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193화
66장 친선 대련(3)
-내력 싸움으로 끌고 가세요. 묵봉 저자는 내력이 약하니.
이개석이 자신이 제일 먼저 나서겠다고 말한 뒤 진백천에게 들은 전음이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하지만 그 말을 해준 것이 천하의 진백천이었다.
-……해보겠습니다. 아니, 해내겠습니다.
장법(掌法)을 위주로 익힌 이개석이 묵봉을 상대하는 것은 무척이나 불리했다.
봉이란 무기가 가진 기다란 거리도 그렇지만 그의 무공은 두 손을 단련시켜 강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닿지 않으면 단지 살아 움직이는 허수아비일 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봉을 붙잡을까 고민하던 중.
그의 머리 위로 봉이 떨어져 내렸다.
보통이라면 당연히 봉을 피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개석은 오히려 양발을 펼치고 이를 악다물었다.
‘붙잡는다!’
자신의 의도를 간파당하면 두 번의 기회가 없을 수도 있었다.
단번에 붙잡아야 했다.
후우우우우-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봉은 그 거친 파공성만큼이나 매서웠다.
‘손으로 붙잡을 수 있을까?’
순간 연약한 생각이 뇌리를 스쳐 갔지만 고개를 흔들었다.
비록 이름 한 번 떨치지 못한 자신이었지만 평생을 단련한 장법이었다.
단 한 번.
겨우 그 단 한 번을 버티지 못할 리 없었다.
‘약왕당주의 영약도 받아먹은 나다!’
“피하지 않으면 두 손이 박살 날 것이다!”
묵봉은 친히 경고까지 하며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그 말과 달리 봉에는 더더욱 내력이 실렸다.
단 한방으로 이개석을 으깨 버릴 의도였다.
“끄으윽!”
봉과 손바닥이 닿자 이개석은 자기도 모르게 침음성을 내뱉었다.
손바닥이 터져 나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충격이 전해졌다.
살점이 찢겨 나가며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으드득-
‘버텨라아아!’
이개석은 이를 악다물며 봉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봉으로 내력을 불어넣었다.
곧 그의 내력이 봉으로 흘러 들어가며 묵봉의 내력과 맞부딪쳤다.
“허! 하려던 짓이 겨우 이거였나?”
보통 이런 상황이 되면 선택은 두 가지였다.
상대를 무기에서 떼어놓는다든지 내력 싸움에 돌입하든지.
묵봉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내력 싸움보다는 이개석을 떼어놓고 공격하는 편이 유리했다.
“떨어져라!”
묵봉은 봉을 빠르게 회전했다.
겉에 붙어 있는 미세한 철침들이 이개석의 손바닥을 찢어냈다.
하지만 이개석은 끝끝내 버텨가며 더욱 내공을 불어넣었다.
드드드득-
회전하던 봉이 서서히 느려지며 대치 상태가 되었다.
“끈질긴 늙은이! 그렇다고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그까짓 내력 싸움에 들어가면 이길 수 있을 줄 알고?”
묵봉은 그를 비웃으며 자신 또한 내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내력이 부딪치며 묵직한 줄다리기를 시작했다.
둘의 대치 상황은 의외로 끈질기게 이어졌다.
“9신위 뭐하는 거냐! 장난은 이쯤이면 되었으니까 당장 쓰러뜨리라고!”
“언제까지 멍하니 서 있기만 할 거냐!”
관중들은 정확한 둘 사이의 상황도 모르고 소리쳤다.
하지만 평범한 겉모습과 달리 둘은 필사적으로 내력 싸움을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늙은이가…… 내력이…… 제법 많군!”
“자네가…… 쿨럭…… 없는 거야.”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은 결국 묵봉의 잘못된 상황 판단 때문이었다.
이개석이 아무리 이름 없는 장로라고 해도 그동안 쉬지 않고 무공을 단련해 왔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늘어간 것은 내력의 양이었고, 이번에 약왕당주의 단약을 먹으며 한층 더 강해졌다.
약왕당주의 내력이 서서히 그의 몸에까지 흘러넘치려 하자 묵봉은 당황했다.
-이대로 간다면 정말로 위험하다! 손해를 보더라도 늙은이를 떨어뜨려 놔야 한다!
그는 순간적으로 내력을 모아 이개석을 밀쳐내려 했다.
