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198화
67장 이거 참 힘드네(1)
시간이 정지한 것은 아주 찰나였다.
진백천 본인도 차마 인지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독고구검을 뽑아 사자혁을 향해 집어 던졌다.
휘이이이익-
독고구검은 정확히 사자혁의 손을 쳐내며 바닥에 처박혔다.
“……새끼가 친선 대련인데 감히 내 사람을 죽이려 해?”
진백천은 몸이 텅텅 비어버린 듯한 느낌이었지만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등장에 정도회 무사들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드, 드디어!”
“괜찮으십니까?!”
진백천은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화기를 전부 가져간 덕분에 황대원의 안색은 정상을 찾았고, 강량호도 상처가 심할 뿐 딱히 목숨에 지장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속으로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이렇게까지 한 사자혁에 대해 분노가 치밀었다.
“드디어 일어났군.”
“그래. 일어났다 새끼야. 그러니까 넌 뒈졌다고 복창해라.”
“…….”
시정잡배와 다름없는 말투에 사자혁조차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진백천은 여기서 멈출 생각 따위 없었다.
“실력이 조금 있다고 마음대로 수하들을 죽이려 해?”
“대련의 승자로써 당연한 거다. 그 정도 각오도 없이…….”
“각오는 개뿔! 내 수하들을 죽이려면 나부터 죽여. 괜히 어린애들 건들지 말고. 양아치 새끼야!”
진백천의 대뇌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나온 욕설에 사자혁의 말문이 또다시 막혔다.
이해하기 위해 몇 번을 곱씹어야 할 내용이었다.
“아무리 회주라 해도 나한테 그따위로…….”
“시끄러워.”
진백천은 그를 무시하고 강량호를 끌고 황대원 옆에 눕혔다.
그는 엉망이 된 얼굴로 웃으려고 했다.
“제, 제가…… 시간을 끈 것이…….”
“그래. 잘했다. 잘했어. 그러니까 더 말하지 말고 편히 쉬어.”
진백천은 품속에서 대환단을 꺼내 반을 쪼갰다.
그리고 잘게 으깨서 강량호의 입에 넣어주었다.
나머지 반은 진백천 본인이 집어삼켰다.
꿀꺽-
‘젠장. 온몸이 텅텅 비어버렸어.’
하다못해 천마신공의 마기와 혈강옥불상의 기운도 마찬가지였다.
전부 화기와 함께 상단전에서 전부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화기까지 생각하면 무려 4갑자가 훌쩍 넘는 기운이었다.
‘그게 전부 어디로 갔는지 몰라도 최악의 상황이야.’
솔직히 말해서 제대로 검기를 펼칠 정도도 되지 못했다.
바싹 말라 버린 단전과 세맥을 다시 채우려면 며칠은 요양해야 할 정도였다.
억지로 불어넣기 위해 대환단을 씹어 삼켰지만 단전에 차오르는 기운은 아주 미미했다.
‘금혈화린어의 내단에 이런 부작용이 있었나?’
진백천은 복잡한 속내와 다르게 무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제일 먼저 눈이 마주친 것은 얼굴에 상처를 입은 당소예였다.
고운 얼굴에 상처가 보이자 왠지 속이 뒤집힐 것처럼 분노가 치솟았다.
“너 얼굴 그렇게 만든 새끼는 어딨어?”
“제가 박살 냈죠.”
당소예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진백천의 시선이 상처에 와 닿자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아. 이거 별거 아니에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별거 아니긴.”
진백천은 손을 뻗어 그녀의 볼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놀랍게도 남아 있던 독기가 모조리 빠져나가며 상처가 일부 아물었다.
바로 옆에서 보고 있던 전등신을 비롯해 장로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어? 어떻게 하신 거예요?”
당소예가 더는 통증이 느껴지지 않자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약을 바른 게 아닌데도 상처가 아물었다.
하지만 진백천이라고 딱히 말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뭐지?’
그조차도 방금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한 것이 알지 못했으니까.
그렇다고 고민할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를 언제까지 기다리게 만들 셈이지? 회주?”
사자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진백천을 기다렸다.
서서히 피어오르는 강대한 내력과 살기로 인해 주변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젠장. 이거 나가린데.’
진백천은 속마음과 달리 당당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관중들의 시선이 진백천과 사자혁을 두고 바쁘게 왔다 갔다 했다.
“과연…… 누가 이기려나?”
