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191화
66장 친선대련(1)
도끼의 손잡이를 움켜쥔 황대원은 그 묵직함에 놀랐다.
제법 힘이 들어갔지만 도끼를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자신도 제법 힘이 센 편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전부 파두혈사(破頭血事) 삼재부(三災斧)에 맞춰서 만들어졌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그 같은 강자 또한 이 정도라면 도끼가 부서지지 않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내가 이 도끼를 휘두를 수만 있다면 절대 부러지지 않는 무기를 얻는 셈이다.’
등 뒤에 부러진 도끼.
황대원은 무기가 부러졌을 때 느꼈던 허탈감을 떠올렸다.
아무것도 못 하고 단지 옆에서 진백천을 바라만 봐야 했던 그 순간은 그에게 절망감마저 심었다.
그런 절망감을 다시 느끼지 않으려면.
“……들어 올리면 돼.”
그리고 그에게는 부족한 힘을 대체할 무공이 존재했다.
환력신공(煥力神功).
황대원은 의도적으로 단전에서 내력을 끌어올려 오른손으로 흘려보냈다.
드드득-
내력이 터지며 그의 손이 떨렸다.
동시에 폭발한 기운은 근육과 피부로 스며 들어갔다.
변화는 즉각적이고 극명했다.
가장 먼저 도끼를 움켜쥔 손에 힘줄이 솟아났다.
뒤이어 오른팔과 어깨가 두꺼워지며 조금씩 도끼를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흐으으읍!”
힘을 지지하는 두 다리가 떨리자 하체에도 힘이 들어가며 근육이 부풀었다.
상체와 허리, 전신이 완전히 환력신공으로 인해 거인이 되었을 때 부절도부(不絶刀斧)는 그의 무기처럼 번쩍 들려 있었다.
“어때?”
“괜찮습니다!”
황대원은 도끼를 머리 위로 힘껏 휘둘렀다.
끄드득-
단지 쏠린 힘만으로도 밟고 있던 바닥이 부서지며 금이 갔다.
몸이 휘청이며 도끼를 못 이기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황대원은 신경 쓰지 않았다.
힘이 부족하다면 환력신공을 더더욱 키우면 되고, 도끼가 어색하다면 익숙해질 때까지 수백 번, 수천 번을 휘두르면 그만이었다.
“꾸준함만이 답이다.”
예전이라면 꿈도 못 꿀 변화였지만 지금은 가능했다.
진백천이 자신에게 대환단의 섭취를 도와주면서 임맥과 독맥의 일부분이 타통되었기 때문이었다.
날이 갈수록 내력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 스스로 느껴졌다.
“이깟 도끼가 무어라고. 회주님께서 주신 기대에 어긋날 수 없다!”
황대원은 두 손아귀에 더욱 힘을 주며 도끼를 휘둘렀다.
후우우우욱-
그가 움직일 때마다 포악스러울 정도의 바람이 사방으로 불어닥쳤다.
그리고 그만큼 새로운 무기에 기뻐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당소예는 각각 한 손에 쌍단수(雙斷手)를 쥐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단검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손과 손 사이를 오다녔다.
“와아. 무게중심도 완벽하고 원래 쓰던 것보다 더 검신이 긴대도 어색함이 없어요! 괜히 보물이 아닌가 봐요!”
길어졌지만 더 단단하고 가벼워진 탓이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그 전에 당소예가 쓰던 단검은 유난히 길이 짧았다.
지금의 단검은 그녀에게 완벽하리만큼 잘 맞았다.
당소예는 허공에 단검을 휘둘러보며 자신의 무공을 펼쳐 보였다.
스으윽-
황대원이 휘두를 때와 다르게 민첩하고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퍼졌다.
진백천은 기뻐하는 둘을 바라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나를 따라다니면서 고생한 값은 치른 거겠지?’
그런 둘의 모습에 자극을 받았는지 강량호와 전등신도 똑같이 무공을 점검했다.
확실히 녹림에서 봤을 때와 달리 한층 진일보한 모습이었다.
진백천은 그들을 지켜보다 방에서 빠져나왔다.
‘저 네 명은 되었고. 이제 남은 한 명인가?’
그가 찾아간 이는 다름 아닌 춘식이었다.
그는 이 시간에도 요리를 준비 중이었다.
“허억! 회주님! 여긴 어쩐 일로?”
“그냥 입이 심심해서.”
“제가 바로 드실 거리 좀 준비하겠습니다.”
춘식은 육포를 비롯해 간단한 다과류를 꺼냈다.
진백천이 평소 육포를 간식으로 즐겨 먹던 것을 봤었다.
