! 안 그래?”

“회주님 말씀이 맞습니다!”

유소어는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천재를 대표하는 인물이 아니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애써 꾹 눌러 담았다.

진백천이야말로 제대로 패배한 적 없는 인물 중 하나였다.

현재 강호를 폭풍처럼 질주하는 운룡심검(雲龍心劍)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 말할지 궁금했다.

“여튼. 우리 애들 다 밥 먹이고 갈 테니까 그렇게 알아.”

“제가 여기 있다가 함께 모시겠습니다.”

“그럴 거면 같이 먹던가. 밥 먹는데 그렇게 쳐다보고 있으면 재수 없어.”

“…….”

고기국수로 든든히 배를 채운 진백천은 위풍당당하게 구룡성으로 향했다.

전과 달리 그와 마주치는 사패천 무인들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달라진 것 하나 없는 그대로였지만 사자혁과의 대련 탓이었다.

강자에 대한 예우? 아니, 그것보단 강자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컸다.

‘이들만큼 강함의 척도에 민감한 자들도 드무니까.’

진백천은 마침내 구룡성 앞에 서서 그 위를 다시 올려다봤다.

최정상 층의 전각이 어제 사자혁의 폭렬대멸검으로 인해 쥐 파먹은 듯이 깎여나간 모습이었다.

망가진 곳은 그곳만이 아닌지 곳곳에서 수리가 진행 중이었다.

“올라가자.”

“네. 회주님!”

진백천은 어제 대련에 참여했던 인원 그대로 당당히 9층까지 올라섰다.

그곳에는 사자혁을 중심으로 신위들이 앉아 있었다.

그 분위기가 사뭇 어제와는 달랐다.

* * *

“자리에 먼저 앉지.”

진백천은 사자혁의 말대로 일행들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차와 함께 달달한 다과가 차려졌다.

진백천은 차로 목을 적시며 사자혁과 신위들을 살폈다.

‘흐음. 유소어 말처럼 우울해 보이지는 않는데?’

놀랍게도 사자혁은 그대로였다.

오히려 안에서 꿈틀대는 내력은 진백천과 싸우기 전보다 한층 더 커져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사자혁은 얼핏 보이는 모습은 기뻐 보이기까지 했다.

‘……괴물 같은 무공이야. 마음껏 쏟아냈더니 더 성장했다 이거지?’

대신 다른 신위들은 무척이나 침울했다.

사자혁처럼 무언가를 얻은 것도 아니라 패배만 경험했다.

그들이 견고히 지키던 신위 자리도 계속해서 도전해올 자들로 인해 꽤나 피곤해질 터였다.

“어라? 회주님. 저랑 싸웠던 8신위는 보이지 않아요.”

“그 난쟁이?”

당소예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에게 패배한 얼굴을 보며 잔뜩 비웃어주려고 했는데 아쉬웠다.

하지만 그 말에 대답을 한 것은 다름 아닌 사자혁이었다.

“현재 8신위는 공석이다. 회단조를 말하는 거라면 독으로 인해 팔이 잘리고 구룡성에서 추방되었지.”

“……추방이요?”

“그래. 만약 찾아보고 싶다면 구룡성 밖의 사패천 구역 어딘가에 있을 거다. 아니면 내가 찾아내서 끌고 올까?”

그렇게까지 할 생각이 없는 당소예는 손을 내저었다.

“생각이 바뀌면 말해라. 친우의 시녀에게는 그것보다 더한 것도 해줄 수 있으니.”

사자혁의 입에서 나온 친우라는 말 때문일까.

신위들을 비롯해 모두가 움찔하며 몸이 굳었다가 움직였다.

평소 사자혁의 태도로 보면 인정 못 하겠다고 난리를 피면 피웠지 이렇게 진백천을 인정하는 모습은 기이할 정도였다.

후르륵-

정작 사자혁 본인은 여유로운 모습으로 차를 들이켤 뿐이었다.

“크흠. 빨라서 좋네. 패배를 바로 인정하다니 말이야.”

패배란 말에 신위들이 움찔하며 사자혁을 쳐다봤다.

평소라면 찻잔을 집어 던지며 인정 못 하겠다고 해야겠지만-

지금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 패배라는 것도 의외로 나쁜 기분만은 아니더군. 어제와 같은 패배라면 더 경험해 보고 싶어졌어. 덕분에 새로운 벽을 뛰어넘었으니까.”

“축하드립니다! 천주님!”

사자혁의 말에 신위들이 크게 반색하며 소리쳤다.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동안 벽에 갇혀 있던 사자혁이었다.