“방금 신위를 봤잖아. 당연히 사패천주겠지.”
“그거야 정도회 대주를 상대로 했으니 그렇지. 강자와의 대결은 또 모르는 법이야.”
지금까지와 다르게 그들은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혹시라도 대련에 방해가 될까 봐서였다.
하지만 정작 진백천은 그런 것 따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어떻게든 현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나마 믿을 만한 것은 내가 사자혁의 무공을 안다는 것뿐이야.’
사자혁의 무공은 회천극상룡천(會千極上龍天).
진백천의 태허무극진결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할 정도로 압도적인 무공이었다.
삼재부의 독문무공이었던 그것은 그 원류가 어디서부터 이어지는지 알지 못했다.
대신 한번 익히기 시작하면 몸 안에 작은 회오리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전신의 회전하는 내기는 전력을 다할 때마다 점점 더 위력이 쌓여가지.’
삼재부가 끊임없이 적을 만들고 무기를 휘둘렀던 이유 중 하나가 그 때문이었다.
몸 안에 휘몰아치는 내력의 회오리는 더 강한 적을 만나 한계를 뛰어넘을 때마다 벽을 깨부쉈다.
눈앞에 벽이 보이니 끊이지 않고 도전하는 것은 당연했다.
‘삼재부에게 패배를 당한 사패천주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사자혁을 그의 제자로 들이게 한 것도 당연하지.’
사자혁은 삼재부의 모든 것을 온전히 물려받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삼재부가 도달한 경지까지 닿은 것은 아니었다.
삼재부는 눈치 보지 않고 강호를 떠돌아다니며 목숨을 건 강호행을 했지만 사자혁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목숨을 거는 일 따위 드물었고, 필사적인 대결 따위도 없었다.
‘그가 벽을 뛰어넘었다면 사패천 최후의 전장이었던 사혈대전(私血大戰)에서 그렇게 죽지는 않았겠지.’
만약 그 자리에서 오마군종대를 죽이고 살아남은 것이 그였다면 화산검신에 버금가는 무인이 탄생했을지도 몰랐다.
다른 말로 하자면 현재의 그는 단지 삼재부의 무공을 그럭저럭 성취를 쌓은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 것만으로도 지금의 실력이라는 것이 놀랍지만 진백천은 이길 자신이 있었다.
‘……내력만 멀쩡했다면 말이지.’
원래의 그의 계획은 이러했다.
사자혁이 애초에 회천극상룡천(會千極上龍天)을 활용조차 못 하게 막아버릴 심산이었다.
그에게는 태천검 파초식(破招式)이라는 훌륭한 수가 존재했다.
선발제인의 묘리로 사자혁의 공격이 제대로 이어지기 전에 초식을 전부 끊어낼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제대로 힘을 발휘하기도 전에 쓰러뜨릴 수 있을 테니까.’
사자혁의 무공은 회귀 전에 이미 몇 차례 견식했기에 처음 시작이 어떠한지 잘 알았다.
만약 진백천의 생각대로만 이어졌다면 그의 승리도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파초식을 펼칠 내력조차 부족하니.’
진백천은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빠르게 생각했다.
단순히 시간을 끄는 것부터 미친 척하고 친선 대련을 파(破)해 버리는 것.
별의별 생각을 다 했지만 역시 자신이 상대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정답이 없었다.
‘시간이라도 끌어야…….’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사자혁의 전신에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
‘미친. 시작부터 전력으로 간다고?’
회천극상룡천(會千極上龍天)을 본격적으로 끌어올릴 때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미풍은 차츰 약풍으로, 약풍은 강풍, 강풍은 곧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할 만큼 매서워졌다.
“버텨라. 회주.”
그는 딱히 의도하지 않아도 몸이 저절로 떠올랐다.
사자혁의 손에는 어느샌가 기다란 검이 들린 채였다.
“……잠깐 이야기부터 할까?”
쐐애애애액-
사자혁은 진백천의 제안 따위 가볍게 무시하며 검을 휘둘렀다.
검 끝은 정확히 진백천의 미간을 노리며 뻗어왔다.
‘젠장.’
* * *
진백천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독고구검을 들어 일격을 막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최악의 수임은 본인 가장 잘 알았다.
막으면 막을수록, 피하면 피할수록 사자혁이 뻗어오는 공격은 강해질 테니까.
카앙!
그리고 그것은 정확했다.
