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187화
65장 사패천의 경매장(1)
“그, 그게 뭐예요?”
손가락 끝에 묻어나온 하얀색 가루는 한눈에 봐도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진백천은 손가락 끝을 코끝에 가져다 대며 냄새를 맡았다.
가루가 몸 안으로 들어오자 독정이 반응하며 그 기운을 집어삼켰다.
“독약은 아니고 소량의 미혼약(迷魂藥)과 마약이네. 처음에는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판단이 흐려질 거야.”
“저번 도박장에서처럼 호구를 만드는 방법이네요. 경매장에서 이런 방법을 써도 되는 거예요?”
“사패천이니까. 당하면 당하는 놈이 잘못된 거다, 라는 사고방식인 거지.”
진백천은 손가락을 튕기며 가루를 털어냈다.
그리고 곧바로 두꺼운 철문을 밀어내며 경매장 안쪽으로 들어섰다.
문이 열리자마자 흥겨운 가락의 음악이 들려왔다.
그리고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다가오며 그들을 환영했지만…….
“어서 오십시오! 경매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떻게 도와…… 커헉!”
“꺼져.”
진백천의 주먹에 맞으며 뒤로 튕겨 나갔다.
더 웃긴 것은 그렇게 맞은 직원이 코를 움켜쥐고 순순히 물러나면서 하는 말이었다.
“젠장. 눈치 한번 더럽게 빠르군. 정도회라고 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샌님일 줄 알았건만.”
“……설마 이자도?”
“직원인 척하는 양아치.”
“허허.”
황대원은 완전한 무질서로 운영되는 경매장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백천이 경계하란 말을 했어도 이렇게까지 난장판일 줄은 몰랐다.
경매장의 직원으로 보이는 자들은 새로운 사람이 왔다고 해서 안내해 주거나 알려주거나 하지 않았다.
그들이 하는 일은 오로지 경매 물건을 지키고 파는 것이 전부였다.
“으음. 저희는 어디로 가야 돼요?”
“잠깐만 기다려봐. 안내인이 곧 올 거야.”
“안내인이요?”
경매장 직원도 신경 써주지 않는 마당에 안내인이라니 다소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곧 얼마 뒤에 가면을 푹 눌러쓴 남자가 헐레벌떡 다가오며 고개를 숙였다.
“회주님! 여, 여긴 어떻게?”
“표식은?”
진백천의 물음에 그가 조심스럽게 품속에서 꺼내 보인 것은 다름 아닌 하오문의 표식이었다.
‘진짜군.’
“우선 조용한 곳으로 가서 이야기하지.”
“네. 제가 모시겠습니다.”
남자는 혼자가 아닌 듯 주변에 시선을 보내며 방해받지 않을 만한 곳으로 향했다.
땅속에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특급 손님들을 위한 개인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철컥-
문이 닫히자마자 남자는 품속에서 하오문의 표식이 담긴 패를 꺼내 보이며 정식으로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회주님. 저는 하오문 구룡성 지부를 맡고 있는 하용추입니다.”
하지만 패를 확인했다고 해서 진백천이 그 말을 믿는 것은 아니었다.
사패천이라면 진짜 하오문의 무인을 잡아다 물건을 빼앗고 그를 속이려 들 수도 있었으니까.
하용추도 그런 진백천의 의심을 당연하게 여겼고 품속에서 둥글게 말린 쪽지를 꺼내 보였다.
“문주님이 직접 내려보내신 서신입니다.”
진백천이 소림사에 있을 때인 듯 그곳에서 나오면 어떤 식의 도움이든 아끼지 말라고 적혀 있었다.
그가 얼마나 진백천을 생각하고 있는지 티나 나는 서신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증명할 수 없지. 하오문의 무공을 펼쳐봐.”
하용추는 거리낌 없이 양손을 빠르게 움직이며 허공을 휘저었다.
전의 하오문 소속 야바위꾼에게서도 본 적 있는 능파속수(凌波速手)였다.
“도박꾼에서 구룡성 지부장까지 되었다고? 뭔가 의심스러운데?”
끊이지 않는 진백천의 의심은 집요하리만큼 지속되었다.
하지만 하용추는 불편한 기색도 없이 공손히 대답했다.
“구룡성이니까 그렇습니다. 온갖 인간 군상이 모여 있는 이곳은 밑바닥에서 구른 자가 아니면 버티지 못하는 곳이니까요.”
-역시 듣던 대로 회주는 철저한 사람이구나. 만약 패만 보고 믿어주었다면 오히려 실망할 뻔했어. 큰아버지와 여교가 신뢰할 만하다.
