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194화
66장 친선 대련(4)
사령령은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주변에서 그녀를 대신해 춘식과 그를 내보낸 진백천을 비웃었다.
“정도회에는 과연 사람이 없구나! 장로가 연달아 지니 거기에 대원을 내보내다니!”
“하하하! 지략이 뛰어나다던 진백천 회주도 결국 여기까지군!”
“저 어리버리해 보이는 자가 6신위를 이긴다면 당장 내 머리를 삭발하지! 하하하하!”
듣는 것만으로도 모멸감이 솟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진백천은 딱히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머리를 삭발하겠다던 자의 얼굴만 똑똑히 기억해두었다.
머리 가운데가 훵 하니 날아간 놈이었다.
‘네놈은 어떻게든 내가 빡빡 밀어주마.’
-춘식아. 지면 안. 된. 다. 알지?
진백천의 전음을 들은 춘식이 흠칫하며 놀랐다.
그리고 이내 쇠사슬을 풀어헤치며 허공에 붕붕- 돌리기 시작했다.
추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신기한 무공이군! 하지만 그깟 힘없는 쇠사슬 따위는 내 채찍에 안 된다!”
“힘이 있는지 없는지는 붙어봐야 알지 않겠습니까?”
춘식은 제법 도발도 할 줄 알았다.
그의 호기 어린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사령령이 두 눈을 빛내며 채찍을 휘둘렀다.
금사편리(錦蛇鞭理).
황금빛으로 물든 채찍이 마치 파도처럼 물굽이 치며 춘식을 뒤덮었다.
이번 초식으로 단번에 승부를 낼 셈이었다.
‘과연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이미 그런 것쯤은 진백천도 예상한 상태였다.
그녀의 초식도 이미 경험해 봤던 진백천이었다.
춘식은 초식이 펼쳐지기 전부터 뒤로 물러나며 쇠사슬을 앞으로 밀어 넣었다.
태산철금(太山鐵禁).
이 초식이 바로 진백천이 물어봤던 쇠사슬의 구름이었다.
촤르르르륵-
쇠사슬이 서로 엮이듯 출렁이더니 이내 거대한 덩어리처럼 움직였다.
그 모습이 얼핏 보면 묵빛의 구름처럼 보였다.
사령령의 채찍이 쇠사슬을 내리치며 구름이 거세게 흔들렸다.
금세 춘식의 초식이 깨졌지만 그렇다고 그의 몸이 상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춘식의 쇠사슬이 사정거리가 훨씬 길다. 이런 식이라면 사령령의 채찍은 더는 이점을 가지기 어렵지.’
그렇다고 춘식이 내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춘식 또한 약왕당주의 단약을 먹어 보통의 무인보다 내력이 많은 편이었다.
‘정도회로 돌아가면 약왕당주부터 치하해야겠어.’
내력이 증가한 만큼 초식의 위력이나 전개에도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그런 춘식의 모습을 보고 사령령의 두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그를 우습게만 보던 그도 이제 슬슬 상황파악이 된 것이다.
-조금 더 내공을 쏟아서 완전히 깨부숴 버릴까 아니면 조금 더 툭툭 건드려볼까?
그녀의 선택은 조금 더 살펴보자는 것이었다.
진백천과 춘식으로서는 아쉬운 결정이었다.
‘조금 더 성급하게 들어와 줬으면 좋았겠지만, 뜻대로만 되지는 않겠지.’
사령령은 채찍에 조금 더 힘을 실어 쇠사슬 너머의 춘식을 노렸다.
카앙!
대부분은 쇠사슬의 벽에 막혀 튕겨 나갔지만 일부는 그의 몸을 두드렸다.
채찍에 비해 쇠사슬은 무겁고 느렸다.
춘식도 간혹 가다 반격을 했지만 사령령은 여유롭게 쇠사슬을 피하며 채찍을 뻗었다.
퍼억!
“굼벵이 같은 놈이로구나!”
“내 별명이 굼벵이인 것은 어떻게 아셨소?”
춘식은 그녀의 도발에도 여유롭게 대처했다.
그리고 채찍을 아무렇지 않게 몸으로 받아냈다.
서서히 겉옷이 찢어지며 그 안의 흑어단피(黑魚檀皮)가 드러났다.
“……저것은 어제 진백천 회주가 경매장에서 샀던 보호구 아닌가?”
“어쩐지 아무렇지 않게 공격을 받아낸다 했더니 저래서였군!”
흑어단피는 진백천의 호연보의와 다르게 팔꿈치와 목 부위까지 방어 범위가 넓었다.
