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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183화 (183/346)

무림회귀백서 183화

64장 신경전(1)

진백천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마주한 구 층의 전각에 혀를 내둘렀다.

일반적인 전각과 다르게 그 크기가 거대했다.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사파 무인이 있을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단일 세력이라고 보기에도 규모가 대단하고 응집력도 강하지.’

그 구심점인 사자혁이 계속해서 그들을 이끄는 한 사패천이 무너질 일은 없었다.

그렇기에 정도회로써는 꼭 붙잡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아니, 붙잡지 못하더라도 척을 지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되었다.

적어도 마교라는 거대한 파도에 방파제 역할은 해줄 터였다.

그런 진백천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황대원을 비롯한 정도회의 무사들이 비장하게 뒤로 나열했다.

“크게도 지었네. 사패천에서는 아무도 안 왔어?”

“그렇습니다. 방금 막 도착해서 회주님께 보고드릴 참이었습니다.”

“저희는 언제든 목숨을 걸 용기가 있습니다!”

그런 무사들의 태도에 지켜보던 사패천의 무인들도 반응을 보였다.

“역시. 사패천을 노리고 온 거군. 그렇다고 해도 겨우 저 정도 인원으로?”

“겁대가리를 상실했군. 소문대로 실력이 있는 자였던가? 크큭”

사파의 무인들은 오는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이 근질근질 하다는 듯이 눈을 빛냈다.

그런 주변의 상황에 진백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사패천에 와서 목숨은 왜 또 걸어?’

“대주들 이리 모여봐.”

“네. 회주님!”

진백천은 황대원과 강량호, 전등신까지 얼굴을 번갈아 봤다.

그 시선을 오해한 대주들이 낯빛을 굳혔다.

“천군지사대와 대주 황대원. 저 정문을 뚫으라고 하면 목숨을 걸고……!”

“잠깐. 왜 다들 사패천과 싸운다고 생각하지?”

진백천의 물음에 대주들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왜냐고 하시면…… 사패천과 저희는 앙숙이니까…… 요?”

전등신이 왠지 의문형으로 대답했다.

그제서야 진백천은 그들이 왜 이렇게 오해를 하는지 알아차렸다.

그동안 그가 보였던 모습은 충분히 사패천과의 관계를 오해할 만했다.

사자혁의 친동생인 사령령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두들겨 패고, 그들을 찾아가겠다는 말과 함께 쫓아냈다.

‘잘 모르는 이들이 보면 내가 선전포고라도 한 것처럼 보이겠군. 허 참.’

그리고 그러한 흐름을 부추긴 것은 강호의 호사가들도 한몫했다.

그들이 모여 떠들던 주제는 지난 십 년간 항상 똑같았다.

<마교의 잔악함과 사마외도(邪魔外道), 비인외도(非人外道)의 무공>

<사패천의 집요함과 구룡성에 올라선 10신위(臣位)의 강함>

그들이 말하는 이야깃거리에는 정도회나 진백천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진백천이 마교의 무인들을 박살 내고, 십신위를 두들겨 패고 검왕, 도왕과의 일전을 벌였을 때 모든 것이 변했다.

새로운 영웅호걸의 등장은 모든 강호인에게 열병처럼 퍼져 나갔다.

더더욱 진백천이 핍박받던 정도회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랬다.

<불세출의 영웅 출현>

<심모원려한 계략과 기존의 패자들에게도 지지 않은 무공실력>

그런 진백천의 짐작을 확인하듯 강량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회주님께서 강호행을 떠나신 후에 사패천의 입지는 매우 좁아졌습니다. 공공연하게 사파의 무인들이 사자혁과 회주님과의 대결을 기대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감히 무광 따위가 회주님을 이기려 들다니. 헛된 꿈이지만 말입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한 건 아니었는데 말이지.’

사자혁과의 대결.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첫 대결은 무조건 나의 승이야.’

십대악인(十大惡人) 중 가장 윗줄에 놓인 그였고 가진 무공이 절륜하다고 하지만 파악이 된 상대는 무섭지 않았다.

더구나 그자는 진백천을 모르니 붙으면 어떻게 될지 불 보듯 뻔했다.

‘나는 그자의 무공을 아니까.’

사자혁은 무광이라는 별호답게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무공을 익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독문무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많은 무공은 익힐 수 있던 것도 그 독문무공때문이었다.

‘회귀 전에 수없이 보고 듣고 맞붙어봐서 말이지.’

회귀 전만 해도 단일로는 그를 이길 자가 드물었다.

