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175화
61장 잔당 제거(3)
진백천은 운조 대사를 유심히 살폈다.
아무리 봐도 자신이 누군지 아직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정도회 회주를 죽이려고?”
“물론이다. 그자야말로 마교의 커다란 적이 될 자니까!”
진백천은 그제서야 운조가 자신을 누구로 생각하는지 알아챘다.
‘소교주 측 사람이라 생각하는군.’
오랜 시간 마교에서 떨어져 지냈지만 교주인 마천영이 모습을 보이지 않고, 소교주인 마화린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는 것쯤은 알았다.
실제로 그에게 뒤에서 명령을 내리는 자가 바로 마뇌였으니까.
진백천을 죽일 수 있으면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것도, 일금영과 전투를 벌였다는 것도 전부 마뇌를 통해 안 것이었다.
‘흐음. 충분히 오해할 만하지.’
진백천이 풍기는 마기를 보고서 정파의 사람이라고 생각할 리는 없었다.
“왜? 이제와서 생각이 많아지나 보지?”
운조는 여전히 주변의 마인들과 눈빛을 주고받으며 입을 열었다.
진백천이 아무 말 없이 있는 것이 영락없이 두 세력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그럴 만도 하겠지. 소교주 세력이라 해봤자 쓰레기 흑도방파 놈들과 혈랑대가 전부일 테니! 그나마 마교에 남아 소교주를 따르던 이들도 전부 마뇌님에 의해 손발이 잘린 상태다. 그분의 의지가 아니었으면 소교주 그자도 진즉에 처리되었을 터!
진백천은 그의 속마음을 들으며 흔들리는 척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운조는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빛내며 진백천을 포섭하려 했다.
“지금이라도 당장 교주님에게 다시 충성을 바쳐라! 너그러운 분이시니 한 번쯤은 용서해 주실 것이다.”
제까짓 게 무어라고 말을 한다는 건지 우스웠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정말이냐? 어떻게 말이지?”
“소교주에 대한 것을 전부 말해라! 그렇다면 지금까지와 다른 진정한 아수라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새로운 소림에서 나와 함께 영광을 준비하는 거다!”
우우우우웅-
천마신공의 마기가 아수라라는 단어에 반응하는 것인지 거칠게 흔들렸다.
진백천을 포획한 마인들이 움찔하며 물러섰다.
‘가만있어라.’
하지만 운조는 그것만으로도 진백천이 흔들리고 있다고 착각했다.
말도 안 되게 불자같이 생긴 얼굴로 진백천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두 어깨에 손을 올렸다.
“오늘 소림은 무너진다! 아니, 적어도 큰 타격을 받을 것이야. 이 뒤쪽의 마인들은 지금까지 처리하면서 왔던 이들과 달리 강호에 이름을 날리던 자들이다! 이들이 전부 나서면 소림의 장로들을 처리하는 것도 문제가 아니다!”
새롭게 변할 소림을 떠올리는 운조의 두 눈이 몽롱해졌다.
평생 본심을 숨기며 가면을 쓰고 살아왔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자신도 소림의 장문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장로들을 처리하고 마교의 지원을 받으면 소림을 집어삼키는 것도 문제가 안 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고대해 왔는지 모른다.
그런 과정에서 진백천 정도의 마인이 옆에 있어 준다면 얼마나 든든할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역천단을 먹은 놈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 죽을 테니까. 새로운 말이 필요하다.
“그러니 나와 함께…….”
재차 설득하려던 운조는 문득 진백천의 눈과 마주치고는 할 말을 잃었다.
진백천은 웃음을 참지 못하는 얼굴로 운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꿈이 얼마나 허망하고 멍청한지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네, 네놈…….”
“하아. 마지막까지 들어주려고 했는데 너무 한심해서 못하겠네. 적당히 해야지.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아주 다 해?”
“뭐, 뭐라?”
“더는 못 들어주겠군. 죽어가면서도 나한들과 소림을 생각한 장문인하고 너무 비교돼서 말이지.”
운조는 당황하며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이번에는 진백천의 손이 그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손을 떼어내려 했지만 오히려 살을 파고드는 손아귀의 힘만 강해질 뿐이었다.
“놔, 놔라!”
“놓긴 뭘 놔. 네놈이 걸어와 놓고서.”
여기까지 왔을 때만 해도 진백천은 운조를 곧바로 처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만 하면 너무 재미없을 것 같았다.
‘정파의 아집과 고리타분함, 마교 특유의 눈먼 믿음을 다 가지고 있어.’