쇠사슬을 피하며 휘두르는 사령령의 채찍을 막을 정도로는 충분했다.
“그것을 믿고 이렇게 버티는 거였나?”
사령령은 쇠사슬 주변을 맴돌던 것을 멈추고 과감하게 안으로 뛰어들었다.
껍질 안에 숨어 있는 거북이를 두려워할 그녀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백천과 춘식이 노리던 바였다.
-춘식아. 준비해!
처음부터 목적은 사령령을 그의 바로 앞까지 끌어들이는 것.
춘식은 그녀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더 쇠사슬에 내력을 불어넣으며 초식을 준비했다.
태산철금(太山鐵禁).
촤르르르르륵!
그의 초식에 따라 쇠사슬이 크게 요동쳤다.
그리고 만들어진 쇠사슬의 구름은 춘식과 사령령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둘의 모습은 순식간에 쇠사슬에 의해 가려졌다.
‘여기까지는 생각대로다!’
그렇다고 사령령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그까짓 쇠사슬이야 춘식을 쓰러뜨리면 자연스레 풀어지기 마련이었다.
오히려 마지막에 가까워진 것을 알고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맺혔다.
파앙!
흔들리던 채찍이 거칠게 파공성을 내며 솟구쳤다.
추격만쇄(追擊灣碎).
허공에 치솟았던 채찍이 폭포처럼 떨어져 내리며 강기를 쏟아냈다.
연무장 바닥이 터져 나가며 사방으로 돌조각이 비산했다.
촤아아악-
강기에 닿은 쇠사슬이 뒤로 밀려나며 크게 흔들렸다.
살아 있는 듯한 채찍의 끝이 자유자재로 흔들리며 춘식을 노렸다.
그 안에 갇혀 있는 한 춘식이 채찍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직이야!’
춘식은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채찍을 애써 무시하며 재차 쇠사슬을 뻗었다.
두 번째 쇠사슬의 구름이 만들어지며 빛마저 가려진 쇠사슬의 구가 만들어졌다.
* * *
진백천은 뚫어져라 쇠사슬의 구를 쳐다봤다.
상단전이 활성화되고 나서 안력에 집중을 하면 어렴풋이 장애물 따위는 뚫고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뭐야? 저렇게 하니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잖아!”
“누가 이기고 있는 거지?”
“당연히 6신위 아니겠어?”
그들의 예상과 다르게 그 안에서는 끈질긴 사투가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오직 진백천만 지켜볼 수 있는 싸움이었다.
춘식은 얼굴을 가린 채 사령령의 채찍을 전신으로 견뎌냈다.
흑어단피가 강기를 막아냈지만 그 충격마저 상쇄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의 몸을 두들기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쇠사슬은 사령령과 춘식을 가리지 않고 뻗어왔다.
퍼억!
그 안에서 도망칠 길은 존재하지 않았다.
“노렸던 것이 이건가? 함께 쇠사슬에 두들겨 맞자고?”
사령령은 춘식의 가슴팍을 후려 차며 그 가운데에 섰다.
“이 정도로는 어림없지!”
그녀의 추격만쇄의 강기가 춘식이 아닌 바깥을 향했다.
좁아 드는 쇠사슬이 끊어지며 힘을 잃었다.
그리고 마침내 첫 번째 구름을 깨고 두 번째 구름이 드러났다.
그때쯤 되자 그녀의 채찍도 제법 힘을 잃은 후였다.
“이제 마지막인가?”
“알긴 아는구나.”
춘식의 사령령의 대답을 듣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추를 향했다.
구름 속에 숨겨놓은 그가 마지막으로 준비한 한 수였다.
“흐읍!”
뒤늦게 그것을 발견한 사령령은 화들짝 놀라며 채찍을 뻗었다.
좁은 공간에서 도망칠 수 없는 것은 춘식뿐만 아니라 사령령도 마찬가지였다.
콰아아앙!
사령령의 채찍과 추가 맞부딪치며 그 충격파로 춘식이 튕겨 나갔다.
먼지가 짙게 흩날리며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잠시 후 먼지가 채 가라앉기 전에 채찍이 공간을 가르며 빠져나왔다.
퍼억!
불의의 공격에 맞은 춘식이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양손을 들었다.
“……제가 패배했습니다!”
그의 무기인 쇠사슬은 이미 뜯긴 지 오래고 온몸은 채찍과 쇠사슬에 맞아 상처투성이였다.
하지만 이윽고 먼지 속에서 드러난 사령령의 모습도 정상은 아니었다.
먼지에 휩싸인 머리는 그렇다 치고 무척이나 지쳐 보였다.
그녀는 숨을 씩씩거리며 춘식을 노려봤다.
