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197화
66장 친선 대련(7)
사자혁이 앞으로 나서자 가장 당황한 것은 진백천 대신 대련을 지켜보던 강량호였다.
“……사패천주가 벌써 나오다니.”
세간의 평가로 오왕(五王) 혹은 그 바로 아랫줄에 해당한다고 알려진 사자혁이었다.
진백천이 아무리 최근에 이름을 떨쳤다고 하나, 그보다는 당연히 압도적이다라고 평가가 되었다.
그런 그가 나선다면 당연히 정도회 측에서는 진백천밖에 상대할 이가 없었다.
“……회주님께 시간을 벌어들여야 한다.”
황대원의 얼굴은 아까보다 훨씬 나아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운기조식을 멈출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검게 죽어가던 얼굴이 이제는 화롯불에 익혀진 것처럼 붉게 달아올랐으니까.
우우우우우웅-
한눈에 봐도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은 어마어마한 기파가 사방으로 퍼졌다.
전등신과 남은 장로들이 그 옆에 서서 두 눈에 불을 켜고 호법을 서는 중이었다.
“남은 것은 나뿐이다. 내가 시간을 끌어야 된다.”
그는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냉철함이 그가 가진 최고의 무기이자 장점.
강량호는 검의 손잡이를 움켜쥐며 당소예를 향해 말했다.
“……당 소저. 그만 들어오십시오.”
“……강 대주님?”
당소예가 정말 그래도 되느냐는 듯이 쳐다봤다.
그녀의 시선이 진백천을 힐끔거렸다.
하지만 지금으로써 방법은 없었다.
독에 중독된 당소예가 더 남아 있어 봤자 단 한 수도 못 버티고 상처만 입을 뿐이었다.
“괜찮소이다. 다 방법이 있으니.”
“그렇군요. 역시.”
당소예는 방법이 있다는 말에 싱긋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제가 졌습니다.”
사자혁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저 그 방법이 궁금할 뿐이었다.
강량호는 당소예를 지나 사자혁의 앞에 마주 섰다.
그리고 포권을 쥐며 그에게 인사했다.
“……수라검대 대주 강량호입니다.”
“그러한가?”
사자혁은 자신의 이름 따위 말하지 않았다.
그의 실력을 보고 평가하겠다는 것이 다분했다.
강량호는 자신의 검집에서 검을 빼내며 호흡을 다듬었다.
투욱-
검집이 바닥에 떨어졌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임이 방해된다면 치워야 했다.
‘사패천주를 이길 순 없다. 나도 내 수준을 아니까.’
그렇다면 그가 해야 할 바는 명확했다.
“시간을 벌려는 것인가?”
사자혁은 불쾌한 듯 물었다.
주변이 마치 그의 명령을 받들듯 사납게 일렁이며 강량호에게 쏟아졌다.
강량호는 옆으로 빗겨서며 최대한 기세에서 벗어나려 했다.
“방법이 있다는 말은 그저 허세였나 보군. 쯧.”
사자혁의 손짓에 연무장의 바닥이 깨지며 강량호에게 날아들었다.
“하압!”
그의 전력을 다한 검이 허공을 가르며 돌을 갈라냈다.
양손이 저릿하고 몸이 뒤로 밀렸지만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회주가 저자를 치료할 시간을 벌고 싶은가 본데 그렇다면 기회를 주마. 나는 너로 하여금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주변의 이들에게 각인시키겠다. 너는 대신 버텨보거라.”
같은 무인으로써 무척이나 광오한 말.
하지만 강량호는 대답 대신 이를 악다물었다.
그리고 모멸감 따위보다 다행이라는 감정이 앞섰다.
‘그와 나의 차이는 명확하니까!’
사자혁의 신형이 점차 둥실 떠오르며 처음과 같이 내려보는 듯한 모습이 되었다.
녹림에서 검왕의 앞에 마주했을 때보다 더한 압박감이 전해졌다.
그리고 그를 따라 연무장의 바닥이 하나둘씩 터져 나가며 두둥실 떠올랐다.
얼마나 많은 내력이 있어야 가능한 수준인지 전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후우우우욱-
사자혁의 손짓에 따라 파편들이 그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강량호는 피할 것도 없이 검을 앞세울 수밖에 없었다.
이미 눈 깜짝할 사이에 사방은 파편으로 가득 찼다.
후드드드득-
검이 파편을 두드리는 것이 아닌 파편이 그의 몸과 검을 세차게 두들겼다.
“커헉!”
단 한 번의 공격으로 그의 전신이 검붉게 물들며 흔들거렸다.
정신이 멍해지고 사방이 빙글빙글 돌았다.
온몸의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차이가…….’
이대로 쓰러져도 당연하다 싶을 정도의 압도적인 수준차이었다.