하지만 그의 속마음을 읽고 있던 진백천에게 그것은 또 다른 기회였다.
-이개석 장로! 지금이에요!
이개석은 진백천의 음성을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묵봉에서 손을 떼며 묵봉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허억!”
하필이면 그가 내력을 거둬냈던 절묘한 순간이었다.
쇄목추파장(碎木追破掌).
그의 초식 이름도 기묘하게 나무를 분쇄하는 손바닥이었다.
피와 살점이 흐르는 손바닥이 허공을 가르며 묵봉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커헉!”
-멈추지 말고 계속!
묵봉이 피를 토하며 뒤로 물러났지만 이개석은 커다랗게 진각을 밟으며 그를 추격했다.
몸 안에 들끓는 진기를 다 토해낼 때까지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피 끓는 것이 얼마 만인가?! 지금 이 순간 숨이 끊어지더라도 후회는 없다!’
뒤에서 지켜보는 후배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묵봉의 주먹과 발이 이개석의 몸을 후려쳤지만 억지로 버텨내며 나아갔다.
“어림없다!”
이개석의 손바닥이 계속해서 묵봉의 요혈을 강타했다.
그리고 마침내 열기를 다한 숯처럼 힘을 다하고 멈춰섰을 때, 이미 묵봉은 바닥에 쓰러진 상태였다.
주변은 싸늘한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하아하아.”
하지만 이개석이라고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다리는 금방이라도 꺾일 듯 후들거렸고 눈앞이 흐렸다.
그렇기 때문에 이개석은 묵봉이 바닥에 쓰러졌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이 정도면…… 이 정도면, 나도 멋진 패배입니까? 회주?’
그의 무릎에 힘이 풀리며 널브러지듯 쓰러지기 일보 직전.
옆에서 그를 부축하는 손이 있었다.
동시에 그의 명문혈을 통해 지극히 맑고 깨끗한 기운이 파고들었다.
“흐읍.”
흐릿했던 시야가 맑아지며 진백천의 얼굴이 들어왔다.
“……회주!”
“수고하셨어요. 아주, 아주 멋있는 대결이었어요. 이개석 장로.”
진백천은 그의 피 묻은 손을 붙잡고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피가 그의 손과 옷에 묻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던 정도회의 무사들과 관중들은 목이 터져라 환호했다.
“늙은이가 제법 멋있군!”
“왜 저런 자가 아직까지 별호가 없던 거지?”
“정도회는 약하지 않다! 9신위따위로는 어림도 없다고오!”
위축되어 있던 정도회 무사들에게는 충분히 기가 살 대결이었다.
이개석은 자신을 향해 환호하는 이들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회주.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아니에요.”
진백천은 의아해하는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번에는 제가 감사하다고요. 아주 잘해주셨어요. 그러니까 이제는 뒤에서 지켜보세요. 우리 후배님들의 활약을요.”
“……알겠습니다. 회주. 두 눈 똑똑히 뜨고 응원하겠습니다.”
* * *
사자혁은 무심한 눈으로 바닥에 쓰러진 9신위를 내려다봤다.
평소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는 버릇이 있다고는 하나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질 줄은 몰랐다.
이개석의 손을 함께 들어 올리는 진백천을 보고 다시 9신위를 봤을 때 그의 눈동자에는 은은한 노기가 띄었다.
“끌어내라.”
9신위는 짐짝처럼 끌려갔다.
“이길 수 있는 자를 방심해서 지다니 한심하기 그지없군! 9신위가 바뀌는 것도 조만간이겠어.”
“처음부터 패배라니. 창피하기 그지없군!”
다른 신위들이 불평 어린 목소리로 말했지만 사자혁의 눈에는 방심이나 우연 따위의 결과물이 결코 아니었다.
“9신위의 내력은 생각보다 약했고, 저 장로는 생각보다 강했던 것뿐이지.”
그리고 그것만으로 승패가 결정 난 것이 아니었다.
“9신위가 내력을 거둬들이는 순간을 정확히 노렸다. 거기에 목숨이라도 건듯 끈질기게 달라붙던 저 장로의 끈질김도 승패에 무게를 더했지. 완벽한 패배다.”
“…….”
사자혁이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감히 첨언할 자들은 없었다.
유소어만이 정확히 본 사자혁의 말에 대리만족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소어. 다음은 누구를 내보내지?”