더구나 수많은 사파의 고수들 사이에 있으니 혈막(血幕)의 암살자 또한 그를 죽이지 못했다.

사자혁의 최초의 패배이자 사패천 최후의 전장이었던 사혈대전(私血大戰)은 마뇌가 펼쳐놓은 수많은 함정으로 겨우 가능했다.

하지만 그의 목숨을 취하는 대가로 마교에서도 피해는 막심했다.

‘철갑만마대(鐵甲萬馬袋)를 비롯해 오마군종대(八魔群種袋) 중 3대대대가 전부 갈려 버렸지.’

정도회의 입장에서는 적절한 양패구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순히 마교의 함정에 빠져 마인들과 함께 죽느니 조금 효용성 있게 그를 사용하고 싶었다.

‘사혈대전에서 그가 살아남았다면 사패천이 그렇게 모래성처럼 무너지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려면 이번에 진백천은 그와 맞부딪치거나 싸워서는 안 되었다.

혹시라도 진백천이 이기게 되면 사패천은 크게 흔들리고 반대로 지게 되면 정도회의 기세가 꺾였다.

가장 좋은 것은 둘이 적당히 서로를 인정하며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이 좋았다.

‘적당히 선물이나 주고 일시적 동맹쯤으로 갈까? 그게 제일 무난한데 말이지.’

때마침 품속에 선물로 줄 대환단도 있었다.

대충 마음을 정한 진백천이 무인 중 한 명을 안으로 들여보내려는데 구룡성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익-

묵직한 쇠의 마찰음이 마치 이무기가 우는 소리처럼 들렸다.

“사패천에서 사람이 나온다!”

“두드리지 않으면 절대 열리지 않는 구룡성이 먼저 문이 열리다니!”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진백천도 잘 아는 얼굴이었다.

“유소어?”

학사 차림에 그는 섭선을 한 손에 쥐고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이내 진백천을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하하하. 회주님!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저번 진주언가의 일 이후로 이게 얼마 만입니까! 사패천의 초대에 이렇게 응해주시다니 천주께서도 크게 반기라 말 하셨습니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듯 유소어는 보기 좋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별로 이야기를 해보지도 않은 당소예와 황대원에게도 친근한 척 인사를 했다.

“누군가 했더니 당 소저 아니십니까! 너무 아름다워지셔서 몰라볼 뻔했습니다. 하하하.”

“그래요? 운동을 좀 하긴 했는데.”

그의 폭풍 같은 사교성에 날 섰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겉으로만 보면 정말 고향 친구라도 만난 모습이었다.

진백천은 그런 유소어의 노력을 봐서라도 대충 받아줬다.

“뒤편의 저자는?”

“네. 회주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은 저희 사패천의 4신위. 홍혈도입니다.”

“반갑소이다.”

덥수룩한 수염에 각진 외모의 남자였다.

등 뒤로 붉은빛이 서린 도가 인상적이었다.

일반 무인이라면 감히 휘두르지 못할 만큼 두껍고 커다란 도였다.

진백천은 그 무기를 보자마자 홍혈도를 알아봤다.

‘홍혈도라. 적열의 화염을 뿌려대는 도법을 사용하는 자였지.’

특이한 것은 그의 별호 또한 이름과 마찬가지로 홍혈도(紅羅刀)였다.

“반갑군.”

“회주. 팽가의 도왕과 손속을 나눠봤다고 들었소. 나와 비교해서 어떤지 물어봐도 되겠소이까?”

“4신위와는 오늘 처음 봤는데 어떻게 비교하지?”

“하하. 그러면 나와 붙어보면 답이 나오지 않소?”

홍혈도가 껄껄거리며 웃음과 달리 금방이라도 뽑아 들 듯 등 뒤의 도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화기애애해졌던 분위기가 금이 가며 대주들과 무사들이 즉시 무기를 뽑아 들었다.

“물러서시오!”

홍혈도는 그들의 기세에 오히려 웃음이 짙어졌다.

단지 보여주는 것만은 아닌 듯 등 뒤의 도가 그의 내력을 흡수하며 붉게 달아올랐다.

“……4신위. 여기서 이러지 말고…….”

유소어가 옆에서 다급하게 그를 말렸지만 매서운 눈은 진백천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만약 작은 고개의 끄덕임이라도 있다면 허락의 의미로 알고 당장 도를 휘두를 모습이었다.

얼핏 과할 정도로 충동적이었지만 진백천은 홍혈도가 왜 그러는지 잘 알았다.

‘도왕(刀王). 팽도천에게 씻지 못할 원한이 있는 사람이었지?’

