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회귀백서-199화 (199/346)

무림회귀백서 199화

67장 이거 참 힘드네(2)

피의 꽃은 화려하게도 피어났다.

점점이 잎사귀처럼 사방에 흩날리며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시야를 붉게 메웠다.

방금까지 몰아치던 거센 바람이 순간적으로 잦아들었다.

“회주니이이임!”

진백천의 가슴팍에는 사자혁의 검 끝이 꽂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옷뿐이었고, 살갗에는 조금도 상처를 내지 못했다.

증폭되지 않은 사자혁의 검은 진백천의 호연보의(護燃保衣)를 뚫지 못했다.

검 끝이 미끄러지듯 내려가자 그제야 사람들은 의문에 휩싸였다.

“……그렇다면 저 피는 대체?”

“서, 설마?”

사자혁은 제자리에 서서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왼쪽 가슴이 서서히 붉게 물들어갔다.

관중들은 갑작스러운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 금방이라도 베일 듯 휘청거리던 것은 진백천이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사자혁의 가슴팍이 꿰뚫리며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검날이 그를 뚫고 지나간 것만 같았다.

“……놀랐다. 회주. 그런 무공을 사용하다니. 과연 한 수가 있었군. 방심했다면 정말 죽었을 뻔했어. 불괴지신을 꿰뚫는…… 무공이라!”

사자혁은 자신의 상처를 지혈하며 말했다.

마지막에 몸을 틀지 않았다면 뚫린 것은 살점이 아니라 심장이었을 터였다.

그의 감탄사에도 진백천은 뭐라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 벌어진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한 것이라곤 그저.

‘……호무살을 사용했을 뿐이었지.’

호무살은 의념상의 무공이었다.

작은 쥐나 벌레에게는 살의를 담아 죽일 수 있지만 그보다 조금이라도 큰 동물에게는 움찔하게 만드는 것이 전부였다.

하다못해 사람에게는 더더욱 힘이 들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더구나 사람에게 효과를 보려면 정신력이 무척이나 많이 소모가 되었다.

진백천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호무살로 날카로운 비수를 만들어냈다.

그러자 사자혁이 뒤로 물러나며 그것을 경계했다.

‘호무살이 보여?’

진백천은 그것을 확인하듯 의념의 비수를 천천히 허공에 띄었다.

그러자 사자혁의 시선 또한 비수를 따라 움직였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비수를 극도로 경계하며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흐음. 어떻게 된 건진 몰라도 나쁘지 않은데?’

어쩌면 다 졌다고 생각한 대련에서 오히려 쉽게 이길 수 있을지도 몰랐다.

지금까지와 다르게 진백천이 어깨를 붕붕- 돌리며 몸을 풀었다.

여유를 되찾은 모습이었다.

“장난은 지금까지 한 걸로 충분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해볼까?”

관중들의 웅성거림은 조금 더 심해졌다.

더구나 그 누구도 손끝 하나 대지 못했던 사자혁의 가슴에 구멍을 뚫은 이의 말이었다.

웃음까지 띤 모습을 보면 허장성세 따위는 아니었다.

“……대체 어떤 수였길래 사패천주가 저리 경계하는 거지? 저런 모습은 처음이군!”

“품속에 암기라도 숨겨두었나?”

“허어! 암기 따위에 사패천주가 당할 리 없지! 분명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한 수였을 거야!”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떠들어댄다고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비수를 알아맞힐 리 없었다.

진백천은 호무살을 쏘아 보내지 않고 경계로만 사용했다.

‘지금의 변화는 금혈화린어와 내력들이 상단전으로 파고 들어갔기 때문이겠지. 문제는 이게 언제까지 유지가 되느냐는 거야.’

상단전의 무공인 호무살은 내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피로도가 빠르게 쌓였다.

그렇기에 가능하면 비수를 아끼면서 사자혁을 상대해야 했다.

‘후우. 대련이기에 다행이지.’

만약 그것이 아니었다면 사자혁은 괴물 같은 무공을 끌어내며 사자처럼 달라붙었을 터였다.

하지만 진백천은 속마음과 다르게 천연덕스럽게 사자혁에게 말했다.

“대련이기에 다행이군.”

“그게 무슨 뜻이지?”

“내 말뜻은 네가 더 잘 알 텐데? 대련이 아니었다면 이미 누군가는 바닥에 피를 흘리며 널브러져 있겠지.”

사자혁의 입매가 비틀어졌다.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지만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도는 비수를 보며 멈춰섰다.

“자신감이 대단하군.”

“당해봤으니 알잖아. 그러니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어때? 이건 친선 대련일 뿐이니까.”

사자혁은 진백천의 패배 제의가 끝나기도 전에 손에든 무기를 거칠게 바닥에 집어 던졌다.

쿠우웅-

단순히 검과 바닥이 부딪친 것뿐이었지만 바닥이 산산조각 나며 그 안에 모습이 드러났다.

“……철괴?’

쇠사슬로 감긴 1장(3m) 넓이의 철괴였다.

그것을 드러내자 안에 빼곡히 박혀 있는 것은 수백 자루의 검이었다.

