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회귀백서-179화 (179/346)

무림회귀백서 179화

63장 사패천으로(2)

마뇌의 싸늘한 말에도 금노산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있었지만 능구렁이 같은 노인이 모를 리 없었다.

단 콩 한 쪽도 자신의 것은 기억하고 관리하는 자였으니까.

“거래 내역에서 은자 37냥이 비는군. 일부로 나를 시험해 보기 위해 빼놓은 건가요? 금노산?”

반말 비슷한 질문에 금노산이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감정 하나 없는 무표정한 표정이 마뇌를 올려다봤다.

그의 속마음은 항상 그렇듯 극렬하게 고민 중이었다.

감히 자신의 것을 들여다보고 재단하려는 마뇌를 죽이고 싶다는 살의(殺意)와 반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드드드득-

그의 고민이 깊어질수록 주변의 바닥이 잘게 떨리며 흔들렸다.

매번 마뇌가 그를 찾아올 때마다 그는 그러한 충동에 휩싸였다.

그러한 분위기를 읽은 수하들이 천천히 무기를 빼 들며 주인의 명령을 기다렸다.

흑룡강성 내부는 곧 지독한 살기로 가득 채워져 갔다.

“마…….”

“금노산. 내가 누군지 또 잊었나요?”

금노산이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마뇌의 말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제서야 두 눈이 마주친 금노산이 움찔하며 멈춰섰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 그는 순식간에 살기를 줄이며 무릎을 꿇었다.

쿠우웅-

“……잊을 리가 있겠습니까.”

금노산의 살의에 제동을 건 것은 다름 아닌 공포였다.

그는 마뇌의 얼굴에서 어떤 순간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그리고 그것을 잊으려는 듯 뒤편에 있던 수하의 목을 움켜쥐었다.

“커헉! 금, 금왕이시여. 왜…….”

“닥쳐라! 감히 마뇌님을 속이려 들다니! 그건 죽음으로도 갚지 못할 죄이다!”

“그, 그건 전부……!”

수하는 말을 다 내뱉지 못하고 혀를 빼낸 상태로 축 늘어졌다.

단지 손아귀의 악력만으로 목뼈를 으스러뜨렸다.

곧 그의 입에서 마교의 고(蠱)가 꿈틀거리며 빠져나왔다.

누가 봐도 금노산의 지시가 분명했지만 마뇌는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혈막(血幕)이나 마해련(魔海聯)과 같은 이들과 비교하면 금노산의 행동은 애교에 불과했다.

마뇌는 이딴 것쯤은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이 대충 손을 휘저으며 입을 열었다.

“올해도 작년에 비해 3할가량 수익이 늘었네요. 수고하셨어요.”

“과찬이십니다.”

“하는 일마다 끼어든다는 황실 상단은 어때요?”

“그래 봤자 어린애 뒷발 차기 정도입니다. 황금마전은 이미 수십 개의 상단으로 모습을 감춰서 뭐가 본체인지도 모를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무작정 안심할 수는 없었다.

큰 흐름을 볼 줄 아는 자라면 이 거대한 자금의 흐름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정도쯤은 파악할 수 있었다.

왕부가 황금마전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직은 그 사실마저 드러나서는 안 되었다.

“그나저나 그 일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복마검(伏魔劍) 말씀이십니까?”

금노산은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히쭉 웃으며 기뻐했다.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중입니다. 멍청한 청성파 놈들이 저번의 3자루에 이어 5자루를 더 구매했습니다. 그 밖에도 중소문파를 비롯해 흑도에도 몇 자루 흘러 들어갔습니다.”

이러한 판매는 전부 뒷골목에서 은연중에 흐르는 소문 탓이었다.

<쥐는 것만으로도 내력을 보강해 주는 명검이 존재한다! 그 검의 이름은 복마검이다!>

물론 그 소문의 근원지는 마교였다.

이미 12자루의 복마검이 중원으로 흘러 들어갔고 그중에 2자루는 들어간 지 벌써 한 달이 넘은 후였다.

“수고했어요.”

금노산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하를 시켜 검을 한 자루 가져오게 만들었다.

복마검 중 특별하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만년한철(萬年寒鐵)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 검을 제련하던 12명의 대장장이의 목숨을 가져갔고 20명의 무인의 내력을 빨아먹은 희대의 마검입니다.”

싸늘한 회색빛이 맴도는 검날에 중앙에 장식된 자수정은 피처럼 붉었다.

평범한 이라면 쥐는 것만으로도 검에 이지를 집어삼켜지거나 죽을 때까지 내력이 빨려 들어갈 터였다.

“흐음. 어떻게 만들어진 거죠? 제가 전한 비전으로는 이런 검이 만들어질 리 없는데?”