그 원한이 어떻게 생겨났는지까지는 잘 몰라도 원래의 역사에서는 그는 팽가를 찾아가 팽도천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지금의 실력이면 그자의 팔이라도 베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도왕의 묵호대도(墨虎大刀)를 넘어서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력이었다.

오히려 철저하게 농락을 당하며 도왕의 도에 사지의 근골이 잘리고 단전이 부서졌다.

‘다른 말로 하자면 도왕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안 될 위기감을 전해줬다는 뜻이기도 하지.’

죽이지 않은 것은 사패천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4신위는 그 뒤로 폐인이 되어 사패천으로 돌아가지 않고 길가에서 객사했다.

진백천이 이런 작은 파편이라도 기억하는 것은 그자의 운명이 기구했기 때문이었다.

홍혈도를 쳐다보는 진백천의 시선에 진지해졌다.

“도왕과의 비교라.”

진백천은 앞을 가로막고 있는 대주들을 미루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동시에 홍혈도를 향해 벼락처럼 쏘아져 나갔다.

백면섬보(百面閃步).

마치 번쩍이는 듯한 움직임은 한숨 내뱉기도 전에 홍혈도의 한 치 앞까지 다가왔다.

홍혈도는 유소어를 밀어내며 곧바로 도를 휘둘렀다.

적열태도(赤裂太刀).

조금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는 손속이었다.

하지만 그 도가 완전히 뽑히기 전에 그의 몸이 움찔하며 멈칫거렸다.

진백천이 백면섬보를 펼치는 것과 동시에 쏘아낸 호무살(虎武殺) 때문이었다.

그러한 찰나의 순간은 진백천이 검을 뽑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카앙!

독고구검은 마치 별처럼 번쩍이며 홍혈도의 칼집을 올려쳤다.

그가 재차 도를 뽑아 들려 했지만 이미 서늘한 검날이 목덜미 아래 놓인 상태였다.

홍혈도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검을 잠시 내려봤다.

방금의 공방을 되새김질이라도 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내 두꺼운 손으로 박수를 치며 놀라워했다.

“……과연! 명불허전이오! 패배를 인정하겠소!”

그러한 놀람은 홍혈도뿐만이 아니었다.

두 눈을 치켜뜨고 지켜보던 사패천의 무인들과 정도회의 무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회주님이시다! 도발에 흥분하지 않으시고 저자의 도를 뽑아내지 못하게 막으시다니!”

“만약 검날이 도집이 아니라 목이었다면 진즉에 끝이 났겠지!”

사패천의 무인들도 반응은 비슷했다.

“역시 구룡성에 초대될 실력이 있는 자다!”

“저자라면 몇 신위에 오를 수 있을까? 그래 봤자 천주에게는 안 되겠지?”

“천주는 무슨! 2신위에게도 부족하다!”

도발적인 말들이 몇 섞여 나왔지만 진백천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감상평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한 홍혈도를 향해 입을 열었다.

“지금 이대로라면 팽가칠도는 몰라도 도왕에게는 몇 초 지적 안 될 거야.”

“그동안 그렇게 노력했는데 아직도 그렇게까지나 차이가 나다니.”

“그렇다고 해도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는 마. 한 번의 벽을 넘으면 한 팔을, 두 번의 벽을 넘으면 그의 목에 도를 쑤셔 넣을 수 있을 테니까.”

도왕은 늙었고 홍혈도는 아직도 더 강해질 시간이 남았다.

그는 진백천의 말에 더할 나위 없이 만족했다.

“……두 번이라. 늦기 전에 서둘러 강해져야겠소이다! 하하하!”

그는 방금 패배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만큼 기뻐하며 진백천과 정도회의 무사들을 안내했다.

그들은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마치 크게 벌린 용의 아가리로 들어가는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은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사자혁.”

진백천의 시선이 구룡성의 가장 최상층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사자혁이 오롯이 서서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온 진백천을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다른 이들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진백천에게만 향하는 아찔한 살기는 덤이었다.

‘유치하게 도발이라 이거지?’

진백천은 서서히 상단전을 열며 강하게 호무살을 쏘아냈다.

이번에 한층 강해진 호무살은 단숨에 그의 살기를 산산조각 내며 사자혁에게 도달했다.

그는 순간 몸을 움찔하며 입술을 말아 올렸다.

‘흐음. 이 정도로는 우습다 이건가?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괴물 같은 놈이야.’

“회주님 이쪽이십니다!”

진백천은 곧 그에게 관심을 끊고 유소어를 따라 전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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