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200화
67장 이거 참 힘드네(3)
진백천이 마지막 한 수라고 표현하는 것은 말 그대로의 의미였다.
사자혁이 쥐고 있는 검뿐만 아니라 주변에 떠 있는 것들까지 전부 그의 내력에 반응했다.
‘단번에 터뜨릴 생각이겠지.’
그렇게 되면 본인조차 멀쩡할 리 없겠지만 그런 무공이 바로 회천극상룡천(會千極上龍天)이었다.
자신의 몸속에서 휘몰아치는 회오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탓이다.
사방에 꿈틀대는 기운 속에서 사자혁은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회주! 이것마저 버티면 내가 패배했음을 인정하겠다!”
검들이 서서히 한 방향으로 회전하며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진백천은 서서히 자신을 끌어당기는 흡입력을 느끼며 바닥에 다리를 굳게 딛고 버텨 섰다.
“모두 뒤로 물러나!”
진백천의 외침에 정도회의 무사들과 관중들마저 연무장에서 떨어졌다.
그들이 보기에도 사자혁의 이번 한 수가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회주니이임!”
당소예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진백천은 불불 끓는 속내였지만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손짓했다.
“걱정 말고 뒤로 물러나 있어.”
“……무리하지 마세요!”
무리하지 말라는 그 말이 왠지 애처롭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무리라는 단어의 천 배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을 마구잡이로 남발했을 진백천이었다.
사자혁은 어느새 거대한 소용돌이가 되어 자신을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그 높이만 해도 구룡성에 버금갈 정도의 거대한 크기였다.
콰드드드득!
연무장의 바닥은 물론이고 전부 강기를 품은 칼날에 분쇄되어 사라졌다.
만약 진백천이 이대로 저곳에 빨려들어 간다면 어떤 꼴이 될지 불 보듯 뻔했다.
‘……이놈 마교와의 사혈대전도 혼자 날뛰다가 이렇게 자멸한 거 아니야?’
그도 그럴 게 오마군종대라 하면 진백천보다 훨씬 끈질긴 상대들이었다.
지금도 이렇게 기뻐 날뛰는데 그놈들이라고 그러지 않으리란 법 없었다.
‘……변태 같은 놈. 쯧.’
진백천은 이대로 훌쩍 도망가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저놈이 그대로 두고 볼 리도 없거니와, 사자혁이 이 대련에서 죽는 것은 말도 안 됐다.
‘정마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정사대전이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진백천은 자신을 향해 천천히 떨어져 내리는 소용돌이를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생은 아무리 봐도 마(魔)가 낀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가는 곳마다 고생길이 열릴 리 없었다.
그런 불평에도 진백천은 천천히 소용돌이를 향해 나아갔다.
“그래도 다행이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게.”
사자혁의 마지막 폭렬대멸검(爆裂大滅劍)의 한 수가 이렇다는 것쯤은 이미 알았다.
그런데도 진백천이 이렇게 가만히 지켜보고 있기만 한 것은 어떻게 파훼할지 생각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흘러갈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진백천은 독고구검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날카로운 검신이 바닥을 두부 자르듯 파고 들어갔다.
갑자기 검을 내려놓는 모습은 멀찍이 떨어진 이들로 하여금 의문을 자아냈다.
하지만 그 후에 하는 행동을 보고 모두가 입을 떡하니 벌렸다.
‘유일하게 상단전에 흡수되지 않은 기운이 있지.’
태허무극진결과 천마신공, 혈강옥불상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남은 하나.
바로 독정이었다.
그동안 독을 사용할 기회가 없었다고 하지만 그는 그 자체로 이미 독인(毒人)이었다.
“후우. 혹시나 해서 독 기운을 아껴두길 잘했지. 마음껏 맡아봐. 싸우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질 테니까.”
진백천은 품속에서 사패천의 경매장에서 사놨던 절독들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거침없이 입에 때려 부었다.
치지지지직-
화골산(化骨散)이 입안의 피부를 녹여 들어갔지만 이내 독정의 기운에 흡수되었다.
그 밖에도 학정홍(鶴頂紅)부터 군자산(君子散), 산공독(散功毒), 미혼산(迷魂散)까지 가리지 않았다.
단지 독을 마신 것만으로도 배가 부를 때쯤 진백천은 오랜만에 들끓는 독정의 기운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흐읍!”
독정은 기경팔맥을 따라 전신을 질주했다.
검녹색의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양손이 검게 물들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나온 독정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스스스슥-
손이 완연한 검녹색으로 물들자 독기는 점점 상체로 번져나갔다.
그리고 이내 독 기운이 전신에 가득 찼다.
