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196화
66장 친선 대련(6)
진백천은 당황했다.
사자혁이 신위들에게 말한 것을 엿들어서가 아니었다.
“허억! 금혈화린어(金血火鱗魚) 내단!”
황대원에게 금혈화린어 내단을 준 것은 그것이 홍혈도의 화염을 막아줄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예상은 정확했다.
황대원의 가슴팍이 검게 타들어 갔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서둘러 다시 꺼내려던 진백천은 가슴팍을 아무리 살펴도 내단을 찾아낼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홍혈도가 베어낸 상처로 내단이 파고 들어간 것이다.
‘이대로 두면…… 황대원은 죽는다.’
내단이 가진 열기는 홍혈도의 것과 차원이 달랐다.
단순히 살갗이 타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심장에서부터 모든 장기가 타들어 갈 게 분명했다.
“끄으윽!”
황대원은 타들어 가는 심장을 움켜쥐고 고통스러워했다.
“……황 무사님? 괜찮으세요?”
진백천은 두 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를 정좌로 앉히고 그 뒤에 자리했다.
‘내력을 아껴야 하지만 황대원을 이 자리에서 죽일 수 없다.’
이렇게 된 거 어떻게든 금혈화린어의 내단의 흡수를 도와야만 했다.
“강량호.”
“네. 회주님.”
“나는 지금부터 황대원의 운기조식을 돕겠다. 다음 상대가 나오는 것을 보고 적정히 판단해서 행동해.”
“……알겠습니다.”
진백천은 그렇게 말을 남긴 채 두 눈을 감았다.
이제부터는 황대원의 전신을 헤집고 다니는 금혈화린어의 기운과 다투어야 했다.
그리고 그가 운기조식에 들어가자마자 사패천 측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스스로를 8신위라 소개한 난쟁이었다.
“흐흐. 내 상대는 한 명뿐이지! 건방진 계집아 나오거라! 어서!”
8신위는 유난히 기다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당소예를 도발했다.
이미 그자와의 대결을 예상하고 있던 당소예는 당당히 앞으로 나섰다.
그런 그녀를 강량호가 막아섰다.
“당 소저. 괜찮으시겠소?”
“회단조(回短爪)인지 난쟁이인지 문제없어요.”
그녀의 시선이 잠깐이지만 뒤편에 앉아 있는 진백천과 황대원에게로 향했다.
“……회주님은 얼마나 걸리실 것 같아요?”
“흐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황 대주의 상황을 보면 시간이 조금 걸릴 겁니다.”
“최대한 저 난쟁이랑 놀아줄게요.”
“……무리하지 마십시오.”
“무리 따위 안 해요.”
당소예는 당차게 소매를 걷으며 앞으로 나섰다.
“흐흐흐. 제법이야. 겁이라도 먹어서 도망칠 줄 알았는데 회주의 시녀야!”
“도망치기에는 상대가 상대라서요.”
“뭐라?”
“그렇잖아요. 황 무사님도 4신위를 꺾었는데 제가 8신위라니. 조금…….”
그녀가 어깨를 으쓱이며 회단조의 위아래를 훑었다.
“……질 떨어지는데.”
“흐음. 얼굴에 흠집이라도 나 봐야……!”
당소예는 회단조의 말을 다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툭 끊어내며 걱정하는 듯이 물었다.
“그나저나 괜찮겠어요?”
“뭐가 말이냐?”
“나한테 지면 고개라도 들고 다니겠어요?”
“크하하하하! 내가 왜 너한테 진단 말이냐!”
“하는 짓을 보면 내가 충분히 이길 것 같은데?”
당소예는 품속에서 쌍단수(雙斷手)를 꺼내 들며 말했다.
단검 끝이 반짝이며 예리함을 드러냈다.
“그것도 아주 가뿐히요.”
“건방지구나. 건방져!”
* * *
회단조는 화를 참지 않았다.
곧바로 날렵하게 제 자리에서 뛰어오르며 날카로운 손톱의 칼날을 뻗어왔다.
왜소한 몸집만큼이나 빠르고 날렵했다.
당소예는 칼날을 피하며 바닥을 구르는 동작도 꺼리지 않았다.
흔히 늙은 나귀가 바닥을 구른다는 나려타곤(懶驢打滾)의 수였다.
무인들이 그 수를 치욕적으로 생각하지만 당소예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당소예의 머릿속에는 회단조를 상대로 염두해 두고 미리 말했던 진백천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되풀이되었다.
-회단조는 빠르고 치명적인 공격을 펼칠 거야. 칼날 밑에 숨겨진 절독(絶毒)도 주의해야 하지.
그의 비장의 한 수였다.
마비독과 부식독은 당한 이로 하여금 서서히 중퇴에 빠지게 만들었다.
회단조는 그런 상대를 가지고 노는 것을 즐기는 변태적인 자였다.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고 있냐고 묻고 싶었지만 당소예는 참았었다.
