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회귀백서-192화 (192/346)

무림회귀백서 192화

66장 친선 대련(2)

식사를 끝마치고 소화가 다 될 때쯤 유소어가 찾아왔다.

유소어는 눈을 반짝이며 진백천과 무사들의 상태를 파악하려 했다.

“회주님. 잘 주무셨습니까?”

“그럭저럭.”

하지만 다들 진백천이 했던 말 때문인지 긴장감을 다소 내려놓은 상태였다.

의외로 담담한 모습을 보이자 유소어가 속으로 감탄했다.

-회주를 닮은 건지 다들 담대하군!

유소어를 따라 연무장으로 향하는 것은 친선 대련을 할 10명뿐이었다.

나머지는 친선 대련을 지켜볼 수 있는 관중석으로 안내한다고 했다.

“연무장은 사패천주께서 특별하게 준비하셨습니다.”

“특별하게?”

“네. 친선이 목적이다 보니 가능한 화려하게 꾸몄습니다.”

유소어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절대 평범하지는 않을 터였다.

연무장이 위치한 곳은 구룡성의 전각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용이 새겨진 거대한 기둥을 지나자 멀지 않은 곳에서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꽤나 몰려왔나 보군.”

“꽤…… 라고 설명하기에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러한 목소리는 연무장을 가리고 있는 벽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커졌다.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너도 친선 대련에 참가하지?”

“물론입니다. 저도 10신위 중 하나이니까요.”

유소어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곤 옆으로 돌아갔다.

진백천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황대원을 비롯해 모두의 얼굴을 둘러봤다.

“겨우 대련일 뿐이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진백천은 거침없이 연무장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등 뒤를 보고 따라올 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어떠한 거침이나 흔들림은 없어야 했다.

‘흐음.’

그리고 안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것은 말 그대로 엄청난 크기의 연무장과 그 주변을 둘러싼 관중들이었다.

“와아아아아-!”

“정도회다아아!”

야유와 환호가 섞인 음성이 그들에게 쏟아졌다.

진백천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을 훑어보며 연무장 가운데까지 걸어갔다.

“사람이 엄청나게 많아요.”

“주변의 사람들은 다 모인 듯 보이는군. 정파, 사파 가리지 않고 모였어.”

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사패천과 사파의 무인들이었고, 정도회를 향한 음성에는 야유와 적대감이 가득했다.

그러한 기운은 마음을 단단히 먹은 이들이라고 해도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지면…… 큰일이겠죠?”

춘식의 물음에 모두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간단한 대련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많은 관중 앞에서 손속을 겨룰 줄은 몰랐다.

“걱정 마. 이길 테니까.”

진백천은 뒤돌아보며 말했다.

다른 이들과 달리 여유로움이 넘치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그의 얼굴을 마주하자 두려움과 떨림이 싹 사라졌다.

“얼마나 자신이 없으면 이렇게 사람 수로 기를 죽이려 들겠어? 안 그래?”

“맞습니다. 실력에 자신이 없으니 목소리만 커지는 것들과 똑같을 겁니다.”

“나는 오히려 기대가 되는데?”

“뭐가 기대되십니까?”

강량호의 질문에 진백천이 관중들을 돌아봤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의 무인들이 거칠게 소리쳤다.

“여기가 어디라고 와! 당장 두들겨 맞고 쫓겨나 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회주는 지금이라도 싹싹 빌어라!”

“정도회의 샌님들 따위가 감히 누구에게 덤벼?!”

대부분은 그를 깎아내리는 외침이었다.

위축되는 보통의 이들과 달린 진백천은 달랐다.

그럴수록 입가에 맺힌 웃음은 더욱 짙어졌다.

“우리가 이기면 이길수록 저자들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질 거 아니야? 그게 너무 기대된다고.”

“……저도 기대됩니다. 회주님!”

“저도입니다! 어떻게든 완전히 일그러지게 하겠습니다!”

“그래. 그러려면 저들을 꺾어야겠지?”

모두의 시선이 연무장을 지나 구룡성으로 향했다.

구룡성은 마치 깎아내린 절벽처럼 연무장을 앞에 두고 우뚝 솟아 있었다.

그리고 그 최정상에는 사자혁을 비롯해 10신위(臣位)가 서 있었다.

그러한 위치 차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그들을 올려다보게 만들었다.