“오오. 역시 총관의 손자라 그런지 눈치도 빨라?”
“……하하. 알고 계셨습니까?”
총관의 손자라는 사실을 딱히 반기는 모습은 아니었다.
‘이런 점은 또 의외네.’
“내일 친선대련에 나갈 거라는 사실은 들어서 알지?”
“네. 그렇습니다. 저도 정도회 무인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싸우겠습니다.”
“이길 자신은 있고?”
“없습니다!”
하도 당당하게 외치는 모습에 코웃음이 나왔다.
그렇지만 괜히 속에도 없는 말을 주저리주저리 하는 것보단 나았다.
“그래. 상대가 10신위일 확률이 높으니까 괜히 이길 생각하지 마. 그냥 위험하다 싶으면 져버려.”
“……그래도 괜찮습니까?”
“뭐 어때. 상대는 사패천에서 가장 강하다는 10신위고 춘식이는 요리사잖아.”
진백천이 장난스레 말하자 춘식도 긴장했던 모습을 지웠다.
“하하. 맞습니다. 저는 요리사죠. 딱히 져도 뭐라 안 할 겁니다.”
“뭐라 하는 사람 있으면 나한테 말해. 싹 다 두들겨 패줄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춘식은 진백천을 실제로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참으로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순서는 바로 나야. 무슨 말인지 알지?”
진백천은 가지고 온 마지막 흑어단피 한 벌을 춘식에게 건넸다.
춘식은 한눈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보호구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건……?”
“보호구. 내가 시켜서 졸지에 친선대련에까지 나가는데 이 정도는 챙겨줘야지. 겉이 꺼칠리긴 해도 옷 안에 입으면 제법 보호는 될 거야. 그래도 너무 그거 믿고 들이대지는 말고.”
진백천은 아무렇지 않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로써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은 것은 장로 1, 2, 3, 4뿐이었지만 하지만 딱히 걱정되지는 않았다.
원래 높은 직급에 있을수록 적은 대우를 바라며 많은 성과를 보여야 하는 법이었다.
그러한 희생정신이 바로 장로들이 존경을 받는 이유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면 푹 쉬고 내일 식사도 잘 부탁하지.”
“네. 회주님!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그는 딱히 대답 없이 손을 휘적거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때까지도 황대원과 당소예를 비롯해 대주들은 몸 상태를 점검 중이었다.
자칫 과부화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적당히 하라고 말하려던 진백천은 곧 멈춰섰다.
‘오히려 지금은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라도 몸을 움직이는 편이 나을지도 몰라.’
진백천은 하품을 하며 적당히 자리를 잡고 누웠다.
이 중에 유일하게 긴장을 하지 않는 것은 진백천뿐이었다.
‘내일 친선대련이야 그렇다 쳐도 사자혁이 대련에서 지고 괜히 날뛰는 건 아니겠지?’
진백천이 아는 그의 성격상 조금은 성가셔질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뒤가 더럽게 행동하는 자는 아니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곯아떨어졌고 눈을 떴을 때는 아침이었다.
* * *
9마리의 용이 휘몰아친다는 구룡성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확실히…….
“하암…… 더 피곤하네. 그렇지?”
진백천이 하품을 하며 묻자 황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황대원이 피곤한 것은 무기가 익숙해질 때까지 쉬지 않고 휘둘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당소예와 다른 대주들도 마찬가지였다.
친선 대련에 참가하는 자들 중 유일하게 잠을 잘 잔 것은 진백천뿐이었다.
“이게 다 살기가 넘쳐서 그래. 후우. 괜히 선인들이 산에 들어가서 도 닦는 게 아니라니까.”
진백천은 일어나자마자 느긋하게 춘식이 마련한 아침을 즐겼다.
놀랍게도 춘식은 100여 명에 가까운 식사를 혼자서 무리 없이 준비해냈다.
그것도 무척이나 훌륭하게.
하지만 진백천을 제외하고는 모두 먹는 둥 마는 둥이었다.
친선대련에 참가하는 이들이든 아니든 전부 긴장한 것이다.
“회주.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고개를 돌려보니 어색한 표정의 장로 1이 진백천의 눈치를 살폈다.
“말씀하세요.”
“크흠. 그게 오늘 친선대련에 참가하는 것 말입니다만. 아무래도 저는 힘들 것 같습니다.”
“왜요? 갑자기 속이 아프다거나, 운기조식을 하다 내력이라도 꼬였어요? 아니면 어제까지 있지도 않던 배려심이 돋아서 대원들에게 양보하겠다는 생각 따위는 아니시죠?”