‘큰아버지? 여교?’
그의 속마음을 듣고 있던 진백천은 의외의 말에 놀랐지만 굳이 넘겨짚지 않았다.
믿는다는 뜻으로 어깨를 두드리며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회주님께서 이곳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살 것도 있고, 바깥이 어떻게 굴러가나 알고 싶어서.”
“그러시군요!”
-역시. 단순히 경매장을 이용하려 온 것이 아니라 날 보러 온 거야. 은밀히 보려면 여기가 적격이라는 것을 알았겠지. 듣던 대로 심계가 대단한 자다!
놀라는 속마음과 다르게 하용추는 자신이 아는 것들을 준비해서 나열했다.
천하의 정도회 회주인 진백천이 돈이 부족할 리 없었고 특급 정보까지 전부 가지고 왔다.
진백천은 그중에 알고 싶은 정보만 쏙쏙 뽑아서 가지고 왔다.
[황군의 출군(出軍), 목적지는 십만대산.]
[마인(魔人) 출몰.]
[마기자의 비동(秘洞).]
[정도회의 상단 창설.]
[악인곡(惡人曲)의 기괴한 심장.]
단순히 제목만으로도 전부 진백천의 이목(耳目)을 확 잡아끄는 것들이었다.
“전부 확실한 것들이겠지?”
“지부장 선에서 검수까지 전부 끝난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확실하군.”
진백천은 가장 먼저 제일 위쪽에 놓인 [황군의 출군(出軍), 목적지는 십만대산.]이라 적힌 봉투를 열었다.
그가 기억하기로는 황제는 대군을 일으켜 마교를 토벌하려 하지만 쓰디쓴 패배만 남긴 채 후퇴하고 만다.
정도회와 함께하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한 소모전일 뿐이었다.
‘역시 원래의 역사대로 흘러가려나?’
[황군이 1만 군이 십만대산을 향해 출군. 목적은 신강에 위치한 마교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고 그들을 견제하기 위함. 황제는 그들에게 마교와의 충돌보다 민생안전과 마인들과 결탁한 이들을 토벌하라고 지시. 현재까지 별문제 없이 진행 중.]
하지만 종이에 적힌 내용은 그가 예상한 것과 달랐다.
진백천이 황궁에 있을 때 이야기했던 것이 통했는지 황제는 직접적으로 마교를 겨냥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과 결탁하는 자들을 없애 손발을 자르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렇다면 크게 소모전 없이 마무리되겠지. 정도회에게는 무척이나 좋은 흐름이야.’
“황제가 제법 몸을 사리는 것 같습니다.”
진백천이 만족한 표정을 짓자 하용추가 은근슬쩍 그의 의견을 떠보았다.
표기장군의 직책까지 있는 그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추후의 방향을 정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꼭 돈을 불러왔다.
“왜? 전쟁을 일으켜야 했다고 생각해?”
“현재의 황제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만약 마음만 먹는다면 100만 대군을 일으켜 십만대산을 직접 겨냥했어도 됐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다만…….”
진백천이 봉투를 탁-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우리가 존재하는 강호와 무림(武林)은 사람 수만으로 해결되는 곳이 아니야. 단 한 사람의 지략과 무략으로도 족히 일만 명을 죽일 수 있지.”
“흐음. 회주님은 황군이 당연히 지리라 보시는군요.”
“긍정적이지는 않지.”
그는 바로 다음 봉투를 확인했다.
[마인(魔人) 출몰.]이라 적힌 봉투였다.
“그 정보는 바로 오늘 들어온 뜨끈뜨끈한 것입니다. 아직 다른 정보단체에서도 제대로 파악 못 했습니다.”
하용추는 어딘가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말했다.
“그래?”
[운남성(雲南省) 유서(維西), 귀주성(貴州省) 강구(江口)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혈사(血事)가 일어남. 혈사를 일으킨 자는 모두 무가의 소가주로써 수련을 하던 도중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져 자신의 가족과 마을 사람들을 살해함. 관군들과 주변 문파의 무인들에게 추살(追殺)되기 전까지 쉬지 않고 검을 휘두름. 현장에 있던 정보원의 말에 따르면 죽은 모습이 마치 모든 정기를 빨린 것처럼 목내이 같았다고 함.]
‘벌써 마인들이 돌아다닌다고?’
원래의 역사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진 것은 무림대회 이후였다.
마교 측에서 특별히 만들어 뿌리던 마검들로 인한 것이었고, 평범하게 만들어지지 않았기에 지금은 별 걱정하지 않았었다.
“흐음.”
진백천이 무거운 침음성을 흘리자 눈치를 보고 있던 하용추가 추가적으로 말을 이었다.