회주님은 원래 다 아니까.
그러니까 물을 필요 없이 그저 따르면 되었다.
-소예야. 단 한 수만 노리면 돼. 한 수.
그렇게 말하면서 진백천은 쌍단수에 독정의 기운을 끌어모은 핏방울을 묻혔다.
-독으로 장난질하는 놈은 독으로 끝내줘야지. 맞지?
‘네. 맞아요.’
당소예가 회단조를 상대로 자신 있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놈은 자신을 가지고 놀고 싶어 하니까.
그렇기에 단번에 끝내지 않으려 들었고 공격은 하나같이 그녀가 괴로워할 방향으로 뻗어왔다.
‘그런 안일한 태도가 당신을 구렁텅이에 밀어 넣게 만들 거야.’
당소예는 전심전력으로 회단조의 공격을 막는 것에만 집중했다.
빙그르르 도는 각각의 칼날의 끝이 옷깃을 찢어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처를 입는 공격은 없었다.
당소예가 온전히 방어에만 집중했기도 했지만 회단조의 공격은 지나칠 정도로 진중했다.
진중함은 모두 앞 신위들의 대련 때문이었다.
모두 상대를 우습게 보다가 공격을 당해 승부가 역전당했었다.
“하하하! 도망치는 것밖에 못 하는구나! 지금이라도 빌면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지!”
말로는 계속해서 금방이라도 당소예를 처리할 수 있을 것처럼 소리쳤지만 그녀가 자신을 상대로 나온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한 의심과 경계가 결정적인 순간에 그로 하여금 물러서게 만들었다.
역전쇄조(逆電碎爪).
땅을 박차게 튀어 오른 회단조의 손톱이 당소예의 단검을 튕겨내며 공격할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너무 완벽한 기회라서 그랬을까.
당소예의 시선과 마주친 회단조는 순간 침음성을 내뱉으며 멈칫거렸다.
카앙!
그 멈칫거림은 당소예가 공격을 회피하고 반격할 시간으로 충분했다.
그러자 차츰 관중들 측에서도 의아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지금 뭐 하는 거지? 방금도 절호의 기회가 아니었나?”
“봐준다고 하기에는 회단조가 몰리는 듯한 모습이야. 혹시 겁이라도 먹었나?”
“만약 정말 그런 거라면 사패천의 망신이나 다름없군!”
8신위도 그러한 웅성거림을 들었지만 그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신위들이 쓰러지고 사자혁이 이길 수 있는 자만 나서라고 했다.
당소예를 괴롭히고 싶었던 회단조는 유일하게 손을 들고나온 자였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보기 싫은 꼴을 보인다?
‘그렇다면 천주는 나를 가만두지 않을 거다. 완벽한 승리가 필요하다. 누구나 납득 가능한 승리!’
회단조는 자신의 손톱 끝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특별히 만들어진 독이 묻어 있었다.
평소에는 여러 차례 상처를 입어야만 중독이 되게끔 되어 있었지만 혹시 몰라 몇 배는 더 발라놨다.
‘저 계집을 중독부터 시킨다! 그리고 가지고 놀아도 늦지 않아!’
당소예는 그의 눈빛에서 초조함과 결단을 느꼈는지 비웃으며 그를 도발했다.
“너무 손끝이 무딘 거 아니에요? 허공만 가르니 칼날이 닳을 일은 없을 텐데?”
“건방진!”
회단조가 쥐새끼처럼 양손과 두 발로 땅을 기며 당소예를 향해 쇄도했다.
이번에는 명확히 당소예의 얼굴을 향해 칼날을 뻗었다.
얼굴에 기다란 흉터라도 남기겠다는 악랄한 의도였다.
‘……지금이야! 나아가야 돼!’
당소예는 칼끝에 번들거리는 독액을 확인했지만 이를 악다물며 앞으로 나아갔다.
어차피 뒤로 물러선다 해도 빠르게 다가오는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한테도 기회야!’
얼굴을 향해 빠르게 칼날이 다가왔다.
순간 두 눈을 질끈 감고 싶어졌지만 애써 부릅떴다.
왼손을 들어 칼날들을 쳐내며 밀어냈다.
대부분의 칼날이 튕겨 나갔지만 그중 하나가 볼에서부터 귓불까지 길게 상처를 냈다.
‘으윽!’
볼이 화끈거리며 흘러내리는 핏물이 질척거렸다.
“아아! 당 소저!”
대련을 지켜보던 정도회의 무사들이 길게 탄식을 뱉어냈다.
하지만 상처를 허용하는 덕분에 그녀의 다른 단검이 회단조의 팔뚝을 베어내는 데 성공했다.
투욱-
멀찍이 떨어진 회단조는 그녀의 얼굴에 난 상처를 살피며 키득거렸다.