놀랍게도 검은 그 하나하나가 전부 명검에 해당할 정도로 뛰어난 것들이었다.

사자혁은 진백천을 노려보며 말했다.

“회주가 그렇게까지 진심을 담아 대련에 임해주니. 나도 그렇게 해야겠군.”

“……아니, 굳이 그렇게까지 진심은 아니었는데?”

더는 듣지 않겠다는 듯이 사자혁은 강하게 진각(震脚)을 밟았다.

콰아앙!

단순한 발놀림은 아니었는지 내력이 실린 떨림과 함께 검들이 허공에 솟구쳤다.

사자혁은 그중에 하나를 움켜쥐고 허공으로 떠올랐다.

“회주의 그 보이지 않는 비수가 강한지 나의 100자루의 검이 강한지 붙어보자.”

사자혁의 말에 관중들이 놀란 눈으로 진백천을 살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비수는 찾을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비수? 그게 천주의 몸을 꿰뚫은 무기인가 보군! 10신위는 그것에 대해 아는 바가 있나?”

다른 신위들의 물음에 유소어가 고개를 저었다.

그 또한 대련의 방향이 이처럼 흘러갈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보이지 않는 비수라니. 설마…… 사패천주는 심검(心劍)을 말하는 건가?’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무공의 경지였다.

무기가 없어도 단지 생각만으로도 하늘을 베어내고 바위를 깨부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단지 상징적인 것뿐이지 지금까지 그것을 해내는 이는 없었다.

‘정말…… 보면 볼수록 이해가 가지 않는 작자야.’

유소어의 시선이 유유히 서 있는 진백천에게로 향했다.

수백자루의 검이 예기를 뽐내며 그를 위협했지만 조금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았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럴까?

관중들을 비롯해 주변의 무인들이 서서히 바뀐 분위기를 느끼며 말수가 적어졌다.

반면에 기가 산 것은 정도회의 무사들과 관중들 사이에 섞여 있는 하오문과 일부 정파 무인들이었다.

대놓고 티를 내지 못해도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흐음. 괜히 저들의 기를 살려주는 꼴만 되어버릴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복잡해진 머릿속을 곧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지워 버렸다.

이래나 저래나 친선 대련은 친선 대련일 뿐이었다.

‘그나저나. 회주는 저 상황에서 어떻게 하려나?’

지금부터 사자혁이 펼칠 무공은 유소어가 가진 지식 선에서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 * *

‘……젠장. 끝까지 가보자는 거지?’

진백천은 사자혁이 무기를 허공에 띄울 때부터 무엇을 하려는지 한눈에 알아봤다.

삼재부가 모든 재앙에서 사용했던 회천극상룡천(會千極上龍天)의 오의였다.

‘아직 저 경지까지 도달하지 못했길 바랐는데.’

사자혁의 머리가 광인처럼 흩날리며 눈가에 핏발이 섰다.

그의 내부에서 휘몰아치는 회오리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빠르게 회전했다.

원래대로라면 그의 무공은 서서히 달궈지는 철처럼 예열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단계별로 강한 위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처음부터 몇 번이나 강화된 내력이 그의 검 끝에서 터져 나왔다.

드드드득-

금방이라도 검이 부러질 듯 거세게 흔들렸다.

명검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부러졌을 터였다.

‘100개의 검을 연무장에 꼼쳐둔 것도 전부 이 오의를 사용하기 위해서였겠지.’

겨우 친선 대련 한번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사자혁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젠장. 내력이 조금이라도 돌아온다면 붙어볼 만할 텐데.’

아직까지 단전은 묵묵부답이었다.

호무살이 상황을 반전하는 데 도움을 주었지만 맹렬히 뻗어오는 검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때 진백천의 뇌리에 뭔가가 번뜩이며 스쳐 지나갔다.

‘호무살이 이렇게 강해졌다면 기막도 비슷하지 않을까?’

진백천은 비수를 감추고 자신의 몸을 감싸는 둥근 원형의 막을 떠올렸다.

어떤 공격에도 절대 뚫리지 않는 단단한 방패였다.

스으으윽-

지끈거리는 두통과 함께 전신에서 뭔가 쑤욱- 하고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의 주변에 그 무엇보다 단단해 보이는 막이 생겨났다.

그것은 허공에 떠 있는 사자혁도 똑같이 확인했다.

“흐음!”

그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검을 아래로 내리그었다.

폭렬대멸검(爆裂大滅劍).

초식도 없어 보이는 단순한 동작에 가까웠지만 들린 검이 폭발하며 진백천을 휘감았다.

콰아아아앙!

진백천이 있는 자리를 제외하고 주변의 독이 전부 박살 나며 가라앉았다.

연무장에서 관중석까지 꽤나 거리가 멀었지만 그 여파가 그곳까지 뻗어 나갔다.

쩌저저적-

가까이 있던 자들이 휩쓸리며 아비규환이 되었지만 사자혁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허공에 떠 있는 다른 검을 움켜쥐며 다음 수를 이어나갔다.