하지만 문득 어지러운 시야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정도회 무사들의 얼굴이 보였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힘차게 응원 중이었다.
‘그래. 조금만…… 더!’
그는 재빨리 혀를 깨물었다.
아드득-
혀가 씹히는 고통과 함께 비릿한 피 맛이 돌자 혼탁했던 정신이 조금은 돌아왔다.
“……한 번 정도는 더 버틸 수 있다.”
강량호는 산발이 되어 흘러내리는 머리를 대충 훑어냈다.
그러자 무심하게 내려다보는 사자혁의 얼굴이 보였다.
자신은 죽을 각오로 버텨 섰지만 그에게는 단지 한 번의 손짓과도 같은 행동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그의 손짓이 이어지자 파편들이 솟구쳤다.
‘…….’
그것도 무려 전보다 두 배는 많은 수였다.
후두두두둑-
너무 큰 고통을 맞이하면 뇌가 그것을 잊기 위해 특수한 물질을 분비한다고 했던가?
강량호는 격통으로 흔들리는 전신을 느끼면서도 왠지 그다지 고통스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대신 과거의 기억이 통속에서 빠져나오듯 하나씩 떠올랐다.
‘수람검대 대주 강량호.’
지방의 한적한 무관 출신인 그는 정도회 말단에서부터 시작해 대주까지 오른 악바리였다.
그만큼 위명(偉名)에 욕심도 많았고 출세욕도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기회는 진백천의 강호행과 함께 시작되었다.
‘녹림의 일을 해결하고 큰 상을 받았지. 그리고 나름 회주님의 사람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나름 충성심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진백천의 등을 보면 어떻게든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만큼 재밌고 신나는 동행길이었다.
이번에도 자원해 진백천을 마중하러 나온 것도 전부 그런 이유에서였다.
투두둑-
그의 전신에서 돌의 파편이 떨어져 내렸다.
단 한 번도 검을 휘두르지 못했지만 이가 빠지고 금이 간 상태였다.
흑어단피를 입지 않았다면 진즉에 죽었을 상처였다.
“흐음. 세 번이나 버티다니. 제법이구나.”
겨우 세 번을 버텼다고 제법이라 칭찬해 줬다.
하지만 감히 그 말에 토를 달지 못할 정도로 강한 자였다.
지금 이 주변은 그의 내력으로 지배된 상태고 환상처럼 돌의 파편들이 부유했다.
사자혁은 이러한 놀이 따위 그만두기로 했는지 점차 그의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검을 휘두르려 했지만 오히려 손목이 잡히며 옆으로 꺾였다.
우드드득-
“크으으윽!”
검을 빼앗아 든 사자혁은 그대로 강량호를 향해 휘둘렀다.
스걱!
검기에도 흠집이 조금 나는 것으로 끝나던 흑어단피가 단번에 잘려나가며 속살을 드러냈다.
사자혁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재차 그 여린 살을 향해 검을 휘둘렀지만 채 몸을 완전히 꿰뚫기 전에 강량호가 그를 껴안았다.
“귀찮군.”
퍼억!
단순히 어깨를 튕기는 것만으로 강량호의 신형이 부웅 떠올랐다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심장 바로 옆으로 검이 꽂힌 상태였다.
만약 한치라도 더 빗겨났다면 심장이 찢기며 즉사했을 터였다.
조금씩 위아래로 떠올랐다 가라앉는 가슴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죽었다고 생각할 처참한 모습이었다.
주변에는 환호 따윈 없었다.
“……그, 그만하시오!”
“그쯤이면 되지 않았습니까!”
정도회의 무사들이 다급하게 다가오려 했지만 사자혁의 기세에 막혀 다가오지 못했다.
“본인이 항복을 하지 않는 이상 대련을 멈출 생각은 없다.”
“그, 그런 강량호 대주는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입니다!”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저벅저벅-
사자혁이 행하는 모든 것에는 절로 몸을 움츠러들게 하는 기운이 깃들었다.
그것은 지켜보는 관중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저 쓰러져 있는 강량호를 마무리하기 위해 다가갔다.
승자가 패자의 목숨을 취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였다.
유소어가 이것은 단순한 대련이라고 말하려 했지만 차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천주는 저자의 목숨으로 하여금 사패천의 존재감을. 나아가 자신이란 존재를 주변에 각인시키려 한다.’
강량호는 멍한 얼굴로 사자혁을 올려다봤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그는 떠듬거리는 목소리로 뭐라 중얼거렸다.
“……회…… 회주님…….”
“패배를 시인할 기회를 차버리다니. 아쉽군.”
그의 손끝이 강량호의 목덜미를 노렸다.
그때였다.
카앙!
강량호의 목덜미 앞으로 누군가의 검이 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며 사자혁을 손을 튕겨냈다.
맨손과 검이 부딪쳤음에도 묵직한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새끼가 친선 대련인데 감히 내 사람을 죽이려 해?”