“크크큭. 이쪽 분야의 전문인을 찾아냈습니다. 본교에 의해 추살되었던 혈뢰음사(血雷音寺)의 승려 중 하나가 살아 있었더군요! 이런 쪽에 재능이 있더군요!”

“혈뢰음사?”

의외의 이름에 마뇌마저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교주가 원래 가졌어야 할 혈강옥불상(血腔玉佛狀)을 만들어낸 미친 자들이었다.

그 이후에 마교에 의해 토사구팽당했지만 살아남은 자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자가 직접 검에 마공을 심어 넣었습니다.”

“혈강옥불상과 같은 마공인가요?”

“그것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마뇌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검을 내려다보다 금노산을 쳐다봤다.

“그자는?”

“그자 말입니까? 크크크큭”

금노산은 뭐가 웃긴지 한차례 웃음을 털어대더니 말을 이었다.

“자신의 죽음을 각오했는지 마지막 검을 식히는 과정에 자신의 몸을 바쳤습니다. 죽음이야말로 완벽한 탈인(脫人)과 번뇌(煩惱)로부터의 자유이니 뭐니 외쳐대며 말입니다.”

검은 그렇게 완성이 되었다.

문제는 완성된 검을 집는 자들은 하나같이 이지를 사로잡히며 마인이 되어 주변의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려 들었다.

보통의 복마검과 다르게 스며드는 시간도 없었고 강해지는 무공의 수위도 몇 배나 더 뛰어났다.

“그 검의 이름을 마뇌님께서 직접 지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흐음.”

잠시 검을 내려다보던 마뇌는 문득 그 검이 진백천이 사용하던 독고구검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상단전의 무공을 익힌 마뇌의 예감은 보통 이들과 달랐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 몰라도 이 검을 쥔 주인은 진백천과 맞붙게 될 것이다.

‘만들어질 때부터 마가 따르는 검이군.’

“좋군. 이 검의 이름은 종마검(從魔劒)이라고 하죠. 검의 주인은 그에 걸맞은 자였으면 좋겠는데.”

잠시 고민하는 마뇌를 올려다보는 금노산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소문을 들은 여러 곳에서 검의 의뢰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구룡성(九龍姓)도 있었습니다.”

“구룡성? 사패천(私敗天)?”

“그렇습니다. 무공에 미친자답게 무광(武狂) 사자혁(獅茨奕) 그자가 직접 의뢰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거 재밌겠네요.”

종마검이 그를 집어삼킬지, 아니며 사자혁이 종마검을 다스릴지.

어떤 쪽이든 마교의 입장에서는 상관없었다.

결국 그 검을 받아야 할 1순위는 마교가 아닌 진백천일 테니까.

“좋아요. 당장 검을 사패천으로 보내죠. 대신 우리의 정체는 절대 드러나지 않게.”

“물론입니다. 열 단계 이상 모르는 자들을 건너 전달될 겁니다. 크크큭”

마뇌와 금노산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그리고 권좌에서 내려온 마뇌에게 때마침 전서구가 도착했다.

소림의 일이 적힌 것이었다.

“흐음. 결국 실패했군.”

진백천을 죽이겠다는 일금영(一禽影)부터 때를 노리겠다는 운조대사를 비롯한 간자들.

말로는 해보라고 했지만 실패할 것은 당연했다.

진백천이 지닌 운명의 파도는 그들과 같은 잔챙이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파도가 꺾이려면 커다란 흐름이 필요해. 아직은 그때가 아니야.”

더 많은 피와 죽음.

모든 것을 뒤바꾸기에 필요한 것은 그뿐이었다.

‘하늘마저 놀랄 때 마침내 모든 것은 거꾸로 흘러가겠지.’

역천(易天)을 꿈꾸는 마뇌의 머리 위로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한바탕 비가 쏟아질 시기였다.

* * *

“……어처구니가 없네.”

진배천은 눈앞에 모인 인원들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마치 칭찬이라도 해달라는 듯이 서 있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할 말을 잃었다.

그들은 감히 주변의 접근을 허용치 않겠다는 듯이 기세를 떨쳤다.

천군지사대를 비롯한 수라검대와 대주 강량호, 복건추룡대와 대주 전등신.

그들만 해도 이미 무력대대 3대가 뭉친 100여 명에 가까운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주 작정을 했는지 정도회의 장로들도 보였다.

“회주! 그간 격조가 많으셨습니다!”

“…….”

마치 흑도파처럼 단체로 서서 인사를 하는 모습이 꽤나 박력이 넘쳤다.

주변에 몰린 이들이 흠칫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진백천은 그저 아니라는 듯 사양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마음은 격하게 흔들렸다.

‘저들은 또 누구지?’

분명 어디선가 봤던 얼굴이긴 한데 정확히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회귀를 하면서도 분명 그다지 존재감이 없던 장로들임은 틀림없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아무것도 모른 척 이름을 되물을 순 없었다.

