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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188화 (188/346)

무림회귀백서 188화

65장 사패천의 경매장(2)

“회주님은 마기자의 비동이 실존한다고 보시는 겁니까?”

진백천은 무심결에 그렇다고 대답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자신은 이미 경험해 봤다고 하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었다.

만약 조금의 의심도 없이 당연히 그렇다고 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해 보일 수도 있었다.

‘심계가 뛰어나다는 것을 넘어서 이미 그 사실 자체를 알고 있다고 볼 수도 있어.’

그 사실을 증명하듯 하용추의 시선에는 어딘가 미심쩍음이 깃들었다.

그것은 진백천의 대답이 늦어질수록 더더욱 그랬다.

“실존한다고 생각해야지.”

진백천은 하용추뿐만 아니라 당소예와 황대원을 둘러보며 말했다.

“의도적으로 소문이 퍼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거야. 그게 가짜든 진짜든 중요하지 않아. 난 그저 내가 할 수 있을 때 최선의 노력을 해서 일어날지 모르는 사건을 방지하는 것뿐이야. 그것이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면 좋은 거고. 혹시라도 진짜라면…….”

“……준비한 것으로 위험을 방지하는 것이군요.”

“맞아.”

하용추는 진백천의 대답에 어딘가 크게 놀란 표정이었다.

그리고 무언가 깨달은 사람처럼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렇게 과감했던 거였어. 혹시 모를 미연의 위험조차 모두 방지하기 위해서. 과연…… 영웅다운 풍모십니다.”

대충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되었지만 진백천은 굳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어깨를 으쓱이며 하던 이야기를 마저 이어갔다.

“그러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충분 되었다 생각하고. 진법과 관련된 인물은?”

“강호 최고로 뽑히는 자들로 구성해보겠습니다.”

“좋아. 돈은 걱정하지 말고. 알지? 나 돈 많은 거.”

하용추가 지금과는 다른 꾸밈없는 미소를 지었다.

진백천에 대해 미심쩍은 부분이 해소되자 그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선수금으로 절반만 미리 받겠습니다. 금자 3,000냥입니다.”

“……3,000냥은 조금 많지 않아?”

“강호 끝까지 돌아다니며 최고들로 구성하겠습니다.”

진백천은 내심 아깝지만 아끼지 않고 전표를 건넸다.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깎을 수는 없었다.

“다음은 정도회의 상단 창설인가?”

정도회는 딱히 상단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근처에 소유로 하는 가게와 상권으로 일을 해왔을 뿐이지 딱히 상단운영은 하지 않았다.

애초에 해보지도 않았고,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

‘상단을 만든다고 해도 딱히 운영할 이는 없을 텐데?’

[정도회에서 최초로 대형상단의 운영을 발표함. 물건은 호북에 위치한 특산물들이며 호위를 맡는 자들은 일부 정도회의 무사를 비롯해 호북에 위치한 무가의 제자들. 그들에게 정도회와 관련된 일 할 기회를 주면서 차츰 영향력을 넓히겠다는 의도가 보임. 상단의 책임자는 진백천의 손님으로 와 있는 당천아가 되었으며 이로 인해 그녀가 정도회에서 제법 큰 영향력을 얻게 되리란 것은 명확함.]

서신을 읽는 진백천의 얼굴에 여러 표정이 동시에 나타났다.

“상단의 운영을 맡는 게 당천아라고?”

“정확히 말하자면 책임자는 황중 친위대장입니다.”

“흐음. 상단의 운영이라. 잘만 된다면 앞으로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겠지. 그래도 당천아라니.”

그녀가 진백천에게 보이는 호의는 그도 잘 안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친교의 표시가 아니란 것이 문제였다.

당천아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능력도 좋고 무림오봉(武林五鳳) 중 막내이며 실력도 출중했다.

‘그래도 벌써부터 코 꿰긴 싫단 말이지.’

진백천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서신을 덮었다.

그리고 바로 마지막 서신을 확인했다.

[악인곡(惡人曲)의 기괴한 심장.]

제목부터가 벌써 객잔에서나 들려온 무서운 이야기 제목처럼 보였다.

그런데도 진백천이 이것을 고른 것은 바로 심장 때문이었다.

‘마뇌와의 진실대담 중에서도 악인곡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었지.’

진백천의 질문은 천마의 시체가 어딨냐는 것이었고, 마뇌는 십만대산부터 여러 곳에 흩뿌려져 있지만 가장 큰 조각은 악인곡이라 말했다.

단순히 이것뿐이라면 진백천도 굳이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았을지 몰랐다.