“네. 회주님. 6신위. 사령령 소저입니다.”
“왜지?”
“무기가 가진 이점도 존재하고 안다고 해도 공략하기 힘든 무공 탓입니다.”
유소어는 9신위와 이개석의 대결을 보면서 뒤에서 진백천이 개입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정확한 시기에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행동할 수 없었다.
“공략하기 힘들다라.”
확실히 사령령에게는 딱히 모자란 구석이 존재하지 않았다.
내력이면 내력, 외공이면 외공.
하나같이 6신위에 어울리게 골고루 키운 능력치였다.
진백천이 아무리 사령령을 파악했다 해도 실력이 떨어지는 이들로 공략하기 어려운 인물이었다.
“좋다. 다음은 령령이가 나가지.”
“네! 제가 전부 쓸어버리겠습니다!”
사령령은 당차게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진백천을 향해 노골적으로 기세를 키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를 상대하고 싶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 * *
“사령령이 나왔군.”
진백천은 역시나 하는 상대에 눈살을 찌푸렸다.
가능한 뒤쪽에 나와줬으면 하는 인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령령이 진백천에게 한차례 혼쭐이 나고 쫓겨났다지만 그의 한에서였다.
‘계속해서 장로들이 나가야 하나? 마지막 세 명째 정도 되면 아슬아슬하게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사령령이 단순히 무력만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상대의 약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곳을 집요하게 노릴 줄도 알았다.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알면서도 방심하지도 않았다.
“흐음.”
진백천이 고민하자 장로 2, 3, 4가 각자 자신이 하겠다면 당차게 나섰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백천의 작전으로도 그들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가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정도회 무사들을 둘러보는데 춘식이에게서 덜컥하고 시선이 멈췄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들고 있는 무기였다.
“……추(錐)?”
“아. 맞습니다. 회주님.”
어깨에 칭칭 건 쇠사슬과 그 끝에 연결된 묵직한 추.
그 길이만 해도 제법 길어 보였다.
사령령의 채찍의 길이쯤은 충분히 넘어설 만큼.
“춘식아. 너 원래 추를 썼었냐?”
“아…… 네. 어릴 때부터 쓰던 게 이거뿐이라.”
촤르르륵-
“잠깐 이리와 봐.”
진백천은 춘식을 끌고 가서 그의 무공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의 무공은 희운지추(羲雲地錐).
사방을 가득 메우는 무거운 추가 특기였으며 총관이 익히고 있는 것과 같았다.
‘맞아. 총관이 그런 무공을 익히고 있었지.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새까맣게 잊고 있었어.’
그가 무공을 펼치는 모습을 본 것이 첫 번째 회귀 전이었으니 햇수로만 따져도 족히 수십 년 전이었다.
춘식은 요리뿐만 아니라 무공에도 제법 소질이 있었는지 성취도 나쁜 편이 아니었다.
“혹시 구름은 몇 개까지 띄울 수 있지?”
희운지추는 그 성취가 높아질수록 쇠사슬로 만들어진 구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총관은 총 4개의 구름을 만들어 상대를 쇠사슬 속에 가둬 버렸었다.
춘식은 진백천이 그러한 사실까지 알고 있다는 것에 놀라며 대답했다.
“……저는 성취가 낮아서 2개까지가 최선입니다.”
“흐음. 2개라.”
진백천이 턱을 쓰다듬으며 사령령과 그 뒤에 사자혁을 쳐다봤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사령령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직 조금 더 관찰이 필요해.’
고민을 마친 진백천은 춘식이 아닌 장로 2를 다음 상대로 내보냈다.
이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사령령을 조금 더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장로 2는 그의 명에 따라 끈덕지게 사령령에게 달라붙었다.
덕분에 진백천은 바로 눈앞에서 춘식과 사령령을 가상으로 붙여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장로 2가 대결에서 지고 돌아왔을 때 기쁘게 그를 맞이했다.
“수고했어요.”
“감, 감사합니다. 회주님!”
그는 마찬가지로 이개석 장로 옆에 주저앉았다.
“장로 말고 가장 강한 자가 나와!”
한껏 기세가 오른 사령령이 허공에 채찍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하지만 다음으로 나간 상대는 다름 아닌 춘식이었다.
“뭐냐 네놈은?”
“……나는 천군지사대 3대 소속 무사 춘식이오.”
“춘식?”
사령령의 표정이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