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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189화 (189/346)

무림회귀백서 189화

65장 사패천의 경매장(3)

경매장의 구조는 꽤나 단순했다.

달팽이관처럼 문을 두고 둥글게 말아 들어가는 통로였다.

벽면에는 파는 물건과 함께 이름과 가격이 적혀 있었다.

“와아. 생각보다 물건이 많아요.”

“물건이 많을 뿐이지 생각보다 쓸만한 것들은 없을 겁니다. 안 팔렸다는 것은 그만큼 이유가 있습니다.”

하용추의 말은 물건을 살펴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전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진백천의 시선에 둥그런 통이 달린 창이 들어왔다.

“폭쇄창(爆碎槍)?”

이름만 봐서는 무척이나 강력해 보였다.

실제로 그 재질도 강철보다 더 단단하다는 현철(玄鐵)이었다.

“무게도 적당해 보이고 괜찮은데? 근데 저 둥그런 통은 뭐지?”

“폭약을 넣는 통입니다.”

“폭약?”

이어지는 하용추의 설명에 진백천이 혀를 찼다.

통에 화약을 넣고 상대를 찌르면 연결된 통로를 따라 폭발력이 전해졌다.

“실제로 저 무기를 사용한 자들은 일격에 상대를 전부 죽였다고 합니다.”

“일격에? 그러면 꽤나 괜찮은 거 아닌가? 왜 경매로 나온 거지?”

“사용한 자도 전부 폭쇄되어 죽었습니다.”

폭발에는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았다.

한마디로 자살용 무기였다.

진백천은 그때부터 그런 기괴한 것들은 전부 눈길도 주지 않고 넘어갔다.

경매장에는 무기만 있는 게 아니었다.

상대를 세뇌시킬 수 있는 세뇌단(洗腦丹)부터 끊임없이 웃기만 하다 호흡곤란으로 죽는 광소단(狂笑丹)까지 별의별 게 다 있었다.

“이런 것들은 누가 다 생각해 낸 걸까요?”

“분명 제 정상인 사람들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꼭 이상한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꽤나 괜찮아 보이는 것들이 존재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보호구였다.

“흑어단피(黑魚檀皮)?”

검은색의 꺼끌꺼끌해 보이는 내의였다.

진백천이 관심을 보이자 하용추가 재빨리 설명을 시작했다.

“서구에서 들어온 물건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서구의 심해 깊은 곳에서만 사는 물고기의 가죽을 말려 여러 겹 이어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강도는?”

“웬만한 병장기는 전부 튕겨내고 검기가 실려야 흠집이 납니다.”

하용추가 가슴팍 쪽에 있는 가느다란 자국을 가리켰다.

‘검기로 겨우 저 정도의 흠집이라면 강도가 엄청나다는 건데?’

“근데 왜 안 팔렸지? 또 이상한 단점이 존재하는 건가?”

“사실 단점이라는 것도 없습니다. 내의치고 꺼끌꺼끌하다는 것과 괴물 같은 가격 때문입니다.”

좋은 방어구는 여벌 목숨을 가지고 다니는 것과 같았다.

물론 어떤 무인들은 움직임을 방해하는 방어구를 입는 것은 애송이나 하는 짓이라고 비웃기도 했다.

하지만 호연보의(護燃保衣)의 혜택을 톡톡히 본 진백천으로써는 방어구에 긍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저렇게 내의로 겹쳐 있는 방어구는 움직임에도 제한이 별로 없고.’

그리고 막상 확인한 가격도 하용추가 말한 것처럼 괴물 정도는 아니었다.

“금자 500냥이라. 이 정도면 지불하지 못할 정도는 아닌데?”

“흑어단피는 총 5벌입니다. 그것을 일괄적으로 판매할 때만 개당 500냥이고 개별로 판매하면 금자 1,000냥입니다.”

“……미쳤네요. 아무리 저 가죽 쪼가리가 질기다 해도 금자 1,000냥이라니. 그건 사기 아니에요?”

당소예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말하자 하용추도 허허거리며 웃었다.

“맞습니다.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하니까 팔리지 않고 여기 남은 겁니다.”

“5벌 다 합치면 2,500냥인가?”

“……회주님 설마 사시게요?”

당소예와 황대원마저도 바가지를 넘어 물지게를 씌우는 수준이라고 말했지만 진백천의 생각은 달랐다.

‘여벌의 목숨이 금자 500냥이면 못 줄 것도 없지.’

만약 딱 1벌만 있었다면 오히려 구매를 꺼렸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개당 500냥의 5벌이면 나름 합리적인 소비라고 생각했다.

‘겨우 금자 500냥으로 목숨이 걸린 위기를 넘긴다면 그것만 보면 몇 배는 더 쓸 수도 있지.’

진백천은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5벌을 바로 구매했다.

“이럴 때 돈을 안 쓰면 언제 쓰겠어? 안 그래?”

돈을 건네받은 하용추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대리구매 후 정도회가 머무는 곳으로 가져다 놓겠다고 말했다.

