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184화
64장 신경전(2)
“놀랍군.”
사자혁은 진백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목소리에는 흥분을 넘어 희열까지 깃들었다.
꽉 쥔 두 주먹은 부들부들 떨리고 식은땀이 베어 나왔다.
“……천주님?”
걱정스러운 그의 모습에 뒤에서 의문 섞인 음성이 들려왔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구룡성의 제일 위에 서서 만물을 내려다보는 자.
그리고 새롭게 이 안에 발걸음을 들인 자를 시험하는 것은 천주인 그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었다.
진백천을 이곳으로 초대한 것이 본인이었지만 그는 딱히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 봤자 단체가 가지는 힘이 개인으로 포장되었을 뿐이겠지.’
소문난 잔치에는 먹을거리가 없는 법이었고 그 대부분이 맞았다.
새로운 신성이니 뭐니 후기지수가 등장해서 데려와 보면 그 옆에 붙어 있는 장로나 원로들의 허명을 뒤집어쓴 놈들뿐이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경우라고 생각했다.
‘정도회의 금부(金斧) 황충이나 전풍객, 혹은 또 다른 이들의 공을 쌓아 만든 신입 회주.’
물론 진백천의 실력도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는 하겠지만 그래 봤자 아직 어린놈이었다.
사자혁은 전각에 올라서서 그를 시험해 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간단한 시험은 그가 4신위 홍혈도를 제압함으로써 조금 더 수위를 높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자신의 살기를 받아낼 정도만 되어도 만족이었다.
‘그것도 안 된다면 수하들이 보는 앞에서 피거품을 물고 쓰러지겠지.’
그가 익힌 무공 중에는 자신의 살기를 칼처럼 벼려 상대에게 집중하는 것도 존재했다.
무공의 고하와 상관없이 무인들 대부분이 당하게 되면 무척이나 곤혹스러워했다.
하지만 진백천은 그가 살기를 내뿜기도 전에 그를 정확히 올려다봤다.
‘기감이 뛰어나군. 하지만 네놈은 버틸 수 있을까?’
사자혁은 가볍게 조소하며 그를 향해 살기를 쏘아 보냈다.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그의 살의가 지나가는 공간이 검게 일렁이며 죽어갔다.
그리고 진백천의 주변만 온통 검게 변했을 때 그는 잠시 멈춰 서서 사자혁을 올려다봤다.
‘버텨?’
나무가 닿으면 시들고, 동물이 갇히며 피를 토하며 죽는 살기였다.
그가 의문을 느끼는 순간 진백천의 미간에서 밝게 빛나는 무엇인가가 쏘아져 나왔다.
그것은 눈으로 보이는 물건이 아니었다.
‘……비수!’
자신의 살기와 다르게 달빛처럼 서늘하며 지독할 정도로 날카로운 비수였다.
비수는 그대로 살기를 모조리 찢어발기며 사자혁에게 쏘아졌다.
막아내기 위해 순간적이나마 전력을 다했지만 단지 속도를 늦추는 것 정도였다.
사자혁으로써는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무력감이었다.
‘흐읍!’
의념의 비수는 정확히 사자혁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자신의 살기와 다르게 극도로 모인 비수는 기혈을 뒤틀며 전신을 난도질했다.
직접적인 상처를 내지 않는 의념뿐이었지만 그는 멈춰 서서 그를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지금이 전투 중이었다면 나는 죽을 수도 있었겠지.’
그의 질긴 몸이라도 칼날이 틀어박히면 죽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한 생각이 뇌리를 강타하자 전신의 기운이 들끓었다.
신체를 보호하는 수십 개의 무공이 연달아 전신을 휘저으며 최상의 상태에서 멀어졌던 몸을 치유했다.
“천주님?”
“그는 특별하다.”
사자혁의 선언과도 같은 말에 뒤편에 서 있던 신위들이 놀라며 쳐다봤다.
사령령만이 그럴 줄 알았다며 환하게 웃었다.
“제 말 맞죠? 진백천은 영물로 따지면 백호예요. 일반적인 자들과 다르다고요.”
“천주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다니 놀랍습니다.”
“지금이라도 더 지켜보라고 지시하겠습니다.”
10신위들은 더 말이 없는 사자혁을 두고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서둘러 진백천을 직접 살펴보고 그 특별함을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유일하게 남은 것은 6신위 사령령 뿐이었다.
“령령아.”
“네.”
“저자가 사용했던 무공이 뭐지?”
“그…… 제 실력이 부족해서 자세히는 알아내지 못했어요. 다만 그 이름이…….”
“이름이?”
무공의 명칭은 무척이나 중요했다.