오롯이 내려다보던 사자혁은 손을 들고 말했다.

“조용히 하라.”

내공이 깃든 목소리는 마치 메아리처럼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시끄러웠던 연무장이 순식간에 침묵으로 내려앉았다.

잠시 귀가 먹먹해질 때쯤 사자혁은 다시 말을 이었다.

“오늘은 경사스러운 날이다. 사패천에 친구가 되고자 하는 새로운 손님이 왔기 때문이다.”

친구라는 말에 몇몇이 코웃음을 쳤다.

정도회와는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자혁은 그런 반응에도 담담히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구룡성은 아무나와 친구를 맺지 않는다. 그렇기에 오늘 그들과 무(武)를 겨루고 자격이 있는지 검증해 보겠다!”

진백천과 정도회 무사들이 듣기에는 기분 나쁜 어감이었다.

친선 대련이라 말한 것이 어느샌가 사패천이 그들을 시험하는 것처럼 둘러 말했다.

말을 끝낸 사자혁은 그대로 전각의 최상층에서 뛰어내렸다.

“허억! 사패천주가 뛰어내렸다!”

하지만 사자혁의 신형은 마치 중력이라도 거스르는 것처럼 천천히 출렁이며 바닥에 내려섰다.

극에 달한 신법의 경지 같은 것은 아니었고 단지 엄청난 내력을 내뿜어 속도를 조절한 것뿐이었다.

그런 것을 모르는 관중들은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환호를 보내왔다.

“역시 사패천이다아! 최고다아아!”

“정도회 따위 박살 내버려라!”

아마 사자혁의 생각은 아니었고 전부 유소어가 짜낸 것들일 터였다.

진백천이 걸어 들어가는 것부터 사자혁을 올려다보게 만드는 것까지.

관중들의 뇌리에는 알게 모르게 사자혁이 더 우위에 있다는 인식을 만들어줬다.

사자혁은 진백천의 바로 앞까지 멈추지 않고 걸어왔다.

둘 사이는 불과 한 발자국 정도로 가까워졌다.

“무식하게 무기만 휘둘러댈 줄 알았는데 제법 멋있는 척도 할 줄 아네?”

“펄떡이는 게 제법 사냥하는 맛이 있겠어.”

“글쎄? 지금까지는 사냥당해 본 적이 없어서.”

“그렇다면 이번에 당해보면 알겠군.”

불꽃 튀기는 신경전이 둘 사이에서 벌어졌다.

하지만 그런 신경전은 진백천과 사자혁에게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10신위들은 하나같이 누가 자신의 먹잇감이 될지 살펴보는 중이었다.

“호오. 정도회 측에서는 시녀도 나온다더니 그게 정말인가 보군!”

일반 성인의 반밖에도 닿지 않는 키의 남자였다.

하지만 비상식적으로 기다란 팔은 발끝에 닿을 만큼 길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각각의 손가락에는 기다란 조(爪) 형태의 칼날이 각각 달려 있었다.

“저 시녀는 아무래도 내 회단조(回短爪)가 먼저 맛봐야겠어.”

“내가 음식이에요? 맛보게?”

“크크큭. 앙칼진 게 제법 재밌겠군!”

8신위는 자신의 손끝에 달린 칼날을 혓바닥으로 천천히 핥았다.

당소예를 자극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면 지극히 성공적이었다.

“저 난쟁이. 8신위라고 했죠? 아무래도 제가 두들겨 패줘야겠어요.”

“뭐? 시녀 따위가 나를?”

10신위를 비롯해 주변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당소예는 진심이었다.

그 밖에도 4신위인 홍혈도는 황대원을, 사령령은 강량호를 향해 은연중에 기운을 내뿜으며 지목했다.

그 밖의 신위들은 누가 되든지 상관이 없는 자들이었다.

“어차피 재미도 없을 텐데.”

“제일 보고 싶은 건 저 회주라는 자와 천주님의 대결이라고. 안 그래?”

사자혁은 신위들의 말을 들으며 진백천을 쳐다봤다.

그와는 또 다른 의미로 날카롭게 생긴 인물이었다.

몸만 봐도 진백천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환골탈태했음을 알 수 있었다.

“회주. 자신 있는 눈빛이군.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지.”

“적어도 지금은 자신 있으니까.”

“그렇군. 그 자신감 확실히 뭉개주지.”