“이렇게 끝낸다고?”
“무기까지 잃고 내력까지 전부 소모했으니 그저 맞는 것보다는 항복이 맞지 않겠소? 겨우 대련인데.”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춘식을 향해 진백천이 다가갔다.
혹시라도 공격해 올 사령령을 막기 위해서였다.
“춘식아. 수고했다.”
“……죄송합니다.”
“이 정도면 최선을 다한 거야.”
진백천은 그의 어깨를 두들기며 쉬지 않고 장로 3을 내보냈다.
“지쳤을 때 끝내야지.”
그리고 그의 작전은 적절했다.
춘식의 초식을 뚫으면서 힘을 쏟아부었던 사령령의 회복은 더뎠다.
장로 3에게 계속해서 뒤를 잡히더니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생각보다 정도회에서 잘하고 있는데?”
“잘하고 있기는 벌써 4명째잖아? 그에 비하면 사패천에서는 이번이 3번째라고.”
“과연 누가 나올지 궁금하군!”
사자혁은 뒤편에 서 있던 자들 중 누군가에서 힐끔 눈짓을 보냈다.
그것만으로 알아들은 상대는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덥수룩한 수염에 각진 외모의 홍혈도였다.
“반갑소이다. 정도회 장로. 4신위 홍혈도(紅羅刀)이외다.”
후우우욱-
홍혈도는 인사와 함께 등 뒤의 도를 뽑아 들었다.
붉은빛이 서린 도신은 한눈에 봐도 평범하지 않았다.
장로는 홍혈도의 기백에 당황한 듯했다.
그가 나서자마자 이미 관중석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홍혈도님이 벌써 나오다니! 저 장로도 운이 나쁘군!”
“운이 나쁘긴 홍혈도를 만난 것 자체부터가 영광이지! 언제 살면서 발끝이라도 보겠나?”
“그런가? 하하하!”
장로를 무시하며 웃어대는 놈은 역시나 전 대결에서 사령령이 지면 머리를 삭발하겠다던 자였다.
진백천은 괜히 그자에게 호무살을 날릴까 하다 눈앞의 대결에 집중했다.
하지만 대결은 집중한 시간보다 더 빠르게 끝이 나버렸다.
후우우우우욱-
뜨거운 열기가 솟구쳤다가 한순간 홍혈도의 거대한 도가 장로의 머리 위에서 멈춰있었다.
‘거대한 도치고는 무척이나 빠르다.’
홍혈도는 도를 다시 도집에 집어넣으며 이쪽을 쳐다봤다.
그의 칼날 같은 시선이 한곳에 고정되었다.
황대원의 거대한 도끼였다.
“일찍부터 금부(金斧)의 무공을 견식하고 싶었지.”
황대원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가볍게 숨을 들이마셨다.
“회주님. 다녀오겠습니다.”
-내가 준 거 잘 챙겼지?
-물론입니다.
아무리 황대원이라고 해도 아무 대책 없이 홍혈도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
진백천은 그자를 상대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확실히 준비했다.
품속에 있는 그것이 그중에 하나였다.
“자신감을 가져.”
황대원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꼭 이기고 돌아오겠습니다.”
“당연하지.”
진백천과 황대원의 대화는 관중들에게도 똑똑히 들렸다.
그러자 역시나처럼 정도회 무사들을 비웃던 반 대머리가 그들을 비웃었다.
“하하하하! 홍혈도님을 상대로 이긴다니! 저자의 간덩어리가 도기만큼이나 크군!”
“그러게 말이야. 몇 번 무기를 맞대다 무서워 도망치는 게 아닌가 몰라!”
하지만 그런 조롱도 잠시.
황대원이 환력신공을 사용하며 도끼를 가볍게 들어 올리자 씻은 듯이 사라졌다.
짙은 묵빛의 부절도부(不絶刀斧)를 다루는 모습은 거침이 없었다.
홍혈도는 그 모습을 보며 탐탁지 않아 했다.
“당장 어제 산 무기로 나를 상대할 수 있겠나? 아직 채 손에 익숙해지지 않았을 텐데?”
“겨우 그런 거로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황대원은 도끼를 한 손으로 들어 강하게 옆으로 휘둘렀다.
화아아악!
거친 파공성과 함께 묵직한 바람이 관중석으로 뻗어 나갔다.
“허억! 저 거대한 도끼를 한 손으로 휘두른다고?”
“역시. 진백천 회주의 오른팔이라고 할 만하군!”
황대원은 주변의 웅성거림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홍혈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을 이었다.
“내 승리에는 변명과 요행 따윈 없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