그 자체로 무공의 성향과 오의(悟意)를 담기도 했다.
하지만 곧 그녀의 입에서 나온 단어를 들은 사자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걸개구타권(乞丐毆打拳)이라고… 했…… 어요.”
“뭐?”
거지를 패는 주먹.
자신이 알기로는 진백천은 개방과 사이가 무척이나 좋은 편이었다.
실제로 맹우(盟友)를 맺기도 했으니 명칭 그대로의 뜻은 아닐 터였다.
사령령은 혹시나 갑작스러운 무공에 자신이 당했다고 생각할까 봐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그렇다고 위력이 약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마치 하늘에서 쇳덩어리의 빗줄기가 온몸으로 쏟아지는…… 그런 무공이었다랄까?”
“흐음. 그렇다면 분명 평범한 무공은 아닐 터. 그렇다면 그 이름에 숨겨진 뜻이 있을지도. 익혀보고 싶군!”
사자혁은 걸개구타권(乞丐毆打拳)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한참을 고민했다.
그 고민은 진백천과의 만남 때까지 쉬지 않고 이어졌다.
만약 진백천이 알았다면 한참을 박장대소할 일이었다.
* * *
구룡성은 9개의 층을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 하나의 건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높은 담벼락 안에는 9개의 구역이 존재했다.
“회주님. 저기 좀 보세요. 시장이 있어요!”
당소예가 놀라며 쳐다보는 곳에는 작지만 시장이 존재했다.
상인들이 몰려들고 물건을 깔아놓고 거래했다.
구룡성 내부에는 사파의 무인들로 사시사철 붐볐고, 이곳에서 일하는 자들까지 더하면 작은 성이라고 해도 다름이 없었다.
밖과 다른 점이라면 바로 가격이었다.
“여기서는 모든 물가가 밖보다 적어도 3배 이상은 차이 날 거야.”
“허억. 정말이네요. 소면이 오리구이 가격이라니. 이럴 바에는 차라리 밖에 나가서 사 먹고 말지.”
“당 소저 말이 맞습니다. 밖의 마을과 겨우 반나절밖에 안 걸리는데 굳이 여기서 사 먹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당소예와 황대원의 대화와 달리 식당과 객잔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몇 배나 비싼 돈을 주고 사 먹지만 그들은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의 그들을 보며 진백천이 말했다.
“겨우 문 하나를 두고라고 하기에는 밖과 이곳은 하나 커다란 차이가 있어.”
“……멋진 전각들이 존재한다는 거요?”
확실히 당소예다운 대답이었지만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바로 이곳이 사패천의 영역이라는 거야. 어떻게 보면 흑도방파가 세운 성이라고 봐도 상관없는 거지.”
“……그러고 보니 이곳에는 병사들도 거의 보이지 않네요?”
겉으로 보는 사패천은 무(武)만을 숭상하는 곳으로 보이지만 사람이 돈 없이 먹고살 수는 없었다.
그들은 이곳에 거대한 울타리를 만들어놓고 모든 이권을 차지해 돈을 만들어냈다.
그 대신 구룡성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전부 방파의 문제로 삼아 밖에서 간섭을 못 하게 했다.
그렇게 되면서 밖에서는 못하던 것들이 이곳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벌어졌다.
“그러니까 이곳에서는 불법적인 물건의 거래도, 죄를 지은 자들도 심지어는 목숨을 건 대결도 전부 허용되는 거야.”
“……사패천에서는 그걸 가만히 보고 있어요?”
“물론이지. 그들이 정한 첫 번째 규칙만 어기지 않는다면 신경 쓰지 않으니까.”
“그 첫 번째 규칙이 뭐에요?”
“약육강식(弱肉强食).”
약한 것은 강한 것에 잡아먹힘을 말했다.
하지만 사패천에서는 그 말을 반대로 강자는 약자를 아무렇게 해도 괜찮다는 권리쯤으로 여겨졌다.
힘만 있으면 황제 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곳.
그렇기에 이곳에 모이는 자들은 그 비싼 값을 주고서라도 구룡성 내부에 몰려들었다.
대부분은 밖에서 문제를 일으켰거나 순수하게 사패천의 이념에 물든 자들이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절대 약해 보이지 마. 누가 시비를 걸면 차라리 먼저 주먹을 날려. 그게 어떤 놈이든 내 이름으로 다 무마해 줄 테니까.”
진백천의 단호한 말이 모두의 뇌리에 박혔다.
은연중에 진백천의 말을 듣고 있던 정도회의 무사들이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했다.
그리고 진백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먹을 기회는 빠르게 찾아왔다.
잿빛 무복을 입은 3명의 늙은이가 진백천과 정도회 무사들을 막아선 것이다.