둘은 동시에 홱 하고 돌아서며 걸어갔다.

이제 더 말을 길게 할 것 따윈 없었다.

무인은 세 치 혀가 아닌 행동과 무기로 자신의 가치를 보이는 법.

“다들 준비됐지?”

“네! 회주님!”

다들 힘있게 대답했지만 뒤쪽의 장로들만이 어딘가 복잡한 얼굴이었다.

‘아직까지도 생각 정리를 못 한 건가? 저런 상태라면 나가더라도 문제만 될 게 뻔해.’

그때 사패천 측에서 첫 번째 무인이 걸어 나왔다.

가볍게 눈치를 보려는 듯 9신위였다.

책사 역할의 10신위 유소어를 제외하고는 제일 무력이 떨어지는 자였다.

“눈치를 보겠다 이거군?”

머리를 가볍게 넘는 기다란 봉이 주무기인 듯 양손으로 붕붕- 소리 나게 휘둘렀다.

“아무나 나와라! 회주라는 작자면 더 좋고! 전부 두들겨 패 줄 테니까! 흐하하하!”

도발적인 언사를 거침없이 내뱉었다.

그 말에 황대원이 앞으로 나섰다.

“회주님.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흐음.”

강해진 황대원이라면 9신위와 맞붙어도 충분했다.

아니, 진백천의 작전 함께라면 과하다 싶을 전력이었고 이길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도 진백천이 망설이는 것은 홍혈도 때문이었다.

‘단순히 이기는 건 중요치 않아. 지금의 황대원이 더 강해지려면 홍혈도와 맞붙는 것이 적절해.’

그가 9신위와 싸우고 난 뒤, 다음 차례에서는 필패였다.

가장 최선책은 장로 중 한 명이 나서서 져주는 것이었다.

‘사기만 낮추는 경기라면 뒤로 미루는 것이 낫지.’

어쩔 수 없이 황대원을 고르려는 순간 장로 1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회주. 제가 나가겠습니다.”

담담하게 말하는 장로 1의 얼굴에는 결의가 넘쳐흘렀다.

그것은 아집 같기도 했고 혹은.

생사를 건 자의 얼굴 같기도 했다.

* * *

첫 번째 대련이 시작되었다.

사패천에서는 9신위, 정도회에서는 장로 1이었다.

“사패천 9신위. 묵봉(墨棒)이오. 잘 부탁하지.”

묵봉이 봉을 휘휘 저으며 장난스레 인사했다.

본인이 절대 질 거라 생각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정도회 장로 이개석이오.”

이개석.

역시나 처음 듣는 이름이었고 진백천으로써도 그다지 기대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이개석이 나가기 전 그에게 했던 말 때문이었다.

-회주의 말을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제가 젊은 시절의 정도회에는 지금의 패기 같은 것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정도회가 크게 세력을 떨치자 조금 들떴었나 봅니다. 제가 살아온 방식으로 젊은이들에게 강요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회주님의 뜻에 따라보겠습니다. 제가 나서서 가장…… 멋있게 싸워보겠습니다. 단. 절대 지기 위해 싸우지는 않겠습니다.

그는 진백천의 대답을 듣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의 역할임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9신위 앞에 섰다.

굽은 그의 등이 눈에 들어왔다.

“회주님. 괜찮을까요?”

“믿어야지. 잘해낼 거야. 정도회의 장로니까.”

“맞습니다.”

정도회의 장로.

이개석은 뒤편에서 들리는 진백천의 말을 듣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뭐야? 혹시 겁이라도 드신 겁니까? 늙은이?”

묵봉은 이죽거리며 물었다.

하지만 이개석은 그저 숨을 크게 몰아쉬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쉽지는 않을 거다.”

“늙은이가 허세는!”

묵봉은 탐색전 따위 없이 곧바로 이개석을 향해 봉을 휘둘렀다.

파강묵봉(破强墨棒).

묵직하게 내력이 실린 봉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이개석은 피하지 않고 오히려 두 다리를 벌리고 꼿꼿이 섰다.

“장, 장로님! 위험합니다!”

관중석에서 걱정 어린 음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당연히 자신이 피떡이 되어 떨어져 나갈 것이란 확신의 눈빛도 쏟아졌다.

그런데도 그는 더욱 단단히 자세를 잡으며 양손을 회전하며 머리 위로 뻗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