“자, 다음! 서둘러 보자고!”

막상 한번 구매하자 그 이후부터는 쉬웠다.

주로 진백천의 구매 대상이 되는 것은 효용성은 확실하나 가격이 비싸서 남겨진 것들이었다.

“이것은 쇄룡추(鎖龍錐)라고 합니다. 암벽등반을 하는 자들이 쓰던 것인데 이곳의 단추를 누르면 쇠고리가 빠져나와 벽을 뚫고 고정됩니다.”

“얼마야?”

“금자 150냥입니다.”

“사!”

진백천의 사라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경매장을 돌아다니던 이들이 서서히 그에게 관심을 가졌다.

괜찮아 보이면 족족 사들이니 따라다니며 구경하는 자들도 생겼다.

“이것은 은형비단(隱形緋緞)으로 내력을 흡수하면 주변과 동화되며 몸의 인기척을 숨겨줍니다. 혈막(血幕)의 살수가 가지고 다니던 것을 누군가 입수한 것이라고 합니다.”

“가격은?”

“……금자 800냥…….”

“사!”

이번에는 제대로 가격도 듣지 않고 사버렸다.

주변에서 보고 있던 자들은 과감한 구매에 대리만족까지 하며 박수를 쳐댔다.

그 밖에도 아끼지 않고 산 것은 바로 독이었다.

음흉한 사패천답게 각종 절독(切毒)이 넘쳐났다.

하용추가 각종 독이 담긴 도자기병을 가지고 왔다.

“회주님 여기 있는 독 전부입니다. 단순히 몸을 마취시키는 군자산(君子散)부터 내공을 흩뜨리는 산공독(散功毒), 미혼산(迷魂散), 살을 녹여 뼈만 남기는 화골산(化骨散), 그리고 한 방울로도 수십을 죽인다는 학정홍(鶴頂紅)까지…….”

“사!”

이번에도 역시나 즉시 구매였다.

왜 그렇게 독을 많이 사냐는 당소예의 질문에 진백천은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이곳에 독이 남아 있을수록 안 좋게 쓰일 거라는 이유는 너무 속보이겠지?’

독인으로써 독정을 강화시키는 방법은 몇 가지 방법이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독을 직접 섭취하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 당장에는 사용하기 힘들겠지만 언젠가 쓰일 때가 있음을 짐작했다.

“와아! 또 샀어! 얼마나 돈이 많은 거야?”

“오늘 경매장에 재신이라도 등장한 건가?”

이렇게 놀라워하는 자들과 달리 눈독을 들이는 자들도 존재했다.

화수분처럼 쏟아져나오는 금자 때문이었다.

구룡성은 힘없는 자가 빼앗기는 것이 당연한 곳이었다.

그런 악독한 마음을 먹은 자들이 점점 모이며 진백천을 뒤따랐다.

“경매장에서 나서는 순간 바로 덮쳐 버리자고.”

“지가 강해 봤자 우리 전부를 상대할 수 있겠어?”

그런 변화를 눈치챈 황대원이 걱정했지만 진백천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차피 구룡성에서 알아서 처리해 줄 테니까 걱정 말고 물건이나 봐.”

“……네. 회주님.”

그리고 경매장의 중간쯤 오자 진백천의 눈에 벽면을 대부분 차지한 거대한 도끼가 눈에 들어왔다.

양날도끼는 손잡이가 유난히 길고 그 끝이 창처럼 날카로웠다.

짙은 묵빛의 재질은 백련정강(百鍊精鋼)과 만년한철(萬年寒鐵)을 섞어 만든 것이었다.

“이 도끼의 이름은 부절도부(不絶刀斧)입니다. 날과 충격을 견디는 부분은 전부 만년한철로 만들어졌으며 이름 그대로 절대 부서지지 않는 도끼입니다.”

진백천을 비롯해 일행의 시선은 자연스레 황대원에게로 향했다.

그의 등 뒤에는 여전히 부러진 기존의 도끼가 메어 있었다.

“어때?”

황대원은 진백천의 물음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우선 자신이 쓰던 도끼와 비교해서 두 배는 더욱 거대하기도 했고 도끼가 전해오는 기운에 매료된 상태였다.

“이 도끼에 얽힌 사연은 뭐지?”

“부절도부가 만들어진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실전에서는 쓰이지 못했습니다. 원래 주인이 되었어야 할 자가 30년간을 기다리다 노환으로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하는 하용추의 얼굴이 지금까지와 다르게 은은히 미소가 맺혀 있었다.

“혹시 30년을 기다리다 죽은 그자의 이름이 누군지 아십니까?”

“누구지?”

진백천은 대충 알 것 같았지만 일부로 되물었다.

저만한 도끼를 사용할 자는 강호 역사상 단 한 명뿐이었다.

“파두혈사(破頭血事) 삼재부(三災斧) 입니다.”

삼재부는 그의 이름이 아니었다.