“이게 누군가? 정도회의 피라미들 아닌가?”
“크크큭. 형님. 피라미라뇨. 그건 황충이나 그렇지. 이놈들은 피라미 새끼들입니다!”
“맞구나. 크하하하!”
진백천을 안내하고 있던 유소어는 슬쩍 그의 눈치를 살피더니 늙은이들에게 물었다.
“악산조삼노(岳山爪三老). 이 분은 천주님의 손님이시다.”
“10신위. 그거야 우리도 잘 알지! 다만 그 뒤에 야들야들한 계집과 피라미 새끼들은 아니지 않은가? 크큭!”
“저 치들은 우리가 적당히 집어삼킬 테니 가던 길 가시게나!”
정도회의 무사들은 그들의 도발을 이기지 못하고 얼굴을 붉히며 무기에 손을 올렸다.
유소어는 무슨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이며 진백천을 쳐다봤다.
악산조삼노라는 자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회주님. 사패천의 규칙이 원래 그렇습니다. 구룡성에 등록이 되지 않은 자는…….”
“……순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맞습니다. 구룡성에 대해 잘 아시는군요.”
사패천의 직책이자 권좌.
강함의 척도인 그 순위는 10위 까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각 층마다 그 순위가 지독하게 길게 나뉘었다.
그리고 무분별한 죽임을 방지하기 위해서 상대의 순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신위(臣位)들이 머무는 전각에서 정식으로 대결을 해야 했다.
그것이 아닌 밖에서의 대결은 올라갈 순위로 인정이 되지 않을뿐더러 규칙을 어긴 죄로 처벌을 받게 되었다.
“우리는 정해진 순위가 없으니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거군?”
“……정확히 말씀드리면 초대된 회주님은 제외하고입니다.”
공손한 말투와 달리 유소어는 진백천이 이후에 어떻게 나올지 무척이나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떨어져 있는 홍혈도도 마찬가지였다.
진백천은 이것 또한 사패천에서 내리는 하나의 시험임을 알아차렸다.
“크하하! 이것들 아주 편하게만 살았는지 살이 뽀얗구나! 우리 같은 밑바닥 놈들하고는 완전 다르게 살았겠어!”
“형님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손바닥에 굳은살도 안 박혀 있을 것들입니다!”
“이번 기회에 저놈들을 전부 처리하고 비싼 무기는 우리가 써야겠구나!”
군중심리라는 게 참으로 무서웠다.
악산조삼노가 큰소리로 외치자 그들의 목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동조하기 시작했다.
죽여도 상관없는 자들.
더구나 평소 그들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정도회의 무사들이니 그 과정은 더욱 빨랐다.
“회주님. 주변에서 서서히 포위해 오고 있습니다.”
“저희가 먼저 공격하겠습니다.”
“잠깐만.”
진백천은 직접 판단을 내리기보다 의견을 먼저 들어보기로 했다.
대주들의 의견은 아니었고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유소어였다.
‘물어본다고 대답해 주지는 않겠지만.’
진백천은 상단전을 열어 그의 속마음을 엿들었다.
-……과연 회주는 어떻게 나올까? 지금까지의 그를 생각하면 절대 수하들을 버릴 리 없지. 하지만 그것은 너무 평범해. 숫자가 명확히 차이는 지금으로써는 싸우기도 어렵고.
‘그건 그렇지.’
-……아니면 전의 형산파 소가주처럼 나에게 말려달라고 부탁하려나? 그러면 정말 실망인데.
유소어의 생각이 깊어짐에 따라 주변의 사패천 무인들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
가만히 있는 진백천이 숫자에 밀려 움츠러들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 보니 정도회도 별것 아니구나! 아우야! 더는 못 기다리겠으니 저것들을 처리하자!”
“알겠습니다! 제가 먼저……!”
악산조삼노 중 가장 막내가 날카로운 손톱을 빼 들고 달려들려는 찰나.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진백천의 담담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듣는 이로 하여금 움찔하게 만드는 강한 내력이 담겨 있었다.
“유소어.”
“네. 말씀하십시오.”
“그 순위에 안 드는 거 나도 포함된 거지?”
“맞습니다. 하지만 천주님의 초대 손님이기 때문에 저들이…….”
“아니. 그런걸 묻는게 아니라.”
진백천이 소매를 걷으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나도 저놈들 두들겨 패도 상관없다는 거잖아? 맞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설마 저자들을 모조리…….”
유소어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대신 진백천이 강하게 진각을 밟으며 정도회의 무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럼 잘됐네. 전부 반쯤 죽여버려.”
“존명!(尊命)”
정도회의 무사들이 사방으로 튀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