독고구검이 사자혁의 검을 튕겨내자 그것이 빠르게 회전하며 조금 더 강한 위력으로 재차 뻗어왔다.
여기서 진백천이 할 수 있는 것은 또다시 튕겨내며 물러나는 것뿐이었다.
‘…….’
단순히 두 번의 부딪침 뿐이었음에도 그의 내력이 울렁이며 피를 토할 것만 같았다.
두 번의 공격을 막아내고 피한 것조차도 환골탈태(換骨奪胎)로 인해 극도로 강해진 몸 덕분이었다.
세 번째 공격이 다시 진백천에게 뻗어올 때에는 앞선 두 번의 공격과는 차원이 달랐다.
콰과과곽-
진백천은 이를 악다물며 남아 있던 내력의 한 톨까지도 전부 끌어모았다.
그리고 단 한 번의 기회를 만들어내기 위해 독고구검을 내질렀다.
파초식(破招式).
독고구검의 검 끝이 휘몰아치는 바람을 힘겹게 이겨내며 나아갔다.
그리고 무척이나 연약해 보이는 공격은 사자혁의 검을 가볍게 밀어냈다.
아니,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으음!”
웬만한 일에 놀라지 않는 사자혁조차 자신의 검으로 파고들어 오는 파사(破邪)의 기운에 침음성을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절대 멈추지 않아야 할 회천극상룡천의 회오리가 뚝뚝 끊기며 멈춰 버렸다.
지금껏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기이한 검법이었다.
‘……지금이다!’
진백천은 이것이 마지막 기회임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검을 튕겨낸 반탄력을 이용해 사자혁의 목덜미를 노렸다.
빠르게 쇄도하는 검 끝을 보면서도 사자혁은 아무런 움직임 없었다.
‘통했나?’
하지만 곧 벌어진 상황에 진백천은 두 눈만 꿈뻑였다.
카앙-
“신기하군. 제법 괜찮은 잡기술이야.”
사자혁의 목 부위는 짙은 묵색으로 물들었다.
단순히 색만 바뀐 것은 아닌지 그 강도도 극도로 단단해진 상태였다.
진백천은 그것이 어떤 무공인지 잘 알았다.
‘불괴지신(不壞地身).’
몸을 강화하는 무공 중에 하나로 소림의 금강불괴(金剛不壞)에 버금가는 위력을 가졌다.
다만 사자혁이 지금껏 펼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에 이런 수로 막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도 이게 전부라면 실망인데? 회주?”
강철도 두부처럼 베어버리는 독고구검이 단지 반 치 정도 뚫고 들어간 것이 전부였다.
사자혁의 얼굴에 점점 미소가 번져갔다.
“그렇다고 해도 역시 대련을 하길 잘했어. 내 무공을 이렇게 막은 것은 회주가 처음이야.”
이런 진백천의 무공을 체험해 보는 것만으로도 사자혁 본인에게는 엄청난 경험이 될 게 분명했다.
스으으윽-
사자혁의 왼손이 마찬가지로 묵색으로 변하며 독고구검의 날을 억지로 빼냈다.
“하지만 이런 잡기술만으로는 부족해. 더 보여. 더!”
콰아앙!
진백천의 가슴팍에 주먹이 꽂히며 뒤로 튕겨 나갔다.
바닥에 부딪히며 다시 튀어 올랐을 때 사자혁은 그의 머리 위에 도달했다.
다시 한번 회천극상룡천의 회오리가 그의 바로 위에서 펼쳐졌다.
‘흐읍!’
첫수는 어깨를 베이는 것만으로 막아냈다.
하지만 더 강하게 뻗어오는 두 번째 검이 문제였다.
“회주님! 조심하세요!”
뒤편에서 당소예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주변의 상황이 역력히 느껴졌다.
얼핏 정신을 차린 황대원이 이를 악물고 쳐다보는 것도 보였다.
진백천이 밀리는 것이 전부 자신 때문이라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쓸데없는 상단전! 시야가 넓어진 것 따위 지금 상황에서는 필요 없다고!’
진백천은 뻗어오는 검을 노려보며 곧바로 호무살(虎武殺)을 사용했다.
단지 그를 움찔하며 멈칫거리게 만들 용도만으로도 충분했다.
심상에서 생성된 날카로운 비수가 사자혁의 가슴팍을 향해 뻗어갔다.
“허억! 회주니이이임!”
그리고 곧 사방에 붉은 피의 꽃이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