그렇기에 천년마교를 따르면서도 소림의 장문인이 되기를 원했다.
“아무래도 당신을 그냥 죽이는 것보다 스스로 쌓아온 가면이 망가지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는 게 더 충격적이겠어.”
“……닥쳐라! 당장 이놈을 없애!”
운조의 명령에 주변에 있던 마인들이 진백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중에 제일 돋보이는 것은 역시나 갈마기마(渴魔飢魔)였다.
다른 이들과 달리 구금쇄(拘禁鎖)를 없앤 지 오래되었는지 그 흔적도 거의 없었고 마기의 수반도 가장 자연스러웠다.
다만 정신이 온전치는 못한지 두 눈동자에는 포악함만 가득했다.
“크아아아아악!”
마각흡혈치(魔角噏血齒).
갈마와 기마의 무공은 그 별호만큼이나 특이했다.
입을 벌리자 이가 자리할 곳에 날카로운 틀니가 존재했다.
그것으로 상대의 뼈와 살을 부수고 씹어먹었다.
진백천은 움켜쥐고 있던 운조를 방패처럼 내밀었다.
“허억! 멈춰라! 멈춰!”
세뇌된 상태의 갈마와 기마는 이를 다물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흉포함은 자제를 하지 못하는지 바로 옆에 있는 다른 마인의 목을 물어뜯었다.
“제법 쓸 만한 방팬데?”
“이, 이놈! 가만두지 않겠다!”
“가만두지 않으면? 어깨라도 부수려고?”
진백천은 마치 보여주겠다는 듯이 그의 어깨를 붙잡은 손에 힘을 불어넣었다.
우드드득!
양쪽 어깨의 뼈가 단숨에 박살이 나며 양손이 축 늘어졌다.
“크으윽!”
진백천은 뒤편에서 뻗어오는 마인의 공격에 다시 운조를 방패로 내세웠다.
“……멈춰라! 전부 멈춰!”
운조의 목소리에 마인들이 일순간 움찔하며 멈춰섰다.
그간 해왔던 세뇌가 통한 것이다.
진백천은 그때를 노려 운조를 벽에 집어 던졌다.
양팔이 부러졌기에 제대로 된 방어도 없이 벽에 머리를 부딪치며 널브러졌다.
“흐읍!”
동시에 독고구검을 뽑아 들며 검에 내력을 집중했다.
검날에 검녹빛의 검강이 피어오르며 주변을 은은히 비췄다.
“으윽! 죽, 죽여…….”
운조가 다급하게 마인들에게 명령을 내리려 했지만 검을 휘두르는 것보다 빠를 순 없었다.
‘가만히 있는 상대의 목을 베어내는 것만큼 간단한 것도 없지!’
독고구검은 유려하게 허공을 갈랐다.
닿으면 모조리 베어내는 보검답게 마인들의 목은 하나의 실금만 남긴 채 멈춰섰다.
“후우.”
“…….”
그리고 이내 마인들의 머리가 떨어져 내리며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피어올랐다.
“……말도 안 된다. 이 마인들을 한 번에 베어냈다고?!”
운조는 진백천의 압도적인 무위에 놀랐는지 입을 부르르 떨었다.
단 일검이었지만 그것을 제대로 확인조차 못 했다.
그간 소림사에 있으면서 이만한 실력을 가진 무인을 본적은 거의 드물었다.
“너, 너는 누구냐! 소교주를 따르는 자 중에 이런 실력을 가진 자가 있다고 듣지 못했다! 소교주의 오른팔인 혈라독검(血儸毒劍) 마영이라고 하더라도……!”
“거참. 말 많네.”
진백천은 독고구검의 묻은 피를 털어냈다.
금방이라도 운조를 베어낼 것 같은 기세였지만 그가 걸어간 것은 갈마와 기마를 향해서였다.
본능만 남은 자들이었지만 전대의 마두답게 치명타를 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목 대신 턱이 반쯤 잘린 채 숨을 헐떡였다.
‘이대로 두면 알아서 죽겠군.’
악행을 일삼던 마인이 편히 죽게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진백천은 그대로 뒤돌아서서 운조에게 다가갔다.
“이제 올라가서 그토록 네놈이 바라던 소림 전복이 이루어졌는지 확인해 볼까?”
운조는 뒷걸음치며 반항했지만 이 공간에서 도망칠 수 있을 리 없었다.
“잠, 잠깐. 멈춰라! 내가 잘못했다!”
“뭘 잘못했는데?”