역시나 검이 터져 나가며 처음보다 더 강한 위력의 폭발이 이어져 나갔다.

“그 안에 숨어 있기만 해서는 나를 꺾을 수 없다!”

진백천은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허공에 있는 사자혁을 향해 호무살의 비수를 쏘아 보내기도 했지만 검을 터뜨리며 막아냈다.

아까처럼 결정적인 한 수를 노리기에는 무리였다.

비수 하나로는 그저 공격을 방해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동시에 수십 자루를 만들어낼 수도 없고 답답하네.’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죽으나 사나 내력이 필요했다.

차츰 지끈거리는 두통이 점점 심해졌다.

사자혁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도 슬슬 정신력의 한계에 다다랐다.

콰아아아앙!

그런 것에 비하면 사자혁은 계속해서 폭렬대멸검(爆裂大滅劍)을 펼쳐댔다.

그 위력은 지치지도 않고 점점 강해졌다.

이미 주변의 연무장은 그 형상을 잃은 지 오래였다.

‘어쩔 수 없지.’

진백천은 울상을 지으며 품속에서 남은 대환단 2개 중 하나를 꿀꺽 집어삼켰다.

간의 기별도 가지 않던 아까와 다르게 바싹 마른 단전에 조금씩 내력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보통이라면 단약을 먹고 몸에 흡수해야만 했지만 진백천은 그럴 새가 없었다.

생기는 족족 전신에 흩뜨리며 기력을 끌어올렸다.

‘제기랄. 아까운 대환단을 하나 이렇게 날리는구나.’

진백천은 기막을 통해 사자혁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폈다.

무적에 가까워 보이는 폭렬대멸검이었지만 검이 터져 나가며 새롭게 이어져 나가는 순간에 일부 틈이 존재했다.

콰아아아앙!

검의 파편과 함께 휘몰아치는 태풍이 진백천의 기막을 덮쳤다.

드드드득-

그리고 그것의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진백천이 기막을 빠져나왔다.

‘지금이다!’

땅을 박하며 사자혁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올랐다.

허공에 떠 있던 검들이 사자혁의 손짓에 따라 그를 향해 뻗어왔다.

“어림없지!”

검이 움직임이 느린 것은 아니었지만 유령신법을 펼치는 진백천을 따라잡을 순 없었다.

마침내 지척에 다다르자 사자혁이 손에 들린 검을 휘둘렀다.

바로 눈앞에서 검이 터져 나가며 공간마저 떨리는 광경은 과연 공포스러웠다.

“착하네!”

하지만 그것마저도 진백천이 유도한 것이었다.

백면섬보(百面閃步).

그의 신형이 희끗거리며 사자혁의 머리 위에서 나타났다.

“잔재주!”

사자혁은 콧방귀를 끼며 몸을 빙그르르 회전했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새로운 검이 들려 있었다.

전보다 반 박자 더 빠르게 검이 터져 나갔다.

사자혁 또한 지금까지 검이 터지는 순간을 일부로 느리게 보여주었다.

“어림없지!”

진백천은 간발의 차이로 먼저 검을 내리그었다.

그의 전신에 쌓인 대환단의 내력이 복잡하게 순환하며 검 끝으로 빠져나갔다.

거칠게 물결치는 강기의 파도가 공간을 가득 메우며 쏟아졌다.

파강식(破彊式).

강기의 물결은 폭렬대멸검(爆裂大滅劍)의 기운과 맞부딪쳤다.

콰아아아아아앙!

둘은 동시에 거대한 폭발에 휩쓸리며 끊어진 연처럼 거칠게 흔들렸다.

그 와중에도 서로를 노리는 검은 멈추지 않았다.

카앙!

“……이쯤 하면 그만두지?!”

진백천이 피 묻은 입가를 닦으며 물었다.

하지만 사자혁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는 즐겁지 않은가?”

“즐겁긴 개뿔!”

카앙!

폭발로 인해 옷은 넝마쪽이 되고 머리도 산발이 되어 흩날렸다.

정상이 아닌 모습이었지만 사자혁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즐겁다! 이처럼 마음껏 검을 휘둘러본 것이 얼마 만이라 말인가!”

두 개의 검이 부딪치며 또다시 거대한 충격파가 일어났다.

단순히 검을 휘두르는 것이 아닌 파강식과 폭렬대멸검이었다.

한계까지 다다른 최고의 초식이 연속으로 펼쳐지며 진백천은 죽을 맛이었다.

“야 이…… 누가 미친 무광 아니랄까 봐! 적당히 좀 하라고!”

천하의 대환단의 기운조차 서서히 다해갔다.

이제 기껏해야 몇 번의 부딪침이면 또 다리 단전이 텅텅 비어버릴 터였다.

반면에 사자혁은 지치지도 않는지 멈추지 않았다.

‘과연 삼재부의 무공인가? 그자를 상대하던 이들의 마음이 절로 이해가 되네. 퉷.’

진백천은 속에서 끓어오른 피가 섞인 침을 뱉었다.

‘그렇다면 나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드드득-

독고구검을 쥔 손아귀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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