장로 1, 2, 3, 4는 전부 할 말을 잃고 딱딱하게 굳었다.
그들이 전부 준비했던 핑곗거리였다.
곧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숙인 이들과 달리 장로 1은 꿋꿋이 진백천을 쳐다봤다.
돼지고기 구이를 집어 먹던 진백천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장로 1은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해댔다.
옆에 있던 당소예나 황대원이 듣기에도 비루한 내용뿐이었다.
“……몸도 안 좋고…… 더구나 사패천 아닙니까. 장로인 제가 지면 분명…….”
“장로가 지면 안 돼요? 대주나 대원들이 지면 괜찮고요?”
“그들은 아직 미래가 많이 남지 않았습니까. 분명 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타악!
진백천은 더는 못 참고 탁상을 내리쳤다.
내력이 담기지 않았지만 쇠로 된 탁상이 움푹 파일 정도였다.
“이게 문제야.”
“……네? 문제라니 그게 무슨……?”
“내가 왜 장로들을 내보내겠다고 한지 알아요?”
“그거야…… 저희가 실력이 있으니…….”
진백천은 그의 말을 끊으며 고개를 저었다.
“실력은 개뿔! 방패로 내보내는 거예요. 젊은 대원들 자존감과 정도회에 대한 자부심 최대한 보전하고 간직하게 만들려고요. 그런데 뭐? 미래가 많이 남아 있어? 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어?”
젊은 무인일수록 패배의 상처가 아무는 데 오래 걸렸다.
그리고 특히나 중요한 그 순간에 머뭇거림이나 고민은 평생의 성취를 좌지우지했다.
그런 이들을 바르게 이끌어주고 보살펴 줘야 하는 장로들이라는 작자가 이따위로 말하는 것을 보자니 구역질이 치솟았다.
‘정도회를 좀먹는 자들!’
“장로들이던 신입 대원들이던 아픈 건 똑같이 아파요. 패배도 똑같이 쓰라리고요. 하지만 다른 게 딱 하나 있어요. 장로들은 어떻게 하면 패배에서 쉽게 털고 나오는지 쓰러지고 나서 어떻게 다시 무릎을 일으켜 세우는지 더 잘 알잖아요.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장로들을 굳이 넣은 것이었다.
그들이 지더라도 그런 모습을 보고 정도회의 무사들은 패배라는 공포를 조금이나마 떨쳐낼 수 있을 테니까.
“그게 그렇게 어려워요?”
장로들은 전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진백천이 자신들에게 승리를 기대하지 않는 것은 그렇다 치고 그가 지적하는 것이 송곳처럼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
“……회주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장로들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서 벗어났다.
방금까지 좋았던 분위기는 얼음장같이 차가워졌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와 다르게 진백천을 쳐다보는 이들의 눈동자는 뜨겁게 일렁였다.
조금 전 그가 했던 말이 모두의 가슴에 와 닿았다.
-아픈 건 똑같이 아파요. 패배도 똑같이 쓰라리고요.
춘식은 인상을 쓰고 있는 진백천을 향해 조심스럽게 말했다.
“회주님. 패배하더라도 너무 무서워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맞습니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회주님이 그렇게 저희를 신경 써주는 것만 해도 이미 힘이 솟습니다.”
“말 한마디로 힘이 솟긴. 먹어야 힘이 솟지. 얼른 다 먹어. 먹는 게 남는 거야. 알지?”
지금까지 깨작거리던 정도회 무사들은 누가 그랬냐는 듯이 크게 대답하며 음식을 남김없이 쓸었다.
사실 진백천이 그 말을 한 것은 장로들에게 화가 난 것도 있지만, 일반 대원들에게도 말해주기 위해서였다.
‘한창 자신감이 넘칠수록 패배를 두려워하지. 그래서 한번 넘어지면 다시는 못 일어날 거라 생각하기도 해.’
하지만 정작 시간이 지나고 나면 넘어진 자신이 못 일어나는 것은 작은 상처 때문이 아니라 본인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상처를 붙잡기보다 땅을 짚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
진백천은 이들이 그런 것을 깨닫길 바랐다.
그것은 진백천이 지난 회귀 동안 수없이 패배하면서 깨달은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회주님께서도 패배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많지.”
그런 사례를 말해주려던 진백천은 문득 이번 생에서는 제대로 된 패배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나마 밀렸던 대결도 전부 몇 세대나 위의 고수들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없나?”
진백천의 혼잣말에 대원들이 모두 벙찐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곧 농담처럼 여겨졌는지 헤실거리며 웃었다.
‘……다행이군. 농담으로 받아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