머리를 깨뜨리고 피를 흩뿌린다는 파두혈사와 3가지 재앙을 가지고 온다는 도끼인 삼재부는 전부 그의 별호였다.

단 하나의 별호로는 그를 지칭하지 못해 언제부터 두 개의 별호가 동시에 사용되었다.

그가 이 정도로 유명해질 수 있었던 것은 별호에서 보다시피 3가지 재앙 탓이었다.

“첫 번째 재앙은 성년이 되기 전 절강성의 흑도파 전원을 사냥용 도끼로 사살. 이때는 무려 무공도 익히기 전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비교적 작은 체구와 달리 타고난 신력을 가졌었다.

성질마저 괴팍하고 단순했는데 흑도파를 몰살한 것도 단순히 마을 사람들을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이때 까지만 해도 단순히 지역에서 이름을 날리는 자였다.

“두 번째 재앙은 그가 살막(殺幕)의 살수들을 전부 죽인 일을 말합니다. 그 이유는 잘 알 수 없지만 특급 살수를 포함하여 살막의 인원 대부분이 그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살막은 무려 지금 혈막(血幕)의 전신을 말했다.

비사에 따르면 이름을 바꾸고 새롭게 태어난 것도 전부 이때 삼재부가 살막의 존재를 없애버리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었다.

무려 마교조차 얼마나 당했는지 삼재부와의 다툼을 피한 것이다.

“그가 만약 살아 있었다면 오왕 중에 일인은 부왕(斧王)이 되었겠지. 그것도 가장 첫째 줄에 적혔을 거야.”

주변에서 구경하던 구룡성의 무인들은 대부분 알고 있던 내용들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숨을 죽이며 이야기에 집중했다.

왜냐하면 그 마지막 재앙은 다름 아닌 이곳 구룡성과 관련되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재앙은…….”

“내 아버지를 죽인 것이지.”

대답은 진백천의 뒤편에서 들려왔다.

냉소적이며 듣는 것만으로도 몸이 쭈뼛해지는 기이한 기운을 가진 목소리였다.

“……사패천주!”

하용추는 마치 숨을 토해내듯 말했다.

그만큼 갑자기 나타난 자를 보고 놀란 탓이었다.

사자혁은 그런 놀람이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며 부절도부(不絶刀斧) 앞으로 걸어갔다.

“이후의 이야기는 내가 덧붙여도 되겠지? 내가 당사자니까.”

그의 물음 같지 않은 물음은 진백천을 향해 있었다.

“마음대로.”

도끼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그의 눈동자는 지독히 무감정했다.

원래부터 그런 것은 아니고 무공의 경지가 극에 달하며 사소한 감정이 사라진 것이다.

“사실 듣고 나면 별것 아닌 이야기지. 삼재부는 사패천과의 악연을 쌓고 구룡성에 쳐들어왔다. 그의 도끼는 강했지. 겨우 걷기 시작하던 나의 뇌리에도 인두로 지진 것처럼 새겨질 만큼 말이야.”

알려진 바와 다르게 삼재부는 도끼뿐만 아니라 검이니 도니, 잡히는 무기라면 전부 사용했다.

다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의 손에 잡힌 무기는 얼마 가지 않아 전부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의 무공은 파괴적이었다. 보검(寶劍)이든 뭐든 가리지 않았다. 왜 그토록 그가 부서지지 않는 무기에 집착했는지 알 수 있었지.”

삼재부는 부서지는 무기와 다르게 본인은 몇 날 며칠을 움직여도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피를 뒤집어쓸수록 광전사가 되어 상대를 도륙했다.

싸우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강해지는 삼재부.

왜 그토록 그가 오는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는지, 마교조차 그를 피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발걸음은 마침내 사패천주, 즉 사자혁의 아버지에게까지 닿았다.

“이후에는 뻔한 이야기다. 내 아버지의 무공으로는 삼재부의 목을 베어내는 데 실패했어. 대신 삼재부의 도끼는 아버지의 몸을 베어내는 데 성공했지.”

전대의 사패천주가 바로 죽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사자혁이 클 때까지 겨우 버티다 숨이 끊어진 것은 아는 사람들은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 삼재부가 의뢰한 도끼가 왜 이곳에 이렇게 놓여 있는지 꽤나 의아하겠지. 회주는 혹시 그 사실을 아나?”

사자혁은 혹시나 그라면 알고 있을까란 시선으로 물었다.

황금빛의 기운이 도발적으로 눈동자에서 크게 일렁였다.

‘말해도 되려나?’

보통 이들은 그것이 단순히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삼재부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했다.

부절도부를 아무나 살 수 있는 경매장에 걸어놓은 것부터가 그러했다.

하지만 사자혁은 부절도부를 절대 미워하지 않았다.

‘아니. 미워할 수 없다는 게 정확하지.’

“스승이니까.”

그의 대답에 주변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직 사자혁만이 사자 같은 얼굴을 환하게 웃으며 송곳니를 드러냈다.

지독히도 만족하고 또, 상대를 죽이고 싶을 때만 짓는 그의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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