하지만 황음각에서 봤던 천마 제 1분묘(天魔 第 一憤苗) 새겨진 문구는 분묘에 보관된 천마의 4개의 심장을 파괴하라- 라는 것이었다.

진백천은 비석 위에서 느리게 박동하는 심장 조각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아닐 수도 있지만 혹시 모르는 거니까.’

서신을 펼치는 진백천의 표정에는 그 어느 것보다 더 긴장감이 흘렀다.

그리고 가장 첫 번째 문장은 진백천의 탄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악인곡의 탈출자 식귀(喰鬼)가 천마가 살아 있다고 주장…….]

‘……미치겠군.’

“천마라고?”

“회주님도 어처구니없으신가 보군요. 아무리 주변의 이목을 끌고 싶다고 해도 천마라니.”

정보에 비교적 마음을 열고 접근하는 하오문의 지부장마저도 혀를 차는 내용이었다.

그만큼 천마는 그저 무림인들 사이에서 동화처럼 이야깃거리로만 흘러나오는 것들이었다.

진백천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서신을 빠르게 훑었다.

[……식귀는 흑점을 운영하며 사람들에게 미혼약을 먹여 죽인 뒤 인육을 가공해 만두로 만들어 팔았던 마두. 정작 본인은 자신이 만든 인육만두는 먹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만 팔았음.]

옆에 있던 당소예와 황대원도 그 내용을 확인했는지 얼굴을 찌푸렸다.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거래요?”

“장사가 잘 안돼서 고깃값을 아끼려 그랬답니다.”

“……정말 죽어 마땅할 악인이네요.”

[……무림공적에 지정되자 악인곡으로 도망간 지 10년이 지났지만, 웬일인지 그곳에서 빠져나옴. 그자가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악인곡 가장 깊은 계곡에 거대한 무덤이 있는데 그곳에 살아 움직이는 심장이 있었다고 함.]

“살아 움직이는 심장?”

당소예가 관심을 보이자 하용추가 빠르게 설명했다.

“네. 맞습니다. 문제는 식귀가 제 버릇을 못 주고 그 심장을 가지고 요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한 것도 대단한 놈이네.”

다만 심장을 아무리 잘게 다지려 해도 도저히 잘리지 않아 만두에 넣어 그대로 쪘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만두는 악인곡의 악인들에게 나눠주었다.

장난으로 한 짓이었지만 놈의 행동은 악인곡에 엄청난 여파로 몰려왔다.

[만두를 먹은 것은 악인곡에서 태어난 아이. 무명(無名). 백치처럼 지내던 아이는 그 만두를 먹자마자 어딘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했다고 함.]

무공을 할 줄 몰랐던 아이가 자연스레 마기를 내뿜고, 악인들을 잔악하게 죽였다.

식귀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기겁하며 악인곡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찾아간 객잔에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한 것들이 하오문에 들어온 것이다.

“식귀 이자는 지금 어디 있지?”

“죽었습니다.”

“뭐? 어쩌다?”

“악살신괴(惡殺神魁)가 움직였습니다.”

악살신괴라는 말에 진백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라면 식괴가 악인곡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죽이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악살신괴라면 그자 맞죠? 악인들만 골라 죽인다는.”

“맞아. 평소 악인곡 앞에 죽치고 있다가 들어가려는 자든 나오는 자든 전부 죽이는 걸로 유명하지.”

항상 검은색 가면을 쓰고 다녔는데 말 한마디 없이 악인이라 판단하면 그 누구든 상대를 죽였다.

악살신괴의 쾌속한 쌍검술은 일대일로는 결코 당해낼 자가 드물었다.

“악살신괴가 없었으면 강호에 또 다른 마두가 돌아다닐 뻔했었네요.”

“나쁜 놈이 잘 죽었습니다. 그 안에서까지 사람 고기로 요리를 할 생각을 하다니.”

“분명 천마니 뭐니 하는 말도 빠져나오기 위해 지어낸 걸 거예요”

가볍게 생각하는 일행들과 달린 진백천은 속내가 복잡했다.

식괴가 설명했던 심장의 모습은 그가 황음각의 천마 제 1분묘(天魔 第 一憤苗)에서 봤던 것과 무척이나 흡사했다.

악인 따위의 말을 믿을 순 없지만 마뇌의 말과 합쳐서 생각했을 때는 그 안에 천마의 무덤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더구나 아이가 먹고 나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했지?’

무명(無名)이란 이름의 아이.

‘무조건…… 확인해 봐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으로써는 진백천이 손 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악인곡은 그야말로 악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으니까.

