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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201화 (201/346)

무림회귀백서 201화

68장 친구가 된 기념으로(1)

전각으로 돌아온 진백천은 쓰러지듯 침상에 누웠다.

내력이 천천히 돌아오고 있다고 하지만 평상시와 비교하면 만신창이임은 틀림없었다.

진백천은 겉옷을 벗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으으윽. 삭신이야.’

호연보의를 입은 부위를 제외하면 전부 자잘한 상처투성이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황음각에서 맹노의 의견을 들어 호연보의를 고른 것은 평생을 뿌듯해할 만한 결정이었다.

우우우웅-

진백천은 운기조식을 취하며 몸에 남아 있는 대환단의 기운을 모아보려 했지만 역시나였다.

단 한 톨의 기운도 남김없이 전부 싹 사용된 후였다.

한 번의 대련으로 최고의 영단이라는 대환단을 날려 버린 것은 무척이나 뼈아픈 결과였다.

‘이제…… 남은 건 단 하나뿐인가?’

금혈화린어도 없어졌으니 품속이 더 휑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친선 대련에서는 이겼잖아.’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생각하려 해도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긴 운기조식을 끝마치고 나서야 어느 정도 몸 상태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방 밖으로 나가자 어느새 세상은 어둠에 물든 후였다.

“회주님! 일어나셨어요?”

“응. 왜 안 쉬고 이러고 있어?”

당소예는 진백천의 방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전각 주변으로 정도회의 무사들이 있기에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그녀는 굳이 자리를 지켰다.

“혹시 모르잖아요. 목이라도 마르시거나 배고프시면 제가 챙겨드려야죠.”

당소예는 미리 준비해놓은 음식을 보이며 말했다.

마침 배고픔을 느꼈던 진백천이 피식 웃으며 그 쟁반을 받았다.

곱게 쑨 죽과 야채 볶음이었다.

진백천은 죽을 한입 떠먹으며 다른 이들에 대해 물었다.

“다들 괜찮아요. 다만 조금 지쳤는지 바로 곯아떨어졌어요.”

“그럴 만도 하지. 평범한 친선 대련은 아니었으니까.”

“맞아요.”

진백천은 당소예의 볼에 생긴 상처를 살폈다.

분명 길게 베였음에도 이제는 실금 같은 딱지와 불그스름한 자국만이 남아 있었다.

“아참. 이거 어떻게 하신 거예요? 분명 독 기운 때문에라도 흉터가 남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다행히 지금으로써는 흉터가 남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진백천이라고 딱히 뭐라고 말해줄 거리는 없었다.

‘상단전이 과하게 열리더니 생긴 우연이라고 할 수도 없고.’

“독 기운이 아니면 그다지 깊은 상처는 아니었던 모양이야.”

“으음. 그런가? 분명 깊게 베인 느낌이었는데.”

“그러면 뭐. 내 손이 약손인가 보지.”

진백천의 말에 당소예가 피식 웃었다.

그사이 진백천은 죽 그릇을 싹 비워냈다.

속이 음식으로 들어차자 어느 정도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회주님. 우리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어떻게 되긴. 갑이 되는 거지.”

당소예가 주변을 살피더니 조용히 목소리를 죽이며 말했다.

“……아까 회주님 쉬고 계실 때 다른 신위들이 찾아왔었어요.”

“나를? 왜?”

“글쎄요. 왜냐고 물어봤는데 딱딱하게 내일 오겠다고 말하더니 다시 가버리더라고요.”

당소예가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지만 그다지 큰일은 아닐 터였다.

사자혁이 쓰러졌을 때 이미 그의 몸에서 독기도 흡수했고 치명적인 상처도 없었다.

“걱정 마. 별일 없을 거야.”

지금은 그런 것보다 더 급한 문제가 많았다.

억지로 끄집어내긴 했지만 황대원의 몸에는 금혈화린어의 화기가 일부 남아 있었다.

“황대원은?”

“황 무사님이요? 피곤하다고 먼저 쉬러 갔어요.”

“그래. 소예 너도 얼른 가서 쉬어.”

“네.”

당소예의 눈 밑이 거뭇거뭇했다.

다른 이들과 달리 쉬지 않고 진백천의 침소 앞을 지킨 탓이었다.

당소예는 눈을 비비더니 곧바로 침상에 가서 누웠다.

곧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항상 고생만 시키니 미안해 죽겠네.’

진백천은 조심히 이불을 끌어올려 덮어주었다.

그리고 조심히 방에서 빠져나왔다.