“소교주, 아니, 소교주님의 말을 따르겠다. 그러니 한 번만 살려주게. 이대로 죽을 수 없음이야!”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상황을 바꿀 수 있다. 소림의 무인들은 아직 나를 따를 테니까!
진백천은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 한 운조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쯧. 늙은이가 늙어도 곱게 늙고 미쳐도 곱게 미쳐야 하는데. 추하게 변태적으로 미쳤구나.”
“……제발 살려주게! 마인이 필요하다면 어린 제자들 중에 근골이 좋은 애들로 뽑아놨어! 그들을…….”
“닥쳐.”
더 들어주기 역한 소리에 진백천은 그를 끌고 열린 감옥으로 향했다.
‘이런 늙은이를 소림에 주는 건 그들한테도 고역이겠지. 그냥 내 선에서 처리하자.’
목덜미를 집은 채로 질질 끌려오던 운조가 그의 발을 붙잡고 애원했다.
하지만 부러진 팔로 힘이 제대로 들어갈 리 없었다.
그대로 감옥에 집어 던져놓은 진백천은 바닥에 널브러진 갈마와 기마도 똑같이 좁은 감옥에 밀어 넣었다.
끼이이익-
그리고 철문을 그대로 꼬아서 나오지 못하게 막아버렸다.
“이, 이게 뭐 하는 건가?”
“뭐하긴. 당신이 열심히 세뇌시킨 그놈들하고 잘 지내봐.”
진백천은 그 말을 뒤로 곧바로 운조가 만들어놓은 개구멍으로 향했다.
“잠, 잠깐! 멈춰! 나를 버려두지 마라!”
운조가 거칠게 소리쳤지만 진백천은 시끄러운 목소리를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걱정 마. 아무도 당신을 찾지 않을 테니까. 한참 후에나 죄인의 죽은 시체로 발견되겠지.”
참회동의 깊숙한 이곳은 소림사의 무인들도 내려오지 않는 곳이었다.
그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대도 들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물론 그전에 씹어 먹히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뭐?”
진백천은 그 말을 끝으로 개구멍으로 올라가 버렸다.
그리고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만들어진 개구멍을 막는 것을 잊지 않았다.
쏟아지는 잔해를 바라보며 운조가 거칠게 소리쳤다.
“잠까아아안! 나를 두고 가지 마!”
곧 어둠만이 찾아온 공간에는 3명의 헐떡이는 숨소리만 들려왔다.
하나는 흐느끼는 운조였고, 나머지 둘은 갈마와 기마였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살아서 나가주마!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죽을 수 없다!”
운조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그의 어깨를 4개의 손이 붙잡았다.
바로 갈마와 기마였다.
숨이 멎어가는 와중에도 그들은 피와 살점에 대한 갈증과 욕구를 포기하지 못했다.
“놔라!”
운조의 명령을 듣지도 못할 만큼.
그들은 천천히 운조를 바닥에 끌어 내리며 부서진 턱을 으적거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운조의 비명만 메아리처럼 울리다 사라졌다.
* * *
참회동의 개구멍으로 기어 올라온 진백천을 맞이한 것은 소실봉(少室峰)의 맑은 공기였다.
개구멍은 정확히 가주전이 내려다보이는 중턱으로 이어져 있었다.
마인들을 이끌고 이곳에서 곧바로 가주전과 장로전을 공격하려던 속셈이었다.
‘큰 소리가 안 들리는 것을 보면 별다른 문제는 없나 보군.’
진백천은 눈앞에 보이는 가주전으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대신 참회동 앞을 지키고 있는 나한들과 함께 지객당으로 향했다.
‘운조와 대기하고 있던 마인들을 처리했으니 나머지는 원진 장로가 알아서 마무리하겠지.’
제일 걱정되는 것이라면 바로 가짜 진백천과 함께 남아 있는 황대원과 당소예였다.
운조가 진백천을 1순위로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상당히 많은 마인을 그곳으로 보냈을 터였다.
“회주. 어떻게 되셨습니까?”
입구를 지키고 있던 나한들은 피가 튄 얼굴로 물었다.
안에서 진백천이 난리를 피는 동안 빠져나온 마인들과 죄수들을 그들이 처리한 것이다.
“좋게 마무리되었어. 지객당으로 가려는데 같이 가줄 수 있나?”
“물론입니다!”
“원로전에서 전하길 그곳에 있던 마인들도 전부 처리했다고 합니다!”
“다행이군.”
진백천은 이곳에 올 때와 마찬가지로 땅을 박차며 날듯이 지객당으로 향했다.
그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처참히 부서진 지객당의 입구였다.