“……분명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임에도 기이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개 한 마리도 살려놓지 않는 철저함을 보였다는 게 그 첫째고, 둘 다 똑같은 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게 두 번째입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마인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이건가?”
“네. 맞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검은?”
“운남성에서 발생한 마인의 것만 남고 귀주성의 것은 부서졌습니다.”
검은 관군이 회수해서 가져갔다.
하지만 손으로 만지지 않고 천으로 감아들 정도로 극도로 조심하는 태도를 보였다.
다행히도 어느 정도 마검에 대해 인지를 한 듯싶었다.
“정보를 의뢰하지.”
“네. 말씀하십시오.”
“그 검을 제작해서 그들에게 보낸 곳을 추적해 봐.”
“흐음. 말씀하지 않으셔도 저희가 따로 추적해 봤지만 워낙 이리저리 꼬여 있어서…….”
하오문에서도 난색을 표할 정도면 그 뒤가 더 구리게 느껴졌다.
“시간과 돈이 얼마나 많이 들어도 상관없어. 최대한 끈질기게 알아봐.”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특급으로 진행하겠습니다.”
회귀 전에조차 단 한 번도 황금마전(黃金魔殿)의 위치를 알아내지 못했던 진백천이었다.
오히려 지금부터라도 급하게 움직이면 그 사악한 꼬리의 끝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무리 마검이라고해도 단지 검 하나로 죽을 때까지 무인들을 상대할 수는 없을 거야. 분명히 따로 영약 같은 것을 섭취했겠지. 두 무가에 그런 것들도 흘러간 게 없는지 알아봐. 마검과 영약. 둘의 이동 경로를 쫓다 보면 끄나풀이라도 잡히겠지.”
“……그렇겠군요. 알아보겠습니다.”
하용추는 진백천이 말한 바를 자신의 수첩에 적었다.
그리고 공손하게 양손을 내밀었다.
“……특급 의뢰금의 절반은 선불입니다.”
“이거면 되나?”
진백천이 품속에서 꺼낸 것은 전표로 된 금자 1,000냥이었다.
전의 하여교에게 마차를 옮겨달라는 의뢰를 맡겼을 때와 동일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하용추는 그 금액에 놀라면서도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크흠. 아무래도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아주 뽕을 뽑아먹으려고?”
“회주님께서 팽가에 뜯어낸 금액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다 쓸데가 있는 거라고.”
진백천은 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그만큼의 전표를 더 꺼냈다.
금자 2,000냥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특급의뢰에 대한 선수금 절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이럴 때만 고객이지?”
진백천은 피식 웃으며 다음 봉투를 집었다.
[마기자의 비동(秘洞).]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지만 지금 그의 속마음은 무척이나 복잡했다.
‘이게 왜 벌써? 마인의 출몰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모든 일이 빠르게 흘러가는 느낌이야.’
만약 마인뿐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마기자의 비동은 소교주와 관련된 일이었다.
적조녀를 처리했기에 다소 마음을 놓고 있던 진백천에게는 갑자기 나타난 폭탄이었다.
‘후우. 사건이 갑자기 몰려오는 느낌이네.’
[마교의 인물이었던 마기자가 모든 보물이 숨겨 있다는 비동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 정확한 출처는 모르지만 최근 비동의 위치가 그려진 지도가 존재한다고 함. 한낱 소문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소문이 조직적이고 암적으로 퍼지고 있어서 주의가 필요함.]
‘이런 식으로 단계적으로 소문이 퍼지다가 비동의 지도가 나타나겠지.’
대부분은 이것이 의심쩍다는 것을 알아도 쉽게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 안에 담긴 것 중 일부가 명문 정파의 무공서 뿐만 아니라 파훼접이라는 소문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 안에 들어간 무인들이 마주한 것은 무공서와 영약 대신 강시들과 독 묻은 칼날뿐이었다.
‘진법에 갇혀서 2주야(晝夜)를 걸려 뚫고 나왔을 때는 무려 1,000명 이상의 무인이 함정에 빠져 죽은 후였지.’
가장 뼈저린 것은 황충의 왼쪽 팔이 그때 잘린 것이었다.
“……이번에도 의뢰하지.”
“네. 말씀하십시오.”
하용추는 또다시 돈 벌 기회에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진법과 함정에 관련된 최고의 인물을 알아봐 줘. 목표는 마기자의 비동에 들어가도 몸 하나 상하지 않을 것. 여러 명이어도 좋아. 가능하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의뢰였을까.
하용추는 잠시 침음성을 흘리며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잠시의 침묵 후에 나온 것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