왠지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싶었다.

“회, 회주님! 일어나셨습니까!”

“추, 추우웅…….”

“쉿. 다들 쉬니까 작게 해도 돼.”

정도회의 무사들은 억지로 숨을 들이 삼키며 목소리를 죽였다.

그들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전각 주변을 지키는 중이었다.

“고생이 많네.”

“아, 아닙니다!”

“회, 회주님이야말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옆에 서 있던 다른 무사가 찌릿하며 그를 노려보자 자신의 말실수를 깨달았는지 흠칫 놀랐다.

하지만 진백천은 딱히 별말 없이 그들을 지나갔다.

“나는 잠시 산책 좀 하고 올게.”

“네. 알겠습니다!”

“……저…… 회주님!”

“응?”

눈치를 보던 무사는 이내 결심했는지 떠듬거리며 말했다.

“회주님이 계셔서 정말 좋, 좋습니다!”

“내가 있어서 좋다고?”

“네! 그렇습니다!”

갑작스러운 고백에 진백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 옆에 있던 무사가 재차 설명했다.

“……아무래도 회주님이 정도회에 계셔서 그만큼 자랑스럽고 뿌듯함을 느낀다는 것 같습니다. 오늘 회주님의 대련 모습을 보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했겠지만 말입니다. 맞지?”

그의 물음에 무사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아아. 뭐 당연한 거지.”

“……당연하지 않습니다! 사패천도 그렇지만 다른 곳에서 회주님처럼 뛰어나시고 수하들을 생각하는 분은 안 계십니다!”

진백천이 정도회를 위해 한 일은 무척이나 많았다.

하지만 그들이 감명받은 것은 그런 물질적 지원뿐만이 아니었다.

황대원을 비롯해 당소예와 강량호 등을 챙기는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그런 진백천을 보고 있자면 자연스레 따르고 반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좋다고 하는 건가?’

진백천은 그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주제넘었다면 죄송합니다.”

“아니야. 그냥…… 내가 이번 생은 참 잘살고 있구나, 해서.”

지난 회귀 중에는 그 누구도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준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진백천은 왠지 뜨끈해진 손바닥으로 그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중에라도 또 하고 싶은 말 생기면 언제든 말해. 들어줄 용의가 있으니까.”

“감, 감사합니다!”

진백천은 아무도 없는 뒷길을 따라 걸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은 무척이나 청명했다.

바삭- 거리며 밟히는 풀 소리만이 들려왔다.

진백천의 뇌리에는 조금 전 무사가 했던 말이 여운처럼 남았다.

자꾸 말아 올라가는 입꼬리를 자제하며 고개를 휘저었다.

‘크흠. 너무 들떠있지는 말자.’

그가 이 시간에 밖에 나온 것은 호무살(虎武殺)을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의념상으로 만들어지던 기운이 사자혁의 가슴팍을 뚫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 만약 아무 때나 상관없이 사용 가능하다면 진백천에게는 또 다른 절초가 생겨나는 것이었다.

‘사자혁 정도 되지 않는 자라면 죽을 때까지 눈치채지도 못하겠지.’

진백천은 곧바로 자신의 눈앞에 비수를 만들어냈다.

오늘 정신력을 상당히 소모했는지 관자놀이가 뻐근했다.

‘흐음. 평소랑은 다를 게 없는데?’

비수를 유심히 살펴봤지만 딱히 특이한 것은 없었다.

혹시나 해서 비수 끝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하지만 사자혁의 가슴팍을 꿰뚫었던 것과 달리 간지러운 느낌만 들었다.

물리력이 없어진 전의 호무살이었다.

‘그때와 다른 점이 뭐지?’

고민하던 진백천은 억지로 열린 상단전을 떠올렸다.

‘설마 그때 인당혈(印堂穴)로 파고들어 갔던 내력 때문인가?’

전신에 있던 3갑자의 내력과 금혈화린어의 화기마저 전부 상단전에 빨려 들어갔다.

무려 양 눈이 타들어 가고 두개골이 벌어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한 내력은 갑자기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었다.

‘그게 사라진 게 아니라 호무살의 비수에 실린 거였다면?’

진백천은 약간의 걱정과 함께 상단전에 집중했다.

전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깊고 넓어진 것이 느껴졌다.

주변에서 속닥거리는 듯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신경을 쓰고 싶지 않던 진백천은 그런 것들은 전부 차단했다.

‘……내력을 불어넣어 보자.’

태허무극진결의 기운이 상단전으로 조금씩 흘러 들어갔다.