정도회의 회주인 진백천이라고 해도 함부로 그곳을 들어가지 못했다.

아니, 들어가더라도 그 앞을 지켜서고 있는 악살신괴가 비켜줄지도 문제였다.

‘후우. 조금 더 생각해 보자. 어차피 지금은 들어간다고 마음먹어도 할 수 없으니까.’

진백천은 서신들을 품속에 넣고 이 정보들의 값으로 금자 100냥을 건넸다.

하용추는 한순간에 번 엄청난 금자에 얼굴이 활짝 피었다.

“이제 슬슬 경매장 구경이나 해볼까?”

“네. 회주님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진백천은 하용추의 뒤를 따라 특별히 마련된 공간으로 향했다.

고정된 최소 가격으로 구매가 가능한 경매장이었다.

* * *

구룡성 최상층.

사자혁은 아직까지 진백천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당장 이곳에서 뛰쳐나가 그와 주먹을 맞부딪쳐보고 싶었다.

‘분명 엄청난 실력을 갖고 있겠지. 전력을 다하면 내가 죽을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사자혁의 심장은 쿵쾅거렸다.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다.

어서 빨리 그 강함을 직접 맛보고 싶은 흥분감 때문이었다.

목숨을 건 대결을 하고 살아남는다면 자신은 지금보다 한층 더 강해져 있을 터였다.

자꾸 말려 올라가는 입술을 자제하기 힘들었다.

“홍혈도. 그자는 강했나?”

“강했소이다!”

“얼마나?”

“흐음. 천주와 같이 압도적이진 않았지만 전투에 무척이나 익숙해 보였소. 굳이 따지자면 능구렁이 같은 모습이었달까?”

사령령과는 다른 평이었다.

또한 사자혁 본인이 본 모습과도 달랐다.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군. 나처럼!’

이러한 점이 진백천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이는 역할을 했다.

‘진백천 그자도 나와 같겠지.’

“정도회의 무사들은 뭐하는 중이지?”

“네. 다들 식사를 마치고 휴식 중입니다.”

“회주는?”

수하는 잠시 멈칫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했다.

“……경매장으로 향했습니다.”

“경매장?”

갑자기 생뚱맞은 대답에 사자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장 내일 있을 전투를 떠올려도 모자랄 시간이 경매장이라니.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오늘 경매장에 쓸 만한 물건이 있었던가?”

사자혁은 오늘 경매 등록 물품은 직접 전부 살펴봤다.

하지만 딱히 그의 이목을 끌 만한 것은 없었다.

“이해가 안 가는군. 그곳에 내가 모르는 뭔가 있는 건가?”

“사패천에는 천주님이 모르시는 것 따위는 없습니다.”

유소어는 마른입을 혀로 적시며 ‘끌리는 대로 움직이는 인간입니다.’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 집어삼켰다.

괜히 사자혁이 가지는 진백천에 대한 기대감에 물을 끼얹고 싶지 않았다.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유는 무슨.’

사자혁은 또다시 손가락으로 손잡이를 두드리며 생각에 빠졌다.

하지만 그저 가만히 생각한다고 답이 나올 리 없었다.

“유소어. 짐작 가는 것이 없나?”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쯧. 쓸모없는 놈. 역시 낙방한 이유가 있군.”

“크흠.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낙방한 것이 아니라 좁은 황실이 저를 담지 못한 겁니다.”

잠시 더 고민을 하던 사자혁의 손가락이 우뚝 멈췄다.

“어쩔 수 없군.”

“뭐가 말씀이십니까?”

“나도 경매장으로 간다.”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신위들이 전부 깜짝 놀랐다.

무공 단련을 제외하면 이 전각에서조차도 벗어나지 않던 그였다.

괜히 무광(武狂)이라는 별호를 얻었던 게 아니었다.

“경매장으로 가서 진백천 그자가 뭘 하는지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

사자혁의 말에 다른 신위들이 눈치를 보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유소어를 쳐다봤다.

유소어보고 그를 모시라는 뜻이었지만 그는 굳이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입을 꾸욱 다물고 있는데 사자혁이 그의 이름을 부르는 통에 희망이 사그라들었다.

“유소어. 준비해라. 그자와 많이 마주쳤으니 익숙하겠지.”

“천주님. 저도 따르겠습니다.”

사령령이 이때다 싶어 대답했다.

유소어는 왠지 피곤해질 것 같은 예감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진짜 떠나든가 해야지.’

말은 그렇게 해도 자신의 방 가득 쌓여 있는 책자를 생각하면 그러지 못할 것이란 것쯤은 본인이 제일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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