독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진하게 한번 취해봐!”
진백천은 손을 뻗으며 곧 터질 것 같은 기운을 앞으로 쏘아 보냈다.
천지만독수(天支萬毒手).
전신에 쌓여 있던 독기가 소용돌이를 향해 뿜어졌다.
강한 흡입력은 곧바로 독기를 흡수하며 그것을 사자혁에게 보냈다.
곧 하늘이 검게 물들며 어두컴컴해졌다.
“이쯤이면 좀 쓰러져라. 쫌.”
진백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용돌이의 변화가 일어났다.
쿠우웅-
한 측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난다 싶더니 바람이 급격하게 약해지기 시작했다.
한눈에 봐도 사자혁에게 문제가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사자혁은 소용돌이 한가운데 독기에 휩싸인 채 고통스러워했다.
“크헉! 이, 이게 무슨!”
사자혁 정도 되는 인물이 중독될 확률은 극히 드물었다.
어릴 때부터 독에 대한 내성을 키우기도 하지만 독을 제어할 기본적인 독공도 익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를 감싼 독은 겨우 기본적인 독공 따위로 막아낼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크으윽!”
내력이 흩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흔들리는 시야와 전신의 피부가 따끔거리며 타들어 갔다.
어떻게든 독기를 흩날려 버리려고 해도 소용돌이의 흡입력에 의해 자신에게 모여들었다.
마지막 초식을 운용하던 사자혁에게 이러한 독기는 무척이나 치명적이었다.
“……이렇게 끝낼 수는……!”
사자혁이 이를 악다물며 소리쳤지만 의지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검을 통제하던 내력이 사라지면서 그의 소용돌이도 무너졌다.
그것은 곧 내상으로 이어졌다.
“쿨럭!”
사자혁은 피를 토하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자유 낙하하는 몸을 느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꼬인 전신의 내력과 독기를 막아내는 것만으로도 이미 한계였다.
‘너무 욕심을 부렸나?’
하지만 그의 신형이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에 누군가를 그를 받아냈다.
“후우. 더럽게 무겁네.”
어느샌가 내력이 돌아온 진백천이었다.
그는 싸우기 전보다 더욱 생기가 넘쳐 보였다.
“자라 이제 좀.”
진백천은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사자혁의 수혈(睡穴)을 짚었다.
* * *
독기를 전부 뿜어낸 진백천은 무척이나 상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몸이 완전히 텅텅 비어버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내력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그제서야 단전이 차지 않던 것이 모든 것을 비워내지 않았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우우우웅-
진백천은 혈도를 강하게 채우는 태허무극진결(太墟無極進結)의 내력을 느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다행이야.”
안도해 하는 그의 곁으로 사패천과 정도회의 무사들이 동시에 다가왔다.
그들의 시선은 각각 진백천과 사자혁을 향했다.
“유소어. 너네 대장 데려가라. 내가 재워놨으니까 깨어나면 부르고.”
“……별문제는 없으신 거죠?”
“응. 독기 좀 머금고 초식 실패하면서 내력이 꼬이긴 했어도 별문제 없어.”
그의 몸에 남아 있던 독기는 전부 진백천이 다시 흡수한 상태였다.
아마 이 괴물 같은 몸이라면 금방 다시 정신을 차릴 터였다.
유소어를 비롯해 신위들은 사자혁을 데리고 구룡성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그들을 막은 것은 진백천이었다.
“친선 대련은? 아직 그쪽에 남은 자들이 있잖아.”
진백천의 물음에 신위들이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대련을 이어나가는 것은 말도 안 됐다.
어차피.
기세등등한 진백천을 상대로 이기기도 힘들어 보였고 말이다.
“……저희의 패배입니다.”
진백천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기쁘게 웃으며 그들을 보내주었다.
신위들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꾸벅이며 뒤돌아섰다.
형형이 빛나는 눈은 도중에 누가 끼어들기라도 하면 당장에라도 베어버릴 듯 살기를 내뿜었다.
“우리도 이제 슬슬 돌아가서 쉬자고.”
“……회주님은 괜찮으십니까?”
“나?”
진백천은 슬금슬금 모여드는 관중들을 보며 목소리를 일부러 다듬었다.
“조금 힘들긴 해도 이 정도면 별것 아니지! 다들 몸은 괜찮지?”
“네! 문제없습니다!”
“또 싸우라고 해도 가능해요!”
진백천의 물음에 모두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지극히 관중들을 의식한 말이었다.
정도회가 무조건 질 거라던 이들의 입은 누군가 꿰매기라도 한 듯 벌어지지 않았다.