그랬던 탓에 성격이 다소 날카로워진 것도 있었다.

“……누구를 죽이려고?”

“하하하. 역시 친. 우. 께서는 이미 알고 있었군. 마음 같아서는 이제 정기적으로 친선 대련을 해볼까 하는데. 어때?”

“그러지 않아도 앞으로는 싸울 기회는 많을 거야. 공통의 적이 있잖아.”

“마교 따위 말인가?”

사자혁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한 태도에서 마교에 대해 사자혁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우습게 보고 있어? 사자혁이 이렇게까지 오만한 인물은 아니었을 텐데?’

하지만 곧 이어지는 말에 사자혁이 그런 태도를 취한 이유를 깨달았다.

“자네가 마교를 그렇게까지 견제하는데 놈들이 활개 따위 칠 수가 있을까?”

“나라고 혼자 놈들을 상대할 수는 없으니까.”

“혼자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사자혁은 뜨거운 차를 그대로 입에 털어 넣고는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당문, 하오문, 황실, 개방, 종남, 화산, 무당, 녹림과 장강, 거기에 사패천까지. 자네야말로 강호를 일통할 생각 아니야? 그러지 않고서야.”

“그만큼 마교가 숨긴 세력이 많다고 생각해 보지는 않았고?”

“글쎄. 만약 정말 그렇다고 해도 나는 안심이군. 자네 옆에 서서 놈들을 쓸어버리면 될 테니까! 하하하하!”

진백천은 갑자기 변한 사자혁의 태도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뭣하면 윽박이라도 지르려고 왔건만 너무 순순히 자신의 생각에 동조해 주었다.

“그나저나 친구가 된 기념으로 선물을 하나 주고 싶은데.”

“선물?”

“그래. 자네가 무척이나 관심 있어 하는 물건이야.”

사자혁이 손짓하자 수하들이 수레에 큼지막한 상자를 끌고 왔다.

딱히 무거워 보이지는 않았지만 다루는데 극히 조심하는 게 느껴졌다.

특이한 것은 상자의 표면에 황색의 봉인지가 단단히 붙어 있었다.

‘부적?’

단순히 장식으로 붙여놓은 것은 아니었다.

부적에서 모산파 도사 도홍경이 만들었던 것과 비슷한 기운이 풍겨왔다.

“이게 뭐야?”

“세간에 떠도는 소문은 알 거야. 단순히 쥐는 것만으로도 내력이 증진되고 강해진다는 검.”

“복마검(伏魔劍)?”

“맞아. 사패천에서도 그 검에 대해 알고 의뢰를 맡긴 상태였지. 그런데 웬일인지 자네와의 대련이 있던 후에 곧바로 왔더군.”

그것도 무려 값을 치르지 않은 상태였다.

아마도 이 검을 보낸 누군가가 패배에 물든 사자혁을 노리고 보내왔음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사자혁은 그들이 생각한 것과 다르게 배부른 사자였다.

“만약 자네와 겨루기 전이었다면 이 검을 내가 차지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어떻게 하면 더 빨리 강해지고 높이 도달할 수 있는지 알거든.”

그 말을 하면서 진백천을 쳐다보는 사자혁의 두 눈이 왠지 반짝였다.

“크흠. 내가 이걸 관심 있어 하는 걸 어떻게 알고?”

“사패천에 있는 이들 전부가 나의 귀이고 눈이야. 그것이 비록 나를 따르지 않는 이들이라고 해도 말이지.”

사자혁은 진백천과 하용추의 대화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용추로써도 이곳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정보의 일부를 제공할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그럼 뜯어봐도 되지?”

“물론. 대신 자네가 아닌 다른 이가 건들지 않게 하는 게 좋을 거야. 이 상태로 옮기려던 무인 중 하나가 정신이 미쳐서 날뛰었거든.”

진백천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상자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명백하게 그 안에서 뿜어지는 기운이 느껴졌다.

‘완벽한 살의(殺意).’

사람이 이 안에 있는 것이 아닌 이상 단순히 검이 이 정도의 의지를 보인다면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백천을 유혹하듯 끊임없이 말을 걸어왔다.

-나를…… 집어라…… 전부 죽일…… 힘……!

떠듬거리듯 전해오는 말이었지만 상단전이 활짝 열린 진백천이었기에 그 말을 비교적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강해지기는 개뿔.’

진백천은 상자와 진백천 주변에 기막을 치고 부적을 뜯어냈다.

그러자 방금과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사악한 악의가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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