그러자 놀랍게도 눈앞에 떠 있는 비수가 예리함을 뽐내기 시작했다.

‘으음?’

손가락 끝을 가져다 대자 따끔한 통증과 함께 핏방울이 뭉글거리며 맺혔다.

비수에 베였다기보다는 바늘에 찔린 느낌이었다.

‘이거였어!’

무슨 원리인지는 몰라도 진백천의 상단전이 하나의 통로 역할을 했다.

의념으로 만들어진 비수에 물리력을 주었다.

문제는 그 비율이었다.

‘쏟아붓는 내력에 비해 너무 극악이야.’

단지 바늘로 따끔거릴 정도가 아니라 제대로 된 비수를 구현해 내려면 꽤나 많은 내력을 쏟아부어야 할 것 같았다.

실제 전투에서 겨우 이 한 수를 위해 내력을 그만큼 소비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진백천은 손을 휘저으며 단검을 흩뜨렸다.

“후우. 새로운 선택지가 생긴 거니까 좋은 거겠지.”

다시 전각으로 돌아가려던 진백천은 문득 멀지 않은 곳에서 파공성을 들었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는 어딘가 익숙했다.

혹시나 하고 가보자 달밤 아래 홀로 무기를 휘두르고 있는 자는 다름 아닌 황대원이었다.

홍혈도에게 베인 상처가 터지며 피가 조금씩 흘러나왔지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황대원.”

“……회주님?”

황대원은 손에 들고 있던 부절도부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쿠웅-

“쉬지 않고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쉬었습니다. 근데 잠을 깨고 나니 자꾸…… 생각이 나서 말입니다.”

“생각?”

홍혈도와 겨루면서 깨달았던 자신의 부족함이었다.

“제가 조금만 더 부절도부를 다루는 게 익숙했다면…… 동작이 매끄로웠다면…… 그런 생각 말입니다.”

“쯧. 누가 황보세가 아니랄까 봐 고집 한 번 세네. 오늘 충분히 잘했어. 홍혈도는 강호의 강자야. 그를 상대로 선전했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거라고.”

아직 그것의 감흥이 오지 않는지 그저 머리를 긁적였다.

그가 바라보는 등이 바로 진백천의 것이기에 더더욱 그럴지도 몰랐다.

“몸 상태는 어때?”

금혈화린어의 내단의 기운이 일부 남았지만 지금 움직이는 것을 보면 딱히 부작용은 없어 보였다.

황대원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당 소저가 금창약을 잔뜩 발라줘서 끈적한 것을 빼면 별다른 것은…… 흐음.”

말을 하던 황대원이 순간 침음성을 흘렸다.

“조금 기이한 느낌입니다만…… 화염도에 당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정확히 어떤데?”

“내력을 끌어올리면 열기가 전해집니다. 단순히 제 착각…….”

화르르르륵-

스스로 착각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의 왼손에 불꽃이 타올랐다.

화들짝 놀란 황대원이 반대편 손으로 찰싹 때리며 불을 꺼뜨렸다.

“……화기(火氣)인가?”

얼핏 느껴지는 것만으로도 금혈화린어의 것과 비슷한 기운이었다.

‘역시 내단의 기운이 몸 안에 남아 있는 모양이야.’

딱히 열기가 느껴지는 것을 제외하면 나쁠 것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이것으로 인해 어느 정도 내력도 증진되었다.

하지만 황대원은 정확히 이것의 정체를 모르는지 몹시 당황한 모양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좋은 거니까.”

“혹시 회주님이 주셨던 불을 흡수하던 그 붉은 구슬과 관련 있는 겁니까?”

“맞아. 무척이나 좋은 거니까 천천히 흡수해 봐.”

아마 체내에 남아 있는 대환단의 기운과 함께 전부 흡수하려면 몇 년이 걸릴지 몰랐다.

“……감사합니다. 회주님.”

“또 뭐가?”

“분명 범상치 않은 물건일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그렇긴 했다.

금혈화린어 내단이라면 천만금을 줘서라도, 아니, 그것의 제대로 된 존재조차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귀한 것이었다.

“내 손에 들어왔지만 지금 이렇게 된 것을 보면 물건의 주인은 황대원인 거야. 너무 신경 쓰지 마.”

그것의 대부분은 진백천의 상단전을 여는 데 사용되었지만 굳이 그것까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들어가려는데 또 누군가 뒷길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무려 3명이었다.

“……회주님?”

장로인 이개석을 비롯해 춘식이와 전등신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손에 무기를 들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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