오죽하면 가장 심하게 다쳤던 강량호조차 정신을 차리고 그 앞에 서 있었다.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지만 진백천이 준 대환단 반 알 덕분인지 나빠 보이지 않았다.
“쯧. 친선 대련인데 얼굴이 이게 뭐야? 조금 상처 난 거니까 금방 아물 거야.”
“저는 괜찮습니다!”
“그래도 내가 흠씬 복수해 줬으니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그 누구든 정도회를 건들면 아주 망가지는 거야. 알았어?”
진백천과 정도회 무사들은 당당한 태도로 전각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관중들은 조금씩 입을 떼기 시작했다.
“……정도회 회주가 이기다니. 이거야말로 이변 아닌가?”
“엄청난 이변이지! 그것도 무려 상처 하나 없이 사패천주를 이겼어. 천주가 정신을 잃고 끌려가는 것 봤지?”
“이거…… 아주 사패천의 입장이 난처해지겠는데?”
하지만 막연히 무광(武狂) 사자혁이 알고 보니 약하다-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대련 중 나왔던 보이지 않는 비수를 비롯해 사자혁의 폭렬대멸검(爆裂大滅劍)은 모두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차츰 경기의 결과는 초고수들의 대련 정도로 마무리되어갔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그 자리에서들 뿐이었고 실제로 퍼져나가는 호사가들의 입은 또 달랐다.
* * *
전국의 객잔과 홍등가 뒷골목.
곳곳에서는 매일같이 정도회의 무사들과 사패천의 신위들의 친선 대련에 관한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코가 삐뚤어질 것처럼 마시던 남자가 유난히 큰 목소리로 이야기 중이었다.
“내가 말이지! 꼭두새벽부터 사패천 앞에서 기다려서 대련을 직접 지켜봤단 말이지!”
“진백천 회주와 사패천주의 대련 말인가?”
“당연하지! 그걸 안 보고서는 친선 대련을 봤다고 할 수 있나?”
남자의 말에 주변에서 관심을 갖고 그에게 몰려들었다.
소문으로만 들었지 이렇게 직접 봤다고 하는 자는 처음이었다.
“어땠는지 상세하게 말해보게.”
“상세하게 말할 것도 없지. 그날 대련의 결과는 딱 한마디로 요약이 가능하니까.”
“한마디?”
남자는 술을 벌컥벌컥 들이켜더니 그때를 떠올리는지 눈동자가 멍해졌다.
“운룡심검(雲龍心劍)의 탄생!”
“운룡심검? 그거 혹시 진백천 회주를 말하는 건가?”
“그렇지! 구층 전각 크기의 소용돌이를 뚫고 보이지 않는 칼날을 휘두르며 사패천주를 상대했어! 사패천주가 휘두른 검의 개수가 몇 개인 줄 아나?!”
남자의 질문에 바로 옆에 있던 남자가 떠듬거리며 대답했다.
“백, 백 개 아니었나?”
“그거야 그냥 떠도는 이야기고 실제로는 말이지…….”
남자는 자신에게 쏠린 이목을 즐기며 입술에 침을 발랐다.
“무려…… 천 개였지.”
“천 개? 그게 말이 되나? 아무리 사패천주라고 해도…….”
“허허. 자네 그 자리에 있었나? 나는 말이야. 그 전날 꼭두새벽부터 사패천 앞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기다렸다고!”
“아, 알았네. 내가 사과하지. 그러니까 더 설명해 봐. 운룡심검 말일세.”
“그렇지! 운룡심검!”
남자는 방금 자신이 만들어 낸 별호치고는 꽤나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가 본 것은 소용돌이와 맞부딪치는 진백천의 어렴풋한 모습뿐이었다.
“구름에 휩싸인 채 보이지 않는 심검을 날리는 고수란 뜻이지.”
“심검이라니! 그건 전설 속에서나 나오던 무공 아니었나?”
“그런 줄 알았지!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자들은 전부 똑똑히 봤네! 갑자기 하늘에 피어오르는 사패천주의 피를 말이지!”
남자의 흥분된 목소리에 주변인들도 전부 감화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마치 그 자리에서 생생히 그 광경을 지켜보는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대, 대단하구만.”
그러한 이야기는 술이 다 떨어지고 깊은 밤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하지만 발 없는 말은 그 자리가 끝났어도 쉬지 않고 퍼져 나갔다.
그렇게 채 한 달이 지나기 전에 운룡심검이라는 별호는 강호인이라면 모르는 자가 없을 정도로 유명해지고 말았다.
겨우 술주정뱅이 호사가가 만들어낸 것 치고는 제법 큰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