피곤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은 다름 아닌 진백천이었다.
“드디어 일어났군.”
“그래. 일어났다 새끼야. 그러니까 넌 뒈졌다고 복창해라.”
“…….”
시정잡배와 다름없는 말투에 사자혁조차 할 말을 잃었다.
분위기는 다시 변하기 시작했다.
* * *
황대원의 운기조식을 돕는 중이었지만 그렇다고 그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금혈화린어의 기운이 엄청나다. 잠시라도 내력을 거둬들이면 황대원은 죽는다!’
무려 3갑자가 넘는 내력이 전부 황대원의 전신에 쏟아져 들어갔다.
그렇다고 대환단의 기운처럼 단전에 유도하거나 할 수조차 없었다.
이만한 기운을 황대원이 담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진백천은 어쩔 수 없이 금혈화린어의 화기를 일부 남겨둔 채로 전부 자신의 몸으로 끌어왔다.
치이이이익-
전신에서 스며 나온 땀이 금세 뜨겁게 끓으며 수증기처럼 피어올랐다.
이러한 변화를 눈치챈 것은 옆에서 지켜보는 전등신과 장로들뿐이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아무래도 단순한 운기조식은 아닌 것 같다. 어떻게든 회주님과 황 대주를 외부와 차단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장로님.”
그나마 내력이 남아 있는 장로와 함께 전등신은 그 주변으로 기막을 펼쳤다.
소리가 차단되면서 비교적 조용한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진백천은 그런 바깥의 상황을 신경 쓸 여력조차 안 되었다.
몸 안으로 스며든 화기는 무차별적으로 이곳저곳 뻗어 나갔다.
일반적인 영약과 달리 평생을 제멋대로 살아온 금혈화린어의 내단은 통제 자체가 되지 않았다.
‘이대로 삐끗 잘못하기라도 하면 주화입마다!’
황대원의 목숨뿐만이 아니었다.
3갑자 전부를 쏟아부었음에도 이 정도라면 자신도 아슬아슬했다.
화기가 치솟는 곳마다 전신이 격하게 떨렸다.
그동안 조용했던 천마신공의 마기와 혈강옥불상의 기운이 꿈틀거리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동안 자신들을 찍어누르던 태허무극진결(太墟無極進結)의 내력이 약해짐을 깨달은 것이다.
‘젠장! 내력을 통제할 다른 곳이 필요하다!’
진백천의 단전으로도 가능하리라 생각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세 가지의 기운을 동시에 통제하려 하다 보니 순간적으로 화기를 붙들었던 고삐가 풀려나갔다.
화아아아아악-
화기는 마치 출발신호가 떨어진 장수처럼 기경팔맥을 타고 위로 질주했다.
그리고 놈이 들이박듯 쑤셔 들어간 곳은 바로 미간에 존재하는 상단전이었다.
‘크헉!’
말이 상단전이지, 그곳은 실제로 내공을 보관하는 단전은 아니었다.
하지만 단전과 다르게 심상을 단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내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이미 진백천의 상단전은 상당히 열린 상태였다.
화기가 그곳을 뚫고 들어간 것도 깊숙한 곳을 파고 들어가려는 금혈화린어의 습성 탓이었다.
‘끄으으으윽!’
미간 사이의 인당혈(印堂穴)이 억지로 벌어지고 검게 타들어 갔다 회복되기를 반복했다.
눈을 감고 있지만, 눈앞이 화끈거리며 시야가 붉게 타올랐다.
‘이대로면 정말 죽는다!’
몸이 부웅 떴다가 떨어지는 듯한 기시감이 수십 번은 찾아왔다.
천마신공의 마기든 혈강옥불상의 기운이든 가리지 않고 전부 상단전에 쑤셔 넣었다.
전부 화기를 제어하기 위해서였다.
드드드드드득-
그러한 과정 속에서 기운의 충돌이 있을 때마다 두개골이 벌어지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다.
진백천을 이를 악물며 충격을 버텨냈다.
그런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되자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고통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동시에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소예?’
분명 눈을 감고 있었음에도 주변의 상황이 명확히 인지되었다.
볼이 길게 찢어진 당소예부터 죽음을 각오한 강량호.
그리고 주변을 가득 메운 수천의 관중들의 얼굴 하나하나까지.
마치 순간적이지만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전지적 시점을 가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사자혁이 자신의 수하인 강량호를 죽이려는 모습이 전해졌다.
사자혁의 손끝이 쓰러진 강량호의 목덜미를 노렸다.
그 손끝에는 살기가 맺혀 있었다.
‘……저 새끼가 미쳤나?’
진백천이 이를 악다물며 눈을 뜨는 순간.
놀랍게도 세상은 그를 제외하고 시간이 정지한 듯 멈춰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