‘……정도회 외곽을 담당하던 자들인가? 그렇다면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 계속해서 밖으로 돌아다녔으니까.’

“크흠. 여기까지 다들…… 무슨 일이지?”

“회주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소수로 다니셨지만 정도회로 복귀하는 곳까지는 저희가 다 같이 호위를 하겠습니다!”

진백천에게 꽤나 익숙한 강량호가 나서며 말했다.

그에 뒤지지 않겠다는 듯이 큰 목소리로 말하는 것은 전등신이었다.

전풍객의 손자였기에 진백천과는 다소 껄끄러운 사이였지만 흘러가는 대세를 보며 어디로 편을 붙어야 하는지 정도는 감을 잡은 듯 보였다.

그저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었다. 진백천을 바라보는 두 눈빛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이제부터라도 회주에게 내 존재 가치를 보여야 한다! 황대원은 그렇다 쳐도 강량호에게도 밀릴 수 없다!

“……다들 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은 알겠는데 말이지. 무슨…….”

‘깡패도 아니고 이렇게 몰려다녀?’

차마 뒷말은 입 밖으로 내질 못했다.

원래 자신이 기억하던 복건추룡대와 수라검대는 이렇지 않았다.

기세를 드러내기보다는 최대한 감추면서 조용조용히 다녔다.

이렇게까지 깡패처럼 기세를 끌어올리는 자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은 전부 진백천의 탓이었다.

“회주님의 명성을 따라가기 위해 부지런히 수련하고 노력했습니다!”

“지금도 열심히 해주고 있으니까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데.”

“아닙니다! 회주께서 보여주신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련했습니다!”

진백천이 정도회를 떠나기 전.

황충에게 자신의 대리를 맡기며 정도회를 위해 힘써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장로들의 힘이 세니 자신의 세력을 키울 거란 생각도 함께였다.

황충은 그 말을 듣고 자기 나름대로 그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진백천이 돈과 재화를 보내오면 그것으로 무기와 영약을 사는데 아끼지 않았다.

-아니, 무슨 그, 그렇게까지 약을 사들입니까?

-전부 회주님의 명이시외다!

전풍객이나 다른 장로가 한마디 하려고 하면 두 눈을 부릅뜨며 진백천의 이름을 팔았다.

덩달아 들뜬 것은 약왕당주였다.

그는 황충의 막강한 지원을 등에 업고 이런저런 단약을 만들어냈다.

정도회 자체적인 단약을 만들어내겠다는 일념하에서였다.

그리고 그런 노력이 통해서였을까?

약왕당주는 놀랍게도 소림의 대환단(大還丹)은 못돼도 무당파의 태청단(太靑丹) 정도 되는 단약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단약을 만들어냈다고? 단약을?”

“물론입니다! 그리고 회주님의 뜻대로 단약은 모든 무사에게 지급되었습니다!”

“……허허.”

단약을 만들어내는 것은 명문정파에서도 비전으로 묶여 어디에도 공개가 되지 않았다.

그만큼 만들기 어려웠고 소수만 독점하던 정보였다.

그것을 혼자서 연구해 만들었다는 것은 약왕당주가 홀로 걸어가다 금으로 된 벼락을 맞을 정도의 확률이었다.

‘……운이 좋은 건지 아닌 건지.’

그러한 과정에서 강호의 진귀한 약들을 씨가 말랐고, 정도회의 약왕전은 단약을 만드느라 밤새 불이 꺼지는 날이 없었다.

그것에 무려 진백천이 보낸 자금의 절반 이상이 쓰였지만, 덕분에 무사들은 단약을 먹고 일취월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안 봐도 황충이 그들을 세워놓고 얼마나 이상한 소리를 했는지 머릿속에 그려지네.’

이들이 왜 그토록 진백천을 보고 열광하는지 충성심이 높은지 알 것만 같았다.

“정도회의 무사 전부가 먹었다고?”

“물론입니다!”

수라검대의 전부가 강량호와 자랑이라도 하듯 앞으로 나서며 기세를 피어 올렸다.

그러자 뒤지지 않기 위해서 복건추룡대와 전등신도 더욱 어깨를 폈다.

하지만 진백천은 사람들이 가득한 숭산 앞에서 쓸데없이 힘자랑을 하는 듯한 모습이 보기 좋지 않았다.

그가 한마디 하려는 그때 황대원이 인상을 쓰며 다가왔다.

“그래. 황대원 저것들 좀 어떻게…….”

하지만 황대원이 멈춰 선 것은 천군지사대 앞이었다.

그리고 절도있는 모습으로 뒤돌아서며 소리쳤다.

“전워어어언! 회주님께 추우웅!”

“추우우웅!”

쿠우웅!

황대원은 마치 나 잘했지? 라는 표정으로 진백천을 쳐다봤다.

진백천은 두 눈만 꿈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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