“흐흐흐. 이래도 더 망둥이처럼 날뛸 테냐?”
“망둥이는 나보다 그쪽한테 어울리지 않아요? 누가 더 펄쩍 뛰었는데.”
공격을 당한 상황에서도 당소예가 오히려 받아치자 회단조가 기가 찬다는 듯이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입만 살았군! 걱정 마라! 그것도 곧 일 테니까!”
회단조는 당소예의 얼굴에 난 상처에서 독기가 퍼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것은 당소예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이 독이 강하다 해도 회주님이 준 독 기운보다 강할 리 없지!’
당소예가 여전히 운기조식 중인 진백천을 힐끔거렸다.
그 모습을 오해한 회단조가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며 말했다.
“회주는 도와줄 수 없다. 흐흐흐. 이미 늦었거든!
당소예의 얼굴에 난 상처 주변이 점차 검게 물들었다.
그녀가 어지러운 듯 머리를 붙잡고 휘청거리자 회단조의 미소가 짙어졌다.
“어지러우냐? 걱정 마라. 지금부터 당할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테니!”
“흐음. 굳이 그렇게 안 해도 되는데. 당신 팔뚝이나…… 신경 쓰시지?”
회단조가 의심쩍은 얼굴로 팔꿈치의 상처를 확인했다.
“허억! 이, 이게 무슨!”
팔꿈치의 상처는 그 잠깐 사이에 검게 변했을 뿐만 아니라 죽은 피와 고름이 흘러나왔다.
뒤늦게 점혈을 하며 상처를 도려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지독한!”
“……왜? 당신도 똑같이 독을 썼잖아?”
당소예는 억지로 두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봤다.
먼저 쓰러지기 전에는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회단조는 자신이 먼저 쓰러지기 전에 공격하려 했지만 내력을 사용하는 순간 검은 피를 토했다.
“독 싸움에서 내가 이겼네?”
“웨에에엑!”
무려 진백천이 가진 독정의 기운이었다.
8신위 따위가 그것을 견뎌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에 반해 당소예는 볼에 상처를 내고 피를 뽑아내며 억지로 버텼다.
손발이 덜덜 떨렸지만 버티는 것쯤은 상관없었다.
“뭐야? 회단조가 독을 사용했다고?”
“저 여자의 얼굴을 보면 맞는 거 같은데? 그러고도 지금 밀리고 있는 거야?”
가뜩이나 소극적인 회단조에 불만이 섞였던 관중들은 대놓고 그를 욕하기 시작했다.
사패천에서 이기기 위해 독을 사용하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오히려 바보같이 당하는 모습은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우우우우- 사패천의 수치다! 그냥 쓰러져 버려라!”
“한심한 놈! 저것도 8신위라고! 차라리 유소어가 낫지!”
괜히 입방아에 오른 유소어가 인상을 찌푸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사자혁의 눈치를 살피며 가만히 있었다.
‘8신위는…… 끝이군.’
당소예는 가볍게 숨을 몰아쉬며 회단조를 향해 걸어갔다.
독에 당해 힘없는 자를 괴롭히던 짓은 그동안 8신위가 해오던 것이었다.
“왜? 그토록 해오던 짓을 당하려니까 막 기대돼? 흥분돼서 죽겠어?”
비릿하게 웃던 당소예가 단검을 들어 올리자 그 즉시.
회단조가 소리쳤다.
“항복이다! 내가 졌다! 그러니…… 웨웨웩! 이 독 좀…… 어떻게 해줘!”
“나야 모르지. 경매장에서 샀을 때부터 원래 발라져 있던 거라서!”
“그게 무…… 슨!”
부들부들 떨던 회단조는 결국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쓰러졌다.
대결의 승자는 물론 당소예였다.
그런 대결을 지켜보던 사자혁이 갑자기 상체를 떨기 시작했다.
이윽고 터져 나온 것은 웃음이었다.
“크하하하하하! 어처구니가 없다는 수준을 넘어 재밌군!”
신위들의 개인적 실력으로 따지면 결코 질 정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대결을 살펴보면 전부 진백천은 신위들의 무공과 실력을 파악한 게 분명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 무공에 맞게 적절하게 대응할 방법조차 전부 짜낸 상태였다.
“보면 볼수록 물건이야! 친선 대련 조차 모든 게 계획적이었다는 건가? 아주 철저히 준비해 왔어!”
사자혁은 아주 제대로 오해에 빠졌다.
그리고 웃음을 멈춘 사자혁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를 주변으로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 듯 공간이 잘게 떨렸다.
“그렇다면…….”
사자혁이 걸음은 걷는 동안 그 아무도 제대로 숨을 쉬지 못했다.
그만큼 위압적이었고 그에게 압도되었다.
“……나에 대해서는 어떻게 준비했는지 볼까?”
마침내 그가 멈춰선 